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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씽 (예담)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모든 것, 모든 것이라는 이 책은 사랑이 모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펴 보기 전부터 유명했던 책이라 기대기대하면서 책을 폈다.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자면, 세상에 나가본 적 없는 소녀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랄까. 무채색의 방에서 걸러진 공기로 숨쉬며, 세상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18살이 된 소녀는 10년 넘게 이런 방에서 살았다. 소녀의 병명은 SCID ROWㅡ중증 복합면역결핍증이라는 병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병이 실제로 있는지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실제로 있는 병이었다.
내 새하얀 방의 새하얀 벽에 놓인 새하얀 책장에 가지런히 책들이 꽂혀 있고 이 책들만이 내 방에 색깔을 부여한다.ㅡ9
간단히 설명하면 기본적으로 나는 세상 모든 것에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보면 된다 ㅡ12
<<앨저넌에게 꽃을>> 또 읽어? 그것만 읽으면 운다면서?
언젠가는 안 울겠죠.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읽어보려고요 ㅡ 25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훗날에는, 무엇이 되건 지금과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고 있진 않은 것이다. ㅡ25
내가 만약 매들린이었다면 나는 아마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스포를 하자면, 매들린도 결국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날 밤 나는 이 집이 나와 함께 숨을 쉬는 꿈을 꾸었다. 내가 숨을 내쉬자 벽이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무너지면서 나를 덮쳤다. 한 번만 더 숨을 내쉬면 내 삶은 마침내, 마침내, 폭발해버릴 것이다. ㅡ33
그의 가족들은 그를 올리라고 부른다....보면 볼수록 나는 그 아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 ㅡ36
인생은 누구나 힘들단다, 얘야. 그렇지만 각자 자기 갈 길을 찾아가게 되지. ㅡ48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야." ㅡ84
"왜 너희 여자애들은 엄마한테 거짓말하는 걸 그렇게 쉽게 생각하니?"ㅡ85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든 게 리스크 아닐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리스크거든. 모두 네가 하기에 달렸어." 나의 하얀 방과 하얀 소파와 하얀 책장과 하얀 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안전하고 익숙하고 변함없다. ....올리는 이 모든 것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었다. 그는 안전하지 않다. 그는 익숙하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아이는 내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리스크다. ㅡ88
무채색이었던 그녀의 삶에 다가온 것은 한 소년이었다. 무채색과는 너무 대비되는 세상 모든 것에 색깔을 부여하게 되는 사랑에 빠지게 만든 소년말이다. 왜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아름다워보이고, 모든 색깔이 극명하고 뚜렷하게 보이게 되는 것일까. 소녀에게 소년은 유채색의 자유로운 영혼이자, 첫사랑이자 바깥 세상이었다. 가장 큰 위험이 곧 가장 큰 기회이기도 하다는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이 난다. 소녀에게도 올리는 가장 큰 위험이자 가장 큰 기회였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경험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지. 그리고 희망 없는 짝사랑에 빠지는 것도 우리 인생의 일부야."ㅡ102
나는 실로 오랜만에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원했다. ㅡ103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는 걸 인식하지마자 난 우주에서 지구로 추락하고 말았다. 무언가 원한다는 감정은 나를 두렵게 한다. 마치 바로 당신의 눈앞에 천천히 퍼지는 잡초와 같다. 잠깐 넋 놓고 있는 사이에 잡초는 마당을 덮어버리고 창문까지 가려버린다. ㅡ105
내가 확실히 아는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한 번 원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더 많은 걸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욕망엔 끝이 없다. ㅡ106
"아직은 잘 모를 거야. 하지만 이것도 다 지나간단다. 그냥 새로운 현상이고 호르몬 때문이야."ㅡ110
"이것 말고도 네가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아."ㅡ111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는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였다. 이 책의 중요 사건에는 사랑이 있었다. 사랑이 혹은 사랑과 닮은 감정들이 모든 사건들의 계기가 되고 있다. 매들린은 칼라가 말한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말에 사랑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지만, 사랑 때문에 죽고 싶어지긴 하니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매들린은 올리와 채팅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양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와 같은 방에 있는 게 대체 뭐기에 이렇게 내 몸과 내 몸의 모든 부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이제 난 내 피부 세포까지도 의식한다. ㅡ120
"그러니까 말이야. 가져본 적 없는 걸 그리워하는 기분 알아? 이상해. 정확하게는 가졌었다는 게 기억이 안 나는 거?"ㅡ122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예측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은 예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나는 올리와 사랑에 빠지고야 말리라는 것. 그리고 그건 재앙이 되고야 말리라는 것. ㅡ126
"네 잘못이 아니아. 인생은 선물이란다. 그 선물을 살아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용감해야 해. 기억해, 인생은 선물이란 걸." ㅡ 178
엄마와 내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서는 아니다. 올리가 엄마 자리를 대신해서도 아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와 멀어진 이유는 감춰야 할 비밀이 생겼기 때문이다. ㅡ128
가끔은 인생 자체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드러낼 때가 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전면 유리창으로 들어와 사다리꼴의 빛을 만들어냈다. 위를 올려다 보니 공기 속에서 먼지 입자들이 떠다녔고 그 먼지 입자들은 아지랑이 같은 빛 안에서 투명한 흰색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한 장면 아래 세계 전체가 존재하고 있다. ㅡ207
"고마워" 할 말은 그뿐이다. 내가 이렇게 세상에 나온 건 다 네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랑이 내게 세상을 열어주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도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이 둘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ㅡ227
"그런데 말이지. 인생에 아무 후회가 없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닌 거야."ㅡ234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건지도 몰라."ㅡ276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이제 칠흑같은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가 멀리 밀려났다가 다시 밀려와 모래를 밀어내며 지구를 닳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항상 실패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와서 사력을 다해 해안의 모래를 밀고 또 밀어냈다. 마치 지난 번은 기억 안 난다는 듯이, 다음번은 없다는 듯이, 이번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단 한 번이라는 듯이. ㅡ295
어머니의 보호에 의해 갇혀있던 소녀와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소년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둘은 하와이로(!) 가출은 떠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왜 도망처가 하와이가 되었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와이의 어떤 점이 도피처로 합당했던 걸까? 뭐 쨌든 소년과 소녀는 떠났다. 그 뒤는 너무 스포가 되기에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뭐 하나만 더 하자면, 그 짧은 도피는 소녀가 아파서 끝났다고나 할까.
이 책을 보며 가장 많이 생각난 책은 '어린왕자'와 '소나기'였다. 하나는 서양의 책이고 하나는 동양의 책인데, 둘은 '순수하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책의 저자는 어린왕자를 베이스로 해서 이 글을 쓴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소나기라는 책이 더 떠올랐다. 소녀가 아프다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까? 뭐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순수가 아름답지만, 그 무채색이 과연 삶을 오히려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른이 되는 것은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어린왕자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더이상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닐까 싶다.
소년과 소녀의 풋풋하면서도 아름다운, 어쩌면 도피적인 사랑은 결국 현실에 정착한다. 이 순순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삶은 아마 계속 될 것이다. 그런데 슬픈 것은 아름다운 결말의 그 뒷 이야기가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함 때문일까? 어린왕자는 결국 죽고 말았다. 소녀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 책이 영화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는 사랑이 모든 것이라 말하는 이 이야기를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을까? 개봉하면 보러가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