니힐리스트로 사는 법 -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에게 니체의 니힐리즘이 전하는 지혜
문성훈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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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1. 작성 글.

#협찬 니힐리즘과 아모르 파티

1.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를
들어보셨나요??

노래 제목이나..
가사로 들어 본 분도 계실테죠??
(거기서 처음 들어본 사람..?!!
바로.. 접니다. ㅋㅋㅋㅋㅋ)

어떤 단어든, 그 어원을 찾아보면..
조금 더 뜻이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모르 파티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인데..
아모르(사랑) + 파티(운명) 의 합성어 입니다.

한자로는 '운명애' 라고 번역되고..
한글로 풀어서 쓰면 '운명에 대한 사랑'
쯤으로 보통은 해석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종종 제 글에서..

'끌어당김의 법칙'과
'자기 충족적 예언'을..
구분하곤 했었는데요..
(종종 까칠하게 구분했지만..
이제는 부드러워지려고 합니다.)

둘의 차이를 다시 지금
비교해서 적는다면..

이렇게 적을 수 있겠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경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사람의 삶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가져온다는 신사상 영적 믿음' 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디테일 생략..)

자기충족적 예언(자기실현적 예언)의 경우..
'사람의 믿음이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사회심리학적 현상의 한 예' 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디테일 생략..)

단순화 시켜 본다면..
믿음과 현상의 차이..
입니다.

믿음이 가끔 현상이 되어
나타나기도 할테지만..

이건 명확한 '인과관계'라고
보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면, 현상의 경우..
인과관계가 보다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행동경제학을 떠올리면..
조금 더 이해가 쉽게 됩니다.

작은 넛지 하나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현상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본능적으로 잘 이끌리곤 합니다.
(의식하지 않는다면 더요...)

'운명에 대한 사랑'은..
약간 '끌어당김의 법칙'에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마치 이런 거죠..

"운명을 사랑해!! 그럼 다 잘 될거야!!"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아모르 파티'는 이것 보단..

"인간은 운명 앞에서 별 수 없어.
받아들이고, 너만의 사랑(혹은 의미)을 찾아!"

흠...
조금은 억지스러울까요??

---

2. 니힐리즘..
'니힐리즘'을 들어보셨나요?

니힐리즘은 無(없을 무)를 의미하는
라틴어 nihil(니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허무주의'로 번역되는데..

원래 뜻과 비교할 때
차이가 너무 커서 이 책에서도
'니힐리즘'으로 그냥 사용됩니다.

니힐리즘의 원래 뜻은..
"기존의 가치, 도덕,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철학적 관점"
에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출처: 네이버 AI 브리핑..)

범용적으로 사용된 맥락을 생각하면...
분명 원래 뜻에 더 납득이 됩니다.
'허무주의'는 너무 단순화 시킨 것 같아요.
(저만 그런건지 모르겠으나.. "허무하다."
라는 말이 뭔가 무력함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감정이 섞인 것 같아서.. ;;;;)

"신은 죽었다." 라는 니체의 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일테고요...

모태 무신론자였고..
딱히 종교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도 없이
오랜 기간을 살아왔기에 어쩌면 더..
'니힐리즘'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느껴진
의식의 흐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의식의 흐름이 담겼는지..
첨부파일로 공유드립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니힐리스트로사는법
#문성훈교수 지음

#이소노미아 출판사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바라보는 것이다."
#릴케 #두이노의비가

(오늘부터)
#니힐리스트

#아모르파티
#북스타그램 #바닿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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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철학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모집,
@이소노미아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프롤로그)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삶을 무겁게 느낀다. 세상이 얹어놓은 짐 때문에 중압감에 시달린다. 한국 사회만 해도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들이 많다. 어렸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 그래야 돈 벌고 출세하잖아!" 사람들은 돈이 많은지, 학벌이 좋은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게다가 외모가 출중한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한다. 따라서 누구나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좋은 학벌을 위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위해, 더 출중한 외모를 위해 무한 경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삶이 힘들다. 경쟁의 승자는 돈, 학벌, 지위, 외모를 과시하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우월감에 빠져 살 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패배감은 물론 열등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삶을 버리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다. 그중에서도 2030 청년 세대의 자살 비율이 제일 높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삶을 시작하자마자 삶을 버리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을 말하고 싶다.
니힐리즘이 청년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 사람 모두에게 니힐리즘을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승자의 기쁨만 만끽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경쟁이 치열하면 아무리 승자라 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패자이고, 경쟁이 치열하면 그만큼 서열화가 강화되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은 점점 소수가 된다.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할까? 돈, 학벌, 지위, 외모가 과연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하는 절대적 가치일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인간의 삶을 평가할 절대적 가치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니체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니체의 사상을 소개한 책은 아니다. 내가 니힐리즘에 대한 니체의 통찰과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에 대한 그의 혜안을 수용하지만, 그의 사상 전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나는 특히 주인과 노예, 귀족과 무리, 강자와 약자, 고귀한 자와 비천한 자를 나누는 그의 엘리트적 사고방식에 반대한다. (…)
나는 그런 세속적 가치들이 마치 신처럼 추앙되며 인간을 짓누르는 절대적 짐이 된 오늘날,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듯, 이런 가치들의 죽음을 선포하고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니힐리스트였다. 지금은 철학 교수지만, 많은 순간 니힐리스트로 살았다. 이 책에는 니힐리스트로 살아온 나의 경험과 니힐리스트 철학자로서의 내 생각이 담겨 있다. p. 18~21


니체와 니힐리즘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일종의 전율을 경험했다. 그것은 니힐리즘과의 만남이었다. (…)
니힐리즘이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그 어떤 삶의 목적이나 가치도 존재하지 않고, 이 세계 역시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존재하며, 그저 무의미한 생성, 변화, 소멸만이 반복된다는 철학적 입장이다. 나는 이러한 니힐리즘을 통해 당시 나의 고민의 정체가 결국 니힐리즘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니힐리즘을 통해 나의 고민을 표현할 수 있는 철학적 언어를 알게 된 셈이다.

니체는 왜 니힐리즘을 주장했을까? 사실 니체가 니힐리즘을 주장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니체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면, 니힐리즘을 주장하진 않았을 것이다. (…)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면, 이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이며, 따라서 이 세계는 신의 섭리에 따라 운행하고,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더구나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과 행복을 보장하지 않던가! 그러나 니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신의 죽음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니체는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광장에 나타난 미친 사람의 입을 통해 신의 죽음을 선포한다.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신은 어디로 갔는가? 신이 사라졌나?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나? 아니면 신이 숨기라고 했나? 나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당신들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가? 지금 이 교회들은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닌가? 나는 당신들 앞에서 신의 영혼을 기리는 진혼곡을 부른다.
ㅡ 니체, 「즐거운 학문」, 니체 전집 12, 책세상, 199-201쪽, <125. 광인> 축약

이렇게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하지만, 니체가 단순히 기독교 신을 부정하거나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공포한 것은 아니다. 서구 문화에서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서구 문화에서는 중세까지만 해도 신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종 근거였다. 인간은 절대적이고 영원히 살아갈 때, 그 삶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절대적 가치인 양 추구하는 것들은, 그것이 진리이든, 정의이든, 도덕이든, 결국에 가서는 신을 최종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인 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신의 영향력 또한 사라졌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은, 신이 지배하던 중세 시대가 붕괴한 후 신의 존재가 점차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인간은 본능에 따라 사는 동물과 달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어차피 죽을 것 왜 살지?" 인간은 이렇게 삶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삶이 아무리 괴로워도, 이 괴로움에 의미가 있다면 이를 견딘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이 괴롭기만 하다면 인간은 차라리 삶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기독교 교회는 흔히 내세의 구원을 말하며,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도록 설교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이 사는 의미이자 목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 그 방향까지 제시했던 바로 그 신이 죽었다는 선포는 삶 자체를 문제 삼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 인간은 삶의 의미, 가치, 방향 모두가 사라진 무(nihil)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힐리즘(nihilism)이다. (…)

나는 사춘기 시절의 나의 고민이 바로 니힐리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니힐리즘은 나의 고민을 표현할 철학적 언어일 뿐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고민이 니힐리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삶의 목적, 가치, 의미도 없다면, 이 세계가 그저 생성, 변화, 소멸이 반복되는 무가치한 세계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회도 도덕도 법도 정의도 다 필요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까? 그리고 내가 지금껏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다 허구일까? 나는 이 모든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나는 철학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는 철학과 학생으로 지금은 철학 교수로 여전히 철학을 하며 산다. 그간 내가 무엇을 배웠고, 어떤 생각에 도달했든, 변함없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이 창조한 것일 뿐, 인간의 삶과 이 세계가 지금처럼 원래 그렇다는 것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p. 52~60

한도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티끌보다 작은 지구에서 티끌도 안되는 인간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며 싸우고, 싸움이 커지면 폭력이 난무하고, 전쟁도 불사하고, 세계 대전까지 일어난다. 지금은 핵 전쟁으로 아예 인류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무한한 우주의 눈으로 보면 현미경으로 살펴보아도 찾을 수 없는 미미한 존재들이 이러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한마디로 우습지 않은가? 물론 우주가 제아무리 넓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의 사소한 이익이라도 이게 제일 중요한 게 인간이다. 그러나 우주의 눈으로 보면 우리에게 아무리 큰 문제라도 작아 보인다. 따라서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그만큼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p. 81~82


아모르파티
니힐리스트에게 인생이란 아름다울까? 고통뿐일까? 니힐리스트는 어떻게 인생을 살까? 나에게 니힐리즘이란 말을 알려준 니체는 많은 글을 썼고, 많은 생각을 남겼다. 나는 니체 전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니체의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의 마음속에 각인된 한마디 말이 있었다. 나는 이 말을 통해 니체적으로 사고하고, 니체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니체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라는 책 제목을 빌자면, 나는 이 말이 '니체적인, 너무나 니체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것은 '아모르 파티'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우리말로 '운명 애'로 번역된다. 말뜻만 보면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운명이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인생의 과정마저 정해져 있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니체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데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고, 인간의 삶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인간에게 닥친 운명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운명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삶의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 세계와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니힐리스트의 삶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세계와 삶을 무의미하게 보는 니힐리스트에게 니체는 왜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할까?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겐 누구나 삶의 의지, 즉 살려는 의지가 있다고 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살지 않고, 죽으려는 사람도 있을까? 물론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그래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도 삶의 의지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사람은 삶의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삶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p. 96~98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살지? 이런 질문에 아무런 답도 내릴 수 없다면, 인간이 아무리 삶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죽음의 설교자들이 말하는 참된 세계나 천국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는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참된 세계나 천국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절하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삶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이 살면서도 삶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 즉 이 세계와 삶의 허무함을 긍정하는 데서 시작한 자기 창조적 삶이다. 그러나 아모르 파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니힐리즘에서 출발한 자기 창조적 삶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모든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으며, 이 절대적 가치에 대한 복종이 주는 안도감을 거부하고, 영원한 세계의 유혹마저 떨쳐버릴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길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해방하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될 뿐만 아니라, 누구도 대신할 수도 누구와 비교될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난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아모르 파티가 '인간의 위대함'이 발휘되는 공식이라고 말한다. 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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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스트로 사는 법 -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에게 니체의 니힐리즘이 전하는 지혜
문성훈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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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가치, 도덕,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철학적 관점, 니힐리즘! 니힐리스트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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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경제학 강의 - 위대한 경제학자 9인이 들려주는, 최신 개정판
조립식.조윤형 지음 / 길벗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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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경제학, 쉽게 배울 수는 없나??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
각자의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먹고살기 위해, 방법은 다를지라도
결국 모두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경제학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경제학은 왠지 전문가들만의 영역처럼
느껴졌고, 범위도 너무 넓어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경제학 = 어렵다’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올랐으니까요.

그런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제학으로도
시선이 닿게 되었습니다.
(모든 분야는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솔직히 지금도 경제학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느껴가고 있습니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는 중입니다.

경제학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그 방대한
범위와 복잡성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법학, 정치학, 언론학, 과학 등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은 의외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물론 '경제'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경제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 잡은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시작의 범위만 본다면
다른 학문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면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이 특히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정치적인 영향력 때문 아닐까요?

경제와 정치는 마치
형제처럼 서로 얽혀 있으니까요.

저는 경제학을 공부할 때도
역사적 배경부터 접근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깊게 파기보다는 얕게,
가볍게 시작하는 편이 좋다고 느꼈고,
그런 저에게 이 책은 아주 좋은
시작점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렵던 경제학이 만화 형식으로 구성되니
확실히 더 쉽고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경제 연대표까지 잘 정리되어 있어서
두고두고 참고할 자료로도 훌륭합니다.

어떤 분위기의 책인지 가늠하실 수 있도록,
초반부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일부 공유해 보겠습니다. ^^

이쯤에서 줄일게요!

끝!!

#만화경제학강의
#조립식 , #조윤형 지음

#길벗

#경제스터디
#경제공부 #금융시장 #경제분석
#돈공부 #책추천

#애덤스미스
#토머스맬서스
#데이비드리카도

경제학 만화..
얼마나 재밌게요?? ^^
#북스타그램 #바닿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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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경제학

디테일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봐주세요.

링크 남려드립니다.

https://m.blog.naver.com/seasky210528/22394805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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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경제학 강의 - 위대한 경제학자 9인이 들려주는, 최신 개정판
조립식.조윤형 지음 / 길벗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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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포기자도 빠져드는 책!! 쉽고 재밌는 경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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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두 번째, 런던에 가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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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차선의 삶..

오늘은 해당 시리즈의
마지막 리뷰인 만큼....

제가 나름대로 해석한
부분을 공유드려 볼까 합니다.

"이 시리즈의 핵심이 될만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제가 답할 내용을 결론부터 말한다면..

'차선의 삶' 입니다.

---

지금부터 차선의 삶에 대해..
한 번 편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삶을..
계획대로 잘 살고 계신가요?

제 일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아쉬움을 느낍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진 않습니다.
(상대적인 기준이라면 온라인 공간이
일상보다는 조금 더 높습니다. ㅎㅎ)

하지만 일상에서든 온라인 공간에서든..
나름대로 만족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저보다 높은 만족감으로 살고 계신 분이
읽는다면, 별로 참고할 내용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궁금할 수 있기에
저의 비결을 편하게 적어본다면...

차선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들은..
문화와 유전자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문화-유전자 공진화론을
좋아하지만.. 거기까지 나가진 않겠습니다.)

어떤 유전자를 받고 태어났으며,
어떤 문화권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넓게는 국가, 좁게는 가정까지 포함..)

삶이 정해진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높은 확률로 방향이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향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또 적극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쩌죠...????

그저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가진 힘을 도구로 사용하여,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간혹 누군가는 그 어떤 관계라도..
두부 모 자르듯 잘라낼 수 있을테지만;;

그래서 결국 본인의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설정하고 살아갈테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 방향에서 흐르듯 살다가..
아주 조금씩 방향을 트는 게 고작 일겁니다.

제가 처음에 언급한
'차선의 삶'이 이겁니다.

---

원래 카프카까지 .....
이어서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과한 것 같아서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차선의 삶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이쯤에서 줄일게요.

끝!!

#어느영국여인의일기두번째런던에가다
#EM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번역

#적정한삶 #차선의삶
#두번째삶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소설

@woojoos_story 모집,

#이터널북스
@이터널북스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6월 9일
삶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해 12월에 출간한 소소하고 가식 없는 문학 작품이 놀랍도록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덕분인데, 그 작품을 쓴 사람은 (믿을 수 없게도) 바로 나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족과 친구들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p. 7


6월 16일
모르는 사람에게서 이상한 편지가 왔다. 앞으로 제대로 된 가정에서는 나를 절대 들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는다. 내 책과 같은 출판물은 예술로서나 도덕적으로나 해롭다면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지만 서명을 알아보기 어렵고 주소도 이상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나중에 생각하니 하인들이나 아이들이 조각 맞추기를 해볼 것 같아서 다시 꺼내 와선 정원 오솔길에서 몰래 그리고 아주 힘겹게 작은 불을 피운다. (여기서 또 한 번 소설과 현실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듯. 책에서는 언제나 많은 양의 문서도 금세 불에 타서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하지 않나?)
p. 12-13


6월 29일
도티 가로 돌아오자 주요 일간지에서 전화가 걸려와 "결혼 생활에서의 현대적 자유"를 주제로 글을 써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뭔가 잘못 안 것 같다고, 나를 더 유명한 사람으로 착각한 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지만 참고 얼마나 길게 써야 하는지 (즉, 받아줄 수 있는 최소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원고료는 얼마나 줄 것인지 묻는다. 딱히 유쾌하지 않고 사무적인 전화 속의 목소리는 1500단어를 제안한 뒤 꽤 큰돈을 제시한다. 나는 좋아요, 그럼 할게요, 하고 대답한 뒤 다시 묻는다. 언제까지 써야 하죠? 전화 속의 목소리가 다음 주 초까지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하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눈다. 나는 몹시 들떠서 이것저것 구상한다. 만찬 파티를 열고, 밀린 대금들을 지불하고, 아이들 선물을 사고, 여름 방학엔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가고, 로버트에게 은행을 달랠 만한 액수의 수표를 보내고, 내 모자를 하나 사면 어떨까? 그러다 아직 돈을 받기는커녕 글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시라도 빨리 결혼 생활에서의 현대적 자유에 관해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웬 남자가 문 앞으로 찾아와선 내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전화기 상태 때문에 자주 골머리를 않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서 일단 들어오라고 한다. 그는 전화기를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세균에 관해 장황하고 놀라운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이토록 흉포하고 어마어마한 위험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가 제안한 대로 정기적으로 전화기 소독 서비스를 받기로 한다. 필요한 문서를 작성하고 나자 남자는 떠날 준비를 하며 마무리로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려서 정말 다행이라고, 많은 여성이 스스로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알고 나면 몸서리칠 거라고 한다. 마치 인신매매의 위협이 닥치기라도 한 듯 얘기하지만 그가 말하는 위험은 기껏해야 세균이다. (…)

다시 결혼 생활에서의 현대적 자유에 관해 쓰려고 준비하며 연필을 깎는데 연필심이 세 차례나 부러진다. 이윽고 요란하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연필을 완전히 떨어뜨리고(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연필이 부러진다) 문을 열어 보니 무척 힘이 세 보이는 창문 청소부가 서 있다. 내가 들어오라고 하자 그는 사다리와 대걸레, 양동이 따위의 도구를 들고 아주 자유롭게 들어온다. (…)
다시 결혼 생활에서의 현대적 자유에 몰두한다. 압지에 풍차를 그려 본다. 그러고 첫 문장을 아주 인상적으로 쓰는 게 중요하다고 되뇐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인상적인 문장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 텐데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다. (의문: 이중적인 도덕의 잣대에 관해 쓸까? 너무 식상한가?)
(…)

갈수록 영감은 떠오르지 않고 결혼 생활에서의 현대적 자유에 관해선 그저 지방에는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결혼 생활에 대해선 충분한 의견을 갖고 있지만 그런 건 지구상의 어떤 신문에도 발표할 수 없고 어쨌든 내 손으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리자 아주 짧은 순간에 여러 가능성이 머리를 스친다.
(a) (남편) 로버트가 급사했다.
(b) 저작권 대리인이 내 책의 영화 판권을 달러도 아닌 파운드로 다섯 자릿수의 금액을 받고 판매했다.
(c) (아들) 로빈이 학교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d)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옛 친구) 패멀라 프링글이 또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내게 자기 행적을 감춰 달라고 부탁하려 한다.

메모: 인간의(특히 여자의) 상상력은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의 속도를 능가하는 듯. 이런 현상을 짧은 시로 표현할 수 없을까? 지금은 결혼 생활에서의 현대적 자유에 관한 기사를 구상하는 것보다 그 편이 휠씬 더 쉬운 것 같다.

이 모든 상상은 전화벨이 겨우 두 번 울리는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


7월 1일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지구상
에서 가장 싫어하고 잘 못하는 일, 바로 짐 싸기다. (…)
여행 가방과 한참 씨름하며 열을 올린 뒤에야 간신히 닫는
데, 그 순간 깔끔하게 갠 가운이 나를 마주한다. 빼놓고 넣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 보니 에마 헤이다. 자기가 쓴 풍자
적인 글에 관해 몹시 흥분하며 런던 전체가 그 얘기를 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더니 아주 중요한 사람 몇몇에
게 그 글을 낭독해 준 뒤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평하려고 하는데 지금 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짐짓 안타까워하며 곧 시골로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에마가 소리치길, 뭐? 런던을 떠난다고? 미쳤어? 정말 평생 부엌이나 드나들면서 로버트에게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차려 주고 흙 묻는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아이들
을 말리면서 살거야? 나는 짧고 날카롭게 대꾸한다. 응, 그러려고. 그러곤 전화를 끊는다. 에마를 상대할 때는 이게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인 것 같다.


7월 4일
집에 돌아오니 나름대로 좋은 점이 많다. (…)
로버트가 요즘엔 어떤 글을 쓰냐고 아주 상낭하게 묻기
에 나는 가볍게 대꾸한다. 결혼 생환에서의 현대적 자유
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고. 그러고 나자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 로버트에게 좋은 생각이 있느
냐고 묻는다. 그는 몇 가지 의견을 내놓지만 정리하면 주
로 이렇다. 사람들은 요즘 터무니 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하고, 미국에서는 이혼이 별것 아닌 듯하며, 여성들의 문제는 대개 할 일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로버
트에게 대단히 고맙다고, 큰 도움이 되겠다고 한다. (…)


7월 8일
오늘자 <시간과 조수>에서 백일몽에 관한 짧고 신랄한 기사를 발견한다. L. A. G. 스트롱이라는 서명이 적힌
이 기사는 신기하게도 바로 전 내 일기의 내용과 일맥
상통한다. 특히 인상적인 (하지만 유쾌하지 않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삶을 둘러싼 상황과 정반대 상황
을 자주 꿈꾼다면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해롭다."
이 문장은 분명 내 삶의 오랜 기간을 차지한 나의 정신 활동을 정확하게 요약한다. 스트롱 씨에게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는 편지를 쓸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생선 장사와 통화를 하고 (중간
토막은 너무 비싼데 물 좋은 가자미는 있나요?), 스카버러
풍경이 그려진 엽서 뒷면에 나와 아이들의 안부를 건성
으로 물은 시시 크래브에게 답장을 쓰느라 오전이 다 지나간다. 그 밖에도 상인들에게 엽서를 쓰고 세탁소에 수표를 보내고 직업소개소와 지역 신문 가판대에도 수표를 보내느라 스트롱은 잠시 밀어 놓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루 종일 예기치 못한 순간에 문득문득 백일몽의 해로움이 떠오른다. 앞으로 평생 가끔씩 이런 상황을 겪을 것 같다. p. 25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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