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재밌어지는 로알드 달. 찰리와 초콜릿 공장보다는 트윗이, 트윗보다는 마틸다가 더 재밌다. 트윗은 분량이 적어서 아쉬운데 마틸다는 분량도 넉넉하고 나름대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괜찮다. 아이들 책인데도 뒤의 내용을 궁금해하면서 읽고, 예상할 수 없는 뒷 이야기가 기대되다니 놀라운 경험이었다. 무식한 부모, 사악한 교장을 골탕먹이는, 복잡한 어른들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마틸다가 무척이나 귀엽다. 티비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마틸다네 가족을 보면서 의미심장함을 느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니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마틸다가 묘사하는 어른들은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존재들로 나오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책 읽기 좋아하고, 자신의 영특함을 뽐내지 않고 침착하게 어른들을 골탕먹이는 마틸다가 좋다. 마틸다가 내 주변의 사악한 존재들도 없애줬으면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완전 동심으로 돌아갔군.
제목이 좀 그렇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인 'In her shoes'가 괜찮았던 기억(영화보다 훨씬 재밌다)이 있어서 읽다. 처음에는 그냥 뚱뚱한 여자이야기인가보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재미있었다. 결국은 허리우드식 해피엔딩이 되지만 그 과정은 항상 예상을 뒤엎는다. 잘 되어간다 싶으면 또 일이 엄청나게 벌어진다. 캐니라는 여주인공의 살아있는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이다. 단순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후에 극복하는 과정이 너무나 디테일하고 리얼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 때문인 듯하다. 그런 고통을 겪었으니 백마탄 왕자를 만나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든다.
'하나'라는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생생해서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와의 갈등을 시작으로 남자친구가 없어서, 멋진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멋진 남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려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진솔하게 나온다. 경제적으로는 자립적이나 끊임없이 완벽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그녀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모두 20대의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더랬지..하지만 멋진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도, 멋진 남편의 아이를 낳아도 고민은 계속되고 갈등은 계속된다. 그것이 인생.. 30대의 '하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후반부의 결말이 좀 흐지부지해서 약간 실망스러웠다. 용두사미 격이다. 결말 전까지는 그래도 꽤 흥미진진한데 회고체, 편지글 형식의 결말은 아무래도 뒷심이 좀 약하다. 'Prep'에도 한국인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역시 한국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여주인공이 좋아하는 남자가 서울에서 일을 몇 년 하는 걸로 나온다. 한국인 친구라도 있는 걸까. 굳이 소설마다 한국을 언급하는 걸 보면.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유명해진 로렌 와이스버거의 두번째 작품. 하지만 역시 비슷하게 쓰려니 뒷심이 부족한 듯하다. '악마는~'에서는 그나마 자립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소설 주인공은 맨날 게이 삼촌 덕을 보고 운이 늘 좋고 우연히 멋진 남자를 만난다. 주인공 베티가 은행일을 그만두고 삼촌 덕에 파티플래너 일을 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맨날 파티가 열리고 흥청망청 노는 인간들이 많이 나온다. 파티플래너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는 별로 안 나오고. 결말에서 베티가 파티플래너 일을 그만두고 로맨스 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에서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환타지를 봤다면 과장일까. 화려한 직업을 가진 여성이 나오고, 전형적인 악녀가 등장하고, 왠지 결말이 예상되는 이야기가 그녀 소설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왜 이 책이 전작에 비해 관심을 못 끌었는지 알겠다. 이런 내용을 읽느라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가.
신기하게도 국어로 읽었을 때랑 느낌이 거의 비슷하다. 모두 번역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 주인공들의 미세한 감정의 떨림을 잡아낸 '키친'. 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소설에는 가족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고, 돈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현실감각이 없다는 건데 그래서 일본소설이 인기라니 그동안 우리에게 가족에 대한, 현실의 삶에 대한 강박관념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오락가락하게 되고, 전부 비슷비슷하게 느껴져 흥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평론가 강유정은 그녀의 첫 평론집 '오이디푸스의 숲'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오리나 바나나, 그리고 에이미(모두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이군.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질렸다.)는 실연(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포함되겠지)이라는 것이 단지 개인의 우울한 기억이 아닌 누구나 있을 법한 인생의 흔적이라고 넌지시 가르쳐준다. 문제는 그들은 단지 사랑과 실연에 대해서만 가르쳐준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국면에 사랑이나 실연만 있지는 않을 테지만 그녀들은 끊임없이 실연과 불륜, 어긋난 사랑만을 탐색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들의 소설에는 서사가 아닌 유사 반복적인 사건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다른 말로 그녀들의 소설에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나 심오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그녀들이 구축한 쿨의 라이프 스타일은 삶의 실체가 아닌 포즈로 전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