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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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같은 소설이 나타났다. 처음엔 이 책이 영화화 됐다는 소리에 책을 펴보게 되었다. 영화화된 소설은 대부분 원작이 훌륭하기에 기대를 가지고 소설을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소설의 묘사나 스토리 흐름이 영화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마치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소설은 책 제목처럼 '우연 제작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연은 정말 우연일까. 연인을 맺어주는 우연, 천직을 얻게 하는 우연....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우연들이 진짜 우연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우연은 많은 우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우연제작자들이 하는 일은 작은 날갯짓을 일으키는 것. 작가가 나비효과를 거대한 상상력으로 펼쳐낸 세계다. 작은 우연들을 일으켜 인연을 맺게하고, 연인으로 발전시키고, 직업을 바꾸며, 인생이 바뀐다. 이 우연제작자들이 만든 우연은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또 실패하기도 한다. 우연에 기한이 있다니... 신선한 설정이었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우연제작자들이 나온다. 가이와 에밀리와 에릭. 셋은 삼각관계인듯 친구인듯 삼각관계다. 이 셋은 우연제작자 수련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가이는 전생의 여자를 생각하고, 에밀리는 그런 가이를 좋아하고, 에릭은 그런 에밀리를 안쓰럽게 여기고. 우연제작자들도 삼각관계는 피해갈 수 없나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여기가 시작점이야." -1, 407

"우연제작자에게도 우연 제작자가 있나요?" -261

이 두 문장이었다. 시간의 선을 보고 알맞은 지점을 찾아 짚고, 그냥 시작점이라 결정하는 것이라는 것. 이것이 우연을 제작하기 전에 하는 아주 간단한 연습이라고 우연학 개론은 말하고 있다. 책의 초반과 마지막에 같은 발췌가 있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나는 이 두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두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짚고 시작점을 결정하는 것. 그리고 우연 제작자들에게도 우연 제작자가 있을까하는 이 두 내용이 소설 전반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두 문장에 대한 것은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하여 호기심으로 남겨놓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재밌는 책이었다. 설정도, 문체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로맨스를 중간중간 숨겨 놓고, 현대사회에 빼먹을 수 없는 취업에 관한 문제라는가 여러 장치들을 넣어 꽤 두꺼운 책이 금방 읽혔다. 이 소설이 어떤 그림으로 영화화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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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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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처음엔 호기심이 강했다. 납치를 당했던 소녀와 납치범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다? 납치범과 납치피해자라니... 어감만으로도 그리 긍정적인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상식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나는 취향이 아닌가 보네. 아무 일 없이 며칠을 보낸 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란셀보다 카터블을 좋아하듯 로리콘에게도 취향이 있으리라. 그렇게 납득하고부터는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책만 읽을 거라면 카페로 가주면 좋겠다. 아이와 달리 어른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로 갈 수 있다. 나는 아이라서 네 자리는 여기다, 라고 정해진 곳밖에 갈 수가 없다. 아아, 어쩌면 저 남자도 갈 데가 없나.-28

나는 엄마에게 있어 살아남는 데 필요한 밥도 아니었고, 슬픔을 덜어줄 과자도 아니었다. 엄마가 그토록 싫어하는 '무거운 짐'이었다. 엄마는 무거운 짐을 듣지 않았다. 엄마는 참지 않는 사람이었다. -65


자유로운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란 소녀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엄마에게 방치되고 결국 버려져 이모네에서 살게 되지만, 그 일반적인 삶이 평탄치 않다. 어려서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 모든 것이 다 힘들었던 청년. 소녀는 그를 로리콘이라 생각했고, 청년을 소녀를 보며 일탈을 배웠다. 그 둘의 일탈은 소녀를 피해자로 청년을 범죄자로 만들었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책 소개를 읽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범죄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범죄에 뒷이야기가 있는 경우도 분명 있겠구나. 나에게는 그저 뉴스 한 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짐이고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반성하게되었다.


읽으면서 뻔한 이야기로 전개될 거라 생각했지만 반전은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반전은 아니고, 결말은 예상한 대로 흘러갔지만.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이 책은 언뜻 로리콘과 스톡홀롬증후군을 다루고, 범죄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실은 그렇지 않듯, 책을 덮은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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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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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작으로 전작 '64'를 알고 있었기에 정말 기대되는 책이었다. 표지도 맘에 들고, 과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빛의 현관,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은 어떤 모습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폈다.

 

버블이 꺼지고 취업난이 심해지는 때에 건축 일 역시 활기를 잃었고, 건축가였던 주인공도 힘든 시기를 겪는다. 인생은 늘 쉽지 않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기업이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지는 시기에 주인공도 같이 무너진다. 자존감의 하락과 사소한 다툼으로 아내와 이혼하게 되지만, 결국 건축사로서 재기한다.

눈을 감고 <<200선>>을 덮었다. 언젠가 나의 집을 세우리라. 여드름 투성이 소년 시절의 포부와 간절한 바람이 살아남아 있었던 까닭에 요시노의 말은 마법이 될 수 있었다. '북향 집'이라는 발상도, '목조 주택'이라는 선택도 필연이었다고 다시금 생각했다.-56

하지만 저 장관도타 이기지 못하는,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공은노스라이트였다. 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창문은 경관을 한 폭의 그림으로 꾸미는 액자가 아니라, 이 집의 '빛의 현관'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88

 

아오세 미노루라는 건축가가 상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아오세는 말했다. 제가 그러고 싶습니다. 언제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을. 그것은 백일몽이었나. 현실이 눈앞에 나뒹굴고 있었다. 요시노 일가는 자취를 감췄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아오세는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의자를 보았다. 창문을 향해 놓인 의자 하나. 왜 이런 물건을 이곳에 둔 걸까. 앉기 위해서다. 요시노가 이 의자에 앉았으리라는 건 쉬이 상상할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지고 와서 방 가운데에 놓고, 앉아서, 그래,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89

이 이야기는 Y주택으로부터 시작된다. Y주택에 얽힌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처음엔 Y저택을 지어서 상을 받은 건축가가 나온다. 이 건축가는 의뢰인에게 본인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했고, 잘 지어진 집은 상을 받는다. 수상 소식에 비슷한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가 여기저기서 온다. 그 와중에 Y저택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는 사라진 의뢰인을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

의뢰인은 왜 그런 주문을 했고,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리고 저택에 있는 의자는 무엇일까. 책 초반에는 온갖 의문들이 난무하다가 중후반으로 갈 수록 초반의 조각들이 맞물려 그림을 그려낸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향, 빛, 가족, 아버지, 아내, 딸, 가

족애, 살고 싶은 집, 의자, 휴식처... 많은 것들이 잘 어우려져 정말 표지 그림같은 따스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미스터리로 시작했으나 따스한 풍경으로 끝나는 느낌이랄까. 가장 소중한 건 바로 곁에 있는 것이고, 잃기 전에 소중함을 느끼고 잘 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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灼熱
아키요시 리카코 / PHP硏究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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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이 왔다. 설정이 재밌어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일단 가제본이라는 것에 마음이 설렜다. 완성에 다가가기 전에 미완의 설렘이란. 아무튼 책이 왔을 때부터 설렜던 마음이 책을 보면서 점점 더 커졌다.

경찰서에서 다다토키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 것은 1년 반 전이었다. -19

이 소설은 남편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상처많은 두 남녀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다듬고 이제 부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던 중 갑작스러운 부고. 심지어 그 연락이 경찰서에서 왔는데, 더해서 남편이 사기꾼이란다. 학창시절서부터 함께 지냈던 남편이 사기꾼이라니... 거기에 모르는 아파트에서 추락사를 했고, 모르는 명함도 나온다. 남편은 도대체 어떤 일에 휘말린 것일까. 거기에 용의자로 떠오른 것이 히데오였다.

사키코는 자살하려고 했으나 다른 여자로 사는 삶을 선택하고, 히데오와 결혼한다.

히데오는 본인이 살인 용의자라며 사키코를 거절했으나 결국 둘은 결혼한다. 전남편의 비밀과 현남편의 비밀과 여주인공 자신의 비밀. 비밀들로 점철된 이야기는 반전으로 끝난다. 조금은 뻔한(?) 반전일수도 있지만, 그것은 내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아껴두겠다.

남편의 복수를 위해 남편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 남편들에 대한 미스테리. 복수를 꿈꿨으나 결국 사랑에 빠진 여자. 그리고 몸이 아픈 여동생의 존재. 이 모든 것이 섞여서 반전을 만들어낸다.

책을 덮은 지금은 조금은 뻔하게 흘러가지 않았나 싶기는 하지만, 책은 생각보다 잘 읽히고 금방 읽혔다. 곧 가제본이 아니라 정발본이 예쁘게 나올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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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정변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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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라니... 너무 자극적인 제목인 것 같다. 요즘 비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삼십대 초반에 나는 이런 책들을 점점 많이 보고 있다. 이 책도 그런 관심으로 인해 보게 되었다. 왜 작가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또 왜 못하게 되었을까. 안함과 못함의 차이는 꽤나 큰데 작가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의 궁금증이 계속 일었다.

막연히 나도 하겠지의 시기가 지나고 웬지 나만 뒤처져가는 것 같은 비혼의 또는 미혼의 삼십대. 삼십대 후반의 예민희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조금은 슬펐다. 작가가 프롤로그에 '옛날옛적 어느 먼 나라에서 예민희라는 아주 예쁘고 착한 공주님이 살고 있었어요'가 아닌 '2020년 대한민국 서울에 별로 착하지도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30대 예민희가 숨은 쉬고 있어요'라는 이야기라는 글이 인상 깊었다. 비혼이 그저 평범한 이야기가 되고 있는 현실이 조금은 반갑다.



그래도 많은 때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있다. 남들은 그냥 물어보는데 '결혼', '남자', '아이'라는 특정 단어에 예민해지거나 강하게 반응하게 되는 현실도 있다. 작중 예민희는 그러한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결국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조금 씁쓸해보이기도 했고 살짝 멋져보이기도 했고.... 내 미래같기도 했다.




나도 아직은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결혼이 하고 싶어질지 아니면 나도 예민희처럼 못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뭐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매일을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신박하고 롤러코스터같은 이야기는 없었지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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