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등진 할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어스름한 실루엣이다. 프랑스의 재무 장관이었던 실루엣 씨는 엄청난 구두쇠라서, 윤곽선만 갖추면 초상화가 다 된 것 아니겠냐며 물감조차 아까워했다지, 실루엣 씨랑 할머니가 만나면 죽이 잘 맞을 텐데. 할머니도 늘‘세상에 났으면 밥값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니까.도대체 밥값이란 건 뭐길래 아끼면 아낄수록 더 버거워지는 걸까? 한 사람이 세상에 나서 먹는 밥값을 다 셈하면 그게 그 사람의 인생값일까? - P43
"글쎄, 난 여기서도 충분히 멋진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네만 악마는 가난을 좋아하거든. 그런 말이 있지. ‘악마는 부잣집에도 찾아가지만 가난한 집에는 두 번 찾아간다." - P40
존재하는 사람은 때때로 잊히지만 존재했는지조차 의문인 사람은 오래 기억된다.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한때 세상에는 다섯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인 성인이 있었다고한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그는 툴툴거리는인간들을 떠났고, 세상은 기묘한 저울이 되어 시소 놀이를 하듯기우뚱거렸다. 세상의 한쪽엔 가난과 굶주림, 다른 한쪽엔 신용카드와 고칼로리 빵, 그리고 그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사람들.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기적을 보였다는 그가 지금여기 있다면 세상은 좀 달랐을까. - P9
이 책은 작년 인문학 글쓰기 활동을 할 때,
한 학생이 선택해서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먹을 수 있습니까?'라는 글을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글은 생각나지 않지만 제목이 강력해서 올해 구입해서 읽었는데
얇은 책이라고 쉽게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담과 구의 삶이 너무 고단하여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읽기를 멈추었다.
20230423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온갖 나쁜 것들이빠져나왔대. 근데 거기 희망은 왜 있었을까.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항아리 안에 있었을까. 이 얘기를 담에게 꼭 해주고 싶었는데 해주지도 못하고 나는 죽었다. 희망은 해롭다.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이 말을 왜해주고 싶었냐면, 나는 아무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죽는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담이 너 때문에, 희망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싶지 않았어. -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