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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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라는 작가의 작품은 여태 읽어본 적이 없다.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읽으며, 아하.. 이 사람이구나! 하고 놀란 부분은, 내가 이미 영화로 본 비밀(秘密)의 작가란 것이었다. 


비밀은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개봉된 그 비밀이 맞다. 히로스에 료코주연의...
엄마와 딸의 영혼이 뒤바뀐다는... 그 영화를 꽤나 재미있게 봤고, 주제곡도 좋아하는지라...
아직도 기억난다. "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그리고, 턱을 쓰다듬는 부분... 아아... 그때의 그 감동이....

음.. 이야기가 또 샜다.

이 책은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원래 내가 추리소설이나 서스펜스, 미스터리 작품을 즐기기도 하지만, 일본 추리 소설은 별로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내게 생각의 전환점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g@me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고, 무려 후지키 나오히토(藤木直人)와 
나마에 유키에(中間油紀恵) 가 주연이다.  


사실.. 유괴라는 소재가 즐거움이나 재미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뜻밖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범이다. 그리고 그걸 게임으로 생각한다. 아, 발상의 전환!

그러다보니 가해자(유괴범)과 피해자 가족사이에 나타나는 긴장감부분은 별로 없다. 대신 랜섬(ransome, 몸값)을 어떤 식으로 받느냐, 경찰의 추적(사실은 없다)을 어떻게 따돌리느냐, 피해자 가족과 어떤 식으로 접촉하느냐에 중점이 두어진다.

사실... 책을 2/3정도 읽었을때. 이 책의 트릭을 알아버렸다. (ㅋㅋㅋ)
그러나, 그래도 재미있었다고 단언한다. 특히 사쿠마의 머리 회전은 매력적일 정도로 뛰어나다. 유괴범이지만... 굉장히 똑똑한 유괴범이었다. 그리고.. 숨겨진 공범 한사람.. 이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음.. 대단해...)

즉, 작가가 얼마나 치밀한 계산을 하며 이 책을 썼는가를... 알게 해주는 부분이 사쿠마 순스케와 가쓰라기 가쓰토시의 심리전 부분이다. 그리고 진정한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인지, 게임의 결말은 어떤 식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직접 읽어 보시라.
결론을 다 아는 추리소설만큼 재미없는 건 없으니까.

오랜만에 보는 추리 소설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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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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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등기보관소의 사무보조원으로 약 50세의 남자다. 그의 취미는 유명인들의 기사를 수집하는 것으로, 약 100명 가량의 유명인들의 정보를 수집해 놓았다.

그는 어느날 문득 자신이 일하는 등기보관소에서 그 유명인들의 인적사항을 빼돌려 자신의 집에서 기록하기로 하고 아무도 없는 등기 보관소에서 서류를 빼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유명인과는 상관없는 어느 여자의 등기부가 한장 껴 있었다. 30대즈음의 젊은 여자로 결혼 한 번, 이혼 한 번... 주제는 이상하게도 이 알지 못하는 여자에 대해 궁금함이 생겼다. 오히려 유명인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 이 여자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한다.


오 하나님, 제가 만일 저 책장 속에 보관되어 있는 백 명 중의 하나, 아니 그보다 덜 유명한 다섯 명의 후보자 중 한 사람이기만 해도 이런 수집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주제는 일단 여자의 주소로 찾아가 보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등기소의 서류까지 위조해서 옛주소 건물에 살고 있는 입주자를 방문해 그 여자에 대해 캐묻는다. 그 여자가 다니던 학교를 알아 낸 주제는 비가 심하게 오던 날, 몰래 학교로 침입했다. 그러나 그 여자가 그 학교를 다닌 건 오래 전.. 창고에서 몇시간을 뒤진후에야 그 여자의 생활기록부를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를 맞고 독감에 걸린 주제가 등기소에 출근해서 다시 그 여자의 기록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그 여자의 기록은 산자들의 기록부 속에는 없었다. 그날 밤 주제는 등기소에 들어가 죽은 자들의 서류를 뒤져 그 여자의 기록부를 찾았다. 그랬다. 그녀는 며칠 전 죽은 것이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주제는 이제 그 여자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공동묘지로 가서 그 여자가 죽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여자는 자살했다. 공동묘지 직원의 도움으로 그 여자가 묻힌 장소를 알아내 그 곳으로 향한 주제는 그 곳에서 밤을 샜다.
 
그리고 아침에 양치기를 만났다. 그 양치기는 주제에게 당신이 찾는 사람은 그 무덤의 주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왜냐면 양치기는 수시로 무덤 앞의 번호표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무덤의 번호판을 바꾸기 시작했는지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네,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알고 싶지 않다고, 말씀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기엔, 물론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하지만, 자살한 사람들이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을게 틀림없소, 선생이 말했던 내 악의에 찬 장난으로 인해서 그들은 더 이상 성가신 일을 치르지 않아도 된단 말일세, 사실 나 자신도, 만약 이것들을 제자리에 꽂아두고자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이름과 출생, 사망일이 적힌 이 대리석판 앞을 지날 때, 어떤 생각이 든다는 것 뿐이야, 어떤 생각이요, 눈앞에 바로 보고 있어도 거짓을 보지 못할 수가 있다는 걸,


주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곰곰히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그 여자의 부모와 전남편 뿐.
주제는 등기소에 출근도 하지 않고, 그 여자의 부모를 찾아가 그 여자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묻고,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의 열쇠와 주소를 받았다. 주제는 그 여자가 살던 집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주제. 그러나 집에 불이 켜져 있었고, 집안에는 등기소 소장이 있었다. 소장은 이제껏 주제가 수집한 유명인의 자료와 주제가 지금까지 조사하던 그 여자의 서류기록을 꺼내보고 있었다. 주제는 이제 등기소를 그만두어야 하나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소장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여자의 기존 기록부를 없애고, 다시 기록부를 만들어 산자로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지난 금요일, 당신이 면도도 하지 않고 출근했을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나, 예 소장님, 전부 다, 예 전부 다, 그렇다면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해 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에 대해 언급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나, 예 소장님, 그럼 내가 뭘 얘기하고 있는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나, 아닙니다 소장님,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 1997, 원제: 모든 이름들)』은 내가 세번째로 읽은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다. 이 책이 2008년 첫출판되면서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와 더불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원제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내용도 『눈먼 자들의 도시』나 『눈뜬 자들의 도시』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원제를 그대로 쓰지 않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 다 읽을때까지... 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주제라는 사람이 왜 이토록 모르는 여자에 집착을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였다. 만약 그 일이 들키면 사회적 위치의 박탈까지로 이어질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일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날밤 등기소에서 몰래 가져나온 서류중에 그 여자의 서류가 없었더라면, 주제는 끝까지 그 여자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집착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다만 수없이 쌓여있는 서류중의 하나였을 뿐....

솔직히 탁 까놓고 얘기해보자면, 이 책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어려웠다. 게다가 저자 서문이나 저자 후기, 혹은 역자 서문이나 역자 후기 조차 없었다. 뭐.. 만약 그런게 있다면 책에서 받는 내 느낌은 상쇄되어 밋밋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다 읽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름이 갖는 의미를....
우리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을 비롯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뭘까... 만약 혼자 산다면 이름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음... 이 세상의 사람들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해보자.

완전한 타인(他人)과 지인(知人), 여기서 내가 쓰는 지인의 의미는 보통 우리가 쓰는 지인이 아니라, 나를 알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저 타인과 구별하기 위해 쓴 말이다.

타인에게 있어 내 존재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내 이름도 무의미하다.
물론 지인들에게 있어서 내 존재나 이름이 의미있고 가치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인들에게 있어 내 이름은 타인과 나를 구별하고, 타인이 아닌 나를 부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뿐이다.

결국 나란 존재는 등기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서류 한 장에 불과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그이하의 의미도 없다. 뭔가.. 굉장히 씁쓸하다. 그것도 살아있을 때 뿐...
죽은 후라면.. 보관된 서류가 삭아 없어지듯, 내가 존재했던 것도,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것도 점점 줄어들어 이 세상에는 티끌하나 남지 않겠지....

내가 가진 이름은 나를 위한 것일까.. 다른 이를 위한 것일까....
내가 가진 이름의 의미는 나를 위한 것일까, 다른 이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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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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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뜬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Lucidez)는 <눈먼 자들의 도시>(1995)의 후속작이다.
본인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후 바로 읽은 작품으로, 사실상 <눈먼 자들의 도시>의 영화에 관심이 생겨 <눈먼 자들의 도시> 책을 구입했었다. 그때, 함께 구입한 것이 <눈뜬 자들의 도시>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이다. 특히 <눈뜬 자들의 도시>는 하루동안 50% 파격세일을 하길래 질렀다.. ㅡㅡ; (충동구매)
그러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백색 질병이 발생하고 난 4년후의 이야기로, 이번에는 시민이 아닌 정부에 중심이 맞춰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난 4년전 온 도시가 백색 실명상태일때 정부는 무엇을 했던가.
철저히 인권을 유린하고, 사람들을 감금하고 죽게 만들었다.
그후 사람들은 백색 질병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정부는 만족스러웠다.
선거일까지는...

선거일 나쁜 조짐이라도 있듯 세차게 쏟아지는 비. 저조한 투표율.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백지표가 75%였던 것.
그후 다시 치뤄진 선거는 더욱 참담헀다. 백지표가 85%이상이 나왔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계엄령을 내렸다.
시민의 의사 표현을 정부에 대한 테러쯤으로 생각한것...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난 한쪽 입술끝이 비스듬하게 말려 올라가는 묘한 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했다.

국가와 정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에서 말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따위의 개념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국가와 정부는 단 1%의 소수의 사람과 기업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걸 위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적절한 선전을 통해 국민을 우매하고 무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백색실명상태에서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눈을 뜬 자들은 자신의 의사를 백색 투표란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건 국가와 정부측에서 보면 확실한 반역의 조짐일 뿐....

계엄령을 내리면 범죄율이 증가하여 불안에 떨게 되고, 도시는 피폐해질거라 생각했던 정부의 생각은 오만했다. 오히려 자율적으로 도시를 안전하게 수호하고 도시를 깨끗하게 만든건 시민들 자신이었다.

제일 가관인 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정부가 스스로 폭탄 테러를 일으켰단 거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국가와 정부가 테러리스트가 아닌가.

국가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선량한 시민 한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본보기를 보인다.
지금이 어느때의 독재 정권시절인가...
파시즘도 나치즘도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간간히 나치즘을 부활시키려는 신나치주의자들의 몸부림이 있긴해도..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짓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의 단면일뿐이다.
누가 민주주의를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했던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존재하지도 않는 현대는 민주주의의 개념조차 희박하다.

이 책이 읽기 쉬운 책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찬찬히 읽다 보면 저자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에서 따온 구절이 눈에 띄기도 한다. 적절한 비유이지만,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부분들은 책을 읽은 후, 아니면 도중이라도 좋다. 조금은 찾아보고 읽는 것도 이 책의 묘미를 한껏 살려줄 것이다.

본인이 읽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으로 <눈뜬 자들의 도시>포스팅을 마칠까 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그곳으로 가서 당신 싸대기를 한 대 올려 붙이는 거요. 안됐지만, 나는 너무 늙어서요, 장관님. 만일 당신이 내무부장관이 된다면, 싸대기를 올려 붙이는 교정방법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요. 악마가 그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하십시오, 장관님. 악마는 귀가 아주 밝아 큰 소리로 이야기 할 필요도 없소. 그럼 우리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가호를 빌어봐야 소용없소. 원래 신은 날 때부터 귀머거리거든.

                                                               내무부 장관과 시장의 대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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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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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ria / 1995)는 영화 개봉소식에 관심이 생겨 원작을 보겠다고 해서 선택한 책이다.

일단 작가 주제 사라마구나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헀다.

본문에는 사람들의 이름조차 없다. 따옴표조차 없다. 물음표도 없다.
다만 마침표와 쉼표만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의 말인지 조차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다.
집중하지 않으면 누구의 말인지 헷갈린다.

처음엔 이런 책의 서술방식에 익숙치 않아 조금 애먹었지만, 눈에 익으니 그나마 수월하게 읽었다.

사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충격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들...

갑자기 눈이 멀게 된다면? 모든 도시가 눈이 멀게 된다면?
그속에서 나만이 눈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쪽이 더 나은 걸까?
아니, 더 나은 쪽이 있기나 할까?
모든 사람이 눈이 먼 상황에서 나 혼자만 볼 수 있다는 것도, 모든 사람들처럼 내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충격일테지..
아니, 충격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겠다....

사람은 시력이란 수단에 대부분을 의존해서 살아간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약하다. 약하기에 인간생활에 적합한 것들을 만들어냈고, 그 것에 의존해 살아가면서 육체적인 능력은 점점 퇴화되어갔다.

그런 상태에서 시력이란걸 잃어버린다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물론 처음부터 시력이 없었더라면 상황은 좀더 다르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인보다 청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

갑자기 눈이 먼 인간은 무력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격리수용소는 어느새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똑같은 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남들을 속이고, 폭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지배하고 또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에 빌붙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인간들은 쉽게 익숙해진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상태에 적응하면서 다시 본성이 드러났다.
나아가 눈이 멀게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란 동물의 본능은 여자들을 유린하고...
구역질이 났다.
솔직히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젠장....
남자들이란 겨우 생각하는 게 그거냐?
구역질 난다.

격리 수용소를 탈출해 나온 사람들에게 도시는.. 쓰레기였다..... 이미.
인간의 문명이란 이미 필요없었다.
깨끗한 물도 전기도, 먹을 음식도, 음식을 익혀먹을 불도 없다.
아니, 그걸 떠나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생존조차 불투명하다.

아아.. 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난 아마도 꼼짝도 못하겠지...
한발 내디딜 용기조차 없겠지....

두려운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린 인간들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만, 세상을 보고 있지 않기도 하다.
즉, 자신이 보고 싶은 건만 본다.
아니, 자신에게 있어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인간은 그 자체로 눈먼 자들이다.
마음의 눈이 먼 자들...
나 역시 마음의 눈이 멀어 버린 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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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육후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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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련님』은 내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중 두번째로 읽은 작품이다.
일단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가  나와 나쓰메 소세키와의 첫만남이었다.

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같은 경우,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다. 솔직히 하이쿠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기에.. 그리고 현학적인 말로 뒤범벅된, 그리고 그런 말 속에서 풍자를 끌어낸 점이 매력적인 소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워서 두번째 읽을때도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ㅡㅡ;

그에 비하면 『도련님』은 몇시간만에 술술 읽어내려갔다. 물론 분량도 적지만, 내용자체가 재미있어 금방 읽게 된 것이다.
그러나 코믹한 요소뒤에 감춰진 놀랄만한 해학적 요소와 풍자를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이 소설이 이야기 하고픈 것이 가벼운 것 만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즉, 정의가 언제나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진실! (현실적으로 말이다)

시코쿠 근처의 작은 마을과 학교는 대략 이 세상의 축소판이요, 만나는 사람들은 이 세상 온갖 인간군상의 집합이다. 따라서 많은 등장 인물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 아~~ 역시 그렇군.. 이라고 하며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어딜가나 무모하게 나서는, 그리고 그걸 정의라고 믿는 인간(도련님)이 있기 마련이고, 어디가나 속을 모르는 너구리같은 인간(교장)이 있기 마련이고, 속과 겉이 다른 인간(빨강셔츠 교감)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자 옆에 붙어 아첨하는 인간(미술선생) 이 있기 마련이고, 정의파인 인간(멧돼지선생)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한 인간(끝물호박 선생)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여기 나오는 학생들 집단은 집단이란 우월성을 등에 업고 한사람을 괴롭이는 인간집단이다. 개개인으로서는 감히 앞에도 나서지 못하는 객기어린 인간들...

정의로운 도련님과 멧돼지 선생은 응징에는 성공하나, 결국 사회의 벽에 막혀 응징은 자기만족으로 끝난다. 결국 두사람이 할 수 있었던 건 개인적인 응징뿐...
사회란 그리 만만치 않은 곳이다.. 라는 걸 느끼며 도련님과 멧돼지 선생은 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읽고 나면 입가에 번지는 미소와 함께 약간의 씁쓸함도 느끼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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