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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 - H.O.T 이후 아이돌 팬덤의 ABC ㅣ 이슈북 8
이민희 지음 / 알마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주말이 지나면 농구와 배구 선수들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교실을 들썩거리곤 했다. 어제 어떤 경기를 다녀왔는데 뒤통수를 직접보았다거나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는 이야기로 가득해서 끝날 줄 모르게 이어졌다. 다음 경기를 체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던 중학교 시절, 한쪽에서는 떠오르는 가수들을 한 명씩 좋아해 열심히 편지를 쓰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비교적 소심했던 나는 그냥 라디오 노래만 테이프에 연신 녹음하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중에 제일 기억나는 일은 우리반에 한 아이가 밥을 굶을 정도로 심각한 고민을 해서 무슨 일인가 선생님도 직접 나서야 했는데 이유인 즉, 좋아하는 가수가 낼모레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차도 참 많이 나는 십대 여중생이 한 가수의 결혼소식에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한달이 다 되가도록 시무룩해서 다녔다. 나중에는 얼른 커서 그 가수가 이혼하면 당장 찾아가서 (물론 곡을 한편 써서) 결혼을 해 버리겠다고 하는 결심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아마 그 가수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친구도 아마 잘 살고 있겠지
짧고 빠르게 생생한 핫이슈를 다루는 이슈북 8번째 <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2013.3 알마)를 읽어보니 우리나라 팬들의 역사와 현실을 두루 보고 지난날 이제는 선배가 된 나같은 이모팬이나 아줌마팬들이 보기에도 입이 떡 벌어진다.
더 많이 노출됐고 과감해졌으며 다양해졌다.
고등학교때에 기억나는 반 친구 하나는 공부도 상위권이라 선생님도 야간자율학습을 빼먹어도 될 만큼
자신만만한 아이였는데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매일 가는 곳이 바로 좋아하는 가수의 집이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집앞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오길 반복하면서도 매일 아침이면 자랑을 늘어놓았다. 봤네 못봤네 부터 인터넷이나 SNS처럼 소식이 빠르지 못했던 시절이니만큼 졸업할때까지 했던것으로 안다. 그러나, 요즘처럼 발빠르다 못해 눈도 귀도 초고속시대이니 뭐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내는 방법 또한 상상을 능가한다. 오빠를 좋아하는 - 빠순이-로 순진하게 편지를 써서 남긴다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라디오에 신청하는 것을 넘어 팬까페란 까페개설에 사진, 동영상, 콘서트 티켓 대량구매는 기본이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돈과 시간과 열정을 아끼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도를 지나친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생팬- 가수의 사생활을 좇는 팬이 아니라 사생활을 빼앗는 셈이다
정말 좋아한다면 지켜주고 조용히 바라만 보던 시대는 이제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타들의 이야기를 내가 알고 남이 알고 거기다 남들이 모르는 것은 나만 알아야 한다. 사생활을 모두 알기 위해 택시를 고용해 시종일관 따라다니고 사진 찍고 그것도 모자라 몰래 핸드폰을 개설까지 그러면 행복해지는지.. 나의 관심을 갖는 스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까지 모두 뻇는 사생팬의 모습은 이제 좀 그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그들은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다.
국내팬 뿐아니라 해외팬들도 한류의 열풍과 함께 세계적이다. 한국가수의 노래를 좋아해 남미의 어느 소녀의 일과는 마치 국내 여학생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글을 배우고 한국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와서 대학에 다니겠다는 칠레소녀는 무작정 한국가수의 화려한 무대가 좋다고 한다.
한편, 이제 좋아하는 가수가 연기를 하면 덩달아 뮤지컬 무대를 찾는 일도 잦아진다. 얼마나 빨리 매진되는가가 기사화될 정도로 팬이라 불리는 그들에게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것도 없어졌다.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해서 꾸준히 응원하고 기다린 사람을 팬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오를 붙들고 오매불망 언제나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지 기다리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속전속결로 끝나버린다. 음반시장도 예전에 비해 빠르게 나오게 또 금방 사그라진다. 나역시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모든 일을 접고 관심을 두는 아줌마팬이다.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모처럼 설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래 거기까지뿐이다. 지나고 보니 한 때 그러다 말 추억이 되기도 한다.
팬픽이나 덕후와 같은 다소 걸끄러운 그들만의 문화가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다보니 아이들이 생각하는 연예인들, 그리고 1318인질경제라는 문화산업의 이면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옳은 일인지 새삼 의문이 생긴다. 좋아한다는 데 못하게 할 수 없는 노릇인 걸 부모입장에서 어떻게 잘 그들을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