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젼 - 뉴 루비코믹스 1117
니시다 히가시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을 하면서 미친 짓을... (쿨럭)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의 경우 워낙 변화에 민감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데다가 딱히 그러고 싶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나의 소중한 뭔가를 걸고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그건 내가 돈이나 명예, 사회적 지위 나부랭이 같은 것도 없는 사람이라 걸게 없어서 그렇겠지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부모형제를 두고 사랑을 위해 떠난다는 것조차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 기본적으로 그런 건 천벌받을 일이라 생각해서 - 위험한 사랑이란 것 자체가 싫기도 한 성격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때때로 책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서 쯧쯧 하고 혀를 차면서도 그런 열정이 괜시리 부러워지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랑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저게 정말 현실로 가능한 일일까 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다. 사랑이란 때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하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역시 나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

신참변호사 아사노는 업무차 필리핀에 갔다가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하고 만다. 그건 바로 마약 운반책의 혐의가 씌워져 항변 한 번 못하고 형무소로 끌려가게 된 것. 말은 안통하지, 여권 등 신분을 증명할 것은 어디론가 사라졌지.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처한 아사노는 깊은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송되는 차에 함께 타고 있던 타나카란 남자의 도움으로 함께 탈주하게 된다.

은인...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가 솔솔 풍기는 타나카. 하지만 이역만리 필리핀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없기에 아사노는 타나카와 함께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한다. 딱 봐도 전직 아니면 현직 야쿠자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타카카가 불편하긴 해도 이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 아사노는 타나카와 거리를 두려고 하면서도 그에게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자신을 채찍질한다. 빛과 어둠. 자신들은 사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한 남자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살아온 한 남자. 어찌 보면 참 안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러하기에 아사노 역시 타나카와 거리를 두고자 노력을 한 것이겠지. 하지만 끌림이란 건 이성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기 일쑤다. 처음에는 불안해서 어쩔줄 모르던 아사노가 어느새 도망자 생활이 즐거워진 것도, 타나카가 아픈 자신을 내버려두고 여자랑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나고 슬퍼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겠지.

타나카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엔 어쩌다 보니 함께 탈주했는데 함께 다니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아사노가 귀여워보이기 시작하고 그를 돌봐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던 그가 아사노만큼은 곁에 두고 싶어한 것도, 아사노의 혐의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데리고 다시 도망을 간 것도 바로 그런 끌림때문이 아닐까. 작은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던 날들은 어느때보다 평온하고 즐거웠지만 일본에서 그를 데리러 왔을 때 정을 떼듯 매몰차게 굴던 것은 아마도 아사노에 대한 진심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그는 사는 곳이 다르다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인연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쌍방이 인연을 끊겠다고 독한 생각을 하면 모를까, 어정쩡한 이별은, 서로가 원치않는 이별 방법은 인연을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타카노가 자신에게 내밀었던 손을 떠올리며 그 손을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며 다시 필리핀으로 건너간 아사노의 행동은 어찌보면 어이없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어리버리 귀여운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미친듯이 웃었지만...) 타카노란 캐릭터는 니시다 히가시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 중 가장 귀여운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결말부분을 보면서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선을 넘은 건 아사노쪽이니까. 내 표현으로 하자면 미친 짓을 했으니까. 아사노가 가끔은 후회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유약해 보여도 뭔가를 결심하면 강해지는 아사노같은 사람은 그가 자신을 걸고 탈취(?)한 그 행복을 잘 지켜나갈거라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괴이쩍은 이야기, 즉 요즘으로 말하자면 도시괴담이나 학교괴담 등의 이야기 중 몇퍼센트가 진실한 이야기일까. 그런 이야기를 접해보면 그 진위여부를 가릴 수나 있을까 싶은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만도 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아파트에는 괴전화 괴담이 떠돈다. "내 몸이 지글지글 타고 있어"라던가. 솔직히 웃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아파트는 옛 화장터 위에 지어진 곳이다. 그런 전화가 누구에게 온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온 게 맞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실제로 그 아파트의 터가 화장터였으니 죄다 지어낸 말이라고 하긴 어렵다. 화장터였던 곳이었으니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한 무슨무슨 학교는 옛날에 공동묘지였다, 라는 소문도 있었다. 실제로 운동장에서 관뚜껑같은 나무판자가 나왔다고도 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도 어떻게 보면 학교 괴담의 일종처럼 보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럴수도 있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슨 말이냐고? 인류가 처음 지구에 나타나 살고 죽고를 반복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땅에 묻혀서 어쩌면 우리가 딛고 다니는 땅 거의가 사람이 묻힌 땅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세상에 떠도는 괴이한 이야기가 뜬소문만은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 중 괴이한 이야기는 옛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것이 요괴의 소행이나 귀신의 소행으로 여겨진 건 아닐까. 최첨단의 과학력으로 무장한 현대 역시 과학의 힘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들이 여전히 많은데 옛날은 오죽했을까 싶다. 그렇다 보니 뭔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 부조리한 일이나 불합리한 일이 생겼을때 그 원한을 돌리기 위한 대상으로 요괴나 귀신의 존재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항설백물어』의 두번째 이야기인『속항설백물어』는 요괴나 괴이의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을 이루지만, 전작의 경우 요괴나 괴이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이번 작품의 경우 괴이한 일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조망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마타이치 일행과 비슷한 신분인 무숙인등 최하층민의 고달픈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악당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역으로 이용당하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고와이」나 무사 집안의 개망나니 아들에게 의미없는 죽임을 당해도 그 원한을 호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시치닌미사키」역시 같은 맥락으로 짚어볼 수 있다.

병오년생 여자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미신때문에 희생당한 시라기쿠의 이야기가 담긴「히노엔마」를 읽어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지 않나 싶다. 미신이든 속신이든, 이용하는 자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설령 부당한 이유라도 공격한 구실이 된다면 개의치않으리라. (245p - 히노엔마 中)

시치닌미사키편에 등장하는 미사키 고젠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치닌미사키 전설이 옮겨오면서 와전되고, 그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가에데님이 미사키 고젠이 된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원성을 돌릴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덤터기를 씌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에 딱 맞는 것이 와전된 전설이었다. 전설은 사람과 함께 이동하는 법이다. 기억 속에 똬리를 틀고 사는 요물이 그 기억을 가진 자와 함께 별개의 장소에서 살아남는 일도 있는 것이다. (650p -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中)

또한 잔머리 모사꾼 어행사 마타이치를 비롯해 그와 같은 길을 가는 일당들의 숨겨진 과거와 원한 등도 밝혀져 더욱 흥미로워졌다.「노뎃포」에서는 신탁자 지헤이,「고와이」는 산묘회 오긴의 숨겨진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오긴의 양부인 등명 고에몬도 실제로 등장해 커다란 역할을 한다. 마타이치의 경우, 젊은 시절의 마타이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해도 극히 적은 정보뿐이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야 마타이치지 싶은 생각도 든다.

이 모든 것을 기술하는 것은 통속작가 야마오카 모모스케이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들의 한 판 연극 속의 주인공이 되어 기기묘묘한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야마오카 모모스케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로 빛과 어둠을 교차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마타이치, 지헤이, 오긴, 고메몬 등은 이미 어둠속에 발을 담그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모모스케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때때로 어둠에 발을 담그며 그쪽으로 건너가고픈 충동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모모스케는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모모스케에 있어 마타이치 일행은 아무래도 신비로운 존재로 비칠 수 밖에 없다.

모모스케는 신비한 힘의 개입에 관해서는 몹시 바라기는 하나…… 역시 회의적이다. 잘 풀리는 것도, 나쁘게 풀리는 것도, 모든 것은 우연인 것이다.
그러나 모모스케는 요즘 들어 그 우연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마타이치나 오긴이 깔아둔 함정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우연이고 어디까지가 의도적인 것인지. 옆에서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우연을 부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괴이이다.
(363p - 후나유레이 中)

하지만 역시 마타이치 일행도 인간이다. 아무리 신기한 기술을 가졌다 해도 그건 인간의 능력 내에서의 일이다. 워낙 출중한 한 판을 짜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이들이 인간의 능력을 넘는 기술을 보인다면,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정말 초자연적인 사건이라면 그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작품정도로 남겠지만, 등장인물이나 사건들 모두 현실위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특히 후반부의「히노엔마」,「후나유레이」,「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그리고「노진노히」는 각기 독립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장치로 얽혀 있다. 단편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보자면 각기 기승전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구성은 워낙 치밀해서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이 작가의 능력은 어디가 한계점일까.

개성있는 등장 인물, 괴이 뒤에 숨은 인간의 양면성과 사악함,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마타이치 일당의 암약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특히 괴이의 비밀을 풀어내면서도 또한 그 괴이를 이용하여 그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재주는 비상하다. 그렇다 보니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작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과연 진실을 그대로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숨겨두고 만들어진 진실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이다.

요괴나 신령부류라면 기원하여 진정시킬 수도 있을 것이나,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자칫 잘못하면 생활에 해를 가하는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괴라고 설명하는 편이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기에 오히려 낫다. (373p- 후나유레이 中)

마타이치가 펼치는 함정 또한 어느 것이나 요괴를 내세운다. 못다한 미련이나 안타까운 마음, 억울함, 분통, 질투, 투기, 슬픔이나 증오까지. 온갖 괴로운 현실이 모두 요괴의 소행으로 마무리되어 원만하게 매듭지어지고 마는, 마타이치의 일은 대부분 그러한 작업이다. (391p- 후나유레이 中)

이 소설의 배경이 에도시대란 것을 감안하고 보자면 굳이 사실을 들춰내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보다 괴이 뒤에 진실은 숨기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타이치 일행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이라기 보다는 악당의 처리와 뒷세계의 뒤틀린 질서를 바로잡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상반된 기분에 사로잡힌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할 수 없는 죽임을 당해도 어디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분통이 치밀어 오르지만, 이런 것을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는,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주는 마타이치 일행의 활약을 보면서 속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떤 괴이한 사건이라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그 모든 것을 벌인 사람밖에 모를지라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デビルズハニ- (コミック)
나츠메 이사쿠 / リブレ出版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과 아이의 사랑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 - 이라고 해봤자 고교시절 즈음 - 첫사랑을 할 무렵엔 별로 겁나는 게 없었다. 오직 그 사람만 보고 그 사람만 생각했으니까. 물론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사람만 보고, 그 사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의식하고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괜시리 쭈뼛거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말에 휘둘리기도 하고, 이 사람을 계속 만나도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그건 어른이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더이상 순수하지만은 않으니까. 아이처럼.

스가야는 통칭 히로미츠 - 실제 이름은 토시미츠 - 선생님이라 불리는 인기만점의 고등학교 체육교사이다. 어느날 스가야는 교감과 학생주임에게 불려가 한가지 지시를 받게 된다. 그건 학내의 양키 집단의 리더격인 요시노를 감시하란 것. 이런저런 나쁜 짓을 하는 모양이니 잘 지켜보란 것이겠지. 그러나 요시노는 소문과는 달리 솔직한 성격에 자신을 감시하는 스가야에게도 무척 호의적이다. 단 하나 싸움을 한다는 것이 문제인데, 먼저 싸움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요시노를 꺾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먼저 덤비고 요시노가 그걸 받아주는 모양이다. 그외의 소문은 근거없는 게 대부분이고, 소악마란 별칭도 학생들이 아닌 학교에서 붙인 것이란다. (이거 어쩔!)

감시란 명목으로 요시노와 자주 만나게 되면서 스가야는 요시노 특유의 반짝임에 끌리게 된다. 또한 요시노의 말투에서 예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단 느낌을 받게 된다. 도대체 어디에서? 오호라,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군. 그러니 요시노가 스가야에게 보인 호의가 그제서야 설명된다. 예전 작품중에도 동경이 사랑으로 변하던 내용 - 유도부 선후배 이야기 - 이 있었는데 이것도 그와 비슷한 흐름이다. 그러나 캐릭터 자체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설정이 비슷한 정도로만 생각하면 된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건 역시 스가야의 캐릭터 덕분이라 생각한다. 왠지 모르게 요시노에게 자꾸 끌려 무심코 키스를 해버리고 혼자 당황해서 어쩔줄 모른다거나, 그러고 나서 요시노의 반응이 어떨지에 대해 무지하게 고민을 하고, 그러면서도 요시노를 만지고 싶어하고... 뭐랄까, 이런 캐릭터에 느끼함이 더해지면 완전 변태같은 캐릭터가 될텐데, 스가야는 의외로 순진해서 귀여운 캐릭터가 된달까. 가라데로 다져진 튼실한 근육맨이 귀여워 보이는 건 바로 그런 성격에 있다.

요시노 역시 굉장히 귀여운 캐릭터인데 싸움짱인걸 제외하면 평범한 고교생이다. 동생을 아끼고,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이니까. 하지만 스가야와의 관계에선 조금은 무뎃포... 쿨럭. 저돌적인 면이 있다. 마음이 순수해서 그런지 스가야와 자신과의 관계만 생각한달까. 스가야의 경우 남자끼리, 교사와 학생 등등의 요소때문에 맨날맨날 갈등하느라 혼자 속으로 밀당을 무한 반복하는데 말이지.

그러던 어느날, 요시노가 동생을 지키기 위해 불량배들과 함께 사라지자 스가야는 많은 갈등을 한다. 선생이 학생을 때리면 바로 해고. 그렇다고 요시노를 모른체 할 수도 없고. 결국, 스가야는 폭주! 

 

바로 이런 모습으로...
정의의 편, 토끼맨으로 등장! 푸하핫.. 나 이 장면에서 미친듯이 웃었잖아. 요시노는 구해야겠고, 맨얼굴로 나서지는 못하고.. 갑자기 흑집사에서 세바스찬이 사슴 박제를 뒤집어 쓰고 나타나 '사슴이옵니다' 라고 했던 장면이 기억이 났다. 아, 정말이지...

이렇듯 자신의 주변과 주위 시선에 신경쓰면서도 요시노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스가야와 선생님이라면 뭐든 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요시노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는 귀엽기 그지없다. 나츠메 이사쿠 작품중 최강의 귀요미 커플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두 사람 사이에 큰 갈등의 요소가 없는 것도 특징적이다. 순탄하게 흘러간달까. (그렇다고 심심한 건 아니다. 그게 매력적이란 거지)

근데, 문제는... 그림체가 좀.. 예전만큼 귀엽지가 않다. 뭐랄까, 좀 날림이 심해졌달까. 아, 아쉬워라... 연재 작품수가 많아져서 그런지, 그런 부분이 좀 안타깝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흰 눈(雪) 속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그 눈이 녹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눈은 언젠가 녹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 속에 감춰진 진실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인『백은의 잭』은 흰 눈으로 뒤덮인 연말의 스키장을 배경으로 한다. 눈이란 것은 추리소설에서 밀실이나 클로즈드서클 트릭을 이용할 때 자주 이용된다. 내가 읽었던 소설 중 최고로 치는 눈 밀실 트릭은 요코미조 세이시의『혼징 살인사건』이다. 순백의 눈으로 뒤덮인 별채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 눈이란 것은 족적 등을 비롯해 흔적이 남기 쉽다. 따라서 발자욱 하나 남겨지지 않는 눈 밀실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긴장감을 주고, 또한 그 트릭이 얼마나 절묘한지가 밝혀지면서 큰 스릴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 바론 그런 작품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중 눈과 관한 것이라면 역시 마더구스가 이용된『백마산장살인사건』과『명탕정의 규칙』에 등장한 단편이 먼저 떠오른다. 전자는 3년전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후자는 눈덮인 산장 자체가 밀실이 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은 어떨까. 이 작품은 1년전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과 관련이 있기에 '복수'란 요소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특정한 스키장을 무대로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클로즈드서클 트릭의 요소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무척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폭파범의 협박이라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드디어 큰 거 하나 터뜨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키장의 코스 어딘가에 폭탄을 설치하고 몸값을 내놓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재미를 더한다. 회사의 수익성과 범인에게 지불할 몸값을 저울질해 사건을 덮어버리고자 하는 스키장 경영진과 아무것도 모른채 희생당할지도 모르는 스키장 손님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스키장 관리 책임자, 그리고 몸값을 건넬 3명의 스키장 직원, 1년전 있었던 끔찍한 사고의 유가족인 부자, 폐쇄된 스키장과 인접한 마을의 관공서 직원들, 스키장의 스릴을 즐기러 온 손님들 등 등장인물이 꽤 많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들 등장인물들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다. 1년전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리에 부자의 경우 '복수'라는 동기가 있지만 굳이 폭파라는 위험천만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좋고, 스키를 좋아하는 노부부의 경우에도 어떤 동기도 없다. (돈이 목적이 아닐 것이라는 건 스위트에서 묵는다는 것만 봐도 안다) 스키장과 인접한 마을의 관공서 직원의 경우 스키장에서 폭파사고가 나면 자신들에게 더 불리할테니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스키장 경영진이나 직원들 역시 스키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면 스키장이 폐쇄될테고 직장을 잃게 되니 딱히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몸값으로 수천만엔의 돈을 받으면 상관없겠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된다. 그럼 등장하지 않는 누군가가? 이러니 맥빠지는 거지. 물론 이게 함정일 수도 있지만. (笑)

게다가 스토리는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처음의 방향성을 잃었다. 폭파범의 협박, 기발한 몸값 건네기 등으로 속도감과 긴장감을 주던 이야기가 의협심과 호기심으로 몸값 건네기에 초를 치는 인물의 등장, 위험구역으로 몰래 들어간 스키어들 등이 일을 꼬이게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자면 시선을 분산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많이 드러난 부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여기저기에 복선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거다' 하는 부분이 없었달까. '그래 그랬군'하는 정도라고 하면 될 듯 하다.

가장 이해가 안되는 건 역시 범인들의 동기였다. 허탈했달까.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결말이 너무 한번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바람에 속결로 끝을 맺었다라는 느낌만 준다. 옛날 동화처럼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처럼 무자비한 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처절한 범행 동기를 가진 등장인물이 등장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서스펜스를 기대하고 이 책을 잡은 독자들이라면 실망할 여지가 많다. (나의 경우 확실히 그렇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역자의 후기이다. 역자의 후기에 스포일러가 너무 많다는 것과 아무리 자신이 번역한 작품이라도 이렇게 칭찬만 나열하는 건 좋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후기부터 읽었다간 낭패볼 뻔 했다. 그리고, 이 소설이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난 딱히 그말에 동의 못하겠다. 환경운동가들 중 이렇게 과격한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고, 내용을 봐도 두어번 환경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결국엔 설원에서의 스키와 스노보드의 속도감과 짜릿함을 더 많이 이야기하니까. 그러니 그걸 가지고 환경문제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또한 진짜 범인을 알면 환경운동이나 스키장의 환경 파괴 이야기는 전혀 맞지 않단 걸 알게 된다. (苦笑)

이 책은 일본에서는 2010년 10월에,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10월에 나왔다. 다분히 겨울을 겨냥하고 쓴 의도가 보이는 작품이지만, 왠지 작가의 취미생활을 반영한 듯한 소설이란 생각이 미묘하게 드는 건 왜일까. 이제까지의 작품 대부분이 괜찮은 평가를 받는 대작가라서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 열손가락 안에 꼽는 작가이지만, 이 작품은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3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家族) : 혈연과 혼인 관계 등으로 한집안을 이룬 사람들의 집단.
식구(食口) :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며 사는 사람.

가족과 식구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위와 같다. 요즘은 가족이란 말의 범위가 부모자식, 형제지간, 친족의 범위를 넘어 이해관계나 뜻을 같이 하여 맺어진 사람등으로 확대되어 같은 회사나 조직에 속한 사람이나 더 넓게는 지구촌 한가족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게 보자면 식구란 말은 참 소박하다.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란 말이니까.

하지만 요즘은 식구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부모자식간이나 형제자매간에도 학교나 직장생활 등으로 인하여 따로 사는 경우도 많고, 같은 집에 산다해도 얼굴을 마주하며 밥을 먹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10여년 이상을 나가서 살았기 때문에 가족과는 일년에 단 몇차례 한 밥상을 마주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에는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만큼 그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서른한살의 대학교 조교 하루미와 열두살의 사촌동생 쿠루리는 같이 산지 이제 1년 남짓이 되었다. 그동안은 얼굴도 모르고 살았던지라 함께 사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지만 마주앉아 밥을 같이 먹고 도시락을 싸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게 되었다. 사촌동생을 돌보는 것이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가는 하루미와 말 대신 음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쿠루리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친근감 있는 시간으로 채워져간다.

『다카스기家의 도시락』3권은 하루미와 쿠루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하루미의 전공인 지리학과 관련한 필드워크와 세미나, 쿠루리의 학교 생활, 하루미 - 코사카 - 하지메의 본격적인 삼각관계 구도와 더불어 쿠루리의 비밀도 등장한다.

일단 하루미의 전공과 관련한 내용은 세미나와 필드워크, 학회 등이 있다. 세미나에서는 폭포수 맞기를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반찬 하나씩을 준비해 같이 밥을 나눠먹는 장면이 있다. 도시락 반찬이란 것은 혼자 준비하려면 힘깨나 써야할 일이지만 하나씩 준비하면 겹치는 것도 별로 없고 각 가정의 맛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소세지 모양도 각 가정마다 다를테고. 그러고 보면 난 빗금넣은 소세지만 먹어본 듯 한데, 일본은 모양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별별 모양으로 다 만드는 모양이다.

필드워크에서는 헤보밥 만들기란 것이 있었는데, 헤보란 벌의 유충을 뜻한단다. 벌의 유충이라, 그래 벌레다. 나도 어린 시절엔 메뚜기 튀긴 것을 먹은 적이 있지만,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의 일이고 커서는 눈도 안돌렸는데, 벌 유충 밥이라니. 번데기밥을 생각하면 좀 맞아 떨어지려나? 어쨌거나 새로운 걸 알았다. 벌 유충도 먹을 수 있다는 걸. (아, 그렇다고 내가 먹을 건 아니고)

학회의 경우 코사카 논문 발표와 관련있는 에피소드이지만, 흥미로운건 나고야 명물 술이나 나고야 토박이 음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회에 참석한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그런 게 필요한 것이겠지. 그 지방 음식만큼 인상을 남기는 것도 드물테니 말이다.

쿠루리는 여전히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수련회때문이었다. 쿠루리의 성격상 수련회가 마음편하지는 않았겠지만 하루미가 잘못 싸준 도시락이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쿠루리의 인기도가 올랐달까. 피곤해하긴 하지만 슬쩍 미소를 보이는 쿠루리의 모습에 나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또한 쿠루리와 미츠루의 야나기바시 중앙시장 견학도 무척 흥미로웠다. 쿠루리를 좋아하는 미츠루의 데이트 신청이긴 했지만 쿠루리 입장에서는 맛있는 참치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였으니 서로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낸 셈이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쿠루리가 걱정되어 쿠루리를 몰래 지켜보던 하루미가 좀더 어른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보호자라도 지나친 간섭은 옳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겠지.

코사카와 하루미, 그리고 코사카를 좋아하는 하지메의 이야기를 보자면 코사카는 하루미를 좋아하고 있고, 하루미는 코사카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듯 하다. 하지메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고. 이런 어른들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마음을 손바닥에 올려놓은듯 다 꿰뚫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애들취급만 하고 있고 말이지. 이런 걸 보니 웃음이 피식하고 흘러 나왔다. 어른들은 애들이 아무것도 모르는줄 알지만 애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니까.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알차게 엮여져 있지만 3권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쿠루리의 출생에 대한 비밀과 하루미가 여전히 가슴 아파하며 마음 속에 담아둔 과거의 일, 그리고 미츠루와 하지메의 관계 개선이다. 하루미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무척 충격적이었겠고, 쿠루리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겠지. 게다가 과거에 저지른 실수마저 가슴을 계속 짓눌러 왔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 이야기는 쉽게 풀릴 방법이 있었다. 하지메가 고민하던 미츠루와의 관계에 대해 조언해 주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떠올리게 되었으니까.

가족이란, 진정한 가족이란 어떤 식으로 구성되게 되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기본적인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마음이 아닐까. '이 사람은 내 가족'이라는 걸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피로 이어진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등돌리는 게 흔해빠진 이 세상에 혈연이란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란 마음이 없다면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 놓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한다는 생각보다는 가족이기 때문에 더 아끼고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하루미와 쿠루리, 하지메와 미츠루. 이들은 한 가족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로가 진심으로 서로를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이들은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같은 걸 먹는다는 건 하나의 의사(意思)다. 가족을 이어주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는 것. 우리들이 어떻게든 해왔던 것. (93p)

같은 음식을 먹으면 겉모습도 비슷해지고, 성격도 비슷해진다. 결혼한 사람들이 점점 닮아지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쿠루리와 하루미는 함께 밥을 먹게 된 것이 이제 1년 남짓이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위하면서 조금씩 닮아갈 것이다. 이들은 가족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