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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렌디피티 카페에서 우린 만났다. 서렌디피티! - 샤이니 제이의 철학소설책, 세계 초판 출간 특별판 샤이니 제이의 다르지만 똑같은 책
샤이니 제이 지음 / 갤럭시파이오니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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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있지만 모를 수도 있고, 당연할 수 있지만 황당할 수도 있고, 쉬울 수 있지만 어려울 수도 있고, 재미있을 수 있지만 재미없을 수도 있고, 행복할 수 있지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잘 팔릴 수 있지만 잘 팔리지 않을 수도 있고, 간직될 수 있지만 버려질 수도 있고, 좋은 것일 수 있지만 나쁜 것일 수도 있고, 출간될 수 있자먼 출간되지 않을 수도 있고, 출간해야 하지만 출간해서는 안 되는 책일 수 있지만 책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이것은 책이지만 책이 아닐 수도 있다.'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란 말인가... 책인데 책이 아닐수도 있다니.. 그러나 책을 보면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혼란이었다. 표지부터 나를 혼란시켰는데, 노오란 표지 가득 써 있는 책에 대한 설명과 지은이 샤이니 제이에 대한 설명.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글로 가득한 표지에서 이건 뭔가 싶었다.

제목도 혼란이었다. "서렌디피티가 어디지? 서렌디피티카페라... 참 특이한 이름의 카페로군. 실제로 있는덴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책을 폈다.

 

 글로 가득한 공간, 또는 비어있음의 철학 즉, 여백의 미가 보이는 공간. 이 두 공간이 한 책에 존재하고 있었다.

언듯, 이해가지 않는 말들. 언듯,  알 것 같은 말들. 나는 그 둘의 반복을 겪었다.

 

 

서렌디피티카페는 이 이야기에 따르면 실화다. 서울. 성복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문 앞. 어제와 같기도하고 다른 공가넹 서렌디카페가 있다. 천사와 악마에 대한 이야기는 서렌디피티라는 이 카페에서 6명의 여자와 6명의 남자와 만나서 6개의 질문을 받고 6개의 답변을 한 그런 이야기다.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그런. 이 책 같은 그런 6가지 질문이 주어지고 저자는 답변을 한다.

그는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는 만나지 못한다.

새로웠던 것은 여자 6명과 남자 6명에 대한 묘사였다. 그는 '그러나 기뻤고 웃었다.' 여자들과 남자들은 정 반대였지만 그는 기뻤고 웃었다고 말한다. '기뻤고 웃었다. 그러나.... ' 이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 왜 그는 기뻤고 웃었을까. 정 반대로 묘사된 그들 사이에서 그는 어떻게 기뻣고, 웃을 수 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성향이 있고 호불호가 있다. 그러나 그는 기뻤고 웃었다.

 

안녕?

 

이 책은 안녕으로 시작해서 안녕으로 끝난다. 안녕이란 단어는 시작이기도 끝이기도 하다. 만날 때도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만남이며 헤어짐이고 시작이며 끝이다. 그는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같지만 다른 것에 대해 말한다. 안녕이라는 일상의 인삿말 하나로 가슴에 박히는 철학이란!

 철학소설이라는 장르에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실은 일상에 철학이 있진 않을까 싶다.

 

 

초판 50종

 

샤이니 제이는 책 뒤편에 인자를 붙여주며, 이 책이 초판 50종일 뿐 아니라 이 인자가 붙은 책을 가진 독자가 이것의 진정한 소유라고 말한다. 졸지에 나는 인자가 붙은 초판을 소유한 독자가 되었다. 이 얼마나 특별한 책인지... 무려 독자를 특별하게 만드는 책이다.

 

솔직히 한 번 본 것으로는 이 책의 매력에 대해 이 책의 어떠함에 대해 완벽히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간이 날 때 느긋히 다시 한 번 천천히 음미하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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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 개정판
박정헌 지음 / 황금시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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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헌님의 '끈'을 오늘 읽었다. 두 사람 모두가 살아서 내려 올 수 있게 묶었던 그 끈이 있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살아가는데에도 서로를 붙잡아주는 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책 표지 이다. 깔끔한 화이트 톤에 빨강색으로 제목이 적혀있고 그 위로 마치 끈이 내려와 있듯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치 않았다.'라고 적혀있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는 너무 심플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고나니 마치 빙벽의 느낌 같다... 

 

책을 피자마자 가슴에 팍! 와닿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끈이 있다. 그 끈이 우리를 살게 한다.

 

처음에 말했던 그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이 문구가 그저 파티 사이에서 산을 탈 때, 두 사람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끈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끈은 그 이상의 끈인 것 같다.

 

촐라체 등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히말라야가 가득하다. 그래서 내 삶의 고도는 늘 높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정상에 올랐을 때가 나온다. 그리고 과거로 가서 등반의 처음부터 그러니까 한국에서 네팔로 오는 이야기부터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오고, 또 내려올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끈'의 중요한 내용은 내려오는 이 이야기와 내려오고 나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두 사람이 절벽에서 죽기 살기로 내려왔던 그 때의 끈도 있지만 내려오고 나서의 끈, 그 인연도 정말 마음에 와다았다.

 

먼저 둘은 산에 오른다.


생명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든 빙하 한가운데에 우리 둘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오른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늘을 향햐 가파르게 솟아 있는 암벽은 첫날과 다름없이 웅장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조금도 그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가파른 절벽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이로, 크고 작게 솟아 있는 수많은 암벽이 보였다. 높은 곳, 낮은 곳 가릴 것 없이 언젠가는 내가 꼭 도전해야 할 벽들이었다.

 
불빛은 지상 아래, 어디에도 없었다.
 
 

표현들이 정말 멋지다. 처음에는 소설의 느낌이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다녀온 이야기라서 그런지 볼수록 수필의 느낌이 났다. 불빛은 지상 아래 어디에도 없고... 빙하 위에는 오직 두사람.. 그 큰 산에 오직 두 팀만이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해냈구나. 이제 집에 갈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 짧은 기쁨은 긴 악몽의 전조에 불과했다.


 

정상에 오른다고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 글에서 알게 되었다. 이 글을 보기 전 나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명언처럼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 글에서도 그렇다. 내려오는 게, 또는 내려오고 나서가 중요한 것이다.

 

이 글의 매력은 물론 산을 오르기 전도, 산을 오를 때도, 산을 오르고 나서도, 산을 내려올 때도 매력이 있지만, 산을 내려오고 나서가 정말 멋있는 것 같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그 길에 크레바스에 빠지게 되고 부상을 입게 되고,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해서 목숨을 걸고 내려오는 그 내용은 이 책을 볼 모든 분들을 위해서 스포를 하지는 않겠다.

 

내가 감동이었던 것은 그들이 내려온 것 자체가 정말 대단했지만, 내려오고나서가 더 대단한 것 같다. 동상이 걸려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네팔에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서 바로 병원에 가고, 동상이 걸려 살이 괴사되고, 탈수증이 걸려 물을 계속 먹게 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런 중에서 알피니스트가 손가락을 자르는 그 선택을 하는 그 모습, 그리고 거기게 박정헌님의 아내의 모습에 많이 감동받았다. 예민하고 예민한, 산에 목숨 건 남편이 손가락을 자르는 그 순간에 격려가 되고 지지가 되어주는 아내의 모습이 참 멋졌다.

 

수술을 앞두고 나를 괴롭혔던 고통도, 지난 삶에 대한 후회도 자츰 사그라지고 있다. 내 앞에는 단지 앞으로 뻗어 나간 하나의 길이 놓여있을 뿐이다. 걸어가는 과정에 무엇이 안배되어 있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몸이 완쾌되어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올라보지 못했던 내 인생의 봉우리를 향해 한 발 한 발 걷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등반은 마약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손을 잃은 건 어쩌면 하나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향해 미친 듯 달려가는 내 등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등로주의를 따르는 등반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오르지 않는 길, 힘든 길은 무한대로 존재한다. 등로주의의 끝은 오로지 차가운 죽음뿐이다. 내가 촐라체를 무사히 내려왔다면? 정답은 하나다. 나는 지금쯤 탈레이사가르 북벽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을 잃었지만 그것이 날 살렸다는 이 긍정의 힘! 그리고 더 놀랐던 것은 장애가 장애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멋있는지 모르겠다. '길이 있는 곳은 가지 않는다.'는 그 말은 정말 멋졌다. 그러나 그것이 손가락을 잃은 지금도 이 말처럼 살고 계시는 것 같아 더 멋지다.

 

높은 산을 정복하겠다는 욕심은 인간의 자만이다. 산은 인간이 자신을 한없이 낮출 때 비로소 정상을 허락한다. 내 목표는 지구상의 모든 고봉을 정복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꿈은 지구상의 모든 봉우리 위에서 '신의 위대함'을 만나는 것이었다.

'정상이란 산의 꼭대기가 아니다. 정상은 하나의 종점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이며 만물이 생성하고 모습을 바꾸는 지점이다. 종국에는 세계가 '무'로 바뀌는 곳이며 모든 것이 완결되는 끝이다....'-라인홀트 메스너(인류 최초 히말라야 14좌 등극)

 

산은 움직임이 없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 분이다....더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끝없이 오르는 행위가 등반이다. 그것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일지라도. 그런 면에 잇어서 우리가 산을 오르는 행위나 인생을 살아가는 행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인간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은 움직임이 없다. 인간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정산은 산의 꼭대기가 아니다. 높은 산을 정복하겠다는 욕심은 인간의 자만이고 자신을 낮출 때야 자연은, 그리고 산은 정상을 허락한다. 이 글은 다만 생환의 이야기일뿐 아니라 인생의 어떠함이 담겨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크레바스에 빠진 것 같을 때, 몇백미터 아래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을 때, 이 글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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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놀이 - 마광수의 맛.있.는 단편소설집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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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광수님이 지은 상상놀이라는 책을 받았다. 받자마자 끝까지 읽어버렸다. 단편이라서 금방 읽었던 것도 있지만 내용이 내게 확 와닿지는 않아도 끝까지 금방 읽어버렸다.

책을 읽고 나서 궁금해진 것은 마광수라는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글들을 썼고, 책을 만들었을까,,,, 이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결론은 알 수 없음이다.

서시 손 부터 상상을 뛰어넘는다. 손가락 여덟 개 달린 팔을 잘라버렸더니 문어가 되어 주인을 먹여살렸다. 고작 두 쪽 분량의 글이었지만, 뭔가 충격적이었다. 그의 단편 하나 하나가 다 내 상상을 넘어섰다. 욕구를 멀리해서 신선이 되는 줄 알았더니 동침한 승려만 신선이 되고, 가롯유다는 천사인데 어쩔 수 없이 배신해서 추앙받다가 모함을 받아 점쟁이로 살고, 그림 속의 여자와 사랑을 하고, 순결을 저당잡히는 둥.....

뭔가 인간적인 이야기들이면서도 뭔가 이상한(?)이야기들이랄까.

거기에 손톱페티즘에, 현재의 여성에게 만족 못 하는 무엇이 이 책 안에 있다. 아내의 처녀시절 모습을 사랑해서 집을 만들고 두 집살림 하기도 하고, 신혼여행갔다가 그림에 홀려서 그림 안에서 현재의 아내를 노려보고... 젊은 여성에게는 발기하지 못해서 노파를 상대로 발기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의외로 '심각해씨의 비극'이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손톱이 긴 여자도 노파를 상대로 섹스하는 남자도, 그림 속의 여성들을 만나는 남자도 없지만 일부일처제를 주장하여 20년간 섹스금지형을 받는 남자가 있다. 자유섹스주의 시대에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고 싶어서 한 교수가 일부일처제, 즉 '결혼'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썼고, 이 글 때문에 정조대를 차게 되는 것이다. 정말 언젠가는 자유섹스를 주장하고 일부일처제가 말도 안 되는 세상이 오진 않을런지... 작가의 상상력이 참 대단하다.

'돼지꿈', '이것이 인생', '개미'같은 글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정말 인생이 그렇다. 흑돼지가 들어오는 꿈이 실은 연탄이 들어오는 꿈이고, 건강을 추구하다 교통사고 당하는 게 인생이고... 몇 십년 공들인 개미가 한 순간에 해충으로 오해받아 짓눌려 죽는 것이다.

가장 재밌었던 글은 '심술궂은 윤회'였다. 난 이 책에서 서시'손'하고 이 글을 최고작으로 꼽고 싶다. 염라대왕이 계속해서 윤회하게 만드는...계속해서 자살하지만 계속해서 다시 살게하는 이야기...그런 이야기가 뭐가 최고작이냐 하시겠지만, 읽어보시면 안다.

 

"죽어도 죽어지지 않는 게 인생인데, 내가 어찌 또 자살을 시도하겠나. 그저 꾹 참고 자식이나 안 낳아가지고 이 세상에 보시해 볼 생각이네."

 

이 글에서는 계속 윤회시키는 염라대왕에 대한 말이었지만, 죽어도 죽어지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죽어도 죽어지지 않는 게 인생이다. 명언인 것 같다.

 

나는 처음에 이 책에 대해서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나무'같은 책을 생각했었다.

읽고 나서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마광수라는 작가가 내 상상은 뛰어넘었다는 것!

한 번 읽어보시라.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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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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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제목이 참 멋지구리하다. 세상의 중심이 어딜까... 왜 거기서 사랑을 외치나.. 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이지만, 이렇게 서평이라는 형태로 남기기 위해 다시 읽다보니 그 때 안 보였던 게 지금은 보이는 것이 있다. 전에 봤을 때에도 이런 내용이었던가...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꿈이 현실이고, 이 현실이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깨어났을 때 나는 언제나 울고 있다.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즐거운 꿈에서 슬픈 현실로 돌아올 때 넘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균열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그곳을 넘을 수 없다. 몇번을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것이다. 아키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그녀를 잃는다고 하는 것은 곧 내가 볼 것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보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내가 살아가는 것에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람이 없어져버렸다. 그녀는 더이상 나와 함께 살아주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같은 길도 혼자서 걸으면 길고 따분하게 느껴지는데, 둘이서 이야기하면서 걸으면 언제까지라도 걸어가고 싶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도 그럴지 모르겠다고 몇년이 지난 후 생각한 적이 있다. 혼자서 살아가는 인생은 길고 따분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느새 갈림길까지 와버리는 것이다.


한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이 글의 처음은 '아침에 눈을 뜨니 나는 또 울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늘 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싫은..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남자.. 그 남자는 '아키'가 없으면 보는 것도, 아는 것도, 느끼는 것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정말 절절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와.. 이런 사랑이 있을까. 그런데 몇 페이지가 지나서 이것이 중학생의.. 아니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의 사랑이야기라고 하니.. '순수해서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러고는 역시 세상을 살게 되면 저런 사랑이 어려운 걸까싶을 때, 이번엔 할아버지의 사랑이 나온다.

 폐렴에 걸렸던 할아버지의 사랑 역시 비극적이다. 병은 이겨냈지만 결국 서로 다른 사람과 살 수 밖에 없어서 결국 죽어서 다시 만나 사랑하자고 약속했다던 할아버지와 그 분. 서로의 배우자가 죽으면 다시 만나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먼저 죽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어느날 손자를 데리고 그 할머니의 무덤에 가 뼈를 조금 훔쳐나와 같이 뿌려달라고 한다. 아키와 사쿠는 이것이 불륜이냐 진정한 사랑이냐 놓고 언쟁이 오갔지만, 나는 아키의 편이다.


"아키의 생일은 12월 17일이잖아."
"사쿠짱 생일은 12월 24일이고."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 아키가 없었던 적은, 지금까지 단 일 초도 없었 어."

"내가 태어난 이후의 세계는 전부 아키가 있는 세계였던거야."

"나한데 있어서 아키가 없는 세계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그런 것이 존재할지 모르겠어."

 

 아키는.. 언젠가 사쿠가 거짓으로 보냈던 라디오 엽서처럼 백혈병에 걸리고 만다. 창백해지고, 키스를 할 수 없게 되고, 혹은 소독 후 몰래 키스를 해야 하고, 머리가 뭉텅이 빠지고... 아키는 점점 삶에 대해 자신이 없어지고 자신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게 된다. 사쿠는 그런 아키에게 자신에게는 아키가 없는 세계는 지금까지 단 일 초도 없었다면서 그런 세계는 미지의 세계라고 말한다.


매일 사는 것은 하루하루 정신적인 자살과 부활을 반복하는 것과 같았다. 밤에 잠들 때에는 이대로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적어도 아키가 없는 세계에 두 번 다시 깨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루가 시작되면 밥을 먹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도 한다. 비가 내리면 우산도 쓰고 젖은 옷을 말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행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엉터리로 두드린 피아노 건반이 엉터리 소리를 내는 듯한 것이었다.
어떤 하루를 택해도 그 앞의 하루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연속적인 시간은 내 안에 흐르지 않았다. 무언가 계속되어 간다는 감각, 무언가가 자라서 변화해 간다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살아가는 것은, 한 순간 한 순간의 존재로만 있는 것이다. 미래는 없고 어떤 전망도 열리지 않았다. 과거에는 건드리면 피가 나올 것 같은 추억이 뒹굴고 있었다. 나는 피를 흘리며 그런 추억을 가지고 놀았다. 흘린 피는 이윽고 굳어져서 딱딱한 딱지가 되겠지. 그러면 아키와의 추억을 건드려도 아무겨도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일까.

 

 결국 아키는 죽는다. 둘이서 시도했던 호주로의 도망은 결국 무산 되고 그것 때문이었는지 결국 아키는 죽고 만다. 그리고 사쿠는 오늘을 살면서 과거에 있다. 그런데 그 과거는 피가 나올 것 같은 추억으로 가득한 과거이다. 피를 흘리며 추억을 가지고 노는 기분은 어떠할까... 그리고 그 피가 굳어져 딱지가 되어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면서도 얼마나 끔찍할까. 사쿠는 할아버지처럼 아키의 뼈 한 줌을 유리병에 담아 가지고 다닌다. 그 뼈를 뿌리지 못하고 살아있는 한 몸에 지니고 있을 작정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사쿠는 다른 여자와 고향을 찾았다. 여전히 뼛가루가 든 유리병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교의 교정에 흩날리는 벚꽃잎과 함께 그녀를 보낸다.

 사쿠에게 아키는 딱지가 되었을까? 그는 단절을 이겨낸 걸까?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결국 상처는 다시 나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되어있다. 아무리 끔찍한 상처라도 그렇다. 물론 그가 아키를 온전히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설레었던 짝사랑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데.. 이런 사랑이라면 절대 잊지 못 할 것이다. 사쿠의 미지의 세계는 꿈이 더 행복한 세계였다. 비록 그 꿈에서 조차 아키를 구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란... 미지의 세계는 현실이 되었다. 사쿠는 다른 여자와 교정에 서 있고, 아키는 벚꽃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중고등학생의 라디오 엽서와 같고, 현실은 교정의 다른 여자와 같다. 슬프고 절절하지만, 어딘가 씁쓸한 이야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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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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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표지에서 용의자x의 헌신 시리즈 제 1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용의자 x의 헌신을 먼저 봐서 그런지 이 책이 2탄 같았다. 탐정 갈릴레오는 형사 구사나기와 데이도 대학에서 조교수로 있는 유가와의 이야기이다. 형사와 물리학자라는 갭에 이야기가 어떻게 풀어질지 처음에 많이 궁금했다. 단편 하나 하나가 끝날 때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반전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 작은 단서 하나로 그 끝가지 추리해내는 그 추리력은 이 책에서도 감탄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괴기한, 기이한.. 그러나 과학적인 이 글은 범인을 알려주고 이야기를 시작해도 알리바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의 마지막까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단편은 장편보다 쓰기 어렵다고들하고, 작가의 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단편이라고도 한다. 탐정 갈릴레오는 단편이긴 하지만, 단편같지 않는 글이다. 어쩌면 '구사나기형사의 사건일지'이기도 하고 '유가와의 추리일지'이기도 하다.

 두 번째 글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 책에서 작가가 책 전반에 걸쳐 유가와라는 물리학자를 내세워 절대 과학적이지 않아보이는 기괴한 사건들이 실은 가장 과학적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옮겨붙다'에서 중학교 학예회에 전시된 데스마스크로 부터 풀어지는 이야기를 하면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데스마스크가 만들어진 경위도 무척이나 우연에 가까운 것이었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유가와는 '라이플'을 이야기하며 번개가 아닌 라이플 총으로도 그런마스크를 만드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 연구를 죽은 사람이 젊었을 적 했었다. 하며 영체의 이야기가 몇 번 나온다. '물리적으로 풀지 못하는 알리바이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에는 밝혀진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없는 일들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음 인용은 '옮겨붙다'에서 유가와와 구사나기의 대화 중 일부이다.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이 진화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고 말아.-유가와

사용하는 인간만의 문제라는 건가? 그 과학을 만들어 낸 학자들의 양식은 어떻게 돼?-구사나기

학자들은 순수할 뿐이야. 순수하지 않으면 극적인 영감을 얻을 수 없으니까.-유가와

 

 문명과 극적인 영감이라니... 유레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문명과 영감이라는 말은 참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우연,영감,그리고 물리학.

 이런 맞지만 뭔가 안 어울리는.. 그래서 더 생각해 보게 되고 더 빠지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미션을 도전하면서 책을 다시보며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전, 반전,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 미묘? 흡입... 결론은 재밌다는 거였다. 범인을 알려주고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끝이 보이는 것만 같아도.. 끝까지 가게하는 그런 매력이 있다.

p.s. 위의 인용에서 저 말이 작가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글의 종류 중 하필 추리물을 쓰면서 여러 알리바이를 보이면서 독자들은 전율하고 놀라고 반전을 누리며 소름 돋아하며 빠져들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실제로의 알리바이로 쓰일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글 역시 받아들이는 인간의 마음이 중요하다. 작가들은 순수하다. 극적인 영감을 추구하며 때로는 글자 하나하나에 치밀하게 계산이 들어가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게 글을 쓴다. 그런 글을 어떻게 볼 것 인가.. 그저 추리물인가, 재밌는 책인가, 위로를 해주는가.. 잠시 공허를 잊게 해주는가.. 당신에게 그 책이 어떻게 다가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눈 앞에 있는 책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마음에 닿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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