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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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여덟 살이라는 시절을 분명히 지나왔는데, 어째서 여덟 살 아이의 머릿속은 이해되지 않는 걸까요? 어렸을 때는 그토록 '어른들은 몰라요'를 외쳐놓고 정작 크고 나니 '아이들 머릿속은 알 수 없다'고 하는 건 역시 인간이라는 얕은 이해와 자기 중심적 존재의 증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는 이럴 것이다'라고 하는 상식, 혹은 편견이 대체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심정으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생각해야겠다고 매일 새롭게 다짐하게 됩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 수지 아줌마까지도 테오의 머릿속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듯 테오 역시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테오의 눈에 엄마는 예쁘지만 불안하고, 아빠는 단순한 질문을 합니다. 사춘기 누나 역시 "엄마의 줄자를 허리에 두르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요. 


이긴다는 게 어색하게 여겨질 만큼 지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이 아닐까 봐, 금방이라도 꿈에서 깰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걸까? (25쪽)

테오는 그래서 어른들이 늘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늘 전투에서 집니다. 늘상 지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지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될까 두려워요. 테오가 바라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행복한 가족(27쪽)'인데 말이지요. 그러다 우연히 모든 전투에서 이겼다는, 한 번도 진 적 없다는 나폴레옹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거다!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테오의 진정한 전투입니다. 


호기심 많고 철학적인(!) 여덟 살 테오가 나폴레옹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나폴레옹은 진즉 죽었거든요. 그럼 어떻게 만나야 하지? 여기에 이 소설의 매력이 있습니다. 

엉뚱한 소년 테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그동안 제가 알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집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선문답을 늘어놓는 수지 아줌마, 무언가 알 것 같았지만 테오를 대실망으로 몰아넣은 화가 랭보까지 테오는 모두에게 영향 받고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테오가 어떤 어른이 될까 너무 궁금할 정도로 말이에요. 원래 그런 것 같던 세상은 조금만 달리 보면 엄청나게 궁금한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테오 덕분에 알게 된 사실.


줄리아는 친구들이 자기 공책을 베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으니 착한 아이일까? 아니면 친구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일까? 또 수지 아줌마처럼 자기 자식이 아닌 다른 집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부가 돈을 벌어서 집에 보내면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자기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니까 나쁜 사람일까? (40쪽)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마이너스 인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죽기로 마음 먹은 것이죠. 죽는다 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적 결론을 내립니다. 마이너스 개념을 테오에게 일깨워준 친구 시엔에게도 이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시엔은-우리처럼- 테오의 고백에 불안한 것 같지만 달리 말릴 수가 없습니다. 테오가 워낙 확고하니까요. 테오의 선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로 인해 닥칠 엄청난 결과도 무시무시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여덟 살 사람들의 대화에 감동 받은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이 아름다운 대화 내용 말이에요. 


-이해할 것 같아. 내 짝이 없어지면 슬프겠지만.

-그건 걱정 마. 내가 안 보이게 되면 널 만나러 교실로 올게. 네가 만든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게 만들게. 그러면 내가 네 옆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돼. (181쪽)

테오는 어떻게 될까요? 이 아이의 짧은 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엄청난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까요? 사랑스러운 아이 테오가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혹시 발견하지 못한 테오가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테오 같은 아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테오 같은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구겨지지 않고, 세상을 더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런 예쁜 마음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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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느덧 해도 길어지고 낮에는 포근하기까지 한 것이, 길었던 겨울도 끝나가나 봅니다. 어제는 꽃시장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보면서 '벌써 졸업식이 한창일 때구나' 생각했어요. 더구나 2월은 짧으니 또 눈 깜짝하면 봄이 오겠죠? 봄이 좋아요. 봄을 기다립니다. 




제안들 시리즈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무척 갖고 싶은 책입니다. 갖고 싶어요. 저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표지와 시리즈의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 읽지 않은 게 민망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으로 꼽습니다! 













맙소사. 1월은 역시 책이 쏟아집니다. 읽을 책이 이렇게나 많아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새해 첫 머리에 읽기는 조금 묵직한 주제가 아닐까 싶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새해가 되어 큰 숨으로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해요. 












방금 묵직한 주제의 책을 읽고 싶다고 했으면서도 곧장 이 책을 꼽은 이유는 어쨌든, 소설은 흥미로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 고양이 눈빛 보세요. "읽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해요. 

한 <개의 심장>이나 <드러누운 밤>처럼 탁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낀 희열이 있기 때문에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이 기대되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역사는 항상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언제나 물음표입니다. 기술적인 차원에서야 크게 반박의 여지가 없을지 모르겠는데요. 그렇지만 조금만 자세히 삶을 들여다보면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불길한 예감도 떨쳐낼 수 없습니다. <라운드 하우스>와 같은 소설에 손이 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가장 확실한 현실감각이고 적어도 저 스스로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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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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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무지개 색이 일곱이 아니라 둘이면 어떨까? 흰색과 검정. 두 가지 색의 무지개라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채색의 띠가 하늘을 수놓는다 해도 조금도 감동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흑백의 무지개는 아름답지 않아요. 흑백의 무지개는 무지개가 아니라 그냥 빛과 그림자로 흩어지는 말이 될겁니다. 우리가 무지개에 반한 이유는 다름 아닌 다채로운 빛깔 때문이었으니까요. 무지개는 그래서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빛을 내야 합니다. 

사실 무지개는 일곱가지 색으로 정확히 나눌 수 있는 종류도 아닙니다. 경계에 있는 무수히 많은 색의 영역들을 외면할 수 없지요. 빨간빛인가 하면 어느새 노란빛을 띠었다가 푸르고 검푸른 색으로 흩어지는 나열이 놀랍고 감격스러워요. 경계를 구분지어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름 붙인 것은 그저 우리의 편리에 불과합니다. 


편리함은 상식에도 뿌리박힌 것 같습니다. 상식이 무엇인가요? '흔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쯤 되려나요? 그게 정답인가요? 답답합니다. 자꾸 되묻고 싶습니다. 더 불편해지고 싶습니다. 우리네 상식이란 폭력에 얼마나 다양한 빛깔이 뭉개지고 있는지 생각하면 누구라도 지금 저처럼 상식에 불만하고 기존의 상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국가 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곳곳에서 차별을 받고 있나요? 흑백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과 색이 같지 않다고, 너무 다양한 색이라고 차별 받는 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이 '비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당신은 정상인가요? 상식이니 정상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차이>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다. 차이에 의한 각각의 경험이 해당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고립시킬 수도 있지만 그들이 모이면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고, 그들의 투쟁은 서로를 단단하게 묶어 준다. 이례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오히려 완벽하게 정상인 것이 드물고 고독한 상태다. -23쪽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해도 우리 모두는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하나쯤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이라 경험한 차별, 서울 출신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정규직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성인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이 차별의 경험을 조금만 확대시켜 봅시다. 이주 노동자라 경험한 차별, 장애인이라 경험한 차별, 성소수자라 경험한 차별과 많이 다른가요? 놀랍도록 비슷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에게 똑같은 권리가 있습니다. 그가 듣지 못해서, 몸이 작아서, 게이라서, 염색체 이상이라서 권리를 박탈하거나 축소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정상인 것이 드물고 고독한 상태'라는 구절에 밑줄 그은 이유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이 결코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 그게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선 이 세상입니다. 


이 책은 그러나 그저 그런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좀 더 깊이 접근해요. 질병과 정체성을 구분하고 모호한 경계를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봅니다. 인권문제, 차별이나 국가폭력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고민해왔다고 생각했음에도 이 지점에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식증 같은 질병(사망율이 높고 위험한 질병)을 '정체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흔히 얘기하는 장애, 그러니까 청각장애와 같은 경우에 대해서는 나름의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저는 이 차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지요. 심지어 거식증을 정체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단체도 있다고 하니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결국 책은 이토록 다양한 빛깔을 들여다보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아 그들의 삶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해요. 편리에 의해 거칠게 구분지어 놓은 경계에도 무수히 넓은 스펙트럼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게이 부부의 트렌스젠더 자녀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 청각장애인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듣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이라는 바보 같은 가면 뒤에 숨어 진짜 세상을 모르고 살게 마련입니다. 이런 목소리는 계속 나와야 하고 열심히 들어야 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발짝 씩 나아가야 합니다. 


책은 질문합니다. 

이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학적 진보가 장애를 제거하듯이 사회적 진보는 장애를 지닌 채 보다 수월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51쪽 

사회적 진보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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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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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사란 꽤나 어려운 직업이로군요.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끝없는 업무에 지칠대로 지치고, 마음 맞지 않는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사소하지만 중요해 보이는 사소하기만한 업무에 상처 받고 긴장하는 직장인... 이 아니라 천사들. 이들이 <천국주식회사>의 등장인물들입니다. 천사들의 모습이 놀랍도록 우리네 모습과 닮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천사.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있는 '하나님'은 또 얼마나 우리네 그들의 모습과 닮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니까요. 받아들이고 읽어야겠지요? 


이들의 '천국주식회사'는 몇 가지 규칙에 의해 운영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해야 하고 중력의 법칙과 시간 같은 중요한 기본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천사들은 화산 분출을 통제하고 물 관리를 하기도 하지만 주인공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기적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에요. 기적부의 업무는 가히 창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레이그는 그래서 이 일이 좋습니다. 작지만 어느 인간의 삶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자신의 업무를 사랑하지요. 


아직도 크레이그의 첫 기적이 기억난다. 크레이그는 48시간을 투자해 흰개미들이 널빤지를 파먹도록 하여 비실비실한 여자아이가 태권도 시범에서 그것을 깰 수 있게 해줬다. 아이가 때린 널빤지가 박살나자, 기적부가 있는 17층 전체에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83쪽

그는 기적부 안에서 인정받는 천사기도 해요. 그 사실이 짜릿하리만치 행복합니다. 크레이그는 이 일이 인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좋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일상이 엉망이고 연애 사업이 매번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크레이그는 그런 천사랍니다. 


문제는 하나님입니다. 그는 게으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일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독교 방송이라든지 자신의 말을 세상에 전달하는 노숙자 라울과의 대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가 신성에 둘러싸인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어요. 신은 지구와 인간들을 만들 때처럼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이 사실에 경악합니다. 하지만 경악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그들은 기적부의 업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천사들이잖아요. 열혈 신입 천사 일라이자는 직접 하나님을 찾아가 직언을 합니다. 

그런데 아니 이런, 하나님은 "그래? 역시 그렇지? 안 되겠어. 이제 지구를 없애자." 는 결론을 내립니다. 맙소사. 


이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할 일은 어느 허점 많고 게으르고 소심한 인간 둘을 엮어주는 일입니다. 그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도 못한 채 여전히 소심함을 잃어버려선 안 되는 보물처럼 꼭 끌어안고 집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중에도 샘은 자신의 이불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편의점에 한 번 들른 걸 제외하면, 그는 3일 내내 집을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146쪽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로라는 벌써 8,000달러가 넘는 카드 빚을 졌다. (...)던킨 도넛에 매일 커피를 사러 가는 일을 제외하면 그녀가 아파트 방구석을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152쪽 

답답한 천사들. 회사의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기적을 일으킬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두 명의 사랑스러운 천사와 두 명의 사랑하고픈 인간. 이들의 고군분투가 <천국주식회사>입니다. 이 소설은 재치있고 유쾌합니다. 내용은 꽤 심각한데 유쾌해서 좀 혼란스럽기까지 하지요. 지구가 없어진다면? 신의 간단한 선택으로 지구에 꾸린 모든 인간들의 삶이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안하지 않아요. 천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신이 없어져도 상관 없다고 판단할만큼 하찮아보이는)우리 삶을 지키는 천사들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천국에는 정말로 신에 맞서 인간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책을 덮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단 하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자체가 기적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천사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은 인간들의 사랑에 비하면 별 것 아닐지도 몰라요. 천사들이 아무리 엄청난 노력을 들여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해도 각자의 마음이 그냥 구름처럼 지나갈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실제로 많은 순간 그렇게 천사들의 노력이 실패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결국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천국이 아니라 지구, 땅 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었어요.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기적 말이에요. 

그러니 샘과 로라의 사랑이 지구를 지켜낸 엄청난 기적이라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그나저나 한 가지, '천국'이라면서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라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는데요. 그건 그냥 천사 '크레이그'가 맡은 업무 탓이라고 해두면 어떨까요? 

크레이그 자신이 천국 안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너무 진지하게 따지진 말자고요! 


천국은 너무나 드넓었으나, 그중 아주 작은 구석탱이에서 그의 일생 전체를 보내고 있었다. -46쪽




 

그들의 손마디 뼈는 서로 손을 잡았을 때 불편하게 느끼게끔 배치되어 있었다. -137쪽


제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아요. 우리 천사 모두 그런 존재들이죠! 이 모든 게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저에게 의미가 있어요. 당신한테 의미 있는 건 도대체 뭐죠? -159쪽


그가 한 일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을 받는데도 여전히 그걸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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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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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어두침침한 오후에 드러누워 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알 수 없는 곳, 낯선 산장에 떨어진 주인공이 악몽 같은 순간을 보내는데 어떤 경계를 지나면 다시 산장에 떨어진 처음 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되돌려진 시간은 다시 시작된 순간순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앞서 했던 별 의미 없는 행위는 곧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습니다. 무의미한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반복과 환상에 저는 두통을 느꼈었습니다. 만약 그보다 먼저 이 작가, 훌리오 꼬르따사르를 만났다면 혼란이 좀 덜했을까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처럼, 규칙이 있는 것 같기도 혹은 완전히 불규칙한 것 같기도 한 작품들이 몰려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입니다. 정제되고 잘 짜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는 혼란과 몰이해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경이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네요. 


만일 누군가에게 "좋은 건 알았어. 그래서, 대강 무슨 줄거리야?"라고 질문 받는다면 분명 쉽게 답하지 못할 겁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이야기를 하고(<악마의 침>), 짐승이 화자로 변모(혹은 그 반대)하는(<아숄로뜰>) 이야기, 소설을 읽던 주인공이 어느 새 소설의 일부가 되는 이야기(<맞물린 공원>)들이니까요. 이 시점에서 띠지에 실린 문장,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는."을 읽어보게 됩니다(뒤에 언급할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의 한 구절입니다). 민망하긴 하지만 바로 이 문장이 소설을 접한 제 느낌과 무척 흡사하네요. 

그 중에서도 역시 <맞물린 공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이렇게 짧은 단편을 읽어본 기억조차 없습니다. 단 두 쪽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니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한쪽에 곁눈으로 보이는 커다란 공백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짧단 말이냐? 하지만 소설이 끝나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 두 쪽 안에 완벽하게 순환하는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한줄 한줄 읽어감에 따라 주변 현실이 산산조각 나는 야릇한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69쪽, <맞물린 공원>)"는데 과연 제가 그랬습니다. 작가는 이 문장을 쓰면서 그런 희열을 맛보는 독자가 자신의 탄생 100년이 되는 시점,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여기 한국에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앞서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을 들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가가 이 단편으로 본인이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설명한 게 아닐까 하고까지 생각하는데요. 


소모사의 이야기로는 시공간을 철폐하는 방법은 상황과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요하게 접근하다보면 언젠가는 초기 조각상과 자신이 동일해질 것인데, 이것은 중첩과 같은 이중성이 아니라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79쪽,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 
우연히 어느 섬에서 발견한 유물과 두 친구의 이야기예요. 모랑은 유물을 발견한 이후 소모사의 변화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소모사는 유물을 통해 자신이 과거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고요. 끝내 모랑의 피를 바쳐 과거와 접촉하려고 합니다.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을 기원하는 것일 테죠.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진짜 이야기는 소모사의 실패와 함께 시작됩니다. 소모사의 광기가 그대로 모랑에게 옮겨간 듯 모랑은 도끼를 쥐고 문 뒤에 숨어 도끼날을 핥습니다. 이제 모랑이냐 소모사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집요한 광기와 피만 남았고 이야기는 끝나니까요.  


이야기가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더욱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무수히 많은 상징과 비유가 오히려 독자를 자유롭게 만들어줘요. 소설을 읽는 시간, 장소, 각자의 처지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백 명이 읽으면 백 가지 이야기로 기억되겠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주변과 나누고 싶어지나 봅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에 환상적인 세상에서 신나게 놀다오니 드물게 즐겁습니다. 아마 두고두고 들춰볼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습관이 된 것입니다. 앙드레, 습관이란 리듬이 구체화된 형식입니다. 리듬이 우리 삶을 도와주고 받는 요금입니다. -24~25쪽,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아숄로뜰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조용한 모습에 반했다. 무심한 부동성으로 시간과 공간을 철폐하려는 아숄로뜰의 은밀한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92쪽, <아숄로뜰>


나는 보는 것이 무언지 안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면 말이다. 보는 것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무작정 내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46쪽, <악마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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