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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 개정판
박정헌 지음 / 황금시간 / 2013년 1월
평점 :
박정헌님의 '끈'을 오늘 읽었다. 두 사람 모두가 살아서 내려 올 수 있게 묶었던 그 끈이 있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살아가는데에도 서로를 붙잡아주는 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책 표지 이다. 깔끔한 화이트 톤에 빨강색으로 제목이 적혀있고 그 위로 마치 끈이 내려와 있듯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치 않았다.'라고 적혀있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는 너무 심플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고나니 마치 빙벽의 느낌 같다...
책을 피자마자 가슴에 팍! 와닿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끈이 있다. 그 끈이 우리를 살게 한다.
처음에 말했던 그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이 문구가 그저 파티 사이에서 산을 탈 때, 두 사람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끈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끈은 그 이상의 끈인 것 같다.
촐라체 등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히말라야가 가득하다. 그래서 내 삶의 고도는 늘 높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정상에 올랐을 때가 나온다. 그리고 과거로 가서 등반의 처음부터 그러니까 한국에서 네팔로 오는 이야기부터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오고, 또 내려올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끈'의 중요한 내용은 내려오는 이 이야기와 내려오고 나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두 사람이 절벽에서 죽기 살기로 내려왔던 그 때의 끈도 있지만 내려오고 나서의 끈, 그 인연도 정말 마음에 와다았다.
먼저 둘은 산에 오른다.
생명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든 빙하 한가운데에 우리 둘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오른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늘을 향햐 가파르게 솟아 있는 암벽은 첫날과 다름없이 웅장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조금도 그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가파른 절벽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이로, 크고 작게 솟아 있는 수많은 암벽이 보였다. 높은 곳, 낮은 곳 가릴 것 없이 언젠가는 내가 꼭 도전해야 할 벽들이었다.
불빛은 지상 아래, 어디에도 없었다.
표현들이 정말 멋지다. 처음에는 소설의 느낌이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다녀온 이야기라서 그런지 볼수록 수필의 느낌이 났다. 불빛은 지상 아래 어디에도 없고... 빙하 위에는 오직 두사람.. 그 큰 산에 오직 두 팀만이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해냈구나. 이제 집에 갈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 짧은 기쁨은 긴 악몽의 전조에 불과했다.
정상에 오른다고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 글에서 알게 되었다. 이 글을 보기 전 나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명언처럼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 글에서도 그렇다. 내려오는 게, 또는 내려오고 나서가 중요한 것이다.
이 글의 매력은 물론 산을 오르기 전도, 산을 오를 때도, 산을 오르고 나서도, 산을 내려올 때도 매력이 있지만, 산을 내려오고 나서가 정말 멋있는 것 같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그 길에 크레바스에 빠지게 되고 부상을 입게 되고,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해서 목숨을 걸고 내려오는 그 내용은 이 책을 볼 모든 분들을 위해서 스포를 하지는 않겠다.
내가 감동이었던 것은 그들이 내려온 것 자체가 정말 대단했지만, 내려오고나서가 더 대단한 것 같다. 동상이 걸려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네팔에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서 바로 병원에 가고, 동상이 걸려 살이 괴사되고, 탈수증이 걸려 물을 계속 먹게 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런 중에서 알피니스트가 손가락을 자르는 그 선택을 하는 그 모습, 그리고 거기게 박정헌님의 아내의 모습에 많이 감동받았다. 예민하고 예민한, 산에 목숨 건 남편이 손가락을 자르는 그 순간에 격려가 되고 지지가 되어주는 아내의 모습이 참 멋졌다.
수술을 앞두고 나를 괴롭혔던 고통도, 지난 삶에 대한 후회도 자츰 사그라지고 있다. 내 앞에는 단지 앞으로 뻗어 나간 하나의 길이 놓여있을 뿐이다. 걸어가는 과정에 무엇이 안배되어 있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몸이 완쾌되어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올라보지 못했던 내 인생의 봉우리를 향해 한 발 한 발 걷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등반은 마약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손을 잃은 건 어쩌면 하나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향해 미친 듯 달려가는 내 등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등로주의를 따르는 등반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오르지 않는 길, 힘든 길은 무한대로 존재한다. 등로주의의 끝은 오로지 차가운 죽음뿐이다. 내가 촐라체를 무사히 내려왔다면? 정답은 하나다. 나는 지금쯤 탈레이사가르 북벽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을 잃었지만 그것이 날 살렸다는 이 긍정의 힘! 그리고 더 놀랐던 것은 장애가 장애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멋있는지 모르겠다. '길이 있는 곳은 가지 않는다.'는 그 말은 정말 멋졌다. 그러나 그것이 손가락을 잃은 지금도 이 말처럼 살고 계시는 것 같아 더 멋지다.
높은 산을 정복하겠다는 욕심은 인간의 자만이다. 산은 인간이 자신을 한없이 낮출 때 비로소 정상을 허락한다. 내 목표는 지구상의 모든 고봉을 정복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꿈은 지구상의 모든 봉우리 위에서 '신의 위대함'을 만나는 것이었다.
'정상이란 산의 꼭대기가 아니다. 정상은 하나의 종점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이며 만물이 생성하고 모습을 바꾸는 지점이다. 종국에는 세계가 '무'로 바뀌는 곳이며 모든 것이 완결되는 끝이다....'-라인홀트 메스너(인류 최초 히말라야 14좌 등극)
산은 움직임이 없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 분이다....더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끝없이 오르는 행위가 등반이다. 그것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일지라도. 그런 면에 잇어서 우리가 산을 오르는 행위나 인생을 살아가는 행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인간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은 움직임이 없다. 인간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정산은 산의 꼭대기가 아니다. 높은 산을 정복하겠다는 욕심은 인간의 자만이고 자신을 낮출 때야 자연은, 그리고 산은 정상을 허락한다. 이 글은 다만 생환의 이야기일뿐 아니라 인생의 어떠함이 담겨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크레바스에 빠진 것 같을 때, 몇백미터 아래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을 때, 이 글을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