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seasky210528님의 서재 (seasky210528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9 Sep 2026 12:12:40 +0900</lastBuildDate><image><title>seasky210528</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easky210528</description></image><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신은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시련이라는 이름의 포장지에 싸서 준다.. - [독서에 전부를 걸어보세요 -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유일한 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500483</link><pubDate>Mon, 07 Sep 2026 15: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5004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0451&TPaperId=175004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04/97/coveroff/k9521304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0451&TPaperId=175004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독서에 전부를 걸어보세요 -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유일한 길</a><br/>박가을 지음, 김윤지 그림 / 체인지업 / 2026년 10월<br/></td></tr></table><br/>#협찬 삶이 이야기로..<br/><br/>선물처럼 느껴지는 협찬 도서가 한 번씩 있다. <br/>이 책이 그렇다.<br/><br/>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3~4년 전이었을까?) 아무튼 꽤 오래전으로 기억한다. 본인의 아팠던 과거와, 그 이후 책을 통해 조금씩 달라진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느 콘텐츠를 우연히 접했다.<br/><br/>그는 너무 아팠던 시간을 얼마 전에 통과한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이 겪었던 일과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br/><br/>나는 살면서 신체적으로 크게 아팠던 기억이 허리 디스크 통증으로 고생했던, 길게 잡아 6개월에서 1년 남짓한 기간이 전부였던 것 같다. 시술과 수술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큰 통증에서 벗어났다.<br/><br/>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일을 계기로 배운 것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무리하지 않는 습관을 나름대로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br/><br/>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가을님은 7년이다.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7년이었다. 7년이면 초등학교도 졸업하는 기간 아닌가? 😳<br/><br/>내가 겪었던 고통과 단순 비교해도 10배가 넘는 시간이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긴 터널을 통과한 가을님께 일단 박수를 보내주고 글을 이어가려고 한다.<br/><br/>---<br/><br/>책을 펼쳐 쭉 읽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맹자》를 다룬 부분에서 멈췄다. 익숙한 문장이 나왔다.<br/><br/>《맹자》의 &lt;고자 하&gt; 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br/>"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을 주고 그의 배를 곯게 하고 그의 몸을 가난에 찌들게 하여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든다."<br/><br/>이 문장은 스타강사 이지영 님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들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런 말도 있었다.<br/><br/>"신은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시련이라는 이름의 포장지에 싸서 준다."<br/><br/>우리는 저마다 살면서 고통을 경험한다. 강도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는 것 같다.<br/>그런데 고통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까지 크게 바꾸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br/><br/>그게 아니라면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할 리 없지 않을까?? 🙄<br/><br/>흠.. 솔직히 부끄럽지만 남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인지 큰 고통을 통과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그 경험으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바꿔낸 사람의 이야기는 더 값지게 느껴진다. 그리고 유독 용기를 북돋는다.<br/><br/>물론 가을님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통을 겪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책과 긍정적인 태도가 중요한 원료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br/><br/>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쉽게 불행에 빠져드는 것 같다.<br/>몸과 마음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까.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흔들리고, 마음이 무너지면 다시 몸까지 영향을 받는다.<br/><br/>나 역시 최근 어떤 일을 겪으며 많이 냉소적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밝은 곳을 보려고 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더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현실이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도 말이다.<br/><br/>절망보다 희망이 잠재적으로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절망의 끝은 어쩌면 파멸일 수 있다. 하지만 희망의 끝에는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 무신론자인 내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br/><br/>최근 문학과 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이 있었다. 과거의 여러 현인들이 절망적인 현실을 몸으로 겪으면서도 끝내 희망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br/><br/>그들은 바보가 아니며 단순한 낙관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그들이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의 표현을 빌려와서 '가능성 옹호론자'라고 하겠다. 나 역시 가능성을 옹호론자로 살아가고 싶다.<br/><br/>최근 부쩍 많이 느껴지는 혐오의 공기가 나는 꽤 불편하고 우려스럽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겠지만, 이대로라면 미래가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br/><br/>그럼에도 내가 희망을 품게 되는 이유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서로 연결되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br/><br/>어쩌면 본인의 삶(아팠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든다는 것(혹은 경험 그대로 쓴다는 것)의 의미는 이게 아닐까..(나는 아직 문학을 잘 모르지만 그나마 얕게나마 경험한 대부분의 문학이 자전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기억한다.)<br/><br/>그래서 이 책이 선물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br/><br/>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다.<br/>우리는 결국, 괜찮은 길을 찾아가게 될 거라고.<br/><br/>인생 에세이를 찾고 계신분들께<br/>이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br/><br/>특히 책이 인생에 무슨 쓸모가 있는지<br/>정말 알고싶은 20대에게 더 추천하고 싶다.<br/><br/>#독서에전부를걸어보세요<br/>#박가을 #에세이 <br/><br/>#체인지업북스 <br/><br/>#힐링 #인문교양 <br/>#독서기록 #청춘 <br/>#독서 #북스타그램 <br/>#신간추천<br/><br/>#바닿늘 #바닿늘글쓰기<br/><br/><br/>---<br/><br/><br/>  책에서 추출한 텍스트<br/><br/><br/>  투명한 물거품으로 변했으면<br/><br/>  모두가 잠든 시간. <br/>  화장실 불빛만 새어 나오는 어두검컴한 병실에서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몸은 불 속에서 타들어가는 듯했다. 어제의 고통이 오늘도 멈추지 않고 내 안에 고여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마치 악마가 된 것 같았다. 세상이 싫었고 모든 사람이 미웠다. 모든 것을 다 파괴해버리고 싶었다. 불행과 고통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고 무너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했다.<br/><br/>  "예쁜 물거품이 되어서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한테 가고 싶어."<br/>  온몸이 찢어질 만큼 아팠을 때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고통으로만 가득 찬 몸과 마음이 투명한 물거품으로 변했으면 했다. 무겁기만 한 고통의 무게가 손끝에 닿기만 해도 터져버릴 만큼 가벼워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바랐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고, 숨이 막힐 만큼 힘들면 힘들다는 말조차 할 기운이 없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br/><br/>  《맹자(孟子)》의 &lt;고자 하(告子 下)&gt; 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br/>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을 주고 그의 배를 곯게 하고 그의 몸을 가난에 찌들게 하여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든다. 왜? 그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참을성을 갖게 하려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게 하려고."<br/><br/>  진주는 조개 내부로 들어온 작은 모래알 하나가 낸 상처에서 시작한다. 조개는 그 상처를 정성껏 감싸며 자신만의 입자를 긴 시간 두껍게 쌓아간다. 그 수많은 층이 쌓인 끝에 마지막으로 얻어지는게 진주다. 그 아름다움은 고통을 견뎌낸 시간에서 온다. 어쩌면 내 인생도 고통의 무늬가 새겨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비로소 깊어졌는지도 모른다.<br/>  어떤 권력자도 나에게서 빼앗지 못하는 것이 있다. 책 읽기와 시련이 내게 남겨준 것들이다. 책은 고통을 가치 있는 무언가로 승화 시켜주었다. 어두운 밤길을 지나오며, 독서와 시련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건강을 되찾았을 때 나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어떤 파도가 몰아쳐도 책과 함께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br/><br/>책은 내 안에 독소처럼 쌓이는 감정을 정리해줬고 삶을 버티게 하는 작은 연료가 되어줬다. 이제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이상하게 허전하다. 마치 식사 후 이를 닦지 않은 느낌처럼. 그렇게 책과 함께 세상을 넓혀가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좁은 세계 안에서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았구나. 그래서 인생이 더 힘겹고 세상이 더 두려웠구나.'<br/><br/>  중국 당나라 시인 한산은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천년의 근심으로 산다"라고 말했다. 이십 대 중반, 사수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을 다닌 적이 있다. 그분은 감정 기복이 심하셨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그분의 기분부터 살펴야 했다. 하루의 공기가 그분의 표정 하나에 크게 흔들렸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사람과 사건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려면 감정의 중심축을 나에게 두어야 한다는 것을.<br/><br/>  몇 년이 흐른 뒤였다. 집에서 책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믿음에 사로잡히곤 했다. '세상은 늘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인생은 내가 꿈꾸는 대로 흘러가며, 선한 의도를 품으면 곧이곧대로 모두가 알아줄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선의로 행한 일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었다. 그럴수록 사람은 쉽게 무기력과 불안에 빠지고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야. 어쩔 수 없어'라며 체념하게 된다.<br/><br/>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의 바람을 품고 있었다. 선한 의지가 끝내 승리하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단단해져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강함은 자신을 지탱하는 단단함이 결국 타인을 품는 선함으로 자라나는 것이다.<br/><br/>  다음은 크게 공감했던 한강 작가의 말이다.<br/>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을 읽지 않을 땐 자신이 부스러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읽고 나면 부스러졌던 부분이 다시 모아지는 느낌이 있어요."<br/>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더 열렬히 책을 읽는다.<br/><br/><br/>《맹자》란 책은?<br/><br/>삶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 《논어》, 《도덕경》, 《맹자》, 《장자》, 《채근담》 같은 동양 고전 철학서를 자주 읽었다. 외부의 일들로 내면의 평정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들은 언제나 나를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해줬다. 좋은 책에서 만난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다 보면 어느새 흔들리던 마음이 단단해지곤 했다. 《맹자》는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마음을 붙잡아주는 책이었다. 읽는 동안 끊임없이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이 책이 전하는 핵심은 진리는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발견된다는 것이다.<br/><br/>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br/>《맹자》뿐 아니라 여러 동양 고전들을 읽으며 나 자신을 성찰하고 수양해왔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내적 자산이 쌓였다.<br/><br/>1. 시련이 닥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내공 <br/>2.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세 <br/>3. 나만의 생각과 기준, 철학과 가치관을 세우는 힘 <br/>4. 선택의 갈림길에서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 <br/>5. 자신과 삶,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br/>6.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신념 <br/>7. 자기 삶을 가치 있게 가꾸는 태도<br/><br/>One Book, One Action<br/><br/>'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정적으로 말하더라도 섣불리 믿지 않기'를 실천했다. 그랬더니 타인의 평가보다 내 경험과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04/97/cover150/k9521304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049737</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대부분 질투하며 방황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결국 용서하고 길을 찾는다. - [블랙 푸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88502</link><pubDate>Wed, 02 Sep 2026 0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885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840&TPaperId=174885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4/60/coveroff/k9721308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840&TPaperId=174885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블랙 푸들</a><br/>우신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08월<br/></td></tr></table><br/>#협찬 멈추어라, 기성 세대여....<br/><br/>아침에 펼쳐서 오후까지 쭈욱 이어서 다 읽었다.<br/><br/>그 유명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을 아는가?<br/><br/>이 소설은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 속 일부 설정을 가져와 쓰인 소설이다. 아는 독자들은 이미 알겠지만, 《파우스트》 역시 여러 신화와 설화 속 이야기를 끌어와 거기에 자신의 삶과 생각을 녹여낸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파우스트라는 이름 역시 유명한 설화 속 인물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br/><br/>《파우스트》의 저자 괴테를 조금 오버해서 해석한다면, 나와 세상, 그리고 나와 세상의 관계까지 넓은 범위를 문학에 녹여낸 대작가라고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 얕은 수준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대문호 괴테가 그런 면에서 특히 좋다. 그가 스스로 힘들게 알아낸 것을 후대에 전승했다고 느껴지기에.. (아낌없이 나눠주고 갔다고 해야겠다..)<br/><br/>소설의 주요 설정은 이렇다.<br/><br/>검은색 푸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마와 주인공 표우수의 계약. 계약 후 악마가 건넨 알약을 하루 세 번 챙겨 먹으면, 질투 나는 대상인 탁수현의 삶을 훔칠 수 있다. 더 정확히는 대상의 장점이 복용자에게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br/><br/>악마의 안내에 따르면 대상에게는 고작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변화만 나타난다. 마치 바다에서 물 한 컵을 덜어낸 수준이라나..?? 그래서 그런지 고객이 참 많은 악마다.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br/><br/>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안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표우수가 받아야 할 사랑을 다 가로채 간 것처럼 느껴지는 절친 탁수현의 능력을 가져오고 싶은 우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br/><br/>표우수의 엄마는 동네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피아노 원장이고, 탁수현은 우수 엄마의 애제자다. 콩쿠르 우승을 노릴 정도로 실력도 출중하다.<br/><br/>게다가 수현은 흔히 요즘 말하는.. 육각형 인간 그 자체다. 능력뿐이 아니다. 외모도 출중하다.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대개 그렇듯 외모의 완성은 얼굴이라. 그게 결코 단점으로 작용하진 않는 듯 비춰진다. ㅋㅋㅋㅋ)<br/><br/>수현은 왜인지 우수에게 너무 과하게 친절하다. 그 친절함의 이유는 뭘까?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엄친아이기도 한데..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다는 정도만 설명하겠다..)<br/><br/>나는 그 이유가 읽는 내내 궁금했다. 단순히 미안함이라고 하기에도, 고마움이라고 하기에도 그의 친절은 설명되지 않는 듯했기에..<br/><br/>사총사의 일원으로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낸 이유도 있지만, 그 역시.. 아니면 그래서 더 설명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총사 일원 두 명에 대한 설명은 분량이 길어질 수 있기에 생략..)<br/><br/>우수는 수현에게 오랫동안 질투를 느껴왔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드디어 맞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질투 때문인지 우수는 다급함을 느낀다. 분명 크게 달라졌지만, 수현과의 간극은 너무나도 컸다.<br/><br/>게다가 전학 온 이성 친구 기래현을 향한 우수의 마음에 수현은 방해꾼처럼 느껴진다.<br/><br/>(전학 온 래현의 어머니는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약사로 나오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중이다. 래현은 어릴 때부터 아주 자유롭게 자랐고, 아버지를 따라 귀농을 했으나 농사가 잘되지 않고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서 다시 어머니에게 온 상태다.)<br/><br/>분명 본인에게 더 호감을 보였던 래현.. 알고 보니 5년 전 이미 인연이 닿아 있었다. 인연도 이미 닿아 있었고 본인에게 더 호감을 보였으나.. 어째 흘러가는 건 수현과 더 가까운 사이로 이어지는 듯하다.<br/><br/>급한 마음에 무리를 하게 되는 우수. 그의 마음은 점점 지옥이 되어 간다.<br/><br/>소설의 결론은 어디로 흘러갈까?<br/><br/>---<br/><br/>이번 리뷰에서는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후반부에 감동의 눈물이 찔끔 났고.. 책을 덮을 즈음에는 마음이 따뜻해졌다.<br/><br/>흠....<br/><br/>책을 읽고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용서'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혹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다.<br/><br/>'내가 그런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어?'<br/><br/>이런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평소에 느낀다.<br/><br/>나는 운이 좋아서.. 마음속에 그런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br/><br/>예전보다 많이 냉소적으로 바뀐 내 모습이.. 솔직히 스스로 별로라고 느낄 때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br/><br/>그럴 수 있다.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그냥 살아가는 거다.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나름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br/><br/>요즘 혐오 표현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안타까움을 크게 느끼고, 어쩔 땐 마음속에서 화가 크게 올라오기도 한다.<br/><br/>예전에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문화는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조금 더 강한 것 같다고. 그러니까 "그러게 왜 외국의 축제에 그렇게 열광하며 놀러 갔다가 그런 일을 당하냐"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br/><br/>생각해 보면 지금의 환경은 아이들이 만든 게 아니다. 대부분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열심히 적응하며 살아간다.<br/><br/>나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의 입장이지만, 나 역시 때론 아이들의 적응력에 감탄하곤 한다.<br/><br/>아이들은 질투하며 방황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쉽게 용서한다. 그리고 길을 찾는다.<br/><br/>'청년 정치'에 대한 시혜적 접근이 문제라는 비판에 대해 나는 크게 공감하는 편이다. 기성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준 적이 있는가. 이런 게 과연 집단지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br/><br/>아이들은 어른들의 등을 보고 자란다.<br/><br/>제발 부끄러운 모습은 이제라도 그만 보였으면 좋겠다.....<br/><br/>적어도 미래 세대가 길을 찾는 데 훼방꾼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br/><br/>그걸 잘 실천한다면 그땐 조금 더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으리라.<br/><br/>그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br/><br/>"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br/><br/>#블랙푸들<br/><br/>우신영 장편소설<br/><br/>#파우스트<br/><br/>래빗홀<br/><br/>#바닿늘<br/>#바닿늘소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4/60/cover150/k9721308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46009</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기쁨은 현실을 지우는 주문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 [폴리애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64064</link><pubDate>Fri, 21 Aug 2026 1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640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302&TPaperId=174640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04/76/coveroff/89491413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302&TPaperId=174640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폴리애나</a><br/>엘리너 포터 지음, 스톡턴 멀포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9년 05월<br/></td></tr></table><br/>기쁨은 현실을 지우는 주문이 아니라,<br/>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br/><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br/>마지막 책, 엘리너 H. 포터 - 《폴리애나》<br/><br/>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폴리애나'라는 단어 자체가 이 소설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 또는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경향'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도 쓰인다고 한다.('카프카에스크'가 문득 연상되었다...)<br/><br/>작품 속 폴리애나는 얼핏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처럼 보인다. 어떤 나쁜 상황에서도 기뻐할 만한 것을 기어이 찾아내는 '그냥 기뻐하기' 놀이가 그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br/><br/>솔직히 처음엔 이 놀이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의 고단함이나 불행이 긍정적인 자기암시 하나로 마법처럼 지워지는 건 아니니까..<br/><br/>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작가가 말하는 '기쁨'은 그저 덮어놓고 웃으라는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br/><br/>더운 다락방에서 창밖의 풍경을 위안 삼는 폴리애나의 모습은 이상적인 천사라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결핍을 견뎌내기 위한 아주 현실적인 생존법에 가까워 보였다.<br/><br/>우리는 일상에서 불평할 이유를 참 쉽게도 찾는다.<br/>출근길 막히는 차 안에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속에서 짜증을 내는 건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반면 그 상황에서도 다행인 점을 찾아내는 일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br/><br/>폴리애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한 건 거창한 구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굳어버린 시선을 조금 틀어주는 작은 질문에 가깝게 느껴졌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점은 없을까?"<br/><br/>이 소설이 그저 순진한 동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후반부에 있다.<br/><br/>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폴리애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던 '기뻐할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하는 순간까지 맞닥뜨린다.<br/><br/>그런 폴리애나에게 이번에는 사람들이 기쁨을 돌려준다. 소녀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일상의 온기를 되찾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소녀의 곁으로 찾아온다.<br/><br/>내가 먼저 건넨 작은 감사와 다정함이, 내가 가장 바닥에 떨어졌을 때 나를 받아주는 푹신한 쿠션이 되어준 셈이다.<br/><br/>이번 클래식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빅터 프랭클의 '초의미'가 문득 다시 떠올랐다.<br/><br/>내가 이해하기로..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 역시 고통을 없애는 방법과는 조금 달랐다. 삶이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갈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br/><br/>지금까지 함께 읽었던 다섯 권의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br/><br/>그래서 '그냥 기뻐하기' 놀이도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껴졌다.<br/><br/>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과,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의미를 찾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br/><br/>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순간에도 현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고, 그 작은 변화가 때로는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br/><br/>오늘 하루,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속에서 나도 아주 작은 '그냥 기뻐하기' 놀이를 시도해 볼까 한다.<br/><br/>완벽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감사할 조각 하나쯤은 숨어 있을 테고, 그것이 당장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현실을 마주하는 나를 조금은 바꿀 수 있을 테니까....<br/><br/>요즘 내가 품고 있는 생각 중 가장 큰 부분은 '감탄'이다.<br/><br/>"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잘 감탄할 수 있을까?"<br/><br/>어떤 이유로 너무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 지니게 된 생각이다.<br/><br/>감탄, 감사, 기쁨...<br/>어쩌면 비슷한 결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br/><br/>지금에 만족하고, 의미를 추구하며 사는 것은 어쩌면 꽤 괜찮은 삶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br/><br/>... 안다. 그러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걸..<br/>예전에 어느 책을 리뷰하며 쓰기도 했던 내용인데, 의미를 추구하기보다 우리는 자꾸 무가치함과 싸우게 되는 것 같다.<br/><br/>이게 다 미디어 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br/>미디어 환경의 영향도 나는 분명 크다고 생각한다.<br/><br/>어쩌면 그래서 더 문학과 고전, 철학에서 답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품고 있던 중 만난 이 책이 내게는 작은 기쁨이었다.<br/><br/>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기쁨을 잃어버린 모든 어른이들에게, 특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br/><br/>"어른이 된다는 건 <br/>그런건가봐 기쁨이 줄어드는 거.."<br/>( _영화 &lt;인사이드 아웃 2&gt; 기쁨이..)<br/><br/>("아니야.. 그런 거..." 라고<br/>말해주고 싶었다. 기쁨이에게.....)<br/><br/>#폴리애나 <br/>#평생읽는클래식프로젝트<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br/><br/>#바닿늘<br/>#바닿늘소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04/76/cover150/89491413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047650</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7. 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네 번째 책 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2 리뷰(전체 줄거리 포함) - [작은 아씨들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69</link><pubDate>Tue, 04 Aug 2026 17: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99&TPaperId=174322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96/coveroff/89491412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99&TPaperId=174322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은 아씨들 2</a><br/>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제시 윌콕스 스미스 외 그림,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8년 11월<br/></td></tr></table><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타협의 탈을 쓴 치열한 저항, <br/>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br/><br/>네 번째 책<br/>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2<br/><br/>비룡소 클래식 프로젝트를 통해 《비밀의 화원》, 《인형의 집》, 《작은 아씨들 1》을 지나 마침내 《작은 아씨들 2》에 도달했다.(이제 마지막 한 권만을 남겨두고 있다..)<br/><br/>1868년 출간된 《Little Women》의 폭발적인 성공 이후 단 석 달 만에 집필된 후속편 이 책의 (원제) 《Good Wives》는 단순히 네 자매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속편만은 아닌 듯하다.<br/><br/>오히려 19세기라는 견고한 시대적 질서 속에서 한 여성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br/><br/>(한국에는 각각 《Little Women》이 《작은 아씨들 1》, 《Good Wives》가 《작은 아씨들 2》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br/><br/>당시 출판업자와 많은 독자들은 주인공 조가 로리와 결혼해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맞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철학자이자 초월주의자였던 아버지 브론슨 올콧 밑에서 지적 자율성을 배우고, 동시에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글을 쓰며 살아야 했던 루이자 메이 올콧은 그 기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태도.. 너무 좋아. ㅎㅎ)<br/><br/>그녀는 독자들의 요구를 완전히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순순히 따르지도 않았다. 조를 로리와 맺어 주는 대신 서로를 지적으로 존중하는 바에르 교수와 만나게 했고, 마지막에는 플럼필드라는 교육 공동체를 만들어 조가 자신의 삶과 일을 함께 꾸려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br/><br/>겉으로 보면 당시 사회가 기대했던 결혼이라는 형식을 따르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여성이 자신의 삶과 노동, 그리고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담아낸 것처럼 읽혔다. 그래서인지 플럼필드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이야기했던 '경제적 자립'과 '자기만의 공간'을 소설 속에서 미리 보여준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br/><br/>이러한 결말은 이후 플럼필드를 무대로 한 《Little Men》(1871)과 《Jo's Boys》(1886, 국내 번역명 《조의 아이들》)로 이어진다. 찾아보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후속작들은 성장소설보다는 훈육적인 아동문학의 성격이 조금씩 강해졌고, 그래서인지 1·2부만큼 널리 읽히지는 못했다고 한다. <br/><br/>어쩌면 많은 독자들이 오래도록 사랑한 이유는 교육적인 메시지보다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자신다운 삶을 찾아가는 네 자매의 성장에 더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br/><br/>그래서 《작은 아씨들 2》의 결말 역시 흔히 말하는 통속적인 해피엔딩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면에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며 글쓰기로 가족을 부양했던 올콧 자신의 삶과 고민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듯했다. 시대와 정면으로 충돌하기보다, 시대가 허락한 틈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간 그의 선택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면서도 끈질긴 저항처럼 다가왔다.<br/><br/>거대한 혁명을 외치기보다 자신만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간 네 자매의 여정은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작품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br/><br/>'주어진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br/><br/>(이번에도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댓글에...)<br/><br/>#작은아씨들2<br/>#평생읽는클래식프로젝트<br/><br/>#우주세문단 × #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소설<br/><br/><br/><br/>---<br/><br/><br/><br/>《작은 아씨들 2》 전체 줄거리 요약<br/><br/>1부의 결말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고 전쟁도 끝난다. 마치 가의 네 자매는 이제 소녀 시절을 지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선택해야 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 첫째 메그는 가난하지만 성실한 존 브룩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린다. 둘째 조는 신문사에 글을 팔며 스스로 돈을 버는 기쁨을 맛보고, 막내 에이미는 예술과 교양을 배우며 한층 성숙한 숙녀로 성장한다. 셋째 베스는 성홍열의 후유증으로 몸은 점점 약해지지만, 여전히 가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이어 주는 존재로 남는다.<br/><br/>이후 이야기는 낭만적인 기대보다 삶의 현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메그는 쌍둥이를 키우며 육아와 살림의 어려움 속에서 남편과 갈등을 겪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동반자로 성장해 간다. 한편 조는 작가로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로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도 정리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생계를 위해 자극적인 통속소설을 쓰던 조는 바에르 교수를 만나면서 흥미만을 좇는 글보다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글이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br/><br/>시간이 흐를수록 인물들의 관계도 조금씩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향으로 돌아온 조는 오랜 친구 로리에게 사랑을 고백받지만, 서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친구로 남는 편이 서로에게 더 낫다고 판단하고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심한 로리는 유럽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유학 중이던 에이미와 다시 만난다. 에이미는 방황하는 로리를 있는 그대로 감싸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 성숙한 사랑을 키워 나간다.<br/><br/>후반부에는 작품에서 가장 큰 슬픔인 베스의 죽음이 찾아온다. 자신의 마지막을 담담히 받아들인 베스는 끝까지 가족을 위로하며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가장 소중한 동생을 떠나보낸 조는 깊은 상실을 겪지만, 그 슬픔을 글로 써 내려가며 비로소 자신의 경험과 진심을 담은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바에르 교수의 조언과 베스를 향한 그리움은 조의 글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br/><br/>마지막에는 에이미와 로리가 부부가 되어 돌아오고, 비 오는 날 조와 바에르 교수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마치 숙모 할머니가 조에게 유산으로 남긴 플럼필드 저택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로 다시 태어나고, 조와 바에르 교수는 함께 새로운 교육 공동체를 꾸려 간다. 그리고 마치 부인의 예순 번째 생일, 저마다의 기쁨과 상실을 품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화려한 결말이라기보다,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간 끝에 비로소 맞이한 따뜻한 안식처럼 느껴지는 마지막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96/cover150/89491412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829653</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6. 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세 번째 책 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1 리뷰 - [작은 아씨들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54</link><pubDate>Tue, 04 Aug 2026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4322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80&TPaperId=174322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87/coveroff/89491412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1280&TPaperId=174322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은 아씨들 1</a><br/>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제시 윌콕스 스미스 외 그림,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8년 11월<br/></td></tr></table><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세 번째 책<br/>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1<br/><br/>앞서 읽었던 &lt;비밀의 화원&gt;이 폐쇄된 '정원'이라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였고, &lt;인형의 집&gt;과 같은 책 속에 수록된 다른 작품 &lt;부엌의 성모님&gt;이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관계의 온기를 복원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에 읽은 &lt;작은 아씨들 1&gt;은 그 정서적 영토를 '인생이라는 거친 순례길'로 성큼 확장시킨다.<br/><br/>줄거리는 하단에 따로 정리해 두겠지만, 1권 전체를 관통하며 내 시선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건 이 소설이 인간의 가식 없는 '솔직한 감정과 성장'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흔히 이 작품을 따뜻하고 무해한 자매들의 일상 극으로 기억하지만, 막상 펼쳐본 실상은 훨씬 치열했다.<br/><br/>루이자 메이 올컷은 자매들의 아름다운 우애만을 박제하지 않는다. 예쁜 옷을 입지 못해 이웃을 시기하는 메그의 박탈감, 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소중한 소설 원고를 불태워버리는 에이미의 잔인함, 그리고 그 동생을 용서하지 못해 얼음 구덩이에 빠지도록 방치할 뻔했던 조의 지독한 분노까지. 소설은 인간이 가진 허영, 질투, 증오라는 마음의 바닥을 아주 투명하게 꺼내 놓는다.<br/><br/>하지만 그 뾰족한 감정들이 결코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자매들이 그 결점과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서로를 붙잡아주며 마침내 스스로 극복해 내기 때문이다. 가난과 전쟁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베스의 목숨을 건 투병을 함께 이겨내고, 멀리서 돌아오신 아버지를 온 가족이 눈물로 맞이하는 후반부의 장면은 물질적 결핍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인간적 연대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br/><br/>이 입체적인 영혼들이 망가지지 않고 스스로 자라날 수 있도록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준 존재는 역시 어머니, '마치 부인'의 묵직한 '기다림'이었다. &lt;부엌의 성모님&gt;에서 소년 그레고리가 다락방 문을 열고 나와 마음껏 실패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주변 어른들이 믿음을 내어주었다면, &lt;작은 아씨들&gt;의 마치 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체적 양육을 보여준다. <br/><br/>어머니는 딸들의 실수를 과도하게 통제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부딪히며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신뢰를 보낸다. 조가 분노로 동생을 잃을 뻔했을 때 "나도 사실 매일 분노와 싸우고 있단다"라며 자신의 약점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어른이 아닌, 진정한 삶의 동반자로서의 연대를 보여준다. <br/><br/>1권의 피날레에서 첫째 메그가 돈과 유산을 무기로 위협하는 마치 숙모 할머니 앞에서도 당당하게 존 브룩을 향한 사랑을 선택하는 장면은 이 소설이 지닌 주체성의 정점을 보여준다. 가난하지만 주도적인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메그와, 머리카락을 팔아 자립의 가능성을 본 조의 모습은 100년이 훌쩍 넘은 고전이 어째서 오늘날 2026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지 온몸으로 증명한다.<br/><br/>&lt;비밀의 화원&gt;이 사람을 살리는 환경을 거론했고, &lt;인형의 집&gt;이 외형보다 관계의 밀도가 중요함을 증명했다면, &lt;작은 아씨들 1&gt;은 그 좋은 환경과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단점이라는 배낭을 메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세 작품 모두 인간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br/><br/>이 책은 그냥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여러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외적인 부분들도 흥미로운 지점이 정말 많다. 예를 몇 가지 들자면 이 책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이 하나고(한 가지만 예로 들자면 실제로 루이자가 네 자매 중 둘째였다. 작품 속 둘째 조 는 작가 본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그 외에도 자전적 요소가 찾아보면 정말 많다.) 또 다른 하나는, 끝맺음이다. 옮기자면 이렇다.<br/><br/>"다음 이야기의 막이 오를 가능성은 &lt;작은 아씨들&gt;이라는 가족 드라마의 1막을 본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다."<br/><br/>실제로 반응이 어마어마했고, 석달만에 집필하여 &lt;작은 아씨들 2&gt;를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br/><br/>나도 이 컨셉을 이어 받아, "내 다음 리뷰가 올라올 가능성은 이 리뷰를 본 독자들의 반응에 달려 있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겠다. 🤣🤣<br/><br/>이미 충분히 길게 쓰긴 했지만;; 그래도 대략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댓글에 요약하여 남겨둔다.<br/><br/>#작은아씨들 <br/>#평생읽는클래식프로젝트<br/>#우주세문단 #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 <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 #바닿늘소설<br/><br/><br/>---<br/><br/><br/>&lt;작은 아씨들 1&gt; 전체 줄거리 요약<br/><br/>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겨울, 참전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치 가의 네 자매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 속에서 한 해를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이 없는 현실에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인생이라는 순례길 위에서 각자의 '마음의 짐'을 지고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로 다짐한다. 크리스마스 아침, 자매들은 자신들의 풍성한 식사를 굶주린 험멜 가문에 기부하고, 이 따뜻한 이웃 사랑에 감동한 이웃집 로렌스 씨가 만찬을 선물하면서 외로운 손자 로리와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된다.<br/><br/>이후 소설은 급격한 사건을 쫓기보다 자매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결점과 부딪히며 성장하는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첫째 메그는 부유한 집을 돌보며 화려함을 부러워하는 '허영심'과 싸우고, 둘째 조는 깐깐한 마치 숙모 할머니의 시중을 들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셋째 베스는 지독한 수줍음의 벽에 갇혀 있으면서도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로렌스 할아버지의 마음을 열며, 막내 에이미는 학교생활 속에서 자존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심 탓에 여러 번 실수를 겪는다.<br/><br/>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자매들의 갈등은 인간적인 마찰을 빚으며 깊어진다. 철없는 에이미가 언니 조의 소중한 소설 원고를 불태워버리는 복수를 감행하고, 조 역시 성급한 분노에 눈이 멀어 빙판길에 빠진 에이미를 방치할 뻔한 위기를 겪는 등 저마다의 약점과 격렬하게 마주한다. 하지만 어머니 마치 부인은 딸들의 실수를 억지로 통제하기보다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며, 자매들은 실패와 용서를 반복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나간다. 이 따뜻한 거실의 분위기 속에서 이웃집 소년 로리 역시 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진심을 이해해 주는 관계의 힘을 배운다.<br/><br/>1권 후반부에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비보를 듣고 조가 소중한 머리카락을 잘라 여비를 마련하는 희생을 발휘하고, 베스가 이웃을 돌보다 무서운 성홍열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커다란 시련이 들이닥친다. 그러나 온 가족과 이웃의 헌신적인 연대로 베스는 병마를 이겨내고, 마침내 건강을 회복한 아버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며 집안은 감동의 눈물로 가득 차오른다.<br/><br/>마지막 장에 이르러 첫째 메그는 돈과 유산을 무기로 위협하는 마치 숙모 할머니의 협박 앞에서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가난한 가정교사 존 브룩을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물질보다 주체적인 가치를 스스로 선택한 메그의 약혼과 함께, 부모의 품 안에서 보호받던 작은 아씨들은 이제 저마다의 짐을 극복하고 어엿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찬란한 청춘의 첫 페이지를 완성한다.<br/><br/><br/>---<br/><br/><br/>시작하는 글 <br/><br/>가라, 나의 작은 책이여.<br/>너를 반기는 모든 이들에게 <br/>가슴에 품었던 너의 비밀을 보여 주어라.<br/>너의 비밀이 그들을 영원히 축복하고 <br/>그들이 나와 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순례자가 되기를 기원하여라. <br/>자비에 대해 말해 주어라.<br/>자비는 일찍이 순례의 길을 걸어온 여인이라고.<br/>그래야 어린 아가씨들이 그 여인을 본받아<br/>다가올 세상을 아끼고 현명해지리니. <br/>어린 아가씨들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br/>옛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하느님을 따르리라. <br/><br/>_ 존 버니언의 글에서 빌려 옴.<br/><br/><br/>---<br/><br/><br/>이 문구는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책을 시작하며 독자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초대장'이자,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보여 주는 '나침반'이다. 작가는 고전 문학인 &lt;천로역정&gt;의 문장을 빌려와 자신이 이 책을 쓴 진짜 이유를 고백한다.<br/><br/>글의 전반부에서 작가는 책을 '나의 작은 책'이라고 부르며 마치 살아 있는 아이처럼 대한다. 내 품을 떠난 이 책이 독자들을 만나 따뜻한 위로와 축복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여기서 '훌륭한 순례자가 되기를 기원하라'는 말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이다. 순례자란 험난한 길을 걸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을 뜻한다. 작가는 네 자매가 가난과 전쟁이라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 삶의 올바른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을 '인생이라는 순례길'에 비유하고 있다.<br/><br/>후반부에 등장하는 '자비(Mercy)'는 삶의 모범이 되는 이상적인 인물을 상징한다. 온갖 유혹과 어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올바른 길을 걸어갔던 앞선 세대의 발자취를 뜻하기도 한다. 작가는 책을 읽는 어린 숙녀들이 이 '자비'의 마음을 배워, 허영이나 이기심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더 현명하게 살아내기를 바란다.<br/><br/>결국 이 시작하는 글은 자매들이 저마다 가진 허영, 질투, 분노 같은 마음의 약점을 스스로 이겨내고 주체적인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예고하는 서막이다. 올컷은 이 짧은 글을 통해 &lt;작은 아씨들&gt;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 독자들이 스스로 '나다운 삶'을 당당하게 선택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단단한 토양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을 전하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82/87/cover150/89491412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828719</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읽고 나면 일상의 모든 물질이 이야기로 새롭게 보인다. -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8902</link><pubDate>Mon, 13 Jul 2026 09: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89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291&TPaperId=173889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6/62/coveroff/k5121302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291&TPaperId=173889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a><br/>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07월<br/></td></tr></table><br/>#협찬 욕망이 빚어낸 일상의 물질들..<br/><br/>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는 소금 한 꼬집, 출근길에 무심코 손에 쥐는 커피 한 잔. 너무 익숙해서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이 사소한 일상의 사물들이 실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책 &lt;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gt;는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라는 다섯 가지 물질을 현미경 삼아, 인류가 걸어온 거대한 문명의 궤적을 흥미진진한 서사로 풀어낸다. <br/><br/>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 중 특히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물질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국가 패권과 안보를 뒤흔드는 전략 자산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 그중에서도 마지막 장을 장식한 '석유와 가스'의 지정학이었다.<br/><br/>물론 전반부에서 다루는 역사적 가설들도 사물에 투사된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고조선이 가마솥에 끓여낸 고순도 소금 '자염'과 무늬 있는 가죽 '문피' 무역으로 동북아의 부를 쥐고 흔들었을 가능성을 대담하게 펼쳐 놓는다. 검은담비 모피를 쫓아 북방 상인들이 개척했다는 시베리아의 '담비길' 가설이나, 이슬람 수행자의 음료에서 전 세계를 흔든 대항해 시대의 주역이 된 커피 플랜테이션의 이면 역시 흥미롭다. 아프리카 내전의 핏빛 자금이 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참혹함까지 마주하고 나면, 인류의 역사가 곧 물질을 향한 욕망의 각축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br/><br/>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단연 현대 문명을 지배하는 '검은 황금', 석유와 가스를 다룬 대목이다. 저자는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의 막전막후를 파헤치며, 그 이면에 미국의 달러 패권을 방어하려던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깊게 관여해 있었다는 도발적인 관점을 소개한다. 유가 폭등을 통해 전 세계의 달러 수요를 늘려 기축통화 지위를 사수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해석은 복잡한 현대 금융과 지정학을 이해하는 신선한 틀을 제공한다.<br/><br/>에너지를 둘러싼 패권 경쟁은 과거에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현실이다. 국영 기업 가스프롬을 앞세워 유럽의 가스 밸브를 잠그며 주변국을 길들이려 한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 그리고 지하 암석층에서 석유를 캐내며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이끈 '셰일 혁명'의 대치 국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아가 원유 선물거래의 등장과 미국의 증산으로 OPEC 카르텔의 독점력이 점차 균열을 일으키는 지각변동까지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제 에너지 시장은 누가 더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공급망과 물류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싸움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br/><br/>책이 제시하는 몇몇 과감한 도식화나 해석을 역사적 정설로 단정 짓기는 조심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칼 같은 사실 확인의 이분법보다, 물질이 어떻게 국제정치와 금융 패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는지 그 본질을 담백하고 유려하게 엮어냈다는 점에 있다. <br/><br/>책장을 덮고 나면 깊은 생각 없이 매일 타 마시던 커피부터 자동차를 채우는 연료까지 일상의 모든 물질이 새롭게 보인다. 그것들은 인간의 욕망이 남긴 치열한 역사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문명을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이다.<br/><br/>(특히 내가 주목했던 내용은 하단에..)<br/><br/>#물질이일상에서이렇게문명을바꿀줄이야<br/><br/>인문교양서, 인문교양, 세계사,<br/>세계사 정주행, 읽기 쉬운 세계사<br/><br/>체인지업북스<br/>@체인지업북스<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바닿늘역사<br/><br/>#물질이일상에서이렇게문명을바꿀줄이야<br/>#홍익희교수 #체인지업북스 #인문교양서<br/>#읽기쉬운세계사<br/><br/><br/><br/>---<br/><br/><br/><br/>1. 소금: 한반도 고대 국가들의 숨은 원동력<br/><br/>고조선과 삼국의 무역: 고조선은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우수한 자염 기술을 장악해 부를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각궁(맥궁)을 제작해 군사력을 키웠다고 한다. 백제 역시 인천 등지의 소금 산지를 기반으로 삼았는데, 쉽게 상하지 않는 염장 생선 덕분에 먼바다까지 항해하며 해양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분석이 흥미롭다.<br/><br/>근현대의 변화: 고려의 소금 전매제(각염법)나 조선 시대 유통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염리동, 염창동 등의 지명 유래)를 거쳐, 1907년에는 구한말 밀려들던 중국산 소금에 맞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천일염전인 '주안 염전'이 세워졌다. 분단 이후 남한은 심각한 소금 부족을 겪었으나, 서해안 염전 사업을 통해 1955년에 이르러서야 소금 자급자족을 이뤄냈다.<br/><br/>2. 모피: 추위를 이기기 위한 욕망이 개척한 길<br/><br/>북방의 '담비길' 가설: 실크로드 외에도 검은담비 모피를 거래하던 북방 교역로인 '담비길'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만주와 시베리아를 잇는 이 길을 통해 고대부터 활발한 모피 무역이 이뤄졌다.<br/><br/>고조선과 삼국의 필수품: &lt;관자&gt;에 고조선의 무늬 있는 모피(문피)가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고 기록될 만큼 모피는 고대 동북아의 대표적인 명품이었다. 겨울철 혹한을 견뎌야 했던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생필품이기도 했다. 고구려 무용총의 &lt;수렵도&gt; 속 화살촉이 둥근 모양인 것도 가죽에 흠집을 내지 않고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생활의 지혜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시선이 새롭다.<br/><br/>3. 보석: 욕망이 낳은 아프리카의 비극<br/><br/>블러드 다이아몬드: 1990년대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서 반군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장악해 무기 자금으로 쓴 참혹한 역사를 다룬다. 풍부한 천연자원이 국가 발전이 아니라 도리어 전쟁을 장기화하는 재앙이 된 역설적인 상황이다.<br/><br/>인권 유린과 국제사회의 노력: 반군 RUF는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신체 훼손과 소년병 강제 동원 등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다. 이 비극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유통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킴벌리 프로세스'가 도입되었으나, 열악한 노동환경과 아동노동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br/><br/>4. 향신료: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꾼 커피 잔혹사<br/><br/>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한 커피는 밤샘 기도를 하던 이슬람 수행자들의 음료로 사랑받다가 오스만 제국과의 교역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이슬람의 음료'라며 경계 대상이었지만, 점차 왕족과 귀족들이 즐기는 귀한 사치품이 되었다.<br/><br/>식민지 플랜테이션: 네덜란드가 커피 종자를 몰래 확보해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대규모 재배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커피는 세계 무역의 중심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브라질, 콜롬비아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식민지 주민과 노예의 강제 노동, 토양 황폐화 같은 어두운 역사가 함께 얽혀 있다.<br/><br/>5. 석유와 가스: 패권과 자원의 지정학<br/><br/>페트로달러와 오일쇼크: 1973년 오일쇼크의 이면에 미국의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석유 결제는 오직 미국 달러로만 가능하다'는 페트로달러 시스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저자의 통찰이 돋보인다. 유가 폭등으로 전 세계 달러 수요를 강제로 늘려 기축통화 지위를 방어했다는 설명이다.<br/><br/>러시아의 무기화와 미국의 셰일 혁명: 러시아는 국영 기업 가스프롬을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밸브를 잠그며 에너지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해 왔다. 이에 미국은 지하 암석층에서 석유를 캐내는 '셰일 혁명' 기술로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되며 에너지 독립을 이뤄냈다.<br/><br/>카르텔의 균열과 각자도생: 원유 선물거래의 등장과 미국의 증산으로 OPEC의 독점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2026년 UAE가 OPEC을 전격 탈퇴한 사건은 카르텔의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다. 이제 에너지 시장은 생산량 못지않게 '물류와 공급망의 안전'이 핵심이 되었으며, 한국 같은 에너지 수입국은 특정 카르텔에 의존하기보다 유연하고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6/62/cover150/k5121302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66266</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두 번째 책 루머 고든 - 인형의 집 리뷰 - [인형의 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2013</link><pubDate>Thu, 09 Jul 2026 09: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820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0934&TPaperId=17382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53/coveroff/89491409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40934&TPaperId=173820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형의 집</a><br/>루머 고든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조안나 자미에슨.캐롤 바커 그림 / 비룡소 / 2008년 04월<br/></td></tr></table><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두 번째 책<br/>루머 고든 - 인형의 집(1/2, 중간 리뷰)<br/><br/>---<br/><br/>얼마 전 읽은 &lt;비밀의 화원&gt;은 상처 입은 아이들이 '정원'을 돌보며 조금씩 자기 자신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읽은 &lt;인형의 집&gt;은 그 반대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집'을 고쳐 나간다.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니 두 작품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공간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의 의미를 바꾼다는 것을 향해...<br/><br/>&lt;인형의 집&gt;은 얼핏 보면 귀여운 인형들이 살아가는 동화처럼 시작한다. 100년 가까이 살아온 나무 인형 토티와 플랜태저넷 가족은 낡은 신발 상자 대신 진짜 인형의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다. 마침 오래된 인형의 집이 에밀리와 샬럿 자매에게 전해지고, 아이들은 먼지투성이 집을 하나씩 고쳐 나간다. 이 장면이 나는 특히 좋았다.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되살리는 과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br/><br/>그런데 집이 완성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아름다운 도자기 인형 마치페인이 들어오면서 집 안의 질서는 무너진다. 화려한 외모에 마음을 빼앗긴 에밀리는 마치페인만 특별하게 대하고, 플랜태저넷 가족은 하나둘 자신의 자리를 잃는다. 결국 가족을 이어 주던 공동체는 계급과 차별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해 버린다.<br/><br/>결국 비극은 막내 애플을 구하려다 버디가 자신의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처음에는 단지 "셀룰로이드는 불에 약하다"는 설정처럼 지나갔던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가장 숭고한 희생으로 이어지는 구성도 인상적이었다.<br/><br/>이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집'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사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모두가 좋은 집을 갖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아무리 근사한 집이라도 허영과 욕심이 들어오면 금세 서로를 밀어내는 공간이 된다고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반대로 비좁고 초라한 공간이라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그곳은 진짜 집이 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br/><br/>마치페인 역시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 '허영'을 의인화한 존재처럼 읽혔다. 그녀가 직접 공동체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에밀리가 겉모습에 매혹되는 순간 스스로 공동체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악은 거창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길지에 대한 우리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br/><br/>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작품이 끊임없이 '오래된 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토티도 오래된 나무 인형이고, 인형의 집도 오래된 집이며, 낡은 소파와 레이스도 버리지 않고 복원한다. 시간이 흐른 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많은 기억을 품은 것이라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br/><br/>문득 &lt;비밀의 화원&gt;이 다시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 정원이 사람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기 시작했기에 정원도 살아났다. &lt;인형의 집&gt; 역시 집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집을 비로소 '가정'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정원이든 집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그 안의 관계였던 셈이다.<br/><br/>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 작품은 인형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br/>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을까. 새것과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은 '집'일까, 아니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살아 있는 '가정'일까..???<br/><br/>오래된 고전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현재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br/><br/>이번 비룡소 평생읽는 클래식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좋은 고전은 서로 다른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워 놓는다.<br/><br/>다음 편으로 수록된 부엌의 성모님 리뷰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br/><br/>---<br/><br/>덧.<br/>이 글은 아내가 안 봤으면 좋겠다.<br/><br/>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전 취미가 많이 떠올랐다. 나는 인형의 집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모았다. 처음에는 딸 장난감으로 모으던 '실바니안 패밀리'라는 완구에 푹 빠져서 열심히 수집을 했었드랬다. 내가 과거보다 자연에 대해 소중함을 더 갖게 된 이유에 이것도 일부 포함이 된다. 숲속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테마의 완구인데.. 오랜만에 과거 사진을 몇 장 첨부해둔다. <br/>(네이버 블로그에 해당)<br/><br/>https://m.blog.naver.com/seasky210528/224332659578<br/><br/>#실바니안패밀리<br/>#sylvanianfamily<br/><br/><br/>#인형의집<br/><br/>#우주세문단<br/><br/>#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 <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 <br/>#바닿늘소설<br/><br/><br/>---<br/><br/><br/>비룡소 × 우주세문단 평생 읽는 클래식 프로젝트 <br/><br/>두 번째 책<br/>루머 고든 - 인형의 집(2/2, 부엌의 성모님 리뷰)<br/><br/>세상의 모든 그레고리를 위한 다락방, <br/>그리고 부엌의 성모님<br/><br/>카프카의 소설 &lt;변신&gt;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흉측한 벌레로 변해 방 안에 갇힌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으나 결국 고립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서사는 현대인의 실존적 소외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br/><br/>루머 고든의 &lt;부엌의 성모님&gt;을 읽으며 주인공 소년 '그레고리'의 이름을 마주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레고르 잠자가 겹쳐 보였다. 작품 속 그레고리 역시 맞벌이 부모 밑에서 외로이 자라며 다락방이라는 자신만의 고립된 요새에 갇혀 타인에게 철저히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다.<br/><br/>그러나 두 그레고리의 결말은 극적으로 대비된다. 카프카의 그레고르가 방 안에서 소멸했다면, 고든의 그레고리는 타인을 향한 사랑을 동력 삼아 스스로 다락방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기 때문이다.<br/><br/>이 작품이 빛나는 성장 동화인 이유는 그레고리가 소중한 이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낸 용기가 결코 좌절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더 큰 희망과 대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br/><br/>완벽한 보석 성화를 사려던 계획이 터무니없는 가격 앞에 무너지고 전 재산을 실수로 잃어버렸을 때, 소년은 포기하는 대신 '내가 직접 만든다'는 더 가치 있는 길을 찾아낸다. 고급 보석상에서 거절당한 발걸음은 소박한 모자 가게와 동네 사탕 가게로 이어지며 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만난다.<br/><br/>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뜻의 '이생망'이라는 자조적인 신조어가 유행한다. 수많은 청년과 청소년들이 물질적 결핍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쉽게 무력감을 느끼는 듯 하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현실을 상대적으로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br/><br/>그런데 작품 속 그레고리는 비록 흙수저는 아닐지라도, 당장 손에 쥔 돈이 없는 결핍의 상황에서 '생각과 정성'이라는 무형의 가치로 최대의 기적을 만들어낸다.(책 &lt;클루지&gt;가 생각났다.)<br/><br/>신문지의 성모 사진, 아끼던 배 그림의 하늘, 사탕 종이 등 일상의 평범한 부스러기들이 소년의 장인정신과 결합해 438기니짜리 보석 성화보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현대 사회에 '결코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는 묵직한 구원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br/><br/>가장 부럽고도 가슴 뭉클했던 지점은 마르타 아줌마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태도였다. 지네트 부인과 바티 아주머니는 사교성 없는 소년의 진심을 비웃지 않고 기꺼이 재료와 신뢰를 내어주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노력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고, 마르타 아줌마는 소년을 어린아이가 아닌 동등한 '다 큰 어른'으로 대우하며 엄숙한 악수를 청했다.<br/><br/>과거에 비해 세상이 험해지고 걱정거리가 많아진 부모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스스로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를 너무 많이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크게 들었다.<br/><br/>어른들이 모든 경로를 통제하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정서적 영토는 점점 좁아진다. 다행히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며 나만의 시도를 해볼 수 있었기에, 이 작품 속 그레고리를 지켜봐 준 어른들의 포용력이 더욱 소중하고 부럽게 다가왔다.<br/><br/>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온실이 아니다. 때로는 실패할 기회를 주고, 그 실패 속에서 스스로 대안을 찾아낼 때까지 가만히 믿고 지켜봐 주는 어른들의 '기다림'이다. 세상의 모든 갇힌 그레고리들이 자신만의 '부엌의 성모님'을 찾아 세상 밖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요즘에는 특히 온라인 공간에 스스로 갇히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br/><br/>책의 줄거리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br/>줄거리를 본문 하단에 남겨둘 예정이니 참고하시길..<br/><br/>#인형의집<br/>#부엌의성모님<br/>루머 고든 지음<br/><br/>#우주세문단<br/>#비룡소<br/><br/>우주세문단 @woojoos_story 진행 <br/>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br/>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br/><br/>#바닿늘 <br/>#바닿늘소설<br/><br/><br/>---<br/><br/><br/>부엌의 성모님 줄거리(스포일러 듬뿍 포함)<br/><br/>한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그레고리. 맞벌이를 하느라 늘 바쁜 건축가 부모 밑에서 외롭게 자란 탓에, 마음을 닫고 다락방이라는 자신만의 요새에 갇혀 지내던 아이였다. 그런 그레고리와 여동생 재닛의 집에 어느 날 우크라이나 난민 출신의 마르타 아줌마가 가정부로 들어온다.<br/><br/>절뚝거리는 다리에 무뚝뚝한 인상이었지만, 아줌마의 부지런한 손길이 닿자 차갑고 휑하던 현대식 부엌은 조금씩 온기를 품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던 그레고리도 이상하게 아줌마에게만은 마음이 끌렸다. 급기야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고양이 '루틀'이 아줌마 품에 안기는 것까지 기꺼이 허락할 정도였다.<br/><br/>그러던 어느 날, 그레고리는 늘 씩씩해 보이던 아줌마가 부엌에서 슬퍼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줌마는 고향 집 부엌 구석에 늘 자리했던 '성스러운 자리', 그러니까 성화와 붉은 등잔이 있던 공간이 이곳에는 없어 마음이 늘 텅 빈 것 같다며 슬퍼했다. <br/><br/>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던 그레고리였지만, 아줌마의 슬픔은 소년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레고리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줌마에게 성화를 찾아주겠다고.<br/><br/>그레고리는 동생의 용돈까지 모아 박물관과 고급 보석상 '로스토프'를 뒤졌다. 하지만 아줌마가 말한 것처럼 아름다운 보석 성화는 438기니라는,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소년은 깊은 좌절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갑마저 잃어버렸다. <br/><br/>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간 교회에서 남매는 붉은 유리 등잔을 하나 사고, 그곳 기둥에 걸린 소박한 종이 성화를 보게 된다. 진짜 보석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돈이 없다면 직접 재료를 구해 만들면 된다는 희망이 소년의 가슴에 번졌다.<br/><br/>다락방으로 돌아온 그레고리는 벽장 속 옛날 신문에서 성모 마리아 사진을 찾아내 윤곽선을 따고 본을 떴다. 하지만 집안에 굴러다니는 천 조각만으로는 성화의 성스러움을 살리기 어려웠다. 소년은 큰 용기를 내어 광장에 있는 '지네트 부인의 모자 가게'로 향했다.<br/><br/>여자들이 가득한 가게에 혼자 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지만 오직 성화를 완성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소년의 입에서 피리 소리처럼 흘러나온 마르타 아줌마의 사연을 들은 지네트 부인은 깊이 감동했고, 여왕의 모자 장식에 쓰였던 귀한 재료들을 손에 쥐여주었다.<br/><br/>그날부터 다락방에서는 밤낮없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완벽한 하늘 배경을 만들고 싶었던 그레고리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액자 속 배 그림을 과감히 잘라냈고, 재닛의 인형에서 구슬 목걸이와 머리카락을 떼어 왕관과 후광을 정교하게 꾸몄다. <br/><br/>마지막으로 테두리를 장식할 반짝이 사탕 종이가 필요해 동네 사탕 가게를 찾았다. 돈이 부족했던 소년은 생일 선물로 받은 은시계를 저당 잡히려 했지만, 소년의 지극한 진심을 알아챈 바티 아주머니는 시계를 돌려주며 외상 차용증을 써주고는 사탕 종이를 넉넉하게 챙겨주었다.<br/><br/>주변 어른들의 신뢰와 동생의 도움, 그리고 소년의 장인정신이 결합해 마침내 오색찬란한 성화가 완성되었다. 그레고리는 부모님을 다락방으로 초대해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아들의 경이로운 작품과 그간의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여정을 알게 된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늘 닫혀 있던 다락방 문을 열고, 타인을 향한 상상력과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아들의 성장이 너무도 대견했기 때문이다.<br/><br/>토요일 오후, 온 식구는 아줌마 몰래 부엌 구석 선반에 벨벳과 레이스를 깔고 성화와 등잔을 설치해 마침내 '성스러운 자리'를 완성했다. 위층에서 내려와 이를 마주한 마르타 아줌마는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선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아줌마의 얼굴은 성스럽게 변했고, 부엌 가득 고향의 언어로 장엄하게 부르는 감사 기도와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br/><br/>기도를 끝낸 아줌마는 식구들을 차례로 안아준 뒤 그레고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소년을 어린아이가 아닌 자신을 구원한 동등한 인격체로서 아주 엄숙하고 진중하게 악수를 청했다.<br/><br/>그날 밤, 모든 불이 꺼지고 은은한 붉은 등잔불 아래에서 생명력을 얻어 보석처럼 반짝이는 성화를 바라보며 그레고리는 깊은 뿌듯함을 느꼈다. 여동생 재닛이 박물관의 그림보다 훨씬 멋지다고 칭찬하자, 짐짓 퉁명스레 대꾸하면서도 소년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br/><br/>소년은 앞으로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이들을 위해 수십 개의 성모화를 더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포부를 다졌다.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진짜 박물관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꿈을 꾸며, 소년은 고양이 루틀을 곁에 둔 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잠에 빠져들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53/cover150/89491409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35356</link></image></item><item><author>seasky21052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바꿀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품격을 포기하지 않을 결심.. - [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72091</link><pubDate>Fri, 03 Jul 2026 17: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931281/173720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340&TPaperId=173720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2/coveroff/k482139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340&TPaperId=173720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a><br/>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 이후 리뷰 1/2<br/><br/><br/><br/>#협찬 삶에 지향이 필요한 이유..<br/><br/><br/><br/>*지향: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어 향함. 또는 그 방향이나 그쪽으로 쏠리는 의지.(출처: 네이버 사전)<br/><br/><br/><br/>역사 속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는 당대의 명성에 비해 그 깊이가 여전히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인물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br/><br/><br/><br/>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를 두고 저평가되었다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있지 않으냐"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정립한 사상이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실용적인 힘을 지녔음을 떠올려보면, 그 가치가 아직 다 발현되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br/><br/><br/><br/>그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이론을 일정 부분 계승하면서도, "사람은 의미를 잃어버릴 때 필연적으로 마음의 병을 얻는다"라는 독창적이고도 명료한 통찰을 제시했다. 이 단순한 문장 속에 현대인이 겪는 수많은 정신적 고통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본다.<br/><br/><br/><br/>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거창한 목적 이전에 우리는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간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저마다의 경험을 토대로 각자의 인생 계획을 세운다. 어떤 이는 눈앞의 즉각적인 재미나 이익을 쫓고, 어떤 이는 본능을 절제하고 만족을 지연시키며 조금 더 의미 있는 계획을 향해 나아간다. <br/><br/><br/><br/>물론 인간의 삶을 이 두 가지로만 무 자르듯 나눌 수는 없으며, 우리는 모두 그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재미와 의미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때 삶의 균열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나는 재미도 의미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 없는 삶은 무효다!!)<br/><br/><br/><br/>오늘날의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더 많은 자유를 보장받지만, 정작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환경에 처해 있다. 같은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손에 잡히는 성취감은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우리 주변에는 인지적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자극들이 차고 넘친다. <br/><br/><br/><br/>에너지를 아끼려는 본능을 지닌 인간은 쉽게 재미에 이끌릴 수밖에 없고, 장기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기 쉽다. 하지만 의미가 결여된 재미의 끝에는 늘 허무함이 찾아오곤 한다. <br/><br/><br/><br/>내가 과거에 게임이나 피규어 수집, 혹은 수조 속 생태계를 가꾸는 취미에 깊이 몰두했을 때 밀려왔던 정체 모를 공허함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마치 내 세계관이 그 작은 수조 속에 영원히 갇혀버리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br/><br/><br/><br/>그런 면에서 지금 마주하고 있는 독서라는 취미는 참으로 고맙고 소중하다. 책을 읽다 보면 체감상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시공간을 초월한 넓은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좁았던 관점이 확장되고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 이것이야말로 독서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br/><br/><br/><br/>최근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류가 사고를 외주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나 역시 이 지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칸트의 &lt;순수이성비판&gt; 관점에서 인간과 AI의 차이를 가만히 짚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br/><br/><br/><br/>인간은 외부의 입력이 없어도 스스로 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 존재인 반면, AI는 입력이 없으면 결코 출력을 내지 못하는 복제품에 가깝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빌미로 인간 고유의 결정권을 타인에게 성급하게 위임하려는 숨은 의도들일지도 모른다.<br/><br/><br/><br/>'인간(人間)'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뜯어보면 '사이 간(間)' 자를 쓴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독단적인 개체가 아니라,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효율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관계 없이도 혼자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듯하다. <br/><br/><br/><br/>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는 말처럼, 우리의 존재는 결국 유대감 속에서 증명된다. 빅터 프랭클의 사상이 담긴 이 책이 지향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작은 방향타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br/><br/><br/><br/>인간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한 끊임없이 방황하기 마련이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방황이 아니라 지향점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행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반드시 나만의 지향점을 건져 올려야 한다.<br/><br/><br/><br/>인류에게 유익한 빅터 프랭클의 사상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br/><br/><br/><br/>#죽음의수용소이후 <br/><br/><br/><br/>빅터 프랭클 지음<br/><br/><br/><br/>북하우스<br/><br/><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br/><br/>#바닿늘심리학<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lt;죽음의 수용소 이후&gt; 전반부(1부~2부) 요약: <br/><br/>실존적 진공과 의미를 향한 여정<br/><br/><br/><br/>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의미치료)는 그가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비극을 겪었기 때문에 탄생한 것으로 흔히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그는 수용소에 갇히기 전 이미 삶의 절대적 의미를 다룬 저서의 원고를 완성한 상태였다. 가혹한 강제수용소는 그의 이론을 만들어낸 곳이 아니라,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라는 그의 신념이 참혹하게 검증된 역사적 시험장이었던 셈이다. <br/><br/><br/><br/>실제로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단순히 신체적으로 강한 자들이 아니었다. 다시 만나야 할 사랑하는 가족이나 미래에 완수해야 할 과제 등, 삶의 구체적인 '이유'와 '지향성'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내적인 저항력을 발휘해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br/><br/>역설적이게도 현대의 풍요로운 복지국가는 물질적 욕구는 완벽히 충족시켜 주지만, 인간 내면의 근원적인 '의미에의 의지'를 채워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br/><br/><br/><br/>전통적인 가치관과 관습이 무너진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실존적 진공(공허감)' 상태에 빠지기 쉽다. 목표를 잃은 대중은 타인을 무작정 따라 하는 순응주의나, 강요된 권력에 굴복하는 전체주의로 도피하곤 한다. 특히 오늘날 젊은 세대가 겪는 극심한 무기력과 지루함은 질병이라기보다 기성세대의 고루한 해답을 거부하려는 지적 정직성의 방황에 가깝다.<br/><br/><br/><br/>적절한 도전과 긴장감이 결여된 유약한 환경은 오히려 젊은이들을 우울과 중독, 공격성이라는 집단 신경증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br/><br/>그렇다면 우리는 이 허무주의의 늪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을까. 프랭클은 세 가지 구체적인 경로를 제안한다. 첫째는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성취하는 '일을 통한 발견'이며, 둘째는 타인의 유일무이함을 깊이 수용하고 자연이나 예술을 향유하는 '사랑을 통한 발견'이다. <br/><br/><br/><br/>그리고 마지막은 바꿀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이나 불치병 앞에서도 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고 비극을 인간적 성취로 승화시키는 '고통을 통한 발견'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의미 추구가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외부의 가치나 타인을 향하는 '자기 초월'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 심리학이 집착하는 자아실현이나 행복은 억지로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맞히지 못했을 때만 돌아오는 부메랑처럼, 나 자신을 잊고 무언가에 온전히 헌신할 때 행복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이다.<br/><br/><br/><br/>시간이 흐르고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삶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간의 덧없음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의미를 실현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우리가 일하고, 사랑하고, 용기 있게 견뎌낸 모든 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는 가장 안전한 창고에 영원히 보관되기 때문이다. <br/><br/><br/><br/>로고테라피는 인간을 단순한 기계나 컴퓨터로 격하하는 오만한 정신의학을 거부한다. 대신 인간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고귀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정신의학의 인간화'를 지향한다. 과거라는 창고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br/><br/><br/><br/><br/><br/>---<br/><br/><br/><br/><br/><br/>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 이후 리뷰 2/2<br/><br/><br/><br/>#협찬 초의미에 대하여..<br/><br/><br/><br/>전반부 리뷰에서 나는 '지향점을 잃은 삶'이 왜 공허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삶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빅터 프랭클은 의외로 단순한 답을 내놓는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br/><br/><br/><br/>나 역시 처음에는 이 주장이 다소 이상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는 극한의 절망을 직접 통과한 인물이다. 강제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인간의 존엄마저 짓밟힌 현실을 견뎌낸 사람이었기에, 그의 주장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br/><br/><br/><br/>3부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인간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용소 안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잔혹해진 사람도 있었다. 환경은 분명 사람을 흔든다. 때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센 힘으로 삶을 압도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한 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환경이 우리의 자유를 크게 제한할 수는 있어도,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혹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는 마지막까지 개인의 선택으로 남는다...<br/><br/><br/><br/>이 지점에서 나는 현대 사회를 떠올렸다. 우리는 너무 쉽게 환경과 조건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시대를 살아간다.(흙수저 라던지, 이생망 이라던지..) 물론 환경은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환경으로만 설명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과 책임까지 함께 내려놓게 된다.<br/><br/><br/><br/>4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며 살아갈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지금의 고통이 어디로 이어질지 끝내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프랭클는 이것을 '초의미'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br/><br/><br/><br/>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은 마지막 장면이 되어야 비로소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듯, 우리 역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모든 의미를 한꺼번에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를 향해 살아갈 수 있고, 언젠가 비로소 그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br/><br/><br/><br/>책을 덮으며 전반부에서 썼던 '지향'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지향이란,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걸어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끝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내 앞에 놓인 의미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방황할 수는 있어도 지향만큼은 잃어서는 안 된다.<br/><br/><br/><br/>프랭클이 말하는 의미도 거창한 사명이 아니다. 오늘 해야 할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것,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 바꿀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끝내 인간의 품격을 포기하지 않는 것. 삶의 전체 의미는 끝내 다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br/><br/><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미를 향해 살아갈 수 있다. <br/><br/>포기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br/><br/><br/><br/>#죽음의수용소이후<br/><br/><br/><br/>빅터 프랭클 지음<br/><br/><br/><br/>북하우스<br/><br/><br/><br/>#북스타그램 #바닿늘<br/><br/><br/><br/>비슷한 주제의 글은..<br/><br/><br/><br/>#바닿늘심리학<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3·4부 핵심 통합 요약: <br/><br/>실존의 자유와 유한성이 만드는 삶의 책임<br/><br/><br/><br/>빅터 프랭클의 사상적 정수를 담은 〈자유와 책임〉, 〈유한성 앞에서의 의미와 책임〉은 인간을 환경의 피조물로 보는 결정론적 시각을 비판하며,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임을 논증한다. 20세기의 기계론적 인간관은 인간을 본능이나 환경의 노예로 환원하며 나치의 강제수용소 같은 비인간화의 비극을 낳았다. 그러나 프랭클은 극한의 수용소에서조차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는 인간을 목격했다. 그 결과 그는 인류를 나누는 유일한 기준은 계급이나 인종이 아닌, 오직 '품위 있는 인간'과 '품위 없는 인간'이라는 두 가지 종류뿐이라고 선언한다.<br/><br/><br/><br/>인간은 충동에 떠밀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의미지향적 존재'이다. 현대인이 겪는 은퇴 후의 허무, 주말의 무기력(여가 신경증), 실업으로 인한 절망은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실존적 공허에서 비롯된다. 행복은 직접 추구할 때가 아니라, 매 순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내면의 나침반'인 양심의 부름에 따라 나만의 유일무이한 의미를 찾아 행동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다. 로고테라피는 이 의미를 발견하는 세 가지 통로를 제시한다.<br/><br/><br/><br/> * 창조적 가치: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자신의 일과 책임을 완수하는 것.<br/><br/> * 경험적 가치: 자연, 예술, 그리고 타인의 유일한 고유성을 사랑으로 환대하는 것.<br/><br/> * 태도적 가치: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에 직면했을 때 이를 인간적인 성취와 정신의 승리로 승화시키는 것.(※ 단, 바꿀 수 있는 고통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태도적 가치는 오직 바꿀 수 없는 고통 앞에서만 실존적 우위를 지닌다.)<br/><br/><br/><br/>많은 이들이 죽음 앞에서 삶의 덧없음을 느끼지만, 프랭클은 죽음이야말로 삶에 유일무이한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 조건이라고 말한다. 삶이 영원하다면 가치 실현을 끊임없이 미루겠지만, 시간적 유한성의 압박이 존재하기에 오늘 우리의 선택은 단 한 번뿐인 엄중한 기회가 된다. 이 실존적 긴장감 위에서 로고테라피의 정언명령이 성립한다.<br/><br/><br/><br/>"이미 두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막 저지르려 하는 잘못들을 첫 번째 생에서 이미 다 저질렀던 것처럼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br/><br/><br/><br/>우리가 실현한 가치, 용기 있게 견뎌낸 고통,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 소멸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존 형태인 **'과거의 창고'**에 영원히 저장된다. 일반적인 이들은 수확이 끝나 텅 빈 논밭(존재의 덧없음)을 보며 무상해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곡식으로 가득 찬 창고(이미 살아낸 과거의 실재)를 바라본다.<br/><br/><br/><br/>따라서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생산성이나 효율성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노년은 미래의 가능성을 상실하는 퇴보의 시기가 아니라,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확실한 '실재'를 창고 가득 쌓아 올린 영광스러운 시간이다. 인간은 매일 얇아지는 일력을 보며 한탄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루의 성취를 일기처럼 기록하여 자랑스럽게 모아두는 존재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한계 덕분에 삶은 더욱 소중해지며, 오늘 우리가 내리는 책임 있는 선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기념비로 남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2/cover150/k482139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2020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