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인과 결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늘 그렇듯이 첫사랑은 모든 면에서 서툴다) 지금의 연인(가장 친한 친구의 오빠, 부유하고 자상한, 모든 여성들이 갈망하는 완벽한 남편감)을 만나 결혼하지만 옛 애인을 우연히 만나고 그를 잊지 못해서 생기게 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상당히 진.부.한 이야기. 결론도 진부하게 얼마나 자신이 남편을 사랑했는지를 깨닫고 남편에게로 돌아가는 결론. 진부하지만 디테일은 살아있고 늘 그렇듯이 33세 여주인공의 심리를 잘 꿰뚫고 있기에 중후반부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을 읽고 보니 로맨스 소설을 읽은 느낌이 들 정도다. 에밀리 기핀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때려치우고 전업작가로 나선, 아이 셋을 키우는 여성 작가인데 언제까지 20대의 사랑, 30대의 결혼만을 이야기할런지. 언제즘 제니퍼 와이너 같은 폭넓은 화제로 다가올 수 있을지. 로맨스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재닛 이바노비치도 이 정도는 아니던데..에밀리 기핀의 작품은 점점 실망스러워진다.
아니타 슈레브의 작품을 처음 읽다. 조종사가 죽자 그 아내가 남편의 이중생활을 알게 된다는, 제목처럼 진부한 줄거리로 시작되는 소설이지만 문법책을 보듯 반듯한 문장이 계속 읽게 만들더니(그래서 최근작이 아니라 중세 소설을 읽는 느낌도 든다) 끝내 결말 부분에 가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배반과 배반으로 얽힌, 우리가 과연 어떤 한 사람을 정말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계속 품게 만드는 작품이다. 엄청나게 팔리고 평도 좋지만 글쎄 그래도 너무 진부한 소재가 아닌가 싶다.
여성 작가들의 칙릿에 질려 남자 작가 작품으로 닉 혼비의 작품을 고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똑같은 장소에서 자살을 결심한 네 사람의 이야기인데, 닉 혼비 특유의 위트는 별로 느껴지지 않고 네 명의 주인공에게도 그다지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 소설이었다. 미성년자와의 스캔들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티비토크쇼 진행자 마틴, 중증장애아들을 뒀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년 여성 머린,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괴로워하는 피자배달원 제이제이, 언니의 실종으로 인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십대 문제아 제스. 그나마 머린에게 가장 공감이 갔는데. 결국은 90일만 더 살아보자는 제안이 성공한다는 이야기. 아무리 힘들어도 석달만 석달만 힘을 내서 살아간다면 길고긴, 험난한 인생살이도 견딜만 하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겠다. 각자의 문제를 혼자만 안고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 타인과의 소통, 우정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해야한다는 메시지나 긍정적 결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 다소 실망스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모두 머린의 대사. -What I've come to realize over the years is that we're less protected from bad luck than you could possibly imagine. -If you don't go out, and never meet anyone, then nothing happens.
짧은 분량 때문에 읽기 시작한 책. 그러나 분량이 짧다고 항상 책이 빨리 읽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했던 이언 매큐언의 난해한 문장이 많이 간단해졌다는데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용은 별 것 없고 말이다.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가서 첫날밤을 실패로 보낸 남녀의 이야기인데, 대부분이 신혼여행 첫날 이야기이고 극히 일부분이 과거회상, 마지막 일부가 남자 주인공이 살아온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인생에서 '만약 그때 이렇게 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는 생각이라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서구의 60년대의 상황이 잘 나와있다지만 내가 거기에 공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도 이언 매큐언, 이언 매큐언 하길래 기대를 많이 하고 읽어서 그런지 실망이 꽤 크다. 역시 내 영어실력이 부족한 걸까. 아무래도 심리소설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작품의 대부분이 실패한 첫날밤 이야기라니 너무 따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암튼 이래저래 별 것 아닌 이야기를 길게 길게 늘여쓰는 작가들의 재주도 대단하지 않나 싶긴 하다.
역시 재밌다. 얽히고 섥힌 사건들을 따라가다보면 힘겨운 일상도 잊혀지게 마련. 라스베가스 배경이 좀 나와서 재밌었다. 이 소설의 주 배경인 뉴저지에 있는 아틀랜틱 시티는 무시하면서 라스베가스는 다들 가고 싶어하더군. 이 시리즈를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자동차 이름이 실명으로 나온다는 것. Civic, Explorer, Sentra, Hyundai, Ferrai, Mazda..등등 차에 대한 이미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약방의 감초같은 룰라의 정신없는 대사들도 재밌고. 뚱뚱한 흑인 여자를 보면 혹 룰라가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근데 항상 멋지게 나오는 모렐리나 레인저는 절대 상상이 안 된다. 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