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녀 창비세계문학 37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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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수록된 연표를 보면 이 작품이 출간된 것은 1965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입니다. 그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반세기의 간극을 말이지요. 그 시간 동안 십대였던 부모님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고요, 우주 어딘가에서 먼지처럼 휘날리던 우리들은 태어나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다시 책을 들여다봅니다. 이 작품은 어쩌면 그 시간에 있는 것도 같아요. 일본의 전후(戰後) 사회 분위기가 군데군데 엿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도통 그 시간에 출간됐다고는 믿을 수 없는 것도 같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 


그곳엔 저 '포도색 바다'도 없고 '아침마다 장밋빛 손가락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에오스'도 없는 대신, 거리 전체가 파찐꼬의 파도 소리와 두 다리로 헤엄쳐 다니는 너저분한 물고기 떼로 가득 찬 외설스러운 바다였다. - 198쪽

이토록 시각적이라니요! 그러니까 <성소녀>는 말하자면 '감각적인'이란 수식어가 꼭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이 외에도 에스프레소라든지 달리, 호텔 수영장 같은 언어 역시 50년 이라는 시간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50년 전'이라는 시간에 대한 제 편견이 지나쳤던 걸까요?). 작품에 깔린 정서 역시 흔히 상상했던 50년 전, 먼지가 폴폴 나고 물질적 빈곤함과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 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어떤 요즘 소설보다 감각적이고 몽환적이죠. 


이 작품을 좋아할 지인들이 몇몇 떠올랐습니다.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한 사촌동생도(물론 여자) 포함되어 있어요. <성소녀>는 십대 후반 또는 이십대 초반의 여자가 읽기에 아주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습니다. 동성애를 암시하는 가장 친한 여자친구, 대개 초연한 상태를 유지하는 쿨한 엄마, 손 뻗을 거리에 대기하고 있는 남자, 또는 자신을 애태우는 멋진 중년 남자, 거기에 경제적 풍요로움도 포함하고요. 기괴한 풍경의 카페와 모조 미술 작품들은 보너스입니다. 그리고 근친상간(이에 대해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합니다). 


근친상간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쉽지 않겠지만 사실 저는 굳이 저 키워드가 아니더라도 <성소녀>를 즐길 수 있는 요소는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문장.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장을 꼽을 수 있겠네요. 


내 입은 나쁜 피 같은 수치와 암흑을 이야기하려 했건만 나오는 말들은 여름 햇볕을 만난 꿀처럼 투명해지고, 그것은 불행한 모험의 뜨거운 노래가 된다. - 101~102쪽

M씨에 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은 M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M씨는 지금 존재하면서, 내가 M이야, 하고 말합니다. 소름끼치고 무서워져버려요. - 80쪽


공간과 시간적으로 거리가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당장 이해할 수 있는 '내 일'처럼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탁월한 문장 덕분이 아닐까요. 작가는 <성소녀>의 세계에 유감없이 독자를 초대하는데 그 초대장에 적힌 문구들이 참 매력적입니다. 그게 소설의 묘미지요. 

 

문장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도 무척 탄탄한데요. 미키의 일기인 줄 알았지만 소설로 밝혀지는(과연 소설일지?) 앞부분과 K(주인공)의 소설로 진행되는 뒷부분이 흐름을 전혀 방해하지 않고 균형을 이룹니다. 두 이야기의 경계에 숨어 있는 상징이나 복선들도 찾아내는 재미가 있어요. 


미키에게 수많은 언어를 붙여 독자 앞으로 끌어내려는 소설가에게 저주 있으라. - 8쪽

인간은 도약하지 못할 때 쓰는 것이리라. - 140쪽


등장인물들도 모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입니다. 미키의 친구인 M, K의 하숙집에 하숙했던 '작가', K의 친구들('에스키모', '후작'), 파파, K의 누이 L까지. 누구 하나 다른 곳에 기대지 않고 모두 꼿꼿하게 두 발로 서있는 느낌이랄까요(저는 늘 이런 작품(드라마나 영화 역시)에 열광하는데, 그건 성의 없이 등장하는 배경인물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특히 미키와 그의 파파가 근친상간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에는 K와 L의 관계가 대응하고 있고요, '작가'와 K가 언젠가 여행지에서 맺었던 식물성의 관계는 K가 마침내 미키 안으로 숨기로 작정하던 때 맺은 것과 정확히 대응합니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꽤 멋진 소설에 들어가지 않나요?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면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이나 <내 남자> 같은 소설을 같이 읽어도 괜찮겠네요. 우리와 닮은 듯 다른 듯 묘한 정서를 가진 일본 여작가들의 소설을 읽기에 좋은 계절이니까요. 



*창비 출판사에서 책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랑 어느 쪽이 더 악당인지 겨루어봐야만 합니다. ; 29


가난이란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질이 나쁜 악이어서 이건 결핍이라든가 부족이라든가, 혹은 불평등이라는 것과는 다른, 다시 말해, 뭔가 모자라는 것을 더하기만 하면 회복될 수 있는 그런 결함이 아니지. 존재 그 자체의 비열함이라는 거죠. ; 74


이때 알아챘는데 나의 감정은 어느새 충실한 개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 77


그건 아마, 인간이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나쁜 짓인 거겠죠. 이해하기 어려운 금지가 곧 규정인 것이고, 그렇게 금지되어 있는 것이 악이라고 이름 붙는 거겠죠? ; 132


자진해서 죄를 범한다는 것은 성녀가 되는 길인지도 몰라요. ; 135


이 강력한 안정성의 조건은 무엇인가 하면, 명백히 도덕적 감각의 결여이다. ; 162


(...) 약혼한다. 이미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을 기다란 곰방대로 아편처럼 전부 빨아들인 자들끼리. ;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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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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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이 뜨겁고 한없이 어둡고 다시 극단적으로 추운 공간을 상상합니다. 

격하게 기침을 해대는 노인의 까만 가래가 떠오릅니다. 앙상한 팔다리로 검정을 캐는 성실한 소녀가 보입니다. 이제 막 그곳에 내던져진 어느 실업자의 우울한 얼굴이 그려집니다. 고개를 드니 그런 얼굴을 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서 도리없이 절망하는 심정이 됩니다. 절망감은 차갑고 고통스럽고 질깁니다. 저는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손톱 밑이 파랗게 질립니다. 

다시 한 번 춥고, 고통스럽습니다. 


거대한 지옥이 있습니다. 

지옥은 욕망의 뱃속으로 매일 인간들을 집어 삼킵니다. 저기 어딘가 신(神)인 척 군림하고 있는 자본은 점점 더 가혹하게 그들을 쥐어짜고, 부조리 앞에서도 그들은 분노할 줄도 모르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할 뿐입니다. 체념이 몸에 밴 그들에게 희망이나 미래 따위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의 미래, 자식들에 대해서는 그저 밥만 축내지 말고 얼른 커서 함께 뱃속으로 들어가 (보잘 것 없는, 터무니 없이 적은)돈을 캐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굶어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삶이라니요!


다들 탄광에서 차례로 죽어간 것처럼 그 아이들도 결국 그렇게 되겠지. -2권, 359쪽


마외 가족은 대대로 석탄을 캤습니다. 탄광의 주인들이 배를 불리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탄광 노동자들의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외 가족 역시 그러했죠.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살펴보아도 이 가족의 삶은 그대로입니다. 매일 노예의 삶을 살고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곧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 혹여 일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할 따름입니다. 그가 벌어오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이나마 이들 가족에게는 아주 소중해요. 그마저 없다면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빚은 나날이 쌓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부잣집으로 구걸을 하러 다녀야 하는 순간도 곧 올 겁니다. 일찍이 여자를 안 장남이 결혼이라도 한다면 그의 수입마저 바랄 수 없게 되겠죠. 이들은 매일 죽어라 일하지만 제자리 걸음입니다. 뼛속까지 내려앉은 체념과 헤어질 줄 모릅니다.  




그들의 삶 안에 청년 에티엔이 들어옵니다. 운명과 같은 우연에 이끌려 마외 가(家)의 노인과 대화를 나누고, 마외 가의 가장과 만나고, 큰 딸과도 만납니다. 그들 덕분에 취직을 하게 되지만 청년은 이미 그곳에 낮게 깔린 깊은 좌절감을 함께 느낍니다.  


그 시각, 청년은 자신의 주변 어디에서나 끝 간 데 없이 내리깔린 절망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1권, 17쪽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들은 매일 죽도록 일을 하는데 터무니없는 돈을 받고 가난에 붙박혀 있어요. 반면 그들을 통해 배를 불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요. 그들이 동료들의 고혈을 빼먹는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도다시 두꺼운 커튼과 안락한 소파를 비롯한 호사스러운 가구들을 힐끔거리며 둘러보았다. 그중에서 하찮아 보이는 장식품 하나만 내다팔아도 그들이 한 달 동안 먹을 수프를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1권, 344쪽


자유가 있다고 저들은 말합니다. 자신들의 삶을 제 힘으로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 자유를 가장한 속박은 얼마나 더 잔인한지. 노동자들에게 있는 자유란 '굶어죽을 자유'에 불과하겠지요.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선언했을 뿐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랬다. 그들은 마음대로 굶어죽을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1권, 226쪽


그래서 그는 공부를 하고 동료들에게 변화를 요구합니다. 파업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심고 우리 삶을 바꾸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끝내 폭발하고 만 노동자들의 분노로 소설은 가득차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분노가 노동권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할 무렵에 그들의 땀과 눈물, 그들이 쏟은 피로 보다 진보한 사회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었습니다. 저는 아주 자주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 위에 맺힌 열매를 먹고 있는지 몸서리 치도록 생생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이토록 마음 아프고 뇌리에 남았는지도요. 


현실은 언제나 가혹해서 가난한 자들이 겨우 품었던 희망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파업은 실패로 끝나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가져갑니다. 좌절감이 팽배하고 믿었던 것에 대해 불신도 해요. 그렇지만 파업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과는 결코 같아지지 않습니다. 에티엔을 떠나보내는 라 마외드의 결연함은 모든 것이 변했음을 알려줍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보이지만, 여전히 터무니없는 급여에 죽도록 일을 하지만,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리란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장이자 사회의 성장입니다. 변화는 시작됐고, 이미 변화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겠지요. 


아! 자라나고 있었다.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1권, 262쪽


작품 속에서 저는 뜨거운 희망과 깊은 절망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습니다. 백 년도 넘은 이야기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몸 떨었습니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그런 존재일까요. 그렇지만 말이에요. 깊은 절망 틈에 뜨겁게 희망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작품의 존재였습니다. 민중의 삶을 성실하게 기록한 이 이야기,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만났다는 것 그것만이 희망이고 변화의 씨앗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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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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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꾸준히 흐릅니다. 때가 되면 비가 내립니다. 계절이 어김없이 바뀝니다. 곧 눈이 내리고 해가 바뀌느라 세상은 분주하겠지요. 그 속에 일상이란 녀석이 심심하게 흘러갑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가끔 드라마를 꿈꿉니다. 재벌 상속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잃어버린 쌍둥이를 만나는 드라마, 복권에 당첨되는 드라마... 그렇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이 '일상'은 무엇보다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특별한 꿈을 꾸던 시절이 지나고 아무 일 없는 일상을 사랑하게 되는 나이가 됐습니다. 모두가 그 자리에 예전처럼 있고, 모든 것이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는 잔잔한 호수 같은 상태가 너무나 소중해 가끔은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로도 파문 일 수 있는 일상의 허약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일상은 호수가 아니라 폭풍 전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게 되는, 땅이 꺼질까 두려워하고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게 되는 시절입니다. 


책의 등장인물들 모두는 잔잔한 일상을 잃어버린(혹은 박탈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은 적대적이고, 폐쇄적이고, 비밀스럽고, 고통스럽고, 고달프고, 인색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기도 하고 세상이 그들에게 그렇기도 합니다.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이들은 공격을 택하거나 은둔을 택합니다. 자의라기도 타의라기도 어려운 그들의 선택된 삶에는 꿈꿀 만한 드라마가 없습니다. 다만 진한 땀과 피와 담배 냄새가 있을 뿐이지요. 

이런 상태가 너무나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애처롭고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 이 책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아요. 이 사람들. 



 세상은 갈수록 인색해져 가난한 늙은이에게 더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 113쪽,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여기에 우리 아버지가 있습니다. 평생 육체노동으로 삶을 꾸린,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남자 경구. 정신 없이 달렸왔지만 문득 정신 차려보니 그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늙은 몸뚱이만 남았을 뿐. 경구는 '가난한 늙은이'입니다. 이혼한 아내를 생각하면 울화가 오르고, 어쩌고 다니는지 이제는 말 한 마디 섞지 않는 딸내미를 보면 화가 나다가도 불쌍하고, 아들 녀석이야 빨리 군대나 가버렸으면 싶어요. 경구가 지키고 싶었던 삶이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가 서 있는 곳은 바로 이 자리입니다. 

경구는 궁금합니다. 대체 왜 제 삶이 이렇게 됐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 화가 된 걸까요. 아니면 이놈의 욱하는 성질머리 때문일까요. 따져보아도 명쾌한 답은 없습니다. 길을 벗어난 경구의 삶은 이제 벼랑 끝에 있습니다. 삶은 결코 경구의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구불구불 뱀처럼 끝도 없이 이어진 밭고랑 저 끝에서 뒤꿈치를 따라오는 수치심에 대해 쓴 적이 있던가? - 79쪽, <왕들의 무덤>

여기에 우리 이모가 있습니다. 잘 풀린(?) 중년 소설가 정희는 육십 평 대 아파트에 삽니다. 아침에 일어나 충분히 원하는 만큼 샤워를 하고 팬이 선물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유학 중인 딸과 간단히 통화를 하고 (남편 아닌)남자와 데이트를 할 예정입니다. 남들이 부러워 할 일상입니다. "사진관 앞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처럼(63~64쪽)" 좋아보이는 겉모습이니 말이지요. 

하지만 제법 단단해 보이는 정희의 일상에 낮게 엎드린 상처는 육중한 무게감으로 그녀를 끌어내립니다. 빨갱이를 욕하던 아버지, 붙박이처럼 땅에 앉아 일만 하던 엄마, 그리고 어떤 능멸의 경험. 한 번도 말해지지 않은 어둑하고 두려운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품은 정희는 한 번도 고향 이야기를 쓰지 않았고 도시적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끝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물린 개의 인생이나 개를 물어야 하는 자신의 인생이나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라는 기분이 들었다. - 153쪽, <전원교향곡>

여기에 우리 삼촌이 있습니다. 도시에 지친 사람들이 '전원'의 꿈을 찾아 떠날 때 정환 역시 대안적인 삶을 찾아 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하고 나물을 찾아 산 속을 다니고 아이를 낳고... 꿈 같은 시간을 아내와 함께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정환을 부러워하고 수시로 정환을 찾았죠. 정환의 귀농은 잘한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집 근처에 돼지 축사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빚을 내 시작한 돼지 감자 농사가 가격 폭락으로 완전히 망해버리고 아내와의 사이는 점점 나빠지기만 합니다. 드라마 같던 그들의 생활은 비루한 일상으로 남았지요. 드라마만 믿고 삶 전부를 걸었던 정환은 이제 술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도시로 다시 떠났으며 혼자 남은 그는 지독한 돼지 축사 냄새와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전원 드라마는 결국 그를 '개를 물어야 하는' 인생으로 내몰고 말아요. 


인생의 종착역은 원래 그런 것일까? 밤새 고통스러운 기침을 하고, 맛이 고역한 소다를 한숟가락씩 퍼먹으며 배에 구멍을 뚫어 고무호스로 오줌을 빼내는? 그래서 녹용이 빠져버린 한약처럼 쓰디쓰기만 한? - 195쪽, <우이동의 봄>

그리고, 여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죽음을 언제나 두려워하는 우리가 여기에 있어요.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할아버지를 보는 '나'의 심정은 복잡합니다. 그의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대단한 애정이 있지도 않습니다. 전라도 치는 안 된다고 하는 할아버지의 말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할아버지를 보는 '나'는 그를 통해 인생을 생각합니다.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계속 살아갑니다. 가끔은 좋은 손자 역할을, 대개는 소시민의 한쪽을 담당하면서요. 



실용주의자들의 세계에서 소설이야 예전처럼 제 목소리 내기는 어려워졌습니다만 소설이 우리 삶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책에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가끔 꿈만 꾸었던 어떤 순간이 집요하게 펼쳐져 있어요. 그 순간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우리는 자꾸 기시감에 빠지지만 소설의 어떤 충격적인 사건도 현실의 그것을 뛰어 넘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야기에 집착하게 됩니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무일 없는 일상을 소중하게 끌어 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용기를 내봅니다. 


그래, 까짓것. 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 백반 좀 먹고 빠구리 좀 치다 가면 그뿐이지. - 110쪽,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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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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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창비
166쪽. <핑크>
`참으로 묘한 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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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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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를 모르던 시절 우연히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세상에 참 박학다식한 사람들이 많구나' 감탄했었죠. 제게 유식한 사람이라곤 당시 좋아하던 과학 선생님 정도였으니까요. 즐거운 책읽기였고, 책을 덮은 후 어쩌면 저는 제 인생의 다음 단계로 이동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다시 움베르토 에코를 읽지는 않았습니다. 인상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닥쳐오는 '읽어야 할 책' 목록에서 에코는 언제나 후순위로 밀렸었죠. 친구가 열광하는 <장미의 이름>도 아직 펼쳐보지 못했고, 저기 책장에 굳건히 꽂혀있는 <책의 우주> 역시 늘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에코와 다시 만날 때가 아니었나 봅니다. 

 

<적을 만들다>를 덮은 지금, 또 한 번 다음 단계로 자리를 옮겼을지 모르겠습니다만(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죠) 어찌되었든 제 소회는 이렇습니다. '다정하디 다정한 어느 노교수와 사석에서 그의 지적인 이야기들을 무지막지하게 얻어 들은 행복한 기분'이라 말이죠. 

사실 행복하다기 보단 풍성하달까요. 이유인즉, 이 책은 문학과 인류학, 미학, 사회학... 과 같은 폭넓은 주제에 대해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해달라 조르는 어린 손자에게 들려줄 법한 상상 속 이야기('속담 따라 살기')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관심글'로 지정해두고 시간 날 때 집중해서 읽고 싶은 칼럼 같은 글('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 '적을 만들다')도 있고요, 종교와 역사에 대해 아주 깊이 있게 주제를 조명한 글('천국 밖의 배아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채 소화도 되기 전에 새 정보를 가지고 공격해왔기 때문에 '아, 이번 전투는 완전한 패배다' 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요. 흠...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저를 열광시켰던 몇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무엇보다 책의 제목인 '적을 만들다'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인간 역사에서 주류(!)의 인사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규명하고 그들을 타자화 시켜왔습니다.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을, 남자들은 여자들을,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기독교인들은 기타 종교를, 백인은 유색 인종을...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적'은 새로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체계를 유지하고,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요즘 시대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그건 모두 과거의 일이라고요? 어째서죠? 바로 오늘도 이런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는데요. 

팔레스타인 13세 소년, 이스라엘군 총격에 사망 


 

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 체계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그것에 맞서는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 13쪽

 

평화를 사랑하는 온순한 사람에게도 적의 필요성은 본능적이다. - 35쪽

'적을 만'드는 문제에는 '차별'의 문제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종차별의 역사>(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예지 출판사)를 보면 '차별'에 관한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허약한지 단번에 알게 됩니다. 우리는 쉽게 '벙어리 장갑'이라 말하고 '체중'에 집착하고 타인과 나를 구분합니다. 나는 범주 안에 들고자 노력하며 그것이 성공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차별'과 '적'에 관한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항상 긴장하고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름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이자 우리의 고정 관념을 파괴하는 것이다. - 36쪽

'검열과 침묵'은 해당 내용을 통째로 외우고 싶을 정도로 빠져들었던 주제였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사이버 망명... 하셨나요?)에 더욱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대목이기도 하지요. 

과거 조지 오웰 시대에 '빅 브라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권력이었다면 이 시대는 '소음'이라는 새로운 '빅 브라더'가 등장해 정보를 교란합니다. 언론은 내보내야 할 뉴스와 그렇지 말아야 할 뉴스를 선별하고 이 뉴스만 들으라고 소리칩니다. 사람들은 그 소음에 귀를 맡기고요. 

 

 

- <'검열과 침묵' 185쪽>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윤리적인 과제 중의 하나는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190쪽)'는 말에 눈이 머물게 됩니다. 치열하게 떠드는 소음 속에서 내면을 응시하기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겠지요(아, 이제 고요함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었군요). 그렇지만 권력이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전시하는 개인들 덕분에 정보를 마음껏 수집하고, 언론은 그런 권력과의 어떤 협업을 통해 의도한대로만 정보를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이 결단코 안전해 보이지 않습니다. 침묵으로 그곳에 균열을 낼 수 있다면, 고요로 돌아가서 성취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 역시 흥미롭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위키리크스가 그 내용적인 면에서 분명히 스캔들에 불과했지만, 형식적인 면에서는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306쪽)'고 말합니다. 정보는 더 이상 권력의 손아귀에만 있지 않습니다. 위키리크스 덕분에 권력의 비밀에 접근하는 시도가 성공했으니까요. 이렇게 되면 머지 않은 미래에 작가가 상상한 것처럼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정보 싸움이 부활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 <'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 310쪽

 

움베르토 에코만큼이나 저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습니다. 이 흥미로운 주제들에 관해 언젠가 작가를 직접 만나 들을 날을 기대하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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