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러브, 좀비 (리커버)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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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이란 것이 원래 불공평한 것 아닌가. 나는 어머니와 똑같이 목이 찢겨 그녀의 곁에풀썩 쓰러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결국 오늘에서야 모든 일이 벌어졌다. 내 손에 들린 과도엔 이제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피가 섞여 들었다. 우리는 가족이니. 그래, 가족이니 이제 내 피까지 섞인다면 우리는 과도 안에서 다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가 싫었다. 죽어서까지 피가 섞이는 건 싫었다. 그래서 새 칼을 꺼냈다. 과도보다 큰식칼이었다. 과도보다 더 잘, 한 번에 썰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어머니와 아버지를 과도 안에 함께 살게한 것이 뒤늦게 죄송해졌다. 어머니는 죽은 뒤에도자신을 찌른 흉기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인 것이다.
각자 다 다른 칼에 살았어야 되는데. 나는 후회를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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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리커버)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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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을 다물고 온전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산발인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헝클어진 옆머리를귀 뒤로 넘기자 묘한 것이 눈에 띄었다. 얼굴을 좀더 거울 가까이로 가져갔다. 왼쪽 귓불에, 선명한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핏자국이었다. 나는 그걸빤히 보다가,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멀리서 보면 구멍처럼 보였을 정도로 선명한 붉은 점은 쉽게 사라졌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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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리커버)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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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이렇게까지 충동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4층이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 쾅, 쾅, 하는 소음이울렸다. 이모가 생선 대가리를 자르던 소리, 묵직한회칼이 나무 도마를 찍어 박는 소리. 물컹한 생선살의 감촉. 시퍼렇게 뜬 광어 눈깔. 내 목에 17년째박혀 있는 가시. 내 의사를 막는 모든 것들, 입에서나오지 못한 말들은 엉기고 뭉쳐서 가시로 남았다.
그것은 다시 내 목구멍을 틀어막고 여린 부위를 찔러 댄다.
지나온 이미지와 목소리들이 감각을 수놓았다.
나는 소리를 따라 달렸다. 희미한 것이 선명해지는순간을 향해….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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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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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제가 아는 건 한 가지뿐이에요. 지수 씨도 당신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지수 씨는 식물이 잘짜인 기계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준 사람에 대해 제게 말해주곤 했어요. 정원에서 허공에 흩어지던 푸른빛을 지켜보던 지수 씨를 보면서, 저는 그렇게 한 사람의 평생을 사로잡는 기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당신의 마음이 실제로 전부 유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무엇도 지수 씨의 잘못을 해명해줄 수는 없어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레이첼은 말없이 아영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눈빛이 슬퍼 보인다고 아영은 생각했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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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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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여기를 떠날 거라고 생각해요?"
지수 씨는 하루의 질문에 갑자기 멍해졌다가,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지수 씨에게서 늘 발산되던 어떤강인함이 사라진 것 같다고, 지금 그는 약하고 슬퍼 보인다고 느꼈다.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만약의 경우를 이야기하는거지. 이 덩굴은 바깥에 지금 이곳과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야. 우리가 혹시 이곳을 더 지킬 수 없게 되더라도, 이게 있으면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 수 있어."
나는 지수 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꾸 이곳을 떠나는 상황을 가정했던 이유도, 나에게 분해제 만드는 법을가르쳐준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지수 씨는 이 풍경을 보면서 동시에 이 풍경의 끝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에겐 여기 하나면 충분한데요.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곳,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의미 없는걸요."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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