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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평점 : 
떨리는 손으로 초판을 손에 잡았을 때, 몇 번이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으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다시 읽어도 처음 그대로의 느낌을 간직한,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아마 계속해서 이어지는 ‘안개’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몇 장 더 읽고 나서는 ‘혹시 에코의 자서전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마구 피어났다 주인공 잠바티스타 보도니(일명 얌보)의 방대한 지식들(인간 백과사전!) 한쪽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문학적 인용, 책 곳곳에 나열되는 개인 소장품 혹은 자료들
심혈관 계통의 쇼크로 쓰러진 뒤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을 겪게 되는 얌보는 공적인 기억, 백과사전적인 기억은 온전한데,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억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의사가 이름을 물으면, 그는 자기 이름을 말하는 대신 이름과 관련된 세계 문학의 유명한 문장들을 떠올린다 입을 열었다 하면 어디선가 읽은 문장들이 튀어나오고, 글을 쓰면 주옥같은 명문들의 짜깁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이든 고서점 주인이 ‘종이 위에 그려진 기억’이 아닌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고향 솔라라로 떠나 겪게 되는 이 무용담은 정말이지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방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아직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책이라 더 이상 언급하는 건 죄악이겠다)
기억의 고향 솔라라, 그곳에서 발견해내는 기억은 얌보 개인의 것만이 아니다 조국 이탈리아가 겪었던 역사의 한 장면이다 결국 얌보의 시간 여행은 개인적인 체험이 아닌, 이탈리아의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재조명하는 역사로의 여행인 것이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은 에코의 역사 지식보다는 문학적 지식이 총동원된 서사라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에 대한 경이는 끝이 없다
내가 읽은 문장 가운데 가히 최고라 꼽을 수 있다 앞으로도 더 건강하게 즐겁게 유쾌한 문장을 많이 남겨주셨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이다
이렇듯 훌륭한 글을 읽게 해주신 움베르토 에코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