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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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하트" 

모던한 심장은 어떤 심장일까? 모던 하트는 헤드헌터인 '미연'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헤드헌터인 우리 입장에서는 '안 될 가능성이 99퍼센트이니 괜히 업계에 이직쟁이라고 소문만 나지 말고 지원하지 마시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헤드헌터는 가능성이 0.000000001퍼센트만 있어도 열심히 후보자를 들이밀어야 한다. 이 바닥에서는 예상을 깨고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겠는가. 이직이 잦은 우리들의 시대, 그것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의 숙명인 것을. 

 

 

이 책은 정말 현실적이다. 헤드헌터 직업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적나라해서 씁쓸할 정도이다.

출신 대학은 입사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직 할 때도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환상이라는 건 밖에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고, 현실에 환상따윈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자기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섬광처럼 펼쳐지면서 마음에 온수가 차올랐다. 예전에 다녔던 가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 시절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야 할까. 

"네, 김미연입니다." 이름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주어 또렷하게 말했다. 순간, 공기 중을 부유하는 듯한 환상은 사라지고 내 앞에는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나의 업보-수많은 염원과 의무와 희노애락으로 채워가야 할 '현실'-가 웅장하게 펼쳐젔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삼십대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직장을 갖고, 누구는 이직을 하고...

그러나 누구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고, 직장을 아직 못 잡고... 이직에 실패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눈 내리는 3월의 밤. 저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도시로 올라와 싸락눈을 맞으며 열정적으로 몸을 놀리고 있다. 그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 감정에 순수하게 빠져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갑자기 저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흐물과 나는 지금 싸락눈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날리는 우리네 인간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미연'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를 보면서 정말 씁쓸했다.

'흐물'을 어장관리하면서.. 자신은 '태환'에게 어장관리 당하는 그녀...

40이 다 된 나이에 차장이라는 직위를 뒤에 달았지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아이들에 치여 걱정하는 그녀...

여전히 결혼과 가정에 환상을 가지고 있을 뿐 노처녀인 그녀...


모르겠다. 그 장면들이 실제였는지, 혼은 만취한 밤이면 벌 떼처럼 달려드는 집요한 꿈들 중 하나였는지.

전철에 타서도 여자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결혼해도 애도 잘 안 생길걸. 결혼해도 애도 잘 안 생길걸. 결혼이나 아이를 특별히 갈망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덜컥 겁이 난다. 뭔가 엄청난 것을 놓친 것 같은, 대오에서 뒤쳐져 앞사람들을 영영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 같은 느낌.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권의 소설 안에서 화자는 많은 일을 겪는다.

자신보다 잘난 동생의 가정생활을 보면서 제부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정말 좋은 성과를 냈다가 최악의 결과가 오기도 하고,

자신이 좋다고 직접 고백은 안 했으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적금도 깨고 빛까지 진 남자가 딴 여자와 결혼하고,

자신이 좋다고 만나던 남자에게 이용 당했다가 자고 나니 환상이 깨지고....


지나고 보면 이 봄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이 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새로 오는 봄 또한 오직 하나뿐인 향기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연출해 내리라. 물론 내게도,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이 다시 올 것이다. 살아있기만 한다면, 그러므로 나는 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자. "세상에는 미쳐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되뇌어 보았다. 그러자 굉장히 세련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녀는 흐물을 사랑한 걸까? 알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은 모던 하트이다.

모던한 심장은 어떤 심장일까?

화자가 마지막에 말한 세련된 인간...?

나는 씁쓸하고 외로운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녀는 아직도 혼자다. 사회에서 혼자고, 가정에서 혼자고.... 집에서 혼자고.

 

나는 이 책의 결말이 열린 결말인 건 맞지만, 새드거나 해피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이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의 끝이고 시작이 아닐까...

 

나도 그녀에게 봄이 오길 기대해 본다.

그녀와 같은 한 명의 직장인 여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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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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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씨의 행복여행"

 

꾸뻬씨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언젠간 봐야지 했었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꾸뻬씨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동네에서 가게를 열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 같다. 때로 많은 때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 그 하나로 위로를 받곤 하니까.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정신과 의사가 더 많은 걸까? 이런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꾸뻬에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꾸뻬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꾸뻬를 만나는 것을 좋아했지만, 꾸뻬는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 커질 뿐이었다.  

  

그러나 꾸뻬는 오히려 마음의 부담이 커졌고, 진정한 행복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꾸뻬는 결국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차는 걸인들을 헤치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시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창 밖으로 불타 버린 산들이 다시 보이고, 그들을 바라보던 걸인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태양은여전히 뜨겁게 내리쬐고 있고, 도로는 울퉁불퉁했다. 앞좌석에 앉은 마르쉘은 장총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꾸뻬씨는 이 나라에서 아마도 행복에 대해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물론 불행에 대해서도 많은 걸 배우게 되리라고.  

 

그는 중국에 가고, 많은 나라들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작은 수첩에 그가 배운 행복에 대해서 때론 불행에 대해서 적었다.

꾸뻬씨의 여행에는 많은 일이 생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원-나잇의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불치병에 걸린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며, 중국 노승을 만나기도 하고, 가난한 지역에 가 가정에 초대받기도 하고, 죽을 뻔 하기도 한다.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 중 흥미로웠던 두 인물은

행복을 물리적인 수치로 계산하려고 했던 과학자와 중국 노승이었다.

둘 다 꾸뻬의 수첩을 보고 행복에 대해 많은 것이 이 수첩에 담겨있다고 했지만,

둘의 보는 눈은 많이 달랐다.

과학자는 실험과 기계를 통해 분석하고 행복의 통계를 내고,

물리적으로 또는 화학적으로 행복을 도출해 내려고 했다.

반면 고승은 허허 웃으며 행복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승의 말이 더 와닿았다.

꾸뻬가 장 미쉘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는 그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꾸뻬는 그 질문이 남자들은 잘 웃게 만들지만, 여자들은 울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꾸뻬가 잠시 돌아간 파리에서 제약회사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녀는 울어버린다.

헤어지자는 거냐고.. 그러나 그의 친구 장 미쉘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같고도 다른 남녀의 심리.. 행복에 대한 것도 그런가 보다.

 

꾸뻬씨가 차량 납치범에게 남치를 당해 쥐 냄새가 나는 비좁은 벽장에 갇혀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두목에게 각기 꾸뻬를 풀어줄지 말지를 이야기 할 때, 꾸뻬는 수첩을 찢어 '전부 다 걱정거리일 것이다. 우리 함께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라고 적어서 벽장 밖으로 보낸다. 이 작은 기지 하나로 그는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다.


얼마간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삶이란 어느 한 순간에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것이다. 죽은 쥐 냄새가 나는 비좁은 벽장 안에 갇혀 있던 그날 이후부터 꾸뻬는 매 순간 삶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 느낌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꾸뻬는 경이로운 삶에 대한 감동이 남아 있을 동안에 그것을 맘껏 누리고 싶었다. 

꾸뻬는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해서, 운전사와 경호원뿐 아니라 모두가 기뻐하기를 바랬다. 다행히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우리는 많은 때, 삶의 기쁨과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삶은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 때에야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기뻐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때 나는 살아있음으로 기뻐하는가...

나에게 자주 물어봐야 하는 질문인 것 같다,


에뜨 부 꽁땅-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은 행복한가.....?

나는 이 질문을 들으면 울게 될까 아니면 웃을까?

당신은 행복한가?

사실 이 모든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행복해 있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가끔씩 쟈스민과 루퍼트 때문에 괴로워하는 훌륭한 교수만 제외하고는. 

꾸뻬는 너무 깊은 슬픔이나 큰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정말로 불행한 또는 불행하지 않으면서도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났다. 여행을 다녀온 후 그는 자기 일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이 특별한 여행에서 발견한 많은 배움들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그의 삶이 되었다. 
 

 

위의 행복한가라는 질문의 답은 바로 그 아래 문장의 인용에 나와 있다.

사실 이 모든 사람이 이미 충분히 행복해 있었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여행은 꾸뻬씨에게 특별했을 뿐 아니라 나에게 행복했고, 또 누군가에게 행복했음이 틀림 없다.

 

아래에 그의 수첩에 적혀있던 행복에 대한 배움을 정리해 보았다.


 배움
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 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노승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있는 것이다. -여인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보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는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주목할 점 - 우리는 웃고 있는 아이에게 더 친절하다. 
15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느 것이다. 

 나는 행복은 우리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수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가요?"

"왜 아니겠어요?"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노승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보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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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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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소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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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그녀"
 
이 책은 너무 예쁜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녀는 주인공이고, 피해자이고...동시에 살인자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순간 과부는 직감했다. 이 소녀의 뛰어난 외모가 그녀의 미래 삶에 결코 장점이 되지는 않을 거란 사실을, 오히려 미모가 그녀에게 벗어던질 수 없는 큰 짐이 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자들은 마농을 시기하고 미워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녀를 보고 두려워하고 마음 졸이다가 다른 경쟁자들과 겨루느라 질투심에 불타게할 것이며, 결국애는 절망하고 파멸할 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었다. 마농은 순간순간 살아갈 뿐이었다.
이런 상항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뭔지 다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저도 슬퍼요, 조금은요." 시장은 고개를 저었다. " 얘야, 그런데 너 진짜 예쁘구나."
"나는 이 도시를 떠나려고 온 게 아니야." 언젠가 그는 말했었다. "나는 여기서 살려고 온 거야."
그녀는 정말 예뻤다.
 
이 책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그녀는 예뻤다." 예쁜 것도 너무 예뻤다. 이 모든 일은 그녀의 '예쁨'으로 부터 나온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그녀에게 하나도 득이 되지 못했다.
남자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접근했고, 그녀는 순간순간을 살아갔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주시하는 사람이 없다. 여기선 이방인이다. 이제 곧 죽음을 알리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신부에게 신랑이 죽었으니 결혼식을 올릴 수 없을 거라고 말해야 한다. 
"왜 모든 걸 알려고 해요? 내가 당신 질문에 대답을 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으며, 변할 게 있을 거 같아요?"
"자네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편안하고 좋은 친구에 속하지." 마틸러가 낮게 말했다. "그런데 가끔 자네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최고로 고집불통이고, 제일 완고하고, 가장 밥맛없는 멍청이이기도 해."
 
그녀는 살인자다. 누군가의 신랑을 죽였다. 누군가의 친구를 죽였고, 누군가의 남자친구도 죽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름다웠다.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에 많은 벌레들이 꼬였고....
그녀는 그 벌레를 처리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벌레는 누군가의 신랑이었다.
 
"응, 말 그대로야. 그녀를 보는 순간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야. 학교 다닐 때도 예쁜 여학생이 있잖아. 사내 녀석들이 다 좋아해서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 여학생 말이야. 그런데 그런 짓과는 완전히 달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예쁘다고 해야 할까?"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것 같아." 
"그동안 그 여자에 대한 분노가 굉장했어. 그녀가 저지른 짓에 대해 화가 났었지. 그런데도 그 애가 무죄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니까."

 
그녀는 너무 예뻤다. '너무'라는 말이 참 합당하다.
형사가 범죄자를 무죄라 생각하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아름답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녀는 범죄자가 되었고, 얼마나 아름답기에 모든 사람이 그녀의 편이 되는지 궁금하다.

"너 스스로 그럴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가렴." 간호사가 말했다.
 
너 스스로 그럴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가렴.
 
너무 아름다운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워 본 적이 없어서 그녀를 이해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녀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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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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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보스 원숭이의 말에 주위의 새끼 원숭이들이 끄덕이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는 동안 나는 교단의 의자에 앉기도 했다가 창가에 서 있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살폈다. 정교사들 중에는 이런 때 스리슬쩍 조는 사람도 있다지만 기간제 교사인 우리들한테 그런 사치는 있을 수 없다. 정교사라면 학교가 감싸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사정없이 짤릴 뿐이다.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나쁜 소문이 돌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일하는 건 싫지만 역시 먹고는 살아야 한다.

비정근의 첫 인상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님의 작품이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비정한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초반에 무감각이랄까 조금은 시니컬한 그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실은 추리작가가 꿈이라는 그에 대한 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상대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지는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의미도 없이 믿는 시늉만 하는 것보다 건강에 훨씬 좋거든요. 정신 건강에요."
"저기, 얘들아. 인간이란 약한 존재야. 그리고 교사도 인간이고. 나도 약해. 너희들도 약해.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어던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눈물을 그칠 줄을 몰랐다.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라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그런데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작은 힌트 하나 하나를 찾아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도 참 멋있었지만,

아이를 믿어주는 교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참 멋있었다.

또 비정규 교사라서 그런지, 그의 어떤 성격인지는 몰라도

한 발짝 떨어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객관적이고도, 조금은 아이 편인 그의 모습은 

책을 보는 내내 날 유쾌하게 했다. 


"아래를 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지? 학교 운동장에도 있고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달리는 차 안에도 다 사람이 타고 있지. 너희들도 저 아래로 가면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 작은 존재인 한 인간의 다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배에 흉터가 있거나 말거나, 세상 전체로 보자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런 사소한 일 하나로 웃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항상 너희들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니야. 야노의 다리가 느리다거나 나카야마의 배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 따위 다들 금방 잊어버려. 그런데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는 거,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것을 생각하란 말이야. 어떤 일이건 도망치면 안 돼.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물론 나쁜 짓은 아니야. 하지만 보살피는 이상 책임도 져야 해. 자식한테 밥만 먹이고 그 자식이 어떤 식으로 클지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하는 부모님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그런 부모들 많아요."
"그래서 요즘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 거야."

 

어쩌면 그는 비정규직이라 불량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불량한 교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도망쳐서 해결 될 일은 없다고 말해줄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음을 말해줄 사람,

때론 못난 나를 응원해주고, 때론 나의 못남을 꾸짖어 줄 수 있는 사람.

미쳐가는 이 세상에 이런 교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학생이라면 이런 교사에게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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