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츠키 8
타카야마 시노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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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은 도대체 누가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가끔씩 그런 의문이 들곤 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고, 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별한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도대체 어떠한 힘이 이 세상을 움직일까 하는 생각을 해도 뾰족한 답이 안나온다. 과연 신에 필적할 만한 힘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개개인의 염원과 욕망이 어우러져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움직인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본인의 생각일 뿐, 실제로 자신만의 세계란 것은 없다. 상상이나 망상 속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모든 이들의 세상이자 어느 누구도 소유하지 못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츠키는 테이텐이란 존재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다.그러나 테이텐은 신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천망에 따라 사람과 요괴가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것을 즐겁게 관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망을 고쳐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백지인 자나 천망을 흩트러 놓을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테이텐은 천망을 다시금 자신의 방식대로 고쳐 놓는다. 무녀 공주였던 긴슈가 테이텐에 대항했다가 모조리 리셋된 또다른 아마츠키가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날의 기억을 가진 자는 백지인 자인 토키와 몇몇 요괴들, 그리고 긴슈를 모셨던 츠루우메 뿐이다. 이전의 백지인 자이자 현세에서 아마츠키로 넘어간 콘은 리셋된 세계에서 아무일 없다는 듯 살고 있다. 테이텐의 힘은 아무도 넘을 수 없는 것일까. 자신에게 대항하는 존재가, 아마츠키란 세계를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자가 등장하면 다시금 모든 걸 리셋해 버리는 테이텐의 힘에는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알려면 시간이 좀 더 흘러야 할 듯 하다. 다만 8권을 통해 리셋되기 전의 아마츠키에 대한 의문은 많이 풀렸다. 긴슈가 왜 뱀의 저주를 받았는지, 강력한 힘을 가진 뱀 요괴 뱌쿠로쿠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히와라는 작은 요괴가 어떻게 천좌인 본텐이 되었는지. 그리고 현세와 아마츠키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이렇게 보자면 아마츠키는 본텐의 말대로 비오는 밤에 뜬 달처럼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의 세상일지도 모르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마츠키』8권에는 앞으로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란 복선이 깔려 있다. 토키를 돌봐주던 스오우의 죽음과 관련된 의문, 하시타의 딸 리리와 관련된 음모 등이 현세의 이야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듯 하다. 이미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서 머리가 뽀개질 것 같은데,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더욱더 큰 비밀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예고하는 8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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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플레이 3
쿠로사키 렌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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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과후 플레이』1권의 표지는 마성의 츤데레 미소녀, 2권은 수줍음 많은 만화 소녀였는데, 3권은 갑자기 육덕진 누님이라뉘. 아마존 재팬에서 이미 봤던 표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이지. 혹시 양호 선생님? 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고교생이란다. 발육이 남다른. 흐음.

 

어찌 되었거나 일단 플레이해볼까?

 

3권 역시 전편과 마찬가지로 4컷 만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이 되는 건 같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방과후 다중 플레이랄까? 오해는 마시라. 내 말은 3권에는 등장인물이 꽤 많이 나온다는 말이다.

 

1권의 경우 마성의 츤데레 미소녀와 게임 덕후 소년, 2권은 수줍음 많은 만화 소녀와 귀여운 만화 소년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3권은 표지의 누님과 (도저히 소녀라고 말 못하는 제 심정을 이해해 주시길) 이상한 사투리를 쓰는 소년이 중심 인물이지만 1권에 나온 커플과 2권의 만화 소년, 그외 몇몇의 남자애들이 더 나온다.

 

게임 덕후 커플의 경우 여전히 방과후 플레이를 즐기고 있으며 조금 더 친밀해졌다. 만화 소년은 커플인데 혼자만 나와서 좀 아쉽아쉽. 이 누님과 사투리 소년의 경우 3학년으로 보이는데 공부는 안하고 게임 얘기 등이 주된 대화다. 하긴 이 작품에서 게임 이야기가 빠질 순 없지. 어쨌거나 이 누님이 완전 덕후시다. 온갖 게임기를 다 가지고 있으며 게임 중에도 별난 게임을 즐기는 캐릭터랄까. 가장 오덕한 커플이 이 커플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사투리 소년의 사촌 여동생이 등장하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인데, 작가님의 표현 수위가 선을 넘을락 말락.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욧! 물론 따지고 들자면 여고생들의 야릇한 포즈를 문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 작품이 그걸 노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 삼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린애는 좀...

 

차라리 남자애들의 플레이가 낫다. 호오, 또 오해하실라. 마작하는 남자애들 이야기다. 물론 보는 시선에 따라 야릇해질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될듯 하다. 오히려 각 4컷 만화의 제목이 그걸 부추길 뿐.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내가 보기엔 누님과 사투리 소년 (내가 보기엔 같은 학년임)이 커플이 되는 과정이나 그후 전개 과정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발육이 엄청나게 남다른 - 이상한 상상 마시길. 웬만한 남자애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다 - 누님이 사투리 소년과 커플이 되면서 나약한 이미지로.. 으. 차라리 처음의 쎈 이미지를 밀고 나가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왜, 여자들은 솔로에서 커플이 되면 수줍음쟁이가 되는 거냐규! (내가 여자라서 이게 싫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난 확실히 느꼈다. 난 남녀 커플의 이야기에 그다지 매료되지 않는다는 걸. 어쩌면 이 작품 자체가 남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서 이상 미묘 야릇한 그림에 고개가 휘휘 저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보다 수위가 높은 남남 커플의 이상 미묘 야릇한 그림을 더 좋아하는 걸 보면 난 뼛속까지 부녀자(腐女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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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레스 월드 Endless World - 뉴 루비코믹스 740
Jaryu, Dokuro 글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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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가 생판 남인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대체로 사회에 적용되는 통상적인 룰과 자신의 가치관 등이다. 친분이 있다면 자신과 상대방의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만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그후에는 언제든 그 사람을 생각할 때 그것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중심에 있는 토시미츠란 인물은 내 기준으로 볼 땐 최악의 인물이다. 늘 약에 절어 있고, 툭하면 싸움질을 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나의 관점만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작품이었다. 토시미츠를 기억하는 두 인물인 이츠키와 류의 눈을 통해서 바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처음엔 삐딱하게만 보였던 토시미츠란 사람의 다른 면이 보였다.

 

20대초반의 이츠키는 무자비한 싸움꾼에다 삶에 대한 열정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5년전 우연히 만난 미네야마는 이츠키의 삶 자체를 바꿔놓았다. 오늘 당장 지구가 멸망해도 상관없다던 이츠키가 삶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란 것을 배운 것이다.

 

그렇게 평온히 살아 가던 어느날 이츠키는 식당을 찾아온 불량배들을 혼쭐내주다가 자신의 과거와 닿아있는 류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이츠키와 류가 닿아있는 과거는 바로 토시미츠. 이들은 토시미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가 가진 토시미츠와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츠키는 이츠키대로, 류는 류대로.

 

비록 좋은 기억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싶은 과거는 아니었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의 파편을 모아 그들은 지금을 살아내고, 토시미츠가 살아갈 수 없는 미래를 살아낼 것이다. 더이상 토시미츠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토시미츠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이젠 토시미츠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겠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사람에 대해 늘 슬픈 기억만을 떠올리며 사는 것보다 그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아주는 게, 약오를 만큼 잘 살아주는 게 정말 그 사람을 위한 것이란 걸 이 둘은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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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로 가자 5
츠다 마사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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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빨리 큰다. 물론 갓난쟁이 시절의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지만, 사춘기 즈음에는 몸과 함께 마음도 쑥쑥 성장해 나간다. 요즘의 경우, 아이들의 발육 속도가 남달라 겉모습은 어른인데 속은 여전히 아이같은 아이들도 많지만, 대체로 비슷비슷하게 성장해 나간다. 그건 소우비와 미치사토도 마찬가지. 어리기만 했던 아이들이 폭풍성장하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현대라고는 하지만 에도시대이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아이들보다는 정신적 성숙이 더 빠르다는 게 좀 다르긴 해도 말이다.

『에도로 가자!』5권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미치사토를 바라보는 소우비의 관점이 많이 달라졌단 것이고 - 더불어 쥬로도 폭풍성장을 했다 - 나머지 하나는 미치사토와 관련된 커다란 비밀이다. 호오, 커다란 비밀. 원래 지체 높으신 분의 자제들에겐 뭔가 하나 비밀이 있단 말이지. 이런 건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설정인데다 인위적이란 게 좀 거슬리긴 하지만 또 이런 게 없으면 재미가 없단 말이지. (후훗. 독자의 이중성)

일단 미치사토와 소우비의 이야기부터. 소우비는 겉모습만 봐서는 미소년 (삑) 선머슴같은 아이지만, 일단은 ('일단은'은 뭐냐?)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성장이 빠르다. 게다가 오빠 키오우가 이런저런 교육 -신부교육? - 을 시키는 중이기 때문에 조금씩 여성스러워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미치사토와의 혼담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미치사토가 달라보이게 되었나 보다. 그런 소우비의 심경 변화가 무척이나 귀엽다. 물론, 소우비는 미치사토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결혼 상대로까지는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지.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하지만 에도시대의 경우 남아의 경우 15세면 관례를 올렸다. 즉, 성인이 된다는 의미. 그렇게 보자면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듯 하다.

설렘과 두근거림, 그리고 불안함이 공존하는 소우비의 마음과는 달리 미치사토는 여전히 꼬마같긴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실제로 미토가의 차기 번주가 될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속은 꽉 찼다. 관례를 올린 쥬로에게 기쥬로란 이름을 내려준 걸 봐도 그렇고, 소우비가 살던 곳으로 놀러갔을 때 옛마을을 가보자는 제안을 하는 것도 그렇고... 몸에 배려가 배어 있는 인물이랄까. 신분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솔직히 말해서 '난 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근데 소우비와 기쥬로는 폭풍성장을 하는데, 얘는 왜 아직도 난쟁이 똥자루마냥 쪼그마하냐고... 훌쩍 크면 멋져질 것 같은데...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지내는 것도 잠시. 미치사토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닥치게 된다. 5권 도입부에 갑자기 현재의 쇼군인 이에치카와 소우비의 오빠 키오우의 어린 시절 만남에서 왕위쟁탈전, 그리고 복귀해 현재의 쇼군이 되기까지의 일이 나오는데, 여기엔 그 이유가 다 있었다. 이 일이 미치사토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지... 그냥 가만히 두면 아무 문제없을 것을, 꼭 일부러 벌집을 쑤시는 자가 나온단 말이지. 전반적으로 이야기 흐름이 가볍게 진행되는 만큼 권력암투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 일로 미치사토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현재의 길을 크게 벗어났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명한 미치사토는 이 일을 잘 극복해 내겠지. 소우비도 있고, 기쥬로도 있고, 키오우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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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얼른 주문해야하는데..요즘 뭐한다고 주문할 시간도 없네요. ㅠㅠ

스즈야 2012-01-26 10:27   좋아요 0 | URL
난 당분간 책주문은 못할듯.. 3월에 좋은 결과 있어야 책도 주문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리뷰도 열심히 쓸텐데...
 
별을 지키는 개 별을 지키는 개 1
무라카미 다카시 지음 / 비로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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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를 기른지 얼추 20년이 다 되어 간다. 물론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온동네 개들을 주무르고 다니긴 했지만 - 귀여워했다는 뜻입니다 - 내 가족으로 개를 기른 건 한 20년 정도이다. 개를 기르면서 늘 느끼는 건 개들의 시선 끝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라 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스토커처럼 나를 쫓아다니는 녀석들. 그건 내가 운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조수석에 앉혀 놓으면 - 안전을 위해 이동가방에 넣은 후 안전벨트를 착용시킵니다 - 나만을 쳐다본다. 까무룩 잠에 빠졌다가도 제풀에 놀라 얼른 일어나 나를 지켜보는 선하디 선한 눈망울.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웃겨서 난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다. 때론 귀찮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생기지만 - 사고를 칠 때 - 대개의 시간은 녀석들의 체온에 난 포근함과 행복감을 동시에 느낀다. 부드러운 털을 만지고 있으면 마음 속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개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간만큼 난 그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면 신경을 제대로 못써줄 때도 많은데, 녀석들의 눈에는 원망의 빛이라곤 없다. 오히려 내가 아는 척을 해주면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표정으로 격렬한 꼬리 흔들기 신공을 보이는 녀석들. 이런 녀석들이 있어 난 외롭지 않다.

무라카미 다카시의『별을 지키는 개』에 등장하는 중년의 아저씨와 해피라는 이름의 개 역시 나와 우리 개들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어린 딸이 길거리에서 업어온 녀석이지만 아저씨는 녀석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매일매일 산책을 시킨다. 아저씨의 말버릇은 "고맙게 생각해라"란 것. 아저씨도 참...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면서 꼭 그렇게 아닌 척 하시기는.

이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꼭 닮아 있다. 조금 무뚝뚝한 아버지. 그래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별로 없지만 가족들의 의사를 늘 존중하고 가족을 위하는 삶을 살아간다. 대화가 적은 건 아무래도 중년 아저씨의 특징이겠지만, 의외로 개와는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에서 퇴근하고 돌아와도 엄마들은 돈 이야기로 시작해서 돈 이야기로 끝나는 대화를 하지, 자식들은 머리 굵으면 인사만 하고 제 방으로 쌩하고 사라지니, 현관앞에서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돌아온 양 반겨주는 개가 귀엽지 않을 수 없겠지. 이런 걸 보면 중년 아빠들의 외로움이 개로 인해 보상받는 건 아닐까 싶다.

이렇듯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가 했지만 아저씨에게 청천벽력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병이 있는 데다, 실직. 그리고 이혼. 딸의 가출. 아저씨에게 남은 건 고작 왜건 한 대와 해피라는 이름의 개 한 마리 밖에 없다. 아저씨는 해피를 데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여행을 한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모든 걸 잃었지만, 아저씨 곁엔 늘 해피가 있었다.

참 신기해. 모든 게 다 없어졌는데. 옆에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행복한걸. (52p)

그러나, 여행 도중 만난 아이에게 지갑을 털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후, 해피에게 갑자기 이상증상이 나타나 아저씨와 해피는 동물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짐을 개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 팔아버린 아저씨는 해피만 있으면 행복하다 했다. 하지만 결국 돈이 다 떨어지게 되고 지병마저 악화되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게 되는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가 잠든 줄 알고, 언제쯤이나 깨어날까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해피.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간 1년 후, 해피 역시 아저씨의 곁으로 가게 된다.

죽음을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개는 아저씨가 잠든 줄만 알고 깨기만을 기다린다. 동물이라면 본능인 생존욕구가 강할 텐데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녀석을 보니 문득 시부야역 앞에 있는 하치의 동상이 떠오른다. 하치의 반려인 역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하치는 늘 교수님을 기다리던 시부야역으로 향한다. 비록 해피와 하치의 상황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다.

바보같아. 개들은 정말 바보같아. 어쩌면 그렇게 한없는 사랑을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걸까. 나도 우리집 개들을 사랑하지만 내가 주는 사랑에 몇 백배나 되는 사랑을 녀석을은 나에게 전한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그런건 상관없다. 그저 곁에 있는 것으로, 쓰다듬는 한 번의 손길에 행복해 하는 녀석들을 보면 난 늘 고맙고 미안하다. 해피의 아저씨 역시 말버릇은 "고맙게 생각해라"였지만 실제로는 해피에게 고마워란 말을 늘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져 가슴이 짠해지고, 눈물이 핑 돌고,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건 뒤편에 수록된 <해바라기>에서 더욱더 그랬다. 사회복지사 오쿠쓰씨가 등장해 전혀 다른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무연고자로 죽음을 맞은 아저씨와 해피의 장례를 치뤄주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해피의 사연을 추적하면서 오쿠쓰씨가 떠올린 추억 속의 개의 이야기를 보면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별로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늘 자신을 지켜주던 녀석. 마지막 순간에도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듯 공을 물고 있던 녀석.

개들은 사람보다 훨씬 작은데, 정말 작은데 어디에 그렇게 큰 마음이, 큰 사랑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두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먼저 보낸 네 녀석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그중 첫번째 길렀던 바우는 내가 임종을 지켜주지 못했다. 4개월밖에 안된 녀석이었는데, 내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전날, 그 힘겨운 몸을 이끌고 내 방으로 찾아왔던 녀석. 그때 내 체온을 나눠졌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지금도 든다. 하지만 후회와 아픔은 곱씹을수록 더욱 커지기만 한다. 그래서 난 지금은 녀석들의 마지막 순간보다 녀석들이 나에게 전해준 행복과 사랑의 순간들을 기억하려 한다. 그래서 미안해라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고마워. 날 사랑해줘서. 날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먼훗날, 우리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날 마중하러 떼지어 달려와 줄 너희들의 모습을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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