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seasky210528님의 서재 (seasky210528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9 Aug 2026 14:15:14 +0900</lastBuildDate><image><title>seasky210528</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easky210528</description></image><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기쁨은 현실을 지우는 주문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 [폴리애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64064</link><pubDate>Fri, 21 Aug 2026 1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640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302&TPaperId=174640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04/76/coveroff/89491413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302&TPaperId=174640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폴리애나</a><br/>엘리너 포터 지음, 스톡턴 멀포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9년 05월<br/></td></tr></table><br/>기쁨은 현실을 지우는 주문이 아니라,<br/>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br/><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br/>마지막 책, 엘리너 H. 포터 - 《폴리애나》<br/><br/>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폴리애나'라는 단어 자체가 이 소설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 또는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경향'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도 쓰인다고 한다.('카프카에스크'가 문득 연상되었다...)<br/><br/>작품 속 폴리애나는 얼핏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처럼 보인다. 어떤 나쁜 상황에서도 기뻐할 만한 것을 기어이 찾아내는 '그냥 기뻐하기' 놀이가 그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br/><br/>솔직히 처음엔 이 놀이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의 고단함이나 불행이 긍정적인 자기암시 하나로 마법처럼 지워지는 건 아니니까..<br/><br/>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작가가 말하는 '기쁨'은 그저 덮어놓고 웃으라는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br/><br/>더운 다락방에서 창밖의 풍경을 위안 삼는 폴리애나의 모습은 이상적인 천사라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결핍을 견뎌내기 위한 아주 현실적인 생존법에 가까워 보였다.<br/><br/>우리는 일상에서 불평할 이유를 참 쉽게도 찾는다.<br/>출근길 막히는 차 안에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속에서 짜증을 내는 건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반면 그 상황에서도 다행인 점을 찾아내는 일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br/><br/>폴리애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한 건 거창한 구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굳어버린 시선을 조금 틀어주는 작은 질문에 가깝게 느껴졌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점은 없을까?"<br/><br/>이 소설이 그저 순진한 동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후반부에 있다.<br/><br/>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폴리애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던 '기뻐할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하는 순간까지 맞닥뜨린다.<br/><br/>그런 폴리애나에게 이번에는 사람들이 기쁨을 돌려준다. 소녀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일상의 온기를 되찾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소녀의 곁으로 찾아온다.<br/><br/>내가 먼저 건넨 작은 감사와 다정함이, 내가 가장 바닥에 떨어졌을 때 나를 받아주는 푹신한 쿠션이 되어준 셈이다.<br/><br/>이번 클래식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빅터 프랭클의 '초의미'가 문득 다시 떠올랐다.<br/><br/>내가 이해하기로..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 역시 고통을 없애는 방법과는 조금 달랐다. 삶이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갈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br/><br/>지금까지 함께 읽었던 다섯 권의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br/><br/>그래서 '그냥 기뻐하기' 놀이도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껴졌다.<br/><br/>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과,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의미를 찾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br/><br/>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순간에도 현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고, 그 작은 변화가 때로는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br/><br/>오늘 하루,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속에서 나도 아주 작은 '그냥 기뻐하기' 놀이를 시도해 볼까 한다.<br/><br/>완벽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감사할 조각 하나쯤은 숨어 있을 테고, 그것이 당장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현실을 마주하는 나를 조금은 바꿀 수 있을 테니까....<br/><br/>요즘 내가 품고 있는 생각 중 가장 큰 부분은 '감탄'이다.<br/><br/>"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잘 감탄할 수 있을까?"<br/><br/>어떤 이유로 너무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 지니게 된 생각이다.<br/><br/>감탄, 감사, 기쁨...<br/>어쩌면 비슷한 결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br/><br/>지금에 만족하고, 의미를 추구하며 사는 것은 어쩌면 꽤 괜찮은 삶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br/><br/>... 안다. 그러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걸..<br/>예전에 어느 책을 리뷰하며 쓰기도 했던 내용인데, 의미를 추구하기보다 우리는 자꾸 무가치함과 싸우게 되는 것 같다.<br/><br/>이게 다 미디어 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br/>미디어 환경의 영향도 나는 분명 크다고 생각한다.<br/><br/>어쩌면 그래서 더 문학과 고전, 철학에서 답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품고 있던 중 만난 이 책이 내게는 작은 기쁨이었다.<br/><br/>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기쁨을 잃어버린 모든 어른이들에게, 특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br/><br/>"어른이 된다는 건 <br/>그런건가봐 기쁨이 줄어드는 거.."<br/>( _영화 &lt;인사이드 아웃 2&gt; 기쁨이..)<br/><br/>("아니야.. 그런 거..." 라고<br/>말해주고 싶었다. 기쁨이에게.....)<br/><br/>#폴리애나 <br/>#평생읽는클래식프로젝트<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br/><br/>#바닿늘<br/>#바닿늘소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04/76/cover150/89491413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047650</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7. 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네 번째 책 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2 리뷰(전체 줄거리 포함) - [작은 아씨들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69</link><pubDate>Tue, 04 Aug 2026 17: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99&TPaperId=174322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96/coveroff/89491412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99&TPaperId=174322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은 아씨들 2</a><br/>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제시 윌콕스 스미스 외 그림,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8년 11월<br/></td></tr></table><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타협의 탈을 쓴 치열한 저항, <br/>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br/><br/>네 번째 책<br/>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2<br/><br/>비룡소 클래식 프로젝트를 통해 《비밀의 화원》, 《인형의 집》, 《작은 아씨들 1》을 지나 마침내 《작은 아씨들 2》에 도달했다.(이제 마지막 한 권만을 남겨두고 있다..)<br/><br/>1868년 출간된 《Little Women》의 폭발적인 성공 이후 단 석 달 만에 집필된 후속편 이 책의 (원제) 《Good Wives》는 단순히 네 자매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속편만은 아닌 듯하다.<br/><br/>오히려 19세기라는 견고한 시대적 질서 속에서 한 여성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br/><br/>(한국에는 각각 《Little Women》이 《작은 아씨들 1》, 《Good Wives》가 《작은 아씨들 2》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br/><br/>당시 출판업자와 많은 독자들은 주인공 조가 로리와 결혼해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맞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철학자이자 초월주의자였던 아버지 브론슨 올콧 밑에서 지적 자율성을 배우고, 동시에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글을 쓰며 살아야 했던 루이자 메이 올콧은 그 기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태도.. 너무 좋아. ㅎㅎ)<br/><br/>그녀는 독자들의 요구를 완전히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순순히 따르지도 않았다. 조를 로리와 맺어 주는 대신 서로를 지적으로 존중하는 바에르 교수와 만나게 했고, 마지막에는 플럼필드라는 교육 공동체를 만들어 조가 자신의 삶과 일을 함께 꾸려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br/><br/>겉으로 보면 당시 사회가 기대했던 결혼이라는 형식을 따르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여성이 자신의 삶과 노동, 그리고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담아낸 것처럼 읽혔다. 그래서인지 플럼필드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이야기했던 '경제적 자립'과 '자기만의 공간'을 소설 속에서 미리 보여준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br/><br/>이러한 결말은 이후 플럼필드를 무대로 한 《Little Men》(1871)과 《Jo's Boys》(1886, 국내 번역명 《조의 아이들》)로 이어진다. 찾아보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후속작들은 성장소설보다는 훈육적인 아동문학의 성격이 조금씩 강해졌고, 그래서인지 1·2부만큼 널리 읽히지는 못했다고 한다. <br/><br/>어쩌면 많은 독자들이 오래도록 사랑한 이유는 교육적인 메시지보다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자신다운 삶을 찾아가는 네 자매의 성장에 더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br/><br/>그래서 《작은 아씨들 2》의 결말 역시 흔히 말하는 통속적인 해피엔딩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면에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며 글쓰기로 가족을 부양했던 올콧 자신의 삶과 고민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듯했다. 시대와 정면으로 충돌하기보다, 시대가 허락한 틈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간 그의 선택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면서도 끈질긴 저항처럼 다가왔다.<br/><br/>거대한 혁명을 외치기보다 자신만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간 네 자매의 여정은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작품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br/><br/>'주어진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br/><br/>(이번에도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댓글에...)<br/><br/>#작은아씨들2<br/>#평생읽는클래식프로젝트<br/><br/>#우주세문단 × #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소설<br/><br/><br/><br/>---<br/><br/><br/><br/>《작은 아씨들 2》 전체 줄거리 요약<br/><br/>1부의 결말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고 전쟁도 끝난다. 마치 가의 네 자매는 이제 소녀 시절을 지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선택해야 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 첫째 메그는 가난하지만 성실한 존 브룩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린다. 둘째 조는 신문사에 글을 팔며 스스로 돈을 버는 기쁨을 맛보고, 막내 에이미는 예술과 교양을 배우며 한층 성숙한 숙녀로 성장한다. 셋째 베스는 성홍열의 후유증으로 몸은 점점 약해지지만, 여전히 가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이어 주는 존재로 남는다.<br/><br/>이후 이야기는 낭만적인 기대보다 삶의 현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메그는 쌍둥이를 키우며 육아와 살림의 어려움 속에서 남편과 갈등을 겪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동반자로 성장해 간다. 한편 조는 작가로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로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도 정리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생계를 위해 자극적인 통속소설을 쓰던 조는 바에르 교수를 만나면서 흥미만을 좇는 글보다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글이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br/><br/>시간이 흐를수록 인물들의 관계도 조금씩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향으로 돌아온 조는 오랜 친구 로리에게 사랑을 고백받지만, 서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친구로 남는 편이 서로에게 더 낫다고 판단하고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심한 로리는 유럽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유학 중이던 에이미와 다시 만난다. 에이미는 방황하는 로리를 있는 그대로 감싸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 성숙한 사랑을 키워 나간다.<br/><br/>후반부에는 작품에서 가장 큰 슬픔인 베스의 죽음이 찾아온다. 자신의 마지막을 담담히 받아들인 베스는 끝까지 가족을 위로하며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가장 소중한 동생을 떠나보낸 조는 깊은 상실을 겪지만, 그 슬픔을 글로 써 내려가며 비로소 자신의 경험과 진심을 담은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바에르 교수의 조언과 베스를 향한 그리움은 조의 글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br/><br/>마지막에는 에이미와 로리가 부부가 되어 돌아오고, 비 오는 날 조와 바에르 교수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마치 숙모 할머니가 조에게 유산으로 남긴 플럼필드 저택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로 다시 태어나고, 조와 바에르 교수는 함께 새로운 교육 공동체를 꾸려 간다. 그리고 마치 부인의 예순 번째 생일, 저마다의 기쁨과 상실을 품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화려한 결말이라기보다,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간 끝에 비로소 맞이한 따뜻한 안식처럼 느껴지는 마지막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96/cover150/89491412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829653</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6. 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세 번째 책 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1 리뷰 - [작은 아씨들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54</link><pubDate>Tue, 04 Aug 2026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80&TPaperId=174322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87/coveroff/89491412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80&TPaperId=174322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은 아씨들 1</a><br/>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제시 윌콕스 스미스 외 그림,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8년 11월<br/></td></tr></table><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세 번째 책<br/>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1<br/><br/>앞서 읽었던 &lt;비밀의 화원&gt;이 폐쇄된 '정원'이라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였고, &lt;인형의 집&gt;과 같은 책 속에 수록된 다른 작품 &lt;부엌의 성모님&gt;이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관계의 온기를 복원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에 읽은 &lt;작은 아씨들 1&gt;은 그 정서적 영토를 '인생이라는 거친 순례길'로 성큼 확장시킨다.<br/><br/>줄거리는 하단에 따로 정리해 두겠지만, 1권 전체를 관통하며 내 시선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건 이 소설이 인간의 가식 없는 '솔직한 감정과 성장'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흔히 이 작품을 따뜻하고 무해한 자매들의 일상 극으로 기억하지만, 막상 펼쳐본 실상은 훨씬 치열했다.<br/><br/>루이자 메이 올컷은 자매들의 아름다운 우애만을 박제하지 않는다. 예쁜 옷을 입지 못해 이웃을 시기하는 메그의 박탈감, 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소중한 소설 원고를 불태워버리는 에이미의 잔인함, 그리고 그 동생을 용서하지 못해 얼음 구덩이에 빠지도록 방치할 뻔했던 조의 지독한 분노까지. 소설은 인간이 가진 허영, 질투, 증오라는 마음의 바닥을 아주 투명하게 꺼내 놓는다.<br/><br/>하지만 그 뾰족한 감정들이 결코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자매들이 그 결점과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서로를 붙잡아주며 마침내 스스로 극복해 내기 때문이다. 가난과 전쟁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베스의 목숨을 건 투병을 함께 이겨내고, 멀리서 돌아오신 아버지를 온 가족이 눈물로 맞이하는 후반부의 장면은 물질적 결핍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인간적 연대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br/><br/>이 입체적인 영혼들이 망가지지 않고 스스로 자라날 수 있도록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준 존재는 역시 어머니, '마치 부인'의 묵직한 '기다림'이었다. &lt;부엌의 성모님&gt;에서 소년 그레고리가 다락방 문을 열고 나와 마음껏 실패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주변 어른들이 믿음을 내어주었다면, &lt;작은 아씨들&gt;의 마치 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체적 양육을 보여준다. <br/><br/>어머니는 딸들의 실수를 과도하게 통제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부딪히며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신뢰를 보낸다. 조가 분노로 동생을 잃을 뻔했을 때 "나도 사실 매일 분노와 싸우고 있단다"라며 자신의 약점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어른이 아닌, 진정한 삶의 동반자로서의 연대를 보여준다. <br/><br/>1권의 피날레에서 첫째 메그가 돈과 유산을 무기로 위협하는 마치 숙모 할머니 앞에서도 당당하게 존 브룩을 향한 사랑을 선택하는 장면은 이 소설이 지닌 주체성의 정점을 보여준다. 가난하지만 주도적인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메그와, 머리카락을 팔아 자립의 가능성을 본 조의 모습은 100년이 훌쩍 넘은 고전이 어째서 오늘날 2026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지 온몸으로 증명한다.<br/><br/>&lt;비밀의 화원&gt;이 사람을 살리는 환경을 거론했고, &lt;인형의 집&gt;이 외형보다 관계의 밀도가 중요함을 증명했다면, &lt;작은 아씨들 1&gt;은 그 좋은 환경과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단점이라는 배낭을 메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세 작품 모두 인간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br/><br/>이 책은 그냥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여러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외적인 부분들도 흥미로운 지점이 정말 많다. 예를 몇 가지 들자면 이 책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이 하나고(한 가지만 예로 들자면 실제로 루이자가 네 자매 중 둘째였다. 작품 속 둘째 조 는 작가 본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그 외에도 자전적 요소가 찾아보면 정말 많다.) 또 다른 하나는, 끝맺음이다. 옮기자면 이렇다.<br/><br/>"다음 이야기의 막이 오를 가능성은 &lt;작은 아씨들&gt;이라는 가족 드라마의 1막을 본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다."<br/><br/>실제로 반응이 어마어마했고, 석달만에 집필하여 &lt;작은 아씨들 2&gt;를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br/><br/>나도 이 컨셉을 이어 받아, "내 다음 리뷰가 올라올 가능성은 이 리뷰를 본 독자들의 반응에 달려 있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겠다. 🤣🤣<br/><br/>이미 충분히 길게 쓰긴 했지만;; 그래도 대략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댓글에 요약하여 남겨둔다.<br/><br/>#작은아씨들 <br/>#평생읽는클래식프로젝트<br/>#우주세문단 #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 <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 #바닿늘소설<br/><br/><br/>---<br/><br/><br/>&lt;작은 아씨들 1&gt; 전체 줄거리 요약<br/><br/>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겨울, 참전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치 가의 네 자매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 속에서 한 해를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이 없는 현실에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인생이라는 순례길 위에서 각자의 '마음의 짐'을 지고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로 다짐한다. 크리스마스 아침, 자매들은 자신들의 풍성한 식사를 굶주린 험멜 가문에 기부하고, 이 따뜻한 이웃 사랑에 감동한 이웃집 로렌스 씨가 만찬을 선물하면서 외로운 손자 로리와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된다.<br/><br/>이후 소설은 급격한 사건을 쫓기보다 자매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결점과 부딪히며 성장하는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첫째 메그는 부유한 집을 돌보며 화려함을 부러워하는 '허영심'과 싸우고, 둘째 조는 깐깐한 마치 숙모 할머니의 시중을 들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셋째 베스는 지독한 수줍음의 벽에 갇혀 있으면서도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로렌스 할아버지의 마음을 열며, 막내 에이미는 학교생활 속에서 자존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심 탓에 여러 번 실수를 겪는다.<br/><br/>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자매들의 갈등은 인간적인 마찰을 빚으며 깊어진다. 철없는 에이미가 언니 조의 소중한 소설 원고를 불태워버리는 복수를 감행하고, 조 역시 성급한 분노에 눈이 멀어 빙판길에 빠진 에이미를 방치할 뻔한 위기를 겪는 등 저마다의 약점과 격렬하게 마주한다. 하지만 어머니 마치 부인은 딸들의 실수를 억지로 통제하기보다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며, 자매들은 실패와 용서를 반복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나간다. 이 따뜻한 거실의 분위기 속에서 이웃집 소년 로리 역시 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진심을 이해해 주는 관계의 힘을 배운다.<br/><br/>1권 후반부에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비보를 듣고 조가 소중한 머리카락을 잘라 여비를 마련하는 희생을 발휘하고, 베스가 이웃을 돌보다 무서운 성홍열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커다란 시련이 들이닥친다. 그러나 온 가족과 이웃의 헌신적인 연대로 베스는 병마를 이겨내고, 마침내 건강을 회복한 아버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며 집안은 감동의 눈물로 가득 차오른다.<br/><br/>마지막 장에 이르러 첫째 메그는 돈과 유산을 무기로 위협하는 마치 숙모 할머니의 협박 앞에서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가난한 가정교사 존 브룩을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물질보다 주체적인 가치를 스스로 선택한 메그의 약혼과 함께, 부모의 품 안에서 보호받던 작은 아씨들은 이제 저마다의 짐을 극복하고 어엿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찬란한 청춘의 첫 페이지를 완성한다.<br/><br/><br/>---<br/><br/><br/>시작하는 글 <br/><br/>가라, 나의 작은 책이여.<br/>너를 반기는 모든 이들에게 <br/>가슴에 품었던 너의 비밀을 보여 주어라.<br/>너의 비밀이 그들을 영원히 축복하고 <br/>그들이 나와 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순례자가 되기를 기원하여라. <br/>자비에 대해 말해 주어라.<br/>자비는 일찍이 순례의 길을 걸어온 여인이라고.<br/>그래야 어린 아가씨들이 그 여인을 본받아<br/>다가올 세상을 아끼고 현명해지리니. <br/>어린 아가씨들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br/>옛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하느님을 따르리라. <br/><br/>_ 존 버니언의 글에서 빌려 옴.<br/><br/><br/>---<br/><br/><br/>이 문구는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책을 시작하며 독자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초대장'이자,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보여 주는 '나침반'이다. 작가는 고전 문학인 &lt;천로역정&gt;의 문장을 빌려와 자신이 이 책을 쓴 진짜 이유를 고백한다.<br/><br/>글의 전반부에서 작가는 책을 '나의 작은 책'이라고 부르며 마치 살아 있는 아이처럼 대한다. 내 품을 떠난 이 책이 독자들을 만나 따뜻한 위로와 축복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여기서 '훌륭한 순례자가 되기를 기원하라'는 말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이다. 순례자란 험난한 길을 걸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을 뜻한다. 작가는 네 자매가 가난과 전쟁이라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 삶의 올바른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을 '인생이라는 순례길'에 비유하고 있다.<br/><br/>후반부에 등장하는 '자비(Mercy)'는 삶의 모범이 되는 이상적인 인물을 상징한다. 온갖 유혹과 어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올바른 길을 걸어갔던 앞선 세대의 발자취를 뜻하기도 한다. 작가는 책을 읽는 어린 숙녀들이 이 '자비'의 마음을 배워, 허영이나 이기심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더 현명하게 살아내기를 바란다.<br/><br/>결국 이 시작하는 글은 자매들이 저마다 가진 허영, 질투, 분노 같은 마음의 약점을 스스로 이겨내고 주체적인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예고하는 서막이다. 올컷은 이 짧은 글을 통해 &lt;작은 아씨들&gt;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 독자들이 스스로 '나다운 삶'을 당당하게 선택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단단한 토양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을 전하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87/cover150/89491412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828719</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읽고 나면 일상의 모든 물질이 이야기로 새롭게 보인다. -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8902</link><pubDate>Mon, 13 Jul 2026 09: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89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291&TPaperId=173889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6/62/coveroff/k5121302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291&TPaperId=173889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a><br/>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07월<br/></td></tr></table><br/>#협찬 욕망이 빚어낸 일상의 물질들..<br/><br/>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는 소금 한 꼬집, 출근길에 무심코 손에 쥐는 커피 한 잔. 너무 익숙해서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이 사소한 일상의 사물들이 실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책 &lt;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gt;는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라는 다섯 가지 물질을 현미경 삼아, 인류가 걸어온 거대한 문명의 궤적을 흥미진진한 서사로 풀어낸다. <br/><br/>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 중 특히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물질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국가 패권과 안보를 뒤흔드는 전략 자산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 그중에서도 마지막 장을 장식한 '석유와 가스'의 지정학이었다.<br/><br/>물론 전반부에서 다루는 역사적 가설들도 사물에 투사된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고조선이 가마솥에 끓여낸 고순도 소금 '자염'과 무늬 있는 가죽 '문피' 무역으로 동북아의 부를 쥐고 흔들었을 가능성을 대담하게 펼쳐 놓는다. 검은담비 모피를 쫓아 북방 상인들이 개척했다는 시베리아의 '담비길' 가설이나, 이슬람 수행자의 음료에서 전 세계를 흔든 대항해 시대의 주역이 된 커피 플랜테이션의 이면 역시 흥미롭다. 아프리카 내전의 핏빛 자금이 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참혹함까지 마주하고 나면, 인류의 역사가 곧 물질을 향한 욕망의 각축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br/><br/>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단연 현대 문명을 지배하는 '검은 황금', 석유와 가스를 다룬 대목이다. 저자는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의 막전막후를 파헤치며, 그 이면에 미국의 달러 패권을 방어하려던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깊게 관여해 있었다는 도발적인 관점을 소개한다. 유가 폭등을 통해 전 세계의 달러 수요를 늘려 기축통화 지위를 사수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해석은 복잡한 현대 금융과 지정학을 이해하는 신선한 틀을 제공한다.<br/><br/>에너지를 둘러싼 패권 경쟁은 과거에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현실이다. 국영 기업 가스프롬을 앞세워 유럽의 가스 밸브를 잠그며 주변국을 길들이려 한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 그리고 지하 암석층에서 석유를 캐내며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이끈 '셰일 혁명'의 대치 국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아가 원유 선물거래의 등장과 미국의 증산으로 OPEC 카르텔의 독점력이 점차 균열을 일으키는 지각변동까지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제 에너지 시장은 누가 더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공급망과 물류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싸움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br/><br/>책이 제시하는 몇몇 과감한 도식화나 해석을 역사적 정설로 단정 짓기는 조심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칼 같은 사실 확인의 이분법보다, 물질이 어떻게 국제정치와 금융 패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는지 그 본질을 담백하고 유려하게 엮어냈다는 점에 있다. <br/><br/>책장을 덮고 나면 깊은 생각 없이 매일 타 마시던 커피부터 자동차를 채우는 연료까지 일상의 모든 물질이 새롭게 보인다. 그것들은 인간의 욕망이 남긴 치열한 역사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문명을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이다.<br/><br/>(특히 내가 주목했던 내용은 하단에..)<br/><br/>#물질이일상에서이렇게문명을바꿀줄이야<br/><br/>인문교양서, 인문교양, 세계사,<br/>세계사 정주행, 읽기 쉬운 세계사<br/><br/>체인지업북스<br/>@체인지업북스<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바닿늘역사<br/><br/>#물질이일상에서이렇게문명을바꿀줄이야<br/>#홍익희교수 #체인지업북스 #인문교양서<br/>#읽기쉬운세계사<br/><br/><br/><br/>---<br/><br/><br/><br/>1. 소금: 한반도 고대 국가들의 숨은 원동력<br/><br/>고조선과 삼국의 무역: 고조선은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우수한 자염 기술을 장악해 부를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각궁(맥궁)을 제작해 군사력을 키웠다고 한다. 백제 역시 인천 등지의 소금 산지를 기반으로 삼았는데, 쉽게 상하지 않는 염장 생선 덕분에 먼바다까지 항해하며 해양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분석이 흥미롭다.<br/><br/>근현대의 변화: 고려의 소금 전매제(각염법)나 조선 시대 유통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염리동, 염창동 등의 지명 유래)를 거쳐, 1907년에는 구한말 밀려들던 중국산 소금에 맞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천일염전인 '주안 염전'이 세워졌다. 분단 이후 남한은 심각한 소금 부족을 겪었으나, 서해안 염전 사업을 통해 1955년에 이르러서야 소금 자급자족을 이뤄냈다.<br/><br/>2. 모피: 추위를 이기기 위한 욕망이 개척한 길<br/><br/>북방의 '담비길' 가설: 실크로드 외에도 검은담비 모피를 거래하던 북방 교역로인 '담비길'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만주와 시베리아를 잇는 이 길을 통해 고대부터 활발한 모피 무역이 이뤄졌다.<br/><br/>고조선과 삼국의 필수품: &lt;관자&gt;에 고조선의 무늬 있는 모피(문피)가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고 기록될 만큼 모피는 고대 동북아의 대표적인 명품이었다. 겨울철 혹한을 견뎌야 했던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생필품이기도 했다. 고구려 무용총의 &lt;수렵도&gt; 속 화살촉이 둥근 모양인 것도 가죽에 흠집을 내지 않고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생활의 지혜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시선이 새롭다.<br/><br/>3. 보석: 욕망이 낳은 아프리카의 비극<br/><br/>블러드 다이아몬드: 1990년대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서 반군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장악해 무기 자금으로 쓴 참혹한 역사를 다룬다. 풍부한 천연자원이 국가 발전이 아니라 도리어 전쟁을 장기화하는 재앙이 된 역설적인 상황이다.<br/><br/>인권 유린과 국제사회의 노력: 반군 RUF는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신체 훼손과 소년병 강제 동원 등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다. 이 비극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유통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킴벌리 프로세스'가 도입되었으나, 열악한 노동환경과 아동노동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br/><br/>4. 향신료: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꾼 커피 잔혹사<br/><br/>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한 커피는 밤샘 기도를 하던 이슬람 수행자들의 음료로 사랑받다가 오스만 제국과의 교역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이슬람의 음료'라며 경계 대상이었지만, 점차 왕족과 귀족들이 즐기는 귀한 사치품이 되었다.<br/><br/>식민지 플랜테이션: 네덜란드가 커피 종자를 몰래 확보해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대규모 재배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커피는 세계 무역의 중심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브라질, 콜롬비아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식민지 주민과 노예의 강제 노동, 토양 황폐화 같은 어두운 역사가 함께 얽혀 있다.<br/><br/>5. 석유와 가스: 패권과 자원의 지정학<br/><br/>페트로달러와 오일쇼크: 1973년 오일쇼크의 이면에 미국의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석유 결제는 오직 미국 달러로만 가능하다'는 페트로달러 시스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저자의 통찰이 돋보인다. 유가 폭등으로 전 세계 달러 수요를 강제로 늘려 기축통화 지위를 방어했다는 설명이다.<br/><br/>러시아의 무기화와 미국의 셰일 혁명: 러시아는 국영 기업 가스프롬을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밸브를 잠그며 에너지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해 왔다. 이에 미국은 지하 암석층에서 석유를 캐내는 '셰일 혁명' 기술로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되며 에너지 독립을 이뤄냈다.<br/><br/>카르텔의 균열과 각자도생: 원유 선물거래의 등장과 미국의 증산으로 OPEC의 독점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2026년 UAE가 OPEC을 전격 탈퇴한 사건은 카르텔의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다. 이제 에너지 시장은 생산량 못지않게 '물류와 공급망의 안전'이 핵심이 되었으며, 한국 같은 에너지 수입국은 특정 카르텔에 의존하기보다 유연하고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6/62/cover150/k5121302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66266</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두 번째 책 루머 고든 - 인형의 집 리뷰 - [인형의 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2013</link><pubDate>Thu, 09 Jul 2026 09: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20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0934&TPaperId=17382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53/coveroff/89491409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0934&TPaperId=173820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형의 집</a><br/>루머 고든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조안나 자미에슨.캐롤 바커 그림 / 비룡소 / 2008년 04월<br/></td></tr></table><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두 번째 책<br/>루머 고든 - 인형의 집(1/2, 중간 리뷰)<br/><br/>---<br/><br/>얼마 전 읽은 &lt;비밀의 화원&gt;은 상처 입은 아이들이 '정원'을 돌보며 조금씩 자기 자신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읽은 &lt;인형의 집&gt;은 그 반대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집'을 고쳐 나간다.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니 두 작품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공간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의 의미를 바꾼다는 것을 향해...<br/><br/>&lt;인형의 집&gt;은 얼핏 보면 귀여운 인형들이 살아가는 동화처럼 시작한다. 100년 가까이 살아온 나무 인형 토티와 플랜태저넷 가족은 낡은 신발 상자 대신 진짜 인형의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다. 마침 오래된 인형의 집이 에밀리와 샬럿 자매에게 전해지고, 아이들은 먼지투성이 집을 하나씩 고쳐 나간다. 이 장면이 나는 특히 좋았다.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되살리는 과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br/><br/>그런데 집이 완성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아름다운 도자기 인형 마치페인이 들어오면서 집 안의 질서는 무너진다. 화려한 외모에 마음을 빼앗긴 에밀리는 마치페인만 특별하게 대하고, 플랜태저넷 가족은 하나둘 자신의 자리를 잃는다. 결국 가족을 이어 주던 공동체는 계급과 차별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해 버린다.<br/><br/>결국 비극은 막내 애플을 구하려다 버디가 자신의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처음에는 단지 "셀룰로이드는 불에 약하다"는 설정처럼 지나갔던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가장 숭고한 희생으로 이어지는 구성도 인상적이었다.<br/><br/>이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집'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사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모두가 좋은 집을 갖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아무리 근사한 집이라도 허영과 욕심이 들어오면 금세 서로를 밀어내는 공간이 된다고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반대로 비좁고 초라한 공간이라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그곳은 진짜 집이 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br/><br/>마치페인 역시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 '허영'을 의인화한 존재처럼 읽혔다. 그녀가 직접 공동체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에밀리가 겉모습에 매혹되는 순간 스스로 공동체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악은 거창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길지에 대한 우리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br/><br/>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작품이 끊임없이 '오래된 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토티도 오래된 나무 인형이고, 인형의 집도 오래된 집이며, 낡은 소파와 레이스도 버리지 않고 복원한다. 시간이 흐른 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많은 기억을 품은 것이라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br/><br/>문득 &lt;비밀의 화원&gt;이 다시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 정원이 사람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기 시작했기에 정원도 살아났다. &lt;인형의 집&gt; 역시 집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집을 비로소 '가정'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정원이든 집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그 안의 관계였던 셈이다.<br/><br/>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 작품은 인형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br/>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을까. 새것과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은 '집'일까, 아니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살아 있는 '가정'일까..???<br/><br/>오래된 고전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현재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br/><br/>이번 비룡소 평생읽는 클래식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좋은 고전은 서로 다른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워 놓는다.<br/><br/>다음 편으로 수록된 부엌의 성모님 리뷰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br/><br/>---<br/><br/>덧.<br/>이 글은 아내가 안 봤으면 좋겠다.<br/><br/>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전 취미가 많이 떠올랐다. 나는 인형의 집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모았다. 처음에는 딸 장난감으로 모으던 '실바니안 패밀리'라는 완구에 푹 빠져서 열심히 수집을 했었드랬다. 내가 과거보다 자연에 대해 소중함을 더 갖게 된 이유에 이것도 일부 포함이 된다. 숲속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테마의 완구인데.. 오랜만에 과거 사진을 몇 장 첨부해둔다. <br/>(네이버 블로그에 해당)<br/><br/>https://m.blog.naver.com/seasky210528/224332659578<br/><br/>#실바니안패밀리<br/>#sylvanianfamily<br/><br/><br/>#인형의집<br/><br/>#우주세문단<br/><br/>#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 <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 <br/>#바닿늘소설<br/><br/><br/>---<br/><br/><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두 번째 책<br/>루머 고든 - 인형의 집(2/2, 부엌의 성모님 리뷰)<br/><br/>세상의 모든 그레고리를 위한 다락방, <br/>그리고 부엌의 성모님<br/><br/>카프카의 소설 &lt;변신&gt;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흉측한 벌레로 변해 방 안에 갇힌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으나 결국 고립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서사는 현대인의 실존적 소외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br/><br/>루머 고든의 &lt;부엌의 성모님&gt;을 읽으며 주인공 소년 '그레고리'의 이름을 마주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레고르 잠자가 겹쳐 보였다. 작품 속 그레고리 역시 맞벌이 부모 밑에서 외로이 자라며 다락방이라는 자신만의 고립된 요새에 갇혀 타인에게 철저히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다.<br/><br/>그러나 두 그레고리의 결말은 극적으로 대비된다. 카프카의 그레고르가 방 안에서 소멸했다면, 고든의 그레고리는 타인을 향한 사랑을 동력 삼아 스스로 다락방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기 때문이다.<br/><br/>이 작품이 빛나는 성장 동화인 이유는 그레고리가 소중한 이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낸 용기가 결코 좌절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더 큰 희망과 대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br/><br/>완벽한 보석 성화를 사려던 계획이 터무니없는 가격 앞에 무너지고 전 재산을 실수로 잃어버렸을 때, 소년은 포기하는 대신 '내가 직접 만든다'는 더 가치 있는 길을 찾아낸다. 고급 보석상에서 거절당한 발걸음은 소박한 모자 가게와 동네 사탕 가게로 이어지며 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만난다.<br/><br/>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뜻의 '이생망'이라는 자조적인 신조어가 유행한다. 수많은 청년과 청소년들이 물질적 결핍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쉽게 무력감을 느끼는 듯 하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현실을 상대적으로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br/><br/>그런데 작품 속 그레고리는 비록 흙수저는 아닐지라도, 당장 손에 쥔 돈이 없는 결핍의 상황에서 '생각과 정성'이라는 무형의 가치로 최대의 기적을 만들어낸다.(책 &lt;클루지&gt;가 생각났다.)<br/><br/>신문지의 성모 사진, 아끼던 배 그림의 하늘, 사탕 종이 등 일상의 평범한 부스러기들이 소년의 장인정신과 결합해 438기니짜리 보석 성화보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현대 사회에 '결코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는 묵직한 구원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br/><br/>가장 부럽고도 가슴 뭉클했던 지점은 마르타 아줌마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태도였다. 지네트 부인과 바티 아주머니는 사교성 없는 소년의 진심을 비웃지 않고 기꺼이 재료와 신뢰를 내어주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노력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고, 마르타 아줌마는 소년을 어린아이가 아닌 동등한 '다 큰 어른'으로 대우하며 엄숙한 악수를 청했다.<br/><br/>과거에 비해 세상이 험해지고 걱정거리가 많아진 부모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스스로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를 너무 많이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크게 들었다.<br/><br/>어른들이 모든 경로를 통제하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정서적 영토는 점점 좁아진다. 다행히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며 나만의 시도를 해볼 수 있었기에, 이 작품 속 그레고리를 지켜봐 준 어른들의 포용력이 더욱 소중하고 부럽게 다가왔다.<br/><br/>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온실이 아니다. 때로는 실패할 기회를 주고, 그 실패 속에서 스스로 대안을 찾아낼 때까지 가만히 믿고 지켜봐 주는 어른들의 '기다림'이다. 세상의 모든 갇힌 그레고리들이 자신만의 '부엌의 성모님'을 찾아 세상 밖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요즘에는 특히 온라인 공간에 스스로 갇히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br/><br/>책의 줄거리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br/>줄거리를 본문 하단에 남겨둘 예정이니 참고하시길..<br/><br/>#인형의집<br/>#부엌의성모님<br/>루머 고든 지음<br/><br/>#우주세문단<br/>#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 <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 <br/>#바닿늘소설<br/><br/><br/>---<br/><br/><br/>부엌의 성모님 줄거리(스포일러 듬뿍 포함)<br/><br/>한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그레고리. 맞벌이를 하느라 늘 바쁜 건축가 부모 밑에서 외롭게 자란 탓에, 마음을 닫고 다락방이라는 자신만의 요새에 갇혀 지내던 아이였다. 그런 그레고리와 여동생 재닛의 집에 어느 날 우크라이나 난민 출신의 마르타 아줌마가 가정부로 들어온다.<br/><br/>절뚝거리는 다리에 무뚝뚝한 인상이었지만, 아줌마의 부지런한 손길이 닿자 차갑고 휑하던 현대식 부엌은 조금씩 온기를 품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던 그레고리도 이상하게 아줌마에게만은 마음이 끌렸다. 급기야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고양이 '루틀'이 아줌마 품에 안기는 것까지 기꺼이 허락할 정도였다.<br/><br/>그러던 어느 날, 그레고리는 늘 씩씩해 보이던 아줌마가 부엌에서 슬퍼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줌마는 고향 집 부엌 구석에 늘 자리했던 '성스러운 자리', 그러니까 성화와 붉은 등잔이 있던 공간이 이곳에는 없어 마음이 늘 텅 빈 것 같다며 슬퍼했다. <br/><br/>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던 그레고리였지만, 아줌마의 슬픔은 소년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레고리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줌마에게 성화를 찾아주겠다고.<br/><br/>그레고리는 동생의 용돈까지 모아 박물관과 고급 보석상 '로스토프'를 뒤졌다. 하지만 아줌마가 말한 것처럼 아름다운 보석 성화는 438기니라는,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소년은 깊은 좌절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갑마저 잃어버렸다. <br/><br/>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간 교회에서 남매는 붉은 유리 등잔을 하나 사고, 그곳 기둥에 걸린 소박한 종이 성화를 보게 된다. 진짜 보석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돈이 없다면 직접 재료를 구해 만들면 된다는 희망이 소년의 가슴에 번졌다.<br/><br/>다락방으로 돌아온 그레고리는 벽장 속 옛날 신문에서 성모 마리아 사진을 찾아내 윤곽선을 따고 본을 떴다. 하지만 집안에 굴러다니는 천 조각만으로는 성화의 성스러움을 살리기 어려웠다. 소년은 큰 용기를 내어 광장에 있는 '지네트 부인의 모자 가게'로 향했다.<br/><br/>여자들이 가득한 가게에 혼자 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지만 오직 성화를 완성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소년의 입에서 피리 소리처럼 흘러나온 마르타 아줌마의 사연을 들은 지네트 부인은 깊이 감동했고, 여왕의 모자 장식에 쓰였던 귀한 재료들을 손에 쥐여주었다.<br/><br/>그날부터 다락방에서는 밤낮없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완벽한 하늘 배경을 만들고 싶었던 그레고리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액자 속 배 그림을 과감히 잘라냈고, 재닛의 인형에서 구슬 목걸이와 머리카락을 떼어 왕관과 후광을 정교하게 꾸몄다. <br/><br/>마지막으로 테두리를 장식할 반짝이 사탕 종이가 필요해 동네 사탕 가게를 찾았다. 돈이 부족했던 소년은 생일 선물로 받은 은시계를 저당 잡히려 했지만, 소년의 지극한 진심을 알아챈 바티 아주머니는 시계를 돌려주며 외상 차용증을 써주고는 사탕 종이를 넉넉하게 챙겨주었다.<br/><br/>주변 어른들의 신뢰와 동생의 도움, 그리고 소년의 장인정신이 결합해 마침내 오색찬란한 성화가 완성되었다. 그레고리는 부모님을 다락방으로 초대해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아들의 경이로운 작품과 그간의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여정을 알게 된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늘 닫혀 있던 다락방 문을 열고, 타인을 향한 상상력과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아들의 성장이 너무도 대견했기 때문이다.<br/><br/>토요일 오후, 온 식구는 아줌마 몰래 부엌 구석 선반에 벨벳과 레이스를 깔고 성화와 등잔을 설치해 마침내 '성스러운 자리'를 완성했다. 위층에서 내려와 이를 마주한 마르타 아줌마는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선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아줌마의 얼굴은 성스럽게 변했고, 부엌 가득 고향의 언어로 장엄하게 부르는 감사 기도와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br/><br/>기도를 끝낸 아줌마는 식구들을 차례로 안아준 뒤 그레고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소년을 어린아이가 아닌 자신을 구원한 동등한 인격체로서 아주 엄숙하고 진중하게 악수를 청했다.<br/><br/>그날 밤, 모든 불이 꺼지고 은은한 붉은 등잔불 아래에서 생명력을 얻어 보석처럼 반짝이는 성화를 바라보며 그레고리는 깊은 뿌듯함을 느꼈다. 여동생 재닛이 박물관의 그림보다 훨씬 멋지다고 칭찬하자, 짐짓 퉁명스레 대꾸하면서도 소년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br/><br/>소년은 앞으로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이들을 위해 수십 개의 성모화를 더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포부를 다졌다.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진짜 박물관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꿈을 꾸며, 소년은 고양이 루틀을 곁에 둔 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잠에 빠져들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53/cover150/89491409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35356</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바꿀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품격을 포기하지 않을 결심.. - [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72091</link><pubDate>Fri, 03 Jul 2026 17: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720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340&TPaperId=173720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2/coveroff/k482139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340&TPaperId=173720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a><br/>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 이후 리뷰 1/2<br/><br/><br/><br/>#협찬 삶에 지향이 필요한 이유..<br/><br/><br/><br/>*지향: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어 향함. 또는 그 방향이나 그쪽으로 쏠리는 의지.(출처: 네이버 사전)<br/><br/><br/><br/>역사 속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는 당대의 명성에 비해 그 깊이가 여전히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인물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br/><br/><br/><br/>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를 두고 저평가되었다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있지 않으냐"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정립한 사상이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실용적인 힘을 지녔음을 떠올려보면, 그 가치가 아직 다 발현되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br/><br/><br/><br/>그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이론을 일정 부분 계승하면서도, "사람은 의미를 잃어버릴 때 필연적으로 마음의 병을 얻는다"라는 독창적이고도 명료한 통찰을 제시했다. 이 단순한 문장 속에 현대인이 겪는 수많은 정신적 고통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본다.<br/><br/><br/><br/>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거창한 목적 이전에 우리는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간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저마다의 경험을 토대로 각자의 인생 계획을 세운다. 어떤 이는 눈앞의 즉각적인 재미나 이익을 쫓고, 어떤 이는 본능을 절제하고 만족을 지연시키며 조금 더 의미 있는 계획을 향해 나아간다. <br/><br/><br/><br/>물론 인간의 삶을 이 두 가지로만 무 자르듯 나눌 수는 없으며, 우리는 모두 그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재미와 의미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때 삶의 균열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나는 재미도 의미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 없는 삶은 무효다!!)<br/><br/><br/><br/>오늘날의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더 많은 자유를 보장받지만, 정작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환경에 처해 있다. 같은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손에 잡히는 성취감은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우리 주변에는 인지적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자극들이 차고 넘친다. <br/><br/><br/><br/>에너지를 아끼려는 본능을 지닌 인간은 쉽게 재미에 이끌릴 수밖에 없고, 장기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기 쉽다. 하지만 의미가 결여된 재미의 끝에는 늘 허무함이 찾아오곤 한다. <br/><br/><br/><br/>내가 과거에 게임이나 피규어 수집, 혹은 수조 속 생태계를 가꾸는 취미에 깊이 몰두했을 때 밀려왔던 정체 모를 공허함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마치 내 세계관이 그 작은 수조 속에 영원히 갇혀버리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br/><br/><br/><br/>그런 면에서 지금 마주하고 있는 독서라는 취미는 참으로 고맙고 소중하다. 책을 읽다 보면 체감상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시공간을 초월한 넓은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좁았던 관점이 확장되고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 이것이야말로 독서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br/><br/><br/><br/>최근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류가 사고를 외주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나 역시 이 지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칸트의 &lt;순수이성비판&gt; 관점에서 인간과 AI의 차이를 가만히 짚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br/><br/><br/><br/>인간은 외부의 입력이 없어도 스스로 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 존재인 반면, AI는 입력이 없으면 결코 출력을 내지 못하는 복제품에 가깝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빌미로 인간 고유의 결정권을 타인에게 성급하게 위임하려는 숨은 의도들일지도 모른다.<br/><br/><br/><br/>'인간(人間)'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뜯어보면 '사이 간(間)' 자를 쓴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독단적인 개체가 아니라,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효율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관계 없이도 혼자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듯하다. <br/><br/><br/><br/>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는 말처럼, 우리의 존재는 결국 유대감 속에서 증명된다. 빅터 프랭클의 사상이 담긴 이 책이 지향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작은 방향타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br/><br/><br/><br/>인간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한 끊임없이 방황하기 마련이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방황이 아니라 지향점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행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반드시 나만의 지향점을 건져 올려야 한다.<br/><br/><br/><br/>인류에게 유익한 빅터 프랭클의 사상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br/><br/><br/><br/>#죽음의수용소이후 <br/><br/><br/><br/>빅터 프랭클 지음<br/><br/><br/><br/>북하우스<br/><br/><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br/><br/>#바닿늘심리학<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lt;죽음의 수용소 이후&gt; 전반부(1부~2부) 요약: <br/><br/>실존적 진공과 의미를 향한 여정<br/><br/><br/><br/>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의미치료)는 그가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비극을 겪었기 때문에 탄생한 것으로 흔히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그는 수용소에 갇히기 전 이미 삶의 절대적 의미를 다룬 저서의 원고를 완성한 상태였다. 가혹한 강제수용소는 그의 이론을 만들어낸 곳이 아니라,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라는 그의 신념이 참혹하게 검증된 역사적 시험장이었던 셈이다. <br/><br/><br/><br/>실제로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단순히 신체적으로 강한 자들이 아니었다. 다시 만나야 할 사랑하는 가족이나 미래에 완수해야 할 과제 등, 삶의 구체적인 '이유'와 '지향성'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내적인 저항력을 발휘해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br/><br/>역설적이게도 현대의 풍요로운 복지국가는 물질적 욕구는 완벽히 충족시켜 주지만, 인간 내면의 근원적인 '의미에의 의지'를 채워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br/><br/><br/><br/>전통적인 가치관과 관습이 무너진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실존적 진공(공허감)' 상태에 빠지기 쉽다. 목표를 잃은 대중은 타인을 무작정 따라 하는 순응주의나, 강요된 권력에 굴복하는 전체주의로 도피하곤 한다. 특히 오늘날 젊은 세대가 겪는 극심한 무기력과 지루함은 질병이라기보다 기성세대의 고루한 해답을 거부하려는 지적 정직성의 방황에 가깝다.<br/><br/><br/><br/>적절한 도전과 긴장감이 결여된 유약한 환경은 오히려 젊은이들을 우울과 중독, 공격성이라는 집단 신경증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br/><br/>그렇다면 우리는 이 허무주의의 늪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을까. 프랭클은 세 가지 구체적인 경로를 제안한다. 첫째는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성취하는 '일을 통한 발견'이며, 둘째는 타인의 유일무이함을 깊이 수용하고 자연이나 예술을 향유하는 '사랑을 통한 발견'이다. <br/><br/><br/><br/>그리고 마지막은 바꿀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이나 불치병 앞에서도 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고 비극을 인간적 성취로 승화시키는 '고통을 통한 발견'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의미 추구가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외부의 가치나 타인을 향하는 '자기 초월'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 심리학이 집착하는 자아실현이나 행복은 억지로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맞히지 못했을 때만 돌아오는 부메랑처럼, 나 자신을 잊고 무언가에 온전히 헌신할 때 행복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이다.<br/><br/><br/><br/>시간이 흐르고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삶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간의 덧없음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의미를 실현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우리가 일하고, 사랑하고, 용기 있게 견뎌낸 모든 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는 가장 안전한 창고에 영원히 보관되기 때문이다. <br/><br/><br/><br/>로고테라피는 인간을 단순한 기계나 컴퓨터로 격하하는 오만한 정신의학을 거부한다. 대신 인간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고귀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정신의학의 인간화'를 지향한다. 과거라는 창고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br/><br/><br/><br/><br/><br/>---<br/><br/><br/><br/><br/><br/>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 이후 리뷰 2/2<br/><br/><br/><br/>#협찬 초의미에 대하여..<br/><br/><br/><br/>전반부 리뷰에서 나는 '지향점을 잃은 삶'이 왜 공허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삶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빅터 프랭클은 의외로 단순한 답을 내놓는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br/><br/><br/><br/>나 역시 처음에는 이 주장이 다소 이상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는 극한의 절망을 직접 통과한 인물이다. 강제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인간의 존엄마저 짓밟힌 현실을 견뎌낸 사람이었기에, 그의 주장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br/><br/><br/><br/>3부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인간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용소 안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잔혹해진 사람도 있었다. 환경은 분명 사람을 흔든다. 때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센 힘으로 삶을 압도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한 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환경이 우리의 자유를 크게 제한할 수는 있어도,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혹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는 마지막까지 개인의 선택으로 남는다...<br/><br/><br/><br/>이 지점에서 나는 현대 사회를 떠올렸다. 우리는 너무 쉽게 환경과 조건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시대를 살아간다.(흙수저 라던지, 이생망 이라던지..) 물론 환경은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환경으로만 설명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과 책임까지 함께 내려놓게 된다.<br/><br/><br/><br/>4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며 살아갈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지금의 고통이 어디로 이어질지 끝내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프랭클는 이것을 '초의미'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br/><br/><br/><br/>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은 마지막 장면이 되어야 비로소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듯, 우리 역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모든 의미를 한꺼번에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를 향해 살아갈 수 있고, 언젠가 비로소 그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br/><br/><br/><br/>책을 덮으며 전반부에서 썼던 '지향'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지향이란,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걸어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끝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내 앞에 놓인 의미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방황할 수는 있어도 지향만큼은 잃어서는 안 된다.<br/><br/><br/><br/>프랭클이 말하는 의미도 거창한 사명이 아니다. 오늘 해야 할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것,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 바꿀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끝내 인간의 품격을 포기하지 않는 것. 삶의 전체 의미는 끝내 다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br/><br/><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미를 향해 살아갈 수 있다. <br/><br/>포기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br/><br/><br/><br/>#죽음의수용소이후<br/><br/><br/><br/>빅터 프랭클 지음<br/><br/><br/><br/>북하우스<br/><br/><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br/><br/>#바닿늘심리학<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3·4부 핵심 통합 요약: <br/><br/>실존의 자유와 유한성이 만드는 삶의 책임<br/><br/><br/><br/>빅터 프랭클의 사상적 정수를 담은 〈자유와 책임〉, 〈유한성 앞에서의 의미와 책임〉은 인간을 환경의 피조물로 보는 결정론적 시각을 비판하며,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임을 논증한다. 20세기의 기계론적 인간관은 인간을 본능이나 환경의 노예로 환원하며 나치의 강제수용소 같은 비인간화의 비극을 낳았다. 그러나 프랭클은 극한의 수용소에서조차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는 인간을 목격했다. 그 결과 그는 인류를 나누는 유일한 기준은 계급이나 인종이 아닌, 오직 '품위 있는 인간'과 '품위 없는 인간'이라는 두 가지 종류뿐이라고 선언한다.<br/><br/><br/><br/>인간은 충동에 떠밀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의미지향적 존재'이다. 현대인이 겪는 은퇴 후의 허무, 주말의 무기력(여가 신경증), 실업으로 인한 절망은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실존적 공허에서 비롯된다. 행복은 직접 추구할 때가 아니라, 매 순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내면의 나침반'인 양심의 부름에 따라 나만의 유일무이한 의미를 찾아 행동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다. 로고테라피는 이 의미를 발견하는 세 가지 통로를 제시한다.<br/><br/><br/><br/> * 창조적 가치: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자신의 일과 책임을 완수하는 것.<br/><br/> * 경험적 가치: 자연, 예술, 그리고 타인의 유일한 고유성을 사랑으로 환대하는 것.<br/><br/> * 태도적 가치: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에 직면했을 때 이를 인간적인 성취와 정신의 승리로 승화시키는 것.(※ 단, 바꿀 수 있는 고통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태도적 가치는 오직 바꿀 수 없는 고통 앞에서만 실존적 우위를 지닌다.)<br/><br/><br/><br/>많은 이들이 죽음 앞에서 삶의 덧없음을 느끼지만, 프랭클은 죽음이야말로 삶에 유일무이한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 조건이라고 말한다. 삶이 영원하다면 가치 실현을 끊임없이 미루겠지만, 시간적 유한성의 압박이 존재하기에 오늘 우리의 선택은 단 한 번뿐인 엄중한 기회가 된다. 이 실존적 긴장감 위에서 로고테라피의 정언명령이 성립한다.<br/><br/><br/><br/>"이미 두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막 저지르려 하는 잘못들을 첫 번째 생에서 이미 다 저질렀던 것처럼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br/><br/><br/><br/>우리가 실현한 가치, 용기 있게 견뎌낸 고통,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 소멸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존 형태인 **'과거의 창고'**에 영원히 저장된다. 일반적인 이들은 수확이 끝나 텅 빈 논밭(존재의 덧없음)을 보며 무상해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곡식으로 가득 찬 창고(이미 살아낸 과거의 실재)를 바라본다.<br/><br/><br/><br/>따라서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생산성이나 효율성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노년은 미래의 가능성을 상실하는 퇴보의 시기가 아니라,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확실한 '실재'를 창고 가득 쌓아 올린 영광스러운 시간이다. 인간은 매일 얇아지는 일력을 보며 한탄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루의 성취를 일기처럼 기록하여 자랑스럽게 모아두는 존재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한계 덕분에 삶은 더욱 소중해지며, 오늘 우리가 내리는 책임 있는 선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기념비로 남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2/cover150/k482139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20209</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 각자 스스로 판단하자.. 여러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 [들뢰즈의 영화철학 - 『시네마』를 넘어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60105</link><pubDate>Sun, 28 Jun 2026 17: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601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474723&TPaperId=173601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33/64/coveroff/89614747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474723&TPaperId=173601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들뢰즈의 영화철학 - 『시네마』를 넘어서</a><br/>이지영 지음 / 이학사 / 2025년 02월<br/></td></tr></table><br/>#협찬 각자 스스로 판단하자... 휘둘리지 말고...<br/><br/>* 인스타그램에 오늘 올린 글은 해당 글을 다듬어서 올린 것이고.. 이곳에는 다듬기 전의 글을 올려둔다.<br/><br/>지난 두 편의 글에서 나는 &lt;들뢰즈의 영화철학 시네마를 넘어서&gt;를 읽으며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br/><br/>1부에서는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영화를 해석하는 과정이 결국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와도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br/><br/>3부를 읽으며 그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를 많이 얻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br/><br/>우리는 흔히 사진과 영상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책은 오히려 그 반대를 이야기한다. 기억은 기록을 그대로 꺼내 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보고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계속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여행 사진을 보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때가 가끔 있다. 그런데 그 기억은 실제 경험이라기보다 사진 속 장면을 중심으로 다시 구성된 기억일 수도 있다.<br/><br/>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와 유튜브, 숏폼 영상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보는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편집과 선택을 거쳐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다시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며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정보를 소비했는가보다, 그 정보를 어떤 관점으로 연결하고 해석했는가일지도 모른다.(이 부분이 나는 굉장히 위험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크 넛지' 같달까.. 에코챔버에 갇힌 사람이 계속 그 안에서 편향성을 강화할 수 있을테니까...)<br/><br/>3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관객을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시선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영상을 보고 끝내지 않는다. 댓글을 남기고, 다른 사람의 해설을 보고, AI에게 질문하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 글로 정리한다. 하지만 참여가 곧 사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영상을 보고도 누군가는 더 깊이 질문하고, 누군가는 가장 자극적인 해석만 소비한다. 연결이 쉬워진 시대일수록 무엇을 믿고 어떤 해석을 받아들일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br/><br/>최근에는 생성형 AI를 사용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한다. AI는 훌륭한 요약자이자 해설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설명이 더 타당한지, 어디까지가 근거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인지 판단하는 일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AI를 사용할수록 오히려 책을 읽고, 원문을 확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더 중요해진다고 느낀다.<br/><br/>결국 들뢰즈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도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영화철학을 다루지만, 내가 끝내 읽게 된 것은 영화보다도 정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였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결론을 빠르게 소비하는 사람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끝까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br/><br/>3부를 덮으며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영화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휘둘리기보다 스스로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br/><br/>---<br/><br/>되도록 특정 인물을 (특히 좋은 일이 아니라면) 직접 언급하길 꺼려한다. 자칫 내가 그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실제로 그 정보를 기준 삼아 누군가 편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자 저마다의 생각이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생각이 너무 큰 확신이라면 조금 위험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오늘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허지웅 님의 글을 봤다. 보면서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또 다시 읽어봤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br/><br/>예전 abc론에 대해 언급했을 때는 그냥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이후에 벌어지는 양상을 보며 흠.. 솔직히 조금 우려스러웠다. 그래도 그럴 수 있다고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너무 강하다. 너무 감정적이다. 너무 단정적이다. 그래서 위험하게 느껴진다.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각자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누군가의 편을 나서서 들겠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나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음에 그가 매우 많이 불편했다.<br/><br/>나에게 대단한 지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올바른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적어봤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아무래도 더 많이 수고가 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설득해야지,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게 허지웅 님의 오늘 글은 강요로 느껴졌다.<br/><br/>"이 답답이들아! 내 말이 맞다고!! <br/>꼰대 말 듣지 말고 내 말 들으라고!!"<br/><br/>나는 이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br/><br/>"내가 알아서 할게!! 강요하지 마!!!"<br/><br/>#들뢰즈의영화철학 시네마를 넘어서<br/>이지영 지음<br/><br/>각자 스스로 판단하자...<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바닿늘철학<br/><br/>@ehaksa_ 도서 지원,<br/>@woojoos_story 모집으로<br/>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33/64/cover150/89614747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336448</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환경은 사람을 바꾸고, 사람은 다시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 - [비밀의 화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57928</link><pubDate>Sat, 27 Jun 2026 11: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579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000&TPaperId=173579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43/11/coveroff/8949141000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000&TPaperId=173579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밀의 화원</a><br/>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김옥수 옮김, 찰스 로빈슨 그림 / 비룡소 / 2011년 04월<br/></td></tr></table><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첫 번째 책<br/>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 비밀의 화원(3/3, 완독 리뷰)<br/><br/>---<br/><br/>후반부 줄거리 (결말 포함)<br/><br/>(지난 리뷰에서 전체 줄거리가 이어지니 참고하면 좋겠다.)<br/>메리와 디콘은 비밀의 화원을 함께 가꾸며 콜린도 그곳으로 데려간다. 처음에는 휠체어에 의지하던 콜린은 화원의 공기와 햇살, 그리고 두 친구의 격려 속에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특히 메리가 끊임없이 "넌 할 수 있어."라고 외치며 용기를 북돋우고, 디콘이 곁에서 묵묵히 붙잡아 준 끝에 콜린은 마침내 두 발로 일어선다.<br/><br/>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정원사 벤 웨더스태프는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은 그동안 콜린이 곱사등이에 불구가 될 것이라 수군거렸지만, 벤은 자신의 눈으로 꼿꼿이 서 있는 콜린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린다. 병든 몸보다 더 큰 문제는 모두가 아이에게 "곧 죽을 아이"라는 믿음을 심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br/><br/>이후 세 아이는 비밀의 화원을 자신들만의 세계로 삼는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화원에는 꽃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아이들 역시 함께 성장한다. 메리는 더 이상 까다롭고 외로운 아이가 아니게 되었고, 콜린은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순환을 배우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디콘은 여전히 자연의 안내자처럼 새와 동물, 식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두 아이 곁을 지킨다.<br/><br/>콜린은 이 변화를 '마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초자연적인 힘이라기보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계속 마음을 기울이는 힘에 가깝다. 그는 "내 안에는 마법이 있다.", "나는 건강해질 것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려 한다. 메리의 믿음과 디콘의 따뜻한 격려 역시 그 마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이러한 생각을 통해 희망과 믿음, 그리고 의지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br/><br/>한편, 아내를 잃은 뒤 죄책감과 슬픔 속에서 10년 가까이 세상을 떠돌던 아치볼드 크레이븐 역시 변화의 기회를 맞는다. 그는 꿈과 편지를 계기로 오랫동안 외면했던 집과 아들을 떠올리게 되고, 결국 미셀스웨이트 저택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그는 아내를 잃은 충격 때문에 살아남은 아들마저 외면하며, 상실의 시간을 스스로 끝없이 연장하고 있었다.<br/><br/>저택으로 돌아온 크레이븐은 오래 잠겨 있던 비밀의 화원 앞에 이른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따라 문 앞에 선 순간, 담쟁이덩굴이 젖혀지고 한 소년이 힘차게 뛰어나온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아들 콜린이었다. 스스로 걸을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아이가 두 다리로 달려와 아버지 앞에 선 것이다.<br/><br/>"아빠, 저 콜린이에요. 못 믿으시겠지만요."<br/><br/>이 말은 아버지에게도 하나의 기적이었다. 크레이븐은 자신의 눈으로 건강해진 아들을 확인하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이후 그는 아들과 함께 저택으로 걸어서 돌아간다. 사람들은 죽을 것이라 여겼던 아이가 당당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고(저택 사람들에게 콜린은 자신이 건강해지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숨겨왔다.) 크레이븐 역시 오랜 슬픔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br/><br/>결국 &lt;비밀의 화원&gt;에서 되살아난 것은 정원만이 아니다. 사랑을 받지 못했던 메리,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던 콜린, 아내를 잃고 삶을 포기했던 크레이븐까지 모두가 다시 살아간다.<br/><br/>그래서 이 작품에서 '비밀의 화원'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삶을 회복해 가는 공간이며, 버넷은 자연과 관계, 그리고 희망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소설을 마무리한다.<br/><br/>---<br/><br/>다 읽고 나니 기분이 참 좋아졌다. 이렇게까지 책을 덮고 마음이 환해진 작품은 오랜만인 것 같다.<br/>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읽은 &lt;비밀의 화원&gt;은 결국 자연이 인간의 회복을 돕는 이야기였다. 메리와 콜린은 스스로 변화하기로 결심하지만, 그 결심이 가능했던 이유는 먼저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햇빛과 바람, 흙과 꽃, 그리고 좋은 사람들(특히 디콘과 디콘의 어머니 수어비가 돋보인다.) 덕분이다. 의지는 중요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화가 이 소설에는 담겨 있다.<br/><br/>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은 이 이야기를 통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있는 환경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는 2021년 5월 28일을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날로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내 블로그에 '포기의 다른 이름은 선택'이라는 글을 남겼다.(지금도 공지로 남겨두고 있다.) 그 글에는 이종범 작가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적어 두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 취지였다.<br/><br/>오래 전 과거 상처로 인해 현재도 힘들어 하고 있는 어느 여성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br/><br/>"태어나 보니 사막이다. 더워 죽겠네.. 태어나 보니 알래스카다. 추워 죽겠네..<br/>태어나 보니 힘든 가정이다. 힘들어 죽겠네.. 그런데도 지금 여기까지 왔다면, <br/>당신은 그 환경을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생존자로 이곳에 와 계신겁니다.."<br/><br/>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환경의 중요성을 너무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br/>나는 환경결정론자는 아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선택과 책임도 있다. 하지만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단순히 자연만이 아니다. 가정환경, 사회환경,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환경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br/><br/>사회적 참사가 일어나면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고민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개인이 환경 자체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제도가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하나의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도 그렇게 지난한 것이다.<br/><br/>그리고 인간은 생각보다 약한 존재다. 잔소리만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기왕이면 사람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이야기 말이다.<br/><br/>나는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를 고생시키려고 '고전'이 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필요한 질문과 답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마치 숲의 흙처럼 새로운 생각이 자라날 토양이 되어 준다.<br/><br/>&lt;비밀의 화원&gt;도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br/>메리도, 콜린도 처음부터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을테다. 그리고 또 다른 환경이 그들을 다시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희망도 결국 환경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처한 상황에 따라 환경을 바꾸기가 힘들 수 있음을 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기 위한 노력을 저마다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과거에 갇혀 살지 않기 위해...)<br/><br/>물론 지금 세상을 보면 불안할 때가 많다. 환경을 해치는 일도, 갈등을 부추기는 일도,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희망도 품는다. 좋은 일도 결국 사람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될거라고 평소에 생각한다..)<br/><br/>얼마 전 읽고 소개했던 &lt;모럴 앰비션&gt;이 다시 떠오른다. 그 책을 읽고 나는 이런 문장을 남겼다.<br/><br/>"우리는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선한 야망을 가슴에 품고."<br/><br/>&lt;비밀의 화원&gt;을 덮고 나니 그 문장이 다시 생각났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환경은 사람을 바꾸고, 사람은 또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마법'이 아닐까..??<br/><br/>읽는 내내 동화였지만, 책을 덮고 나니 오히려 현실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오래 사랑받는 고전이라고 부르고 싶다.<br/>책이 부담스럽다면 오디오북으로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유튜브 채널 &lt;솔솔솔그림책&gt;에 올라온 영상을 추천하고 싶다.) <br/><br/>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메리처럼, 우리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다.<br/><br/>#비밀의화원<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 <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br/><br/>#바닿늘<br/>#바닿늘소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43/11/cover150/894914100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431161</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진짜 위험한 사회는 질문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사회다. ㅡ 6.3 지방선거 투표 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나의 생각.. - [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28524</link><pubDate>Thu, 11 Jun 2026 1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285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8600&TPaperId=173285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1/28/coveroff/k2221386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8600&TPaperId=173285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a><br/>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05월<br/></td></tr></table><br/>#협찬 말하기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br/><br/>&lt;제로 포인트&gt; 2부에서 지젝은 가자 전쟁을 둘러싼 서구 사회의 반응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중동 문제 자체가 아니다. 그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며, 어떤 질문은 왜 금기시되는지를 보여준다.<br/><br/>지젝은 먼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형성된 분위기에 주목한다. 하마스의 학살은 분명 규탄받아야 할 범죄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팔레스타인이 처한 역사적 상황이나 이스라엘의 정책을 언급하는 것마저 곧바로 테러 옹호로 간주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br/><br/>지젝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그 사건을 정당화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설명 자체를 금지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를 이해할 기회도, 해결할 가능성도 잃게 된다.<br/><br/>그는 독일의 사례를 통해 이를 보여준다. 독일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책임 때문에 이스라엘을 강하게 지지해 왔다. 그러나 지젝은 과거의 죄책감이 현재의 모든 행동을 비판에서 면제해 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현재의 폭력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br/><br/>이어 그는 전쟁 속 정보가 작동하는 방식에도 주목한다. 사람들은 흔히 진실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정치에서는 무엇이 사실인가 못지않게 무엇이 언제 알려지는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충격적인 뉴스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일부 내용이 과장되었거나 부정확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이미 형성된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br/><br/>지젝은 이를 통해 우리가 사실보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틈을 정치가 이용한다고 지적한다.<br/><br/>그는 또한 이 전쟁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보지 않는다. 지젝이 보기에 진짜 대립은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이 아니다. 오히려 양측의 극단주의 세력과 평화적 공존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에 가깝다.<br/><br/>하마스의 폭력은 이스라엘 강경파에게 더 강한 군사 행동의 명분을 제공하고,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은 다시 하마스가 지지를 얻을 환경을 만든다. 서로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결국 평범한 시민들이 치른다.<br/><br/>마지막으로 지젝은 연민과 연대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멀리서 타인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낳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실천이다. 그는 우리에게 관객으로 남지 말고 현실에 개입하는 시민이 될 것을 요구한다.<br/><br/>---<br/><br/>2부를 읽으며 최근 6.3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사태가 연상되어서 답답함이 컸다.....<br/><br/>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관리 부실로 인해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사태를 누군가는 단순한 행정 실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더 큰 문제를 의심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결론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br/><br/>"왜 많은 시민들이 이 사건을 단순한 실수로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br/><br/>민주주의는 맹목적인 신뢰 위에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불신 위에서도 유지될 수 없다. 시민이 질문하고, 공공기관이 설명하고, 사회가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br/><br/>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특정 정파의 유불리가 아니다. 헌법상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얼마나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가, 얼마나 책임 있게 설명하는가, 그리고 시민들이 선관위를 향해 질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br/><br/>나는 선관위가 그동안 여러 논란 속에서 스스로 신뢰를 훼손해 온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욱 투명한 정보 공개와 책임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신뢰는 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 만한 행동을 통해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br/><br/>&lt;제로 포인트&gt; 2부가 던지는 메시지도 결국 이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br/><br/>진짜 위험한 사회는 틀린 질문이 나오는 사회가 아니다. 질문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사회다. <br/><br/>물론 질문할 권리가 허위 정보나 무분별한 음모론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근거 없는 단정과 악의적인 선동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맹목적인 의심이 아니라 근거 있는 의심이며, 무조건적인 불신이 아니라 검증을 요구할 권리다.<br/><br/>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다. 시민들이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고, 책임을 요구할 때 비로소 유지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젝이 우리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br/><br/>"질문을 두려워하지 말라. <br/>다만 그 질문을 사실과 책임 위에 세워라."<br/><br/>#제로포인트<br/>슬라보예 지젝 지음<br/>이혜진 옮김<br/>배세진 서문·해제<br/><br/>우중몽 출판사<br/>@woojoongmong.books<br/><br/>#우주클럽_철학방 #바닿늘<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바닿늘철학<br/><br/>@woojoos_story 진행으로 <br/>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1/28/cover150/k2221386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912882</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복잡한 세상에서 진짜 갓생 사는 법.. ㅡ 나는 거부한다! 육각형 인간을.. - [밤의 설계자 - 잠들기 전 15분, 미래를 바꾸는 밤 생각 습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18745</link><pubDate>Fri, 05 Jun 2026 17: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187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8336&TPaperId=173187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82/coveroff/k182138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8336&TPaperId=173187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밤의 설계자 - 잠들기 전 15분, 미래를 바꾸는 밤 생각 습관</a><br/>폴커 부슈 지음, 이상희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협찬 복잡한 세상에서 진짜 갓생 사는 법..<br/><br/>요즘은 뉴스를 직접 찾아보지 않아도 뉴스가 나를 찾아온다. SNS를 열지 않아도 포털 카드뉴스와 쇼츠를 통해 세상의 소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며 살아간다.(나는 미디어 환경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미세먼지가 심한 느낌이다...)<br/><br/>하루 종일 쏟아지는 정보와 감정 속에서 몸보다 먼저 지치는 것은 어쩌면 뇌인지도 모른다.<br/>이런 때 만난 책, &lt;밤의 설계자&gt;가 그래서 유독 더 반갑게 느껴졌다.<br/><br/>독일어 원제 Gute Nacht, Gehirn(구테 나흐트, 기히른)은 "잘 자, 뇌야"라는 뜻이라고 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더 열심히 살라고 등을 떠미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을 돌보라고 이야기한다.<br/><br/>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직관'에 대한 설명이다. 직관은 신비한 육감이 아니라 뇌가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의 압축 파일에 가깝다. 하지만 불안과 분노로 마음이 소란스러우면 그 직관마저 흐려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잠시 멈추는 고요함이 아닐까 싶다.<br/><br/>이 책은 자기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애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치켜세우는 태도가 아니다. 실수하고 부족한 나 자신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힘이다. 친구에게는 한없이 다정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만 엄격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br/><br/>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도파민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는 종종 행복보다 기대감을 쫓는다. 그래서 순간적인 욕망에 이끌려 선택한 일이 예상보다 큰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책은 이를 '강아지 함정'이라는 사례로 설명한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지만, 막상 매일 산책시키고 돌보는 일은 부모의 몫이 되는 상황 말이다. 찰나의 설렘보다 오래 지속되는 만족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원트와 라이크를 구분)<br/><br/>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바꿀 수 없는 현실과 끝없이 싸우기보다 받아들이고,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자신만의 방향을 찾으라고 말한다. 넬슨 만델라와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여러 글에서 계속 인용하게 될 만큼 인상적인 인물들이다. 삶의 나침반은 결국 세상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메시지가 깊게 남았다.<br/><br/>이 책은 성공하는 방법보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 정신적 중심을 잃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에 가깝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고 실용적이다. 다만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다소 자극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분도 있다.(저자가 책 초반에 직접 밝히듯..) 그래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 번쯤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요즘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책의 주장이나 사례를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br/><br/>세상을 걱정하는 일은 내일 다시 해도 된다. 어차피 새로운 사건은 계속 생겨난다...<br/><br/>그러니 나름의 노력을 했다면 (아니, 충분하지 못했어도..) 오늘 밤만큼은 하루 종일 애쓴 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자.<br/><br/>"잘 자, 뇌야." 🌙<br/><br/>그리고 내일 또, 그다음 날에도 반복하는 거다.<br/><br/>다른 게 뭐 갓생인가?<br/>나는 이런 게 진짜 갓생이라고 생각한다. <br/><br/>육각형 인간을 거부한다. 나는 네모여도 충분하다. ㅁ_ㅁ<br/>아니..?! 세모도 상관 없다. 각각의 면들이 연결만 되어 있다면.........<br/><br/>#밤의설계자 <br/>폴커 부슈 지음<br/>이상희 옮김<br/><br/>북파머스<br/>책읽어주는남자출판그룹<br/><br/>세모 네모 동그라미 <br/>모두모두 드루와 드루와.. 🤣🤣<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바닿늘심리학]]></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82/cover150/k182138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31825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