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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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정근"


보스 원숭이의 말에 주위의 새끼 원숭이들이 끄덕이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는 동안 나는 교단의 의자에 앉기도 했다가 창가에 서 있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살폈다. 정교사들 중에는 이런 때 스리슬쩍 조는 사람도 있다지만 기간제 교사인 우리들한테 그런 사치는 있을 수 없다. 정교사라면 학교가 감싸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사정없이 짤릴 뿐이다.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나쁜 소문이 돌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일하는 건 싫지만 역시 먹고는 살아야 한다.

비정근의 첫 인상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님의 작품이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비정한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초반에 무감각이랄까 조금은 시니컬한 그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실은 추리작가가 꿈이라는 그에 대한 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상대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지는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의미도 없이 믿는 시늉만 하는 것보다 건강에 훨씬 좋거든요. 정신 건강에요."
"저기, 얘들아. 인간이란 약한 존재야. 그리고 교사도 인간이고. 나도 약해. 너희들도 약해.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어던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눈물을 그칠 줄을 몰랐다.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라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그런데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작은 힌트 하나 하나를 찾아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도 참 멋있었지만,

아이를 믿어주는 교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참 멋있었다.

또 비정규 교사라서 그런지, 그의 어떤 성격인지는 몰라도

한 발짝 떨어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객관적이고도, 조금은 아이 편인 그의 모습은 

책을 보는 내내 날 유쾌하게 했다. 


"아래를 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지? 학교 운동장에도 있고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달리는 차 안에도 다 사람이 타고 있지. 너희들도 저 아래로 가면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 작은 존재인 한 인간의 다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배에 흉터가 있거나 말거나, 세상 전체로 보자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런 사소한 일 하나로 웃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항상 너희들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니야. 야노의 다리가 느리다거나 나카야마의 배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 따위 다들 금방 잊어버려. 그런데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는 거,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것을 생각하란 말이야. 어떤 일이건 도망치면 안 돼.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물론 나쁜 짓은 아니야. 하지만 보살피는 이상 책임도 져야 해. 자식한테 밥만 먹이고 그 자식이 어떤 식으로 클지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하는 부모님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그런 부모들 많아요."
"그래서 요즘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 거야."

 

어쩌면 그는 비정규직이라 불량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불량한 교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도망쳐서 해결 될 일은 없다고 말해줄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음을 말해줄 사람,

때론 못난 나를 응원해주고, 때론 나의 못남을 꾸짖어 줄 수 있는 사람.

미쳐가는 이 세상에 이런 교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학생이라면 이런 교사에게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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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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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플레이스" 

이 책의 첫인상은 예쁜 표지였다. 한 소녀가 농장과 같이 보이는 배경에서 은색 가면을 쓰고 서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한 소녀의 이야기이고, 어떻게 보면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늦잠을 자는 날에는 정말 울적했다. 울적함. 우리 엄마가 늘 사용하던 단어다. '우울함'보다 더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나는 24년 내내 울적했다. 
"안됐지만 새로운 살인 사건은 늘 생기기 마련이란다. 라비"
나는 몸을 웅크린채 접시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침울한 기운을 내뿜었다. 침울함. 이것도 엄마가 자주 쓰던 단어였다. 다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만큼 도가 지나친 울적함을 표현할 때 사용했다. 공격성을 지닌 울적함이라고나 할까. 
나는 늘 이런 추억에 특별위험 지역을 표시하듯 '다크 플레이스'라는 낙인을 찍어 묻어두었다. 
"그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누구도 그런 풍파가 닥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테지. 바로 '그날'. 뭔가가 틀어진 거야"

 

다크 플레이스는 온 가족이 어느 날 살해당하고, 살아남은 소녀 리비 데이가 오빠인 벤 데이를 살인자로 지목한 후 이십여년이 지난 후에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조금 회상적이고, 조금은 조심스러운....

 

살아남은 리비 데이는 벌서 성인이 되었지만, 일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여기 저기서 들어온 후원은 이미 끊겼고, 파산 일보 직전에 몰린다.

 그러던 중에 '킬클럽'으로부터 가족들을 유품을 팔라는 제의가왔고, 그곳에 간 리비는 사건을 재수사 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 밤에 거둔 성과는 호주머니에 든 돈뭉치와 저들도 나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깨달음뿐이었다. 
"고전적인 추리 사건이었거든요. 수많은 가설이 있어서 흥미로웠죠. 게다가 당신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크리시도, 뭔가를 일으키는.......어린아이들이 존재했죠. 그 점이 유독 관심을 끌었어요."
라일은 여전히 나를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뭔가를 일으키는 어린이라뇨?"
"일을 실제보다 더 크게 만드는 존재들이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중대한 결과를 일으키는 영향력이 있어요. 그 점이 흥미로와요."

살아남은 아이 리비는 손버릇이 안 좋다. 물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라일이 일종의 '횡령'을 하자 그가 더 좋아진다. 오빠의 과거에 대해 조사하다가 알게 된 크리쉬도 자신과 같은 '빌붙는' 성향이 있음을 알고, 그녀가 훔쳐 가도록 한다. 

초반에 과거의 기억이라든가.... 자신의 집에 대한 것은 다크플레이스였고, 울적한 기억이었고, 봉인된 기억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크 플레이스가 그냥 플레이스가 되어가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모든 게 가설이죠. 그래서 '미스터리'인 거고요!"
리비는 언제든지, 가능할 때마다 불운을 예언했다. 패티는 그런 버릇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이미 나쁜 일은 일어나버렸고, 앞으로 더 나빠질수도 있었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열심히 가위질을 해서 끝까지 잘랐어도, 결국 혼자 남았다. 작은 집에 직업도,
가족도 없이 천 두 조각만 들고서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엄마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와 데비 언니가 죽어갔을 때, 모든 것이 끝나고 유용하지 못했던 엄마의 삶이 끝났을 순간을 떠올리자, 분노는 이상한 연민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자식에게 가질 법한 그런 연민이었다. 최소한 엄마는 노력했다. 마지막 날까지, 어느 누구보다도 힘겹게 애를 썼다. 이젠 내가 그런 사실 속에서 평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할 차례였다. 
마음 속 다크플레이스에서 멀리 떨어져 머릿속을 평안하게 유지했다. 비명 소리도, 총성도,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도록 그저 고요함에 귀 기울였다. ........
그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구태여 내가 누군지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자로 남길 원했다. '저기 저쪽'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여자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고, 화자도 리비였다가 벤이었다가 엄마 패티로 변한다.

각자의 시점에서 '데이네'가 그려지고 그들의 상황이 드러난다. 라일의 말처럼 이 사건에는 '뭔가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존재했다.

오빠를 살인자로 지목한 리비가 그랬고, 자신이 작업한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몰은 크리쉬가 그랬고,

오빠를 놀려먹는 미쉘이 그랬고, 어린 나이에 임신한데다가 벤의 유산에 눈이 멀어 그의 동생을 죽인 디온드라가 그랬고,

그런 디온드라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십여년을 옥살이를 한 벤이 그랬다.

 

이 책을 보면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벤과 토비는 무척 닮아있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서 옥살이 한 것도 닮았고,

정황으로 인해 죄인으로 몰렸다는 것도 닮았고..

어린 나이에 옥에 가게 되었다는 것도 닮았다.

 

이 다크 플레이스라는 소설의 마지막은...

어둠뿐이었던, 부정적인 기억 이었던.. 그 집이 그 농장이.

그저 어느 평화로운 가족이 사는 집이 된 것이다.

 

벤은 결국 모든 죄가 벗겨져 감옥을 나오게 될 것이고,

리비는 온 가족이 오빠에게 살해 당한 살아남은 아이 리비가 아닌 저기 저쪽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여자가 되었다.

 

책을 보기 전, 이미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영화를 본 것 같다.

한꺼풀 한꺼풀... 풀려가는 이야기에 이미 내 머릿 속에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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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 예옥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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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나는 이방인의 눈으로, 1세기 전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관찰은 스웨덴 사람을 넘어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미국인 등의 시선으로 확장되었다. 
패권의 시대, 한국은 '역사의 약자'였다. 내가 서구인들이 남긴 책을 읽으면서 점점 한국에 정서적인 공감대를 갖게 된 것은 '조상'이라기 보다 '약자'로서의 한국이었다. 

 

이 책은 한국인으로서의 한국도 있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또는 조선의 모습이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냉정과 정열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평온 속에서 냉정을 잃지 않을 수도 있으며 격노할 줄도 안다.-할버트

 

이 책은 주로 구한말에 한국에 오게 된 외국인들이 쓴 글에서 시작된다. 인용이 많아서 한국인이 본 한국인의 모습보다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인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외국인이 본 한국인의 모습이 참 새롭다.


"한국인은 싸움을 할 만한 심각한 이유가 없는 한 싸움을 싫어하는 민족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한 없이 온순 하지만은 않다. 이들은 호랑이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사람들이다. 만약 애초부터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주먹에는 주먹으로" 상대했더라면, 두 민족 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일본인들의 그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었을는지도" 몰랐다.
한국에서 본 일본인의 인상은 일본에서 받은 그들의 인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여기서야 비로소 일본의 잔인함과 냉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본은 서구식으로 개화된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렙스트가 다음과 같이 펜을 움직여 강자 중심의 역사에 저항했지만, 당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약자를 옹호하는 목스리는 공허하게 울릴 분이었다.
역사의 바퀴는 이런식으로 지금까지 굴러왔던 것이다. 강자는 내키는 대로 별의별 일을 다 해온 반면 약자는 비명에 대한 메아리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구한말의 한국, 또는 왜곡 된 한국에 대해 나올 때면, 역시 일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일본에 대해 써진 부분에서 통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싸움을 싫어하는 민족이나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끝을 보는 한국. 그런 한국인들이 주먹에 주먹으로 대응했다면, 큰 싸움이 났을지 몰랐도 일본인드의 그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키스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말해 주자, 그 일본인은 여전히 분개하며 말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우리 군부는 미친개와 같아요!"
일본은 한국 의병들을 "양민들을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며, 관청 민가를 불태우는 폭도들"로 몰아 세계 여론을 조성했다. 한국을 찾아오는 미국 특파원들에게는 일본의 업적, 물직적 진보만이 보일 분 일본인이 저지르는 합법화된 강도 행위, 협박, 공창 제도, 고문, 탄압 같은 비리는 은폐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 총독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매수되어 본국으로 돌아간 서양 언론인은, 한국에서 일본의 개혁은 영광스러운 것이라며 일본을 칭찬하고 한국을 경멸적으로 쓰는 기사만 내보내게 되었다.


 

일본에 대한 분노는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심지어 자국의 일본인 마저 경악하게 했고, 실제로 끔직한 일이었다. 일본은 과대포장, 과대평가되었고, 일본의 입김으로 한국은 쓸모없는 종족, 자치조차 하지 못하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영향은 심지어 지금가지도 잔재되어 있다.


섬뜩하고도 지긋지긋한 일본의 망령이 아직도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니. 한 번 남의 것을 탐내어 전유해보니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일본은 아직도 한국을 얕보고 있다. 남의 것을 노리는 천박한 습성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세기 전 세계를 상대로 한국인이 '쓸모없는 종족'이라는 여론 몰이에 성공했듯, 음모꾼 일본은 갖은 외교력을 동원하여 '독도'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침략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나라,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나라는 절대로 품격 있는 나라가 될 수 없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에 비교 대상으로 늘 독일이 나온다. 이 책에서도 일본과 독일의 태도에 대해 비교하며, 그 둘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말한다. 독일의 사과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와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뻔뻔할 뿐 아니라 지금도 자신들이 잘났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여전히 헛소리를 하는 일본인들...특히 정치가들을 보면 어이없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찾아 가야 한다.
한 나라에 '정신'이 없으면 망하고 만다는 식민지 한국 청년의 통찰을 기억하라. 그렇다, 친구들이여, 우울한 시대는 끝났다. 우리의 오래된 정신을 믿자. 진취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우리 자신의 길을 찾아가자. 다시 무서운 잠재력을 끌어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자.


 이 책은 외국인의 시각에서 시작되어 한국인의 시각으로 끝난다. 외국인의 시야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보고,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외국인의 시야도 때론 주관적이지만.. 우리가 아닌 우리에 대해 더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오늘 티비를 보다가 한국인의 미덕 중 하나가 겸손이고 이 겸손이 지나치면, 자책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껏 충분히 견뎌왔고 성장했다. 이제 더 이상 겸손과 자책은 조금 내려 놓고, 내 한민국을 보고 내 한민국을 자랑스러워 하며, 내 한민국에서 살자.

외국인들은 우리를 보며 감탄하고, 멋지다고 하고, 우리를 따라오는데 우리는 오히려 우리를 낮추고 외국의 것을 모방하고 표방한다.

더 이상 그러지 말자. 우리의 길은 우리 자신이 찾아야한다.

 

스물은 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르는 내 민족에 대해서, 내 조국에 대해서 색다른 많은 관점을 본 것 같다.

겸손과 자책보다는 우리에 대해 더 제대로 알고!

자랑스러운 내 한민국을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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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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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오랜만에 보는 일본 소설에 조금은 설렌 마음으로 책을 폈다. 교도소에서 목공일을 가르치는 할아버지는 아내를 위해 만든 캠핑카에서 아내의 유골을 가지고, 아내의 유서인 편지를 찾으러 먼 시골 마을로 여행을 가게 된다.

어디까지나 평탄한 수동적인 인생. 에지는 한결같이 그런 소극적인 길을 따라왔다. 친구에게도 여자에게도 먼저 나서서 뭔가를 시도한 적이 없다. 적극적인 태도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저 하루하루 담담하고 평온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흑백처럼 수수했던 에지의 인생을 선명한 천연색으로 칠해버린 존재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요코다. 
가슴 안쪽에서 넘쳐나는 여러 '생각'들이 열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만약 준비되지 않은 채 '말'로 바뀐다면, 한없이 '안녕'에 가까운 울림을 동반 할 것 같다. 

 

이 책은 이별의 바로 직전에서 시작된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아내 요코. 흑백을 천연색으로 만들어줬던 아내를 잃은 구라시마씨, 방랑하는 스기노씨,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다미야씨, 그리고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된 난바라씨. 묘한 인연 끈이 그들 안에 있었다.

먼저 구라시마와 요코의 이야기가 나오고, 중간에 스기노, 다미야의 이야기가 나온다. 국어교사였다가 지금은 자동차 털이범이 된 스기노. 전국에 이카메시를 팔고 다니며 번 돈으로 장만한 집에서 다른 남자와 외도하고 있는 아내를 목격한 다미야.

 
"헤치고 들어가도 헤치고 들어가도 푸른 산"
나는 이제 세상을 버렸다. 현대의 산토카가 된 것이다. 무엇에도 속박되지 말고, 모든 걸 흘려보내며 살자. 그걸로 됐다. 여행의 끝도, 목적지도 정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그저 흘러가자. 스기노는 결심했다. 그렇게 정했더니 마음에 날개가 돋아나 자유로워지고, 오랜만에, 아니 20년만에 '내 인생'이라는 상쾌한 바람이 마음속을 오가는 감각을 느꼈다. 

 

스기노씨는 산토카를 좋아한다. 일본의 방랑시인이라는데, 그 시들이 하나하나 책의 요소요소에 박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적어도 내 마음은 울렸다.


아직 한동안은....요코를 잃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울지 않겠다......만약 내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때가 분명, 내 '감정'도 요코와의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였을 때이리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꼈다. 

1초, 1초, 계절은 확실히 옮겨가고 있다. 
그 1초마다 내게 보낸 '편지의 남은 생'도 짧아지고 있다. 

 

아내 요코가 결국 죽고, 구라시마씨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쩌면 아내처럼 이주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의 편지를 찾으러... 

내일 출발할거야, 요코. 당신이 계획한 짓궂은 장난에 기꺼이 걸려들게. 짓궂다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내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죽은 아내의 '장난'에 걸려들다니, 조금은 유쾌해졌다. 
다시 한 번 부르며 유골을 응시한다. 아직,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럼 뭐라고 하면 좋은가?
요코, 고마워. 하지만 난 아직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
당신은 새장 속의 새가 아니니 좀 더 자유롭게 날개를 펼쳐봐. 요코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그때그때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살아보는것도 좋겠지?응? 요코.

 

죽은 아내가 계획한 짓궂은 장난. 한 통의 편지는 남편에게, 한 통의 편지는 고향인 어촌 마을 우체국에. 구라시마는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곧 스기노씨를 만나게 된다.


"육십을 넘기니 하루하루가 점점 짧아지네. 이래저래 서둘러야지"
"혼자가 되면 우러를 수 있네, 푸른 하늘을"
"타인과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나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것도 좋겠지, 풀은 피었다."

 

산토카를 사랑하는 스기노씨. 위의 인용구는 스기노씨가 한 말들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산토카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의 풍경을 자꾸 울린다.

구라시마와 스기노는 처음에는 하루밤 같이 지내기로 한다. 그러나 스기노씨의 원함대로 며칠 더 같이 여행하게 된다. 그러다 차가 고장난 다미야씨를 만나게 되고, 그를 태워주러 갔다가 일까지 도와주게 되고, 그 보수로 술을 같이 먹게 된다.


"기억해요. 조금 두렵지만, 저도, 나와 미래를 바꿔보겠습니다. 이카메시와 달리 인생에는 유효기간이 없잖아요. 마지막까지 맛보겠습니다."


타인은 바꿀 수 없지만... 나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진리의 말이다. 인생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다미야씨의 부하직원인 난바라씨는 구라시마의 목적지이자 요코의 고향을 듣더니 뭔가 사연 있는 표정으로 한 노인의 이름을 알려주며 산골할 때 배를 부탁해 보라고 한다.

그들과 헤어지고... 스기노와 헤어지려는 그 때, 둘 사이의 인연이 나온다.

구라시마씨가 전에 일했던 교도소의 죄수였던 스기노씨. 앞에서 감옥에서 목공일에 흥미를 느꼈다고 할 때, 둘이 뭔가 인연이 있겠거니 했지만.. 이렇게 뙇 나오니... 뭔가 찡한 게 있었다.

 나는, 나 자신과 미래를 바꿀 테니까.란 말을 남기고 간 스기노씨.

 

 구라시마씨는 다시 혼자가 되어 요코의 고향을 찾아 나아간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 이미 우체국 문은 닫아 다음날 셔터가 열자마자 그는 편지를 찾아온다.

"우연한만남이란 멋진 일이 생길 징조인데, 그게 세 번 이어졌을 때 놀랄 만한 기적이 일어난다."

정말로 간단한 일이었다. 그저 맨발로 문밖에 한 걸음 나오는 것만으로 세상이 이렇게나 달라진다. 이 작은 한 걸음이 세상과 나를 바꾸는 기회다. 단 한 걸음. '0'이 아닌, 한 걸음. 그 차이는 무한에 가까울 만큼 거대한지도 모른다. 내가 바뀌면 미래도...바뀌겠지?요코. 돌풍이 불어 바로 옆에서 비가 세차게 몰아친다. 비틀거리면서도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 기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아, 바보처럼 자유롭고, 최고다." 하늘을 향해 중얼거리고, 흠뻑 젖은 얼굴을 싹싹 문질렀다. 

밤낚시를 할 때 다쿠야가 "나오코에게 보조개를 되찾아주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일부러 전하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위해 뭔가를 해주겠다라는 말보다, 하루하루 작은 행동을 소중히 쌓아가는 것이 부부에겐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텅 빈 납골 항아리에 요코로부터 받은 두 통의 편지를 넣는다.......나는 납골 항아리를 이대로 묘에 넣기로 결정했다. 언젠가 내가 죽으면 요코의 유골이 아니라 요코의 '마음' 옆으로 들어가, 함께 영원히 잠들리라. 그렇게 결심한 것이다. 

이제 곧 오늘만의 태양이 저문다. 다시 살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오늘이 끝난다. 

비눗방울들이 둥실둥실, 즐겁게, 불안하게, 허무하게, 산들바람의 장난을 타고 투명한 블루의 세게로 상승한다. 곧 터져버릴 것, 잠시 바람을 참고 견뎠다가 터질 것, 그리고 높이 높이 하늘로 날아오를 것. 태어나서 곧 사라지지 않은 내 인생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어떤 바람에 휘둘릴지도 그때가 되어봐야 안다. 그저 가능하다면 유효기간이 아직 남아 있을 때 기적 같은 것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각각의 하늘로 이제는 날아갈 시간... 불완전한 나를 사랑하기까지. 내 인생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얼마나 놀라운지. 

 

그 바다에 뿌려지는 순간 당신과는 이제 이별이겠지요. 부디 앞으로의 인생을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주세요. 이번 여행은 내가 억지로 강행한 셈이지만, 앞으로의 당신에게 당신만의 '한 걸음'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 한 걸음을 내딛고 성큼성큼 멋지게 걸어주세요. 
당신과의 만남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기적이었습니다. 나를 만나줘서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보은. 문든 이 유언이 선물이 될 순 없을지 생각해본다. 선물. ........유서가 선물이 되다니,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내가 마지막으로 주는 것이 그이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겠다. 

그이는 지난 15년간 내 이름을 몇 번 불러주었을까? 요코.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내가 가장 많이 말했던 '당신'이라는 공기 같은 단어를 써본다. 당신에게. 공기같은 단어의 그 은혜로움을 생각하니 또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흐른다. 이제 곧 그 단어를 말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또 눈물이 주르르 떨어진다. 

그 사람과 나의 내일은....분명, 아직 조금은 남아있을 거야. 아냐. 나는 없어지지마 그 사람에겐 아직 내일이 있다. 내일의 내일도 있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도 내일은 또 찾아오리라. 그 사람은 아직 여행중이다. 아직 종착역 따위 보이지 않는다. 나그네다, 그이는. 


당신에게... 얼마나 멋진 단어인지.

처음에 이 제목을 봤을 때 무슨 뜻일까 했는데... 책 소개에서 이런 남편 이런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서로에게 선물 같은 부부였고,

나에게 선물 같은 책이었다.

이별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만남으로 기억되는 여행을 한 것 같다.

한 사람이 만들어낸 자그만 선물은 만나는 여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선물이 되었다.

 

짓궂은 아내의 장난은 보은이었고, 선물이었다.

 

당신에게....

너무 익숙해서 당연해진 이 단어가 얼마나 멋진 울림인지 알려줘서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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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들 - 놀이하듯 공부하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
더글라스 토마스 & 존 실리 브라운 지음, 송형호 외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은 매우 흥미롭다. 공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데, 공부로서의 공부보다는 놀이로서의, 게임으로서의... 서로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형식의 공부를 말한다.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고 있는 강력하고도 새로운 공부법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은 세계적으로 교실이라는 공간뿐이다. 이미 학습은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으나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상상력과 혁신을 배양하지 않는 과거의 학습 방법을 선호하며 새로운 공부 문화를 외면하고 있다. 공부를 정보가 교사로부터 학생에게 얼마만큼 전달되었는지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부 문화에서 이러한 질문은 가장 고루한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과거의 교습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문제가 꾸준히 생겨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공부는 교실에서 하는 것이라는 상식이 깨지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미 교실에서 하는 공부에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 되고 있으며, 대체 학습 또는 대안 학습이라는 것이 대두되기 시작한 지 벌써 꽤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기에, 새로운 공부 문화, 새로운 교습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고 있는 강력하고도 새로운 공부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교실이다.

 


놀이, 질문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상상력은 학습의 핵심에 위치한다. 
어른이 어떤 대답을 하든지 상관없이 아이들은 끊임 없이 '왜?'라는 질문을 계속하고 게임은 지속된다. 즐거움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놀이, 질문, 그리고 상상력.

옛날에는 아이들의 왜?가 부모의 짜증을 불러 일으켰지만, 요즘의 아이들의 왜?는 성장의 신호이다.

많은 부모들이 요즘에는 아이들의 왜?에 짜증보다 기쁨이 앞설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공부를 게임과 연관시킨다.

 

이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즐거운 공부가 가능할까?'였다.

 

전통적으로 교수에 적합한 장소로 여겨진 교실과 직장 그리고 책과 교육용 비디오마저도 기계론적 관점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접근법에 근간을 두어왔다. 즉, 공부를 숙달해야할 일련의 단계로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학생이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프로그램 되는 기계처럼 간주된다. 

과거에 교습법은 학생을 공부하는 기계로 여겼다.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느꼈으며, 나도 나를 공부하는 기계로 느꼈었다.

고등학교 때 학생인 나를 빗대어 쓴 말을 보면, 좀비, 기계, 펼쳐져 넘겨지는 책이라고 표현 했었다.

학생이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프로그램 되는 기계와 같았다.

우리는 과정을 중시하지 않았다. 시험이라는 '문제'가 주는 점수라는 결과물을 가지고 평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학습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 결과물은 상상력 및 상상력의 적용으로 보다 발전되어가고 있다.


학교를 학습환경리라는 어휘로 바꾸어 생각하면 학교가 '무너졌다'는 것은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된다. 환경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공교육의 붕괴, 다른 나라의 교육법, 교습법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이나 해외의 여타 나라들이나 동일하게 학교가 무너졌다라고 느낀다는 게 어이없었다. 환경은 무너너지지 않기 때문에 학교가 무너졌다는 건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 말은 표현이 틀렸을 뿐, 사람들은 학교가 무너졌다고 느낀다는 말이 아닌가.. 교육의 문제는 다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세계적으로 학교들은, 교실들은 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표는 세상을 받아들여 우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는 세계를 재창조할 수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장소, 사람, 사물, 생각을 마주할 때, 받아들이는 엄청난 양의 정보의 흐름을 다루기 위해 놀이와 상상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꼬아서 생각하고, 달리 생각하고, 질문하고, 놀고....

우리가 세상에 흡수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재창조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는 먹을 수 있다. 사람에게 낚시를 가르치면 물고기가 계속 잡히는 한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학습공동체를 형성하면 모든 사람은 평생동안 어떻게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똑같이 가르쳐도 다른 것을 배운다.  
질문이 대답보다 중요하다.....모든 대답은 최종점이 아닌 출발점이 된다. 대답은 우리가 더욱 풍부하고 좋은 질문을 하도록 한다.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먹을 수 있지만, 물고기를 낚는 법을 알려주면 물고기가 잡히는 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학습공동체를 형성하면 '평생동안' 어떻게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사람이란... 모이면 모일 수록 생각을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 지는 것 같다. 한 머리보다 여러 머리가 낫다는 건 선조들의 지혜일 뿐 아니라 진리인 것이다.


요한 하위징이아는 놀이가 단순히 인간 경험의 중심일 뿐 아니라 인간 문화에서 유의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문화는 놀이를 창조하지 않는다. 놀이가 문화를 창조한다. 
놀이는 이를 뛰어넘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양한 결과와 계속해서 놀 수 있는 기호를 제공해 준다. 다른 말로 미스터리를 풀어보게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놀이에서 하는 것은 '되다'의 감각을 가장 잘 표현한다.......늘 새로운 도전과제를 찾거나 놀이의 상황에 더 깊게 몰두하게 '될'뿐이다. 그러므로 놀이에서 학습이란 논리적 계산이 아니라 생각과 느낌의 수평적이고도 상상력 넘치는 방법이다. 

 

그는 대학 수업에서 게임에 대해 수업한 내용을 들면서 그 수업에서의 공동학습체에 대해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수업반 토론 반이었만, 어느 순간 토론 발표시간이 수업 시간보다 길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체적으로 토론 주제와 발표시간을 원했다. 교수는 학기가 끝나고 최악의 학기라고 생각햇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시험 문제에 대해 서로 공유했던 사례들을 보다 풍성하게 적었고, 그럴 뿐 아니라 이론에 대해서도 더 풍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배움의 세 가지 차원- 앎, 만들기 그리고 놀이-는 디지털 세상의 구조 속에 이미 등장하기 시작했다. 
참여자들이 끊임 없이 새로운 정보를 찾고, 공유하고, 필터링할 만큼, 내적으로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에 학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환경을 생각보자. 이러한 이상적인 환경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바로 게임세대이다. 
월드 오브 크레프트와 같은 게임은 새로운 공부 문화를 설명하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실제로 여러 면에서 가장 적합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변화와 유동성의 개념으로 회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게임하는 사람들이 보며 주는 변화를 포용하는 뛰어난 자세를 보았다. 

 

나도 대학 때 '튜터링'이란 걸 했었다. 먼저 학과의 수업을 들었던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것이다. 먼저 학습한 능력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가르칠 때, 가르치는 선배도 얻는 것이 많고, 후배들도 얻는 것이 많았다. 내가 튜터링 할 때는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도 몇 분 계셨는데, 서로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그곳에서 공부가 시작된다. 

 

가장 훌륭한 학습법이 적용되고 있는 곳은 게임시장이다. 게임에 대한 새로운 공략법들이 실시간으로 엄청나게 나오고 있으며, 이런 공략법들 또한 많은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고 적용 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공부'라는 틀을 깨고 놀고, 즐기고, 상상하는 것이다.

때론 몰두하고, 만들어보고, 적용해 보고, 때론 함께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헤쳐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많은 것이 변하는 반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 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공부에 시달려 봤던, 학생이었던 한 사람으로서....

공부가 즐거운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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