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나는 도전하지도 않고 좌절한 현실주의자였다. 대입본고사 국어시험 작문 주제가 ‘내가 사랑하는 생활‘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썼다. 무슨 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해서 쌓아놓을 정도는 아니어도 꼭 필요한 데 쓸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 그렇게 해서 고생하신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사랑스런 여인을 만나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마흔이 넘어 생활 기반이 잡히고 나면 공부 때문에 그만두었던 그림 그리기를 다시 시작하고, 아들 손을 잡고 일요일 새벽 동네 조기축구회에 함께 나가는, 그런 평범한 인생을 원한다고 적었다. 나름 멋져 보이는 문구로 마무리를 했다. ‘평범한 삶이 아름답다.‘ 점수는 잘 받았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문이었다.
평범한 삶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평범해도 평범하지 않아도, 인생은 훌륭하거나 비천할 수 있다. 인생의 품격은 평범함이나 비범함과 상관없는 것이다. 내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인생을 어떤 색조로 꾸미고 싶다는 소망도 없었다. 그저 현실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