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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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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마친 기분입니다. 이리저리 돌고 돌아 처음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저는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지요(난은 자신의 삶이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똑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 435쪽, 2권). 책을 덮고 소설을 생각하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어느 사려 깊고 예의 바르며 성실하지만 감수성이 지나치게 풍부하고 예민하기까지한 한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밀착된 상태로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아버지를, 남편을, 나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확인했기 때문인지도요.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썼을 것 같은 이 소설, 딱 그만큼의 강도로 마음에 새기고 쌓아보기로 합니다.

 

 

1. 예술

굳이 매슬로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는 누구나 차별화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정체성, 삶의 이유 같은 누구나 한 번 쯤 하게 마련인 이런 질문을 좇다 다다르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유행을 따르는 것조차 '닮기 위해'서라기보다 '다르기 위해' 하는 선택일 경우가 많죠. 그것을 꾸준히 발전시키다보면 어느 새 예술이라는 지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도구로, 용도로 소용되지 않는 순수한 차원의 어떤 것, 예술이란 그런 거니까요. 어쩌면 지금, 음악에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예술은 종종(꽤 자주) 시간에 집니다. 예술은 도구가 아닌데도 시간이라는 자명한 범위 안에서 제 목적과 용도를 증명하지 못하면 쓸쓸히 퇴장하는 운명을 맞고 말아요. 도구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이 빛납니다. 난은 끝까지 시를 놓지 않아요. 저는 그게 좋습니다. 자의든 아니든 시를 포기하지 않는 그의 태도, 예술과 삶에 대한 난의 꿋꿋하고 정직한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물어봅시다. 왜 인정받아야 하죠? 왜 어떤 무리에 속해야 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까? 예술이란 삶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유일하게 삶을 초월하는 가능성이 아닌가요? 현실과 소용을 따지는 일은 삶을 통틀어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그 안에 욱여넣는다고 들어가는 예술이 아니지요. 난의 주변 인물들, 다닝과 바오, 니어리, 딕까지 이들은 모두 삶에 예술을 욱여넣으려던 인물들입니다. 난은 그 중 누구에게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해요. 난은 끝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탐구합니다(어째서 이민자들에게서는 피카소나 포크너나 모차르트 같은 예술가가 나오지 않은 걸까? - 176쪽). 어느 것에도 확신하지 못한 채로 말이에요.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그는 영어로 예술적인 글을 쓰는 것과, 새로운 땅에서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과, 자신의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따르는 게 없는 정말로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 216쪽, 2권)에 끝까지 다가가려는 노력, 그것만으로 난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아닐까요. 비록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죠.

 

어쩌면 어두운 광채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그들의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 366~367쪽, 2권

 

달리 말해, 난은 고립을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독자도 없이 허공을 향해 글을 써야 할 터였다. - 394쪽, 2권

 

그녀는 내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패배자로서 나 자신을 이미 받아들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 시를 쓰는 건 존재하는 것이다. - 445쪽, 2권


 

2. 삶, 자본 안에서의 삶

저는 작가가 소설 안에 우리 자신의 우울, 의심, 고뇌와 질문을 이토록 정교하게 담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나 탁월한 언사 없이, 그저 난이라는 이방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말입니다(그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세월을 낭비하며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을 피하고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 414쪽, 2권). 특히 신이 사라진 자리에 자본이 자리 잡은 오늘의 세계를 살아가는 무력한 사람들, 난과 같은 소시민이 마주하는 세상은 쉬이 바뀔 것 같지가 않아요. 세상은 우리에게 가능성과 자유를 보여주지만(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성공의 전형이었다. 그는 누가 실패에 대해 얘기할 것인지 궁금했다. - 389쪽, 1권) 우리는 결코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국가나 사회체계의 도구로 사용되고 소멸하면 그만이죠. 거기서 인간 소외가 나타납니다. 제 삶을 단 한 순간이라도 제대로 짚어보고 따질 수 있는 시간조차 우리에게는 소비해야 하는 재화(財貨)입니다(힐링이라는 단어의 지긋지긋함...). 탁월한 개인은 자본 위에서만 해당하는 얘기 같습니다(이곳 사람들은 부자가 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너무 열심히 일했다. - 114쪽, 1권).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거짓말에 속는 바보짓을 하게 되죠(이곳에서 정직하게 사는 건 불가능해. 모두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우리도 거짓말을 해야해. - 336쪽, 2권). 

그 삶이 기억할만한 삶인가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자유란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면 의미가 없는 거죠.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억압을 받고 갇혀 있어서 사고방식을 바꾸고 진짜 자유를 얻는 것이 힘들어요. 우리는 회피와 부정으로 얼룩진 삶에 길들여져 있잖아요. 개인적인 취향과 자연스러운 욕구들이 대부분, 신중함과 두려움에 억제당해왔지요. 외적인 압박보다는 우리 스스로 갇혀 있는 폭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더 어렵죠. 간단히 말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거예요. - 214쪽, 1권

 

난은 그 친구가 성공의 결과로 내리막길을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성공은 그 안에 있는 악마를 풀어놓은 것 같았다. - 412쪽, 2권

 

 

3. 국가

서경식 선생은 조국(祖國)과 국가(國家),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서경식 선생의 질문이 저를 괴롭히도록 자주 놓아둡니다. 그런 소수자의 삶에 늘 마음이 끌려요. 필연적으로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로 세상은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서경식 선생이 그렇듯, 이 소설의 작가 하진 역시 이민자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통해 조국과 국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중국이라는 특징적인 국가와 체제를 떠나 그와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착하면서 겪는 갈등과 불편함이 소설 곳곳에 나타납니다.

국가가 무엇입니까?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국가는 그러나 종종 국가를 위해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고 안타까운 개인의 희생을 모른 체 합니다. 국가에 기여하는 국민이여야만 진짜 국민이라는 듯 대가를 요구하기도 하고요. 난은 진정한 개인이 되고자 합니다(나는 중국이 혐오스러워요. 시민들을 잘 속은 어린애로 취급하면서 진짜 개인이 되는 걸 방해하니까 말이죠. - 160쪽, 1권). 자신을 옭매는 국가를 벗으려고요(중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여전히 그의 삶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 81쪽, 1권). 그가 성공했는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다만 그는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가족과 집이 있습니다. 그 안에 국가는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국가란 그런 것이어야 하는 게 아닌지. 집보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런 것 말이지요.

 

사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있는 곳이 집이고, 행복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 집이었다. 아이에게는 국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 30쪽, 1권

 

난은 "다른 나라 시민이 되어야만 중국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중국인 이민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을 떠올렸다. - 208쪽, 1권


우리가 살고 죽는 곳이 우리의 고향이니까요. - 466쪽, 1권

 

 

1권

그들이 작정하고 그에게 해를 끼치려는 이유가 뭐지? 단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처럼 희지 않고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 63쪽

 

나는 이곳에서는 어떻게 나 자신을 팔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 98쪽

 

그렇게 슬픈 얼굴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 싶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불길한 걸 떠올리게 할 것 같았다. - 184쪽

 

그는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232쪽

 

결국 삶이 단순하고 분명해졌다. - 365쪽

 

나는 종종 눈에 보이지않는 수많은 구멍이 있는 그물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 405쪽

 

불의를 합리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 500쪽

 

 

2권
그는 아내와 같이 그 지역으로 들어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살에 박힌 가시처럼 살고 싶었다. - 127쪽

 

돈이 없으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과도 싸울 수 없네요. - 128쪽

 

그것을 보며 난은 가짓수만 많고 세련되거나 화려한 게 전혀 없는 중국 뷔페를 떠올렸다. - 232쪽

 

그의 집과 삶은 여기에 있었다. - 240쪽

 

난은 자기 부모가 자신과 핑핑이 미국에서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비참함을 가엾게 여길 가능성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부모의 집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자신이 이 아파트에서 크지 않은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는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는지 몰랐다. - 343쪽

 

그러나 그는 조상들이 수백 년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들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부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할 것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기만 하는 듯했다. - 354쪽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에 집착하고 있어요. 돈이 신이 된 거죠. - 397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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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괜시리 마음이 바쁩니다. 가족들, 친구들을 열심히 만나야 하고 이런 저런 날들을 챙겨야 하고요. 서점가도 그런가봅니다. 읽고 싶은 책, 사야할 책들이 너무 많아 고민만 깊어갑니다.

 

'창문'에 연재될 당시, 읽다가 읽다가 차마 더 읽지 못하고 포기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잘 알지요. 현실은 더 참혹했고 우리는 앞서 간 그들 뒤에 남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

5월 광주는 집집마다 제사라지요. 제주가 또 그렇고요. 현기영, 공선옥 작가가 떠오릅니다.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 얼마나 슬프고 분노했는지.

저는 이 책이 5월을 넘어 올해의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에 다소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읽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나 서경식의 책을 읽었을 때처럼 어떤 의무감으로 열심히 추천하고 다닐지도 모르겠네요.

 

 

 

 

목차가 흥미롭습니다. '계속되는 무(분명한 후반부)'라니요.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기대되는 이름입니다. '보르헤스', '아방가르드', '전설의 작가' 같은 핵심 단어들도 재미있고요. 이런 단어들은 제게 도전의식을 갖게 하는 셈인데, 이야기의 미로를 헤매다 보면 언젠가 출구에 다다르지 않겠나 하는 편안한 생각, 을 합니다. 혹은 그 미로 속에서(끝내 출구를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평소에는 만나지 못했던 기이하고 즐거운 체험을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로맹 가리, 로맹 가리, 로맹 가리...

그를, 그의 내면을, 그를 둘러싼 이야기의 진실을 이렇게 쉽게 만나도 되는 걸까요. 독자는 그저 기쁠 뿐입니다. 소설이 주는 이야기의 기쁨이 있지만 이미 떠난 작가들을 생각하면 늘상 그 작가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슬퍼지니까요. 그러니 <밤은 고요하리라>처럼 대담 형식의 작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로 느꼈던 독서의 기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줄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슬프다고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힘겹고 격렬한 치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 평화로운 수용도 있다는 사실, 잃어버린 관계는 유지하는 관계로 회복되고 상처는 또 그런대로 아물게 마련이라는 사실... 그렇게 평범하고 다정한 일상, 담담한 듯 뜨거운 남은 사람들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니까요.

저는 이 책, 아주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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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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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작품입니다. 문장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예술과 철학, 오스트리아의 문화와 인물들이 쉴틈없이 독자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파울 비트겐슈타인이 있습니다. 그는 오페라에 열광하고 자동차 경주를 좋아하고 얼마든지 베른하르트와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압도적' 인물입니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비트겐슈타인 집안의 철학과 예술을 무시하는 분위기에서 두 천재 '루트비히'와 '파울'이 태어났습니다. 파울은 대개 그가 보이는 '광기' 때문에 미치광이로 여겼지만 어쩌면 천재와 미치광이는 쌍둥이 형제처럼 닮지 않았나 싶습니다. 베른하르트는 그 점을 정확히 잡아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비트겐슈타인 집안의 루트비히가 자신의 광기가 아닌 철학을 종이에 적어 놓았기 때문에 그가 철학자라고 믿는 것이며, 파울은 자신의 철학을 억누르기만 할 뿐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고 오직 광기만 내보였기 때문에 그가 미치광이라고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 39-40쪽

 

루트비히는 (자신의 철학을) 출간한 자이고, 파울은 (자신의 철학을) 출간하지 않은 자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는 자신의 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위대하면서도 언제나 선동적이며 고집스럽고 전복적인 사상가였다. - 90쪽

 

베른하르트의 독백에 저는 어떤 해갈을, 만족감을 느꼈는데요.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 때문일 겁니다.

그와 파울은 문명과 떨어진 곳을 경멸

그 일로 나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정신이란 걸 가진 인간이라면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을 구할 수 없는 장소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토록 많은, 그토록 유명하다고 하는 도시들에서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을 살 수 없었다는 사실, 심지어 잘츠부르크에서조차 불가능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했고, 지루하고 낙후된 나라, 촌스러운 주제에 역겨운 과대망상이 하늘을 찌르는 이 나라가 참으로 지긋지긋했다. -79쪽

하고, 지치지도 않고 다른 존재들을 헐뜻고,

여름이면 우리는 자허 호텔 커피하우스 테라스의 늘 앉는 자리에서 오직 욕하고 비난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자허 호텔 커피하우스 테라스에서 몇 시간이고 지치는 법도 없이 다른 존재들을 헐뜯었다.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앉아 온 세상을 비난했으며, 온 세상을 말로 속속들이 쑤셔대고 처절하게 난도질했다. - 87쪽

권위를 무시합니다.

하지만 장관이 말도 안 되는 연설문을 줄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슈타이어마르크 출신의 그 멍청이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100쪽

작품을 장악하고 있는 베른하르트의 냉소와 비판은 날카로운 동시에 엄청나게 적나라해서 거북하고 회피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솔직한 고백과 강박, 분노, 두려움, 외로움을 읽노라면 그의 강박에 휘말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작품을 빛나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친구와 나눈 대화가 떠오릅니다. 친구는 제게 어떤 소설을 좋아하느냐 물었고, 저는 '불편한 소설,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이 좋다고 답했습니다. 친구는 의아해하며 되물었습니다. 밝은 게 좋지 않냐고. 책을 읽으며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밝은 이야기, 좋은 내용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거짓말입니다. 현실은 치졸하고, 더럽고, 거추장스러우며, 잔인하고, 어둡습니다. 알면 알수록 물론 불편합니다. 모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편안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런 현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눈을 가리면 제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꿩이 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음에 소개할 김규항의 글에서 그는 '이상주의자의 단순함'을 지적했는데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불편하고 솔직한 베른하르트의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 작품으로 베른하르트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 작품에는 그와 그의 전부이기도 했던 존재가 가졌던 모든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책으로나마, 이런 지성들과 대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좋은 작품을 찾아 읽으려 노력하지만 숨은 작품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교양이 엄청나게 깊지도 않고요. 김규항은 어느 글에서 베른하르트가 많이 읽히지 않는 한국 지성 사회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적 있습니다. (글 보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6869) 그의 글을 읽고 나니, 더욱더 베른하르트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다음 독서는 <옛 거장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절판이라 책 구하는 일이 우선이겠군요).

 

 

 

때는 유월이었다. 저녁이 막 시작된 참이었고 병동의 창문은 열려 있었으며, 마치 천재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듯 환자들이 정확한 대위법 리듬에 맞추어 기침을 해대는 소리가 창밖으로 들려왔다. - 19쪽

 

내 생각에 그는 아마도 전체적인 실상을 보기를 거부했고, 그런 거부의 태도를 일생 내내 유지해 온 듯하다. 그런 비참한 상황과 마주칠 때마다 피상적인 관찰로 만족해 버린 이유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리라. - 37쪽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흔하게 마주치는 머리들을 상대하는 것은 다 자란 감자 알갱이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지루할 뿐이다. - 41쪽

 

비록 나에게는 그가 비트겐슈타인 집안에서 나온 가장 사랑스러운 산물이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그를 더욱 싫어했다. - 62쪽

 

내가 돈이 있을 때만 해도 의사들과 친구처럼 지냈지. 하고 그는 자주 말했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고 나면 그들은 사람을 돼지처럼 다루어 버려. - 65쪽

 

그래서 사실상 병자는 항상 혼자이며, 우리도 알다시피 외부에서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은 거의 언제나 병자를 방해하거나 도리어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 68쪽

 

그래도 아직은 우리 사이에 이상적인 대화가 오갈 수는 있었지만, 에디트의 죽음 이후로 사실상 모든 빛이 꺼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이전의 세계는 회복불가능하게 산산이 부서져 버린 듯했다. - 75족

 

나는 상의 굴욕에 나를 맡겼다. - 94쪽

 

우리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람은 나이 들어 갈수록 나날이 더욱도 노련한 술책으로 있는 묘안 없는 묘안을 짜내서 적당히 견딜 만한 삶의 상태를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 - 114쪽

 

내가 빈의 커피하우스를 증오한 이유는, 거기에서 항상 나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을 마주쳐야 했기 때문이다. (...).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상황을 증오한다. - 120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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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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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탐정'에 매료되고(베네딕트 컴버배치!!! 하아악...) '탐정소설'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로 말하자면 탐정이란 쉽게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미지의 낯선자, 하나같이 놀라운 관찰력과 추리력이라는 비범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어두운 사무실(이들은 꼭 그곳에 기거합니다)에서 의뢰인을 맞이하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성의 호감을 받기도 하는 불가해한 존재일 뿐입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긴 해도 어쩐지 탐정만 나오면 좀처럼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 느릿느릿, 게으르게 그들이 이끄는 곳을 억지로 끌려가곤 했습니다. 게다가 탐정이란 직업이 양지에 드러나지 않은(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한국에서, 한국 작가가 탄생시킨 탐정이라면 제가 기대할 것은 많지 않았겠지요. 이미 편견을 고치기 쉽지 않은 나이가 된 마당에 사뭇 걱정스런 마음으로 주인공 '구동치'의 행적을 좇았달까요. (어쨌든 소설에서 '탐정'이란 굉장히 매력적인 도구인 건 확실합니다)

 

 

 

 

보통의 탐정과 달리 우리의 주인공 '구동치'는 '찾는' 탐정이 아니라 '지우는' 탐정입니다. 의뢰인들은 무언가 없애달라는 주문을 하러 구동치를 찾습니다. 탐정의 등장만으로 긴장했던 제 우려가 삽시간에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이 얼마나 탁월한 차별화인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없애고 싶은 무언가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으니까요. 갖고 싶은 것 이상으로 가지고 있지만 없애고 싶은 것이 많지요. 그런 게 인간인가 봅니다.

 

 

 

지우는 작업은 둘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철학적인 대목입니다.

 

구동치는 그것을 '풀 딜리팅(full deleting)'과 '하프 딜리팅(half deleting)'으로 나눠 부르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구동치는 두 개의 세계 모두에서 물건을 없애는 것을 풀 딜리팅full deleting이라 불렀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물건을 옮기는 것을 하프 딜리팅half deleting이라 불렀다. 물건을 그저 옮기는 것만으로 딜리팅이 가능한 것이다. - 85쪽

 

흥미로워요, 흥미롭습니다. 원하는 만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는 게 우리라는 존재고,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는 기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없애려 하는 건 모르는 세계로 옮겨주기만 해도 없어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구동치가, 의뢰인의 주문을 받아 그들이 없애달라고 요구했던 것을 제 사물함에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딜리팅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뜬금없이 남자친구가 바람 피워도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죠?)

 

 

덧붙여 지난 3월 연강홀에서 있던 한병철 교수의 강연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투명사회>를 읽어보세요).

 

"사람들은 자기를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

 

우리는 SNS의 엄청난 힘을 압니다. 아랍권 여러 국가에서 보았듯이 말이죠. 그렇지만 치명적인 지배도구로 전락하는 모습도 가까이서,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이제 세상은 '잊힐 권리'를 주장하며 인터넷 상에 널린 개인정보를 수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구동치의 콘셉트! 참 절묘하지 않나요?

 

 

 

소설은 탐정 구동치의 딜리팅 과정에서 어긋나는 인간 욕망이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그려집니다. 어떤 악의에서 딜리팅을 의뢰하기도 하고, 명예나 내밀한 욕망에 의해 요구되기도 하고요. 그로인한 부수적 피해도, 분명히 일어납니다. 아빠의 의뢰 때문에 추억과 작업물을 동시에 잃은 정소윤이 구동치를 끊임없이 쫓고 괴롭히는(?) 부분은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절대 악인도 완전무결한 선인도 없습니다. 그만큼 없어져야 할 것과 꼭 존재해야 할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도 않지요. 실제 세상은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어떤 작위가 예측하지 못한, 결코 원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유기적인 세계에 살고 있고, 균형을 잃지 않으며 살아야 하죠. 이러한 균형 상태를 소설은 잘 포착하고 있는데, 저는 이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소설은 '냄새'로 시작합니다. 시각적 이미지와 달리 냄새란 문장으로 상상하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책을 덮으니 어떤 고유한 냄새가, 이 소설에서 나는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월요일의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합니다.

 

 

냄새는 악어빌딩 어디에나 스며 있었다. - 9쪽

'냄새가 난다'기보다 냄새 그 자체가 빌딩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 362쪽

 

 

 

*

이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나는 무엇을 없애고 싶은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려 하는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 몇몇 가지를 생각하다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대사를 떠올립니다.

 

"원하는 것은 모르고 원하지 않는 것만 알죠."

 

확실한 건, 없애고 싶은 건 정확히 알겠다는 사실입니다.

 

 

"들어가도 됩니까?"
남자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구동치가 문손잡이를 계속 붙든 채 대답했다.
"잊혀지고 싶어서 왔습니다."

-13쪽

 

눈 속의 불안은 아직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의 새와 같다. 불안은 자라서 공포가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 52쪽

 

우리는 전부 다 작은 검정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말이죠,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만 알죠. - 75쪽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 328쪽


마지막 말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불가능한 말이다. 늘 비어 있는 말이다. - 390쪽

 

그림자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시간이 빨리 흥러가는 기분이었다. 일요일의 기다린 그림자는 이미 월요일에 가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는 그림자를 밟으며 빠르게 시간을 건너갔다. - 390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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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받아들이는 '쉬운' 방법이란 세상에 없나 봅니다. '어렵게' 노력해야만 조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화창한 날씨도, 흐린 날씨도 이것저것 모두가 슬픈 계절입니다.

 

 

 

  '서경식 교수 추천'이라는 말에 무조건, 당연히 우선 순위로 꼽아두는 책입니다.

  위대한 왕, 호랑이가 지배하는 '숲의 바다'에 인간 문명이 들어옵니다. 만주 밀림의 아름다움이 하찮은 편리에 오염되는 것이죠.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에게야 그런 상황이 낯설지도 않지만 '위대한 왕'에게 그것은 온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곁에 두고도 무감각하기 때문에 도무지 알 길 없었던 지역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아득해집니다. 잊혀진 이야기가 너무나 많지요. 책 읽기에 매료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몰랐던, 잊어버리고 말았던 이야기들을 되찾는 행위랄까요.

  멀리 나가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더 좋습니다.

  작가들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은 어떨까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가끔 연락 뜸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면 꽤 자주 '힘들다'는 답이 돌아오곤 합니다. '삶이 정말 즐겁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서일까요.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나이가 대체 언제죠? 고하를 불문하고 힘든 시절 아닙니까.

  인간이 우울한 건 이 사회뿐만은 아닌가 봅니다. 독일 신예 작가 에바 로만의 자전적 소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을 보면 말이죠. 여느 직장인과 다름 없는 삶을 살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소설에 담겨 있습니다. 우울증의 기원이 결코 한 개인의 나약함에서만 오지는 않았으니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진정 원하는 대로 끌어가는 힘(!) 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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