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씽 (예담)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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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것, 모든 것이라는 이 책은 사랑이 모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펴 보기 전부터 유명했던 책이라 기대기대하면서 책을 폈다.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자면, 세상에 나가본 적 없는 소녀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랄까. 무채색의 방에서 걸러진 공기로 숨쉬며, 세상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18살이 된 소녀는 10년 넘게 이런 방에서 살았다. 소녀의 병명은 SCID ROWㅡ중증 복합면역결핍증이라는 병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병이 실제로 있는지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실제로 있는 병이었다.

 
내 새하얀 방의 새하얀 벽에 놓인 새하얀 책장에 가지런히 책들이 꽂혀 있고 이 책들만이 내 방에 색깔을 부여한다.ㅡ9


간단히 설명하면 기본적으로 나는 세상 모든 것에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보면 된다 ㅡ12


<<앨저넌에게 꽃을>> 또 읽어? 그것만 읽으면 운다면서?
언젠가는 안 울겠죠.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읽어보려고요 ㅡ 25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훗날에는, 무엇이 되건 지금과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고 있진 않은 것이다. ㅡ25

 


  내가 만약 매들린이었다면 나는 아마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스포를 하자면, 매들린도 결국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날 밤 나는 이 집이 나와 함께 숨을 쉬는 꿈을 꾸었다. 내가 숨을 내쉬자 벽이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무너지면서 나를 덮쳤다. 한 번만 더 숨을 내쉬면 내 삶은 마침내, 마침내, 폭발해버릴 것이다. ㅡ33

그의 가족들은 그를 올리라고 부른다....보면 볼수록 나는 그 아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 ㅡ36

인생은 누구나 힘들단다, 얘야. 그렇지만 각자 자기 갈 길을 찾아가게 되지. ㅡ48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야." ㅡ84

"왜 너희 여자애들은 엄마한테 거짓말하는 걸 그렇게 쉽게 생각하니?"ㅡ85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든 게 리스크 아닐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리스크거든. 모두 네가 하기에 달렸어." 나의 하얀 방과 하얀 소파와 하얀 책장과 하얀 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안전하고 익숙하고 변함없다. ....올리는 이 모든 것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었다. 그는 안전하지 않다. 그는 익숙하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아이는 내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리스크다. ㅡ88


  무채색이었던 그녀의 삶에 다가온 것은 한 소년이었다. 무채색과는 너무 대비되는 세상 모든 것에 색깔을 부여하게 되는 사랑에 빠지게 만든 소년말이다. 왜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아름다워보이고, 모든 색깔이 극명하고 뚜렷하게 보이게 되는 것일까. 소녀에게 소년은 유채색의 자유로운 영혼이자, 첫사랑이자 바깥 세상이었다. 가장 큰 위험이 곧 가장 큰 기회이기도 하다는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이 난다. 소녀에게도 올리는 가장 큰 위험이자 가장 큰 기회였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경험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지. 그리고 희망 없는 짝사랑에 빠지는 것도 우리 인생의 일부야."ㅡ102

나는 실로 오랜만에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원했다. ㅡ103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는 걸 인식하지마자 난 우주에서 지구로 추락하고 말았다. 무언가 원한다는 감정은 나를 두렵게 한다. 마치 바로 당신의 눈앞에 천천히 퍼지는 잡초와 같다. 잠깐 넋 놓고 있는 사이에 잡초는 마당을 덮어버리고 창문까지 가려버린다. ㅡ105

내가 확실히 아는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한 번 원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더 많은 걸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욕망엔 끝이 없다. ㅡ106

"아직은 잘 모를 거야. 하지만 이것도 다 지나간단다. 그냥 새로운 현상이고 호르몬 때문이야."ㅡ110

"이것 말고도 네가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아."ㅡ111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는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였다. 이 책의 중요 사건에는 사랑이 있었다. 사랑이 혹은 사랑과 닮은 감정들이 모든 사건들의 계기가 되고 있다. 매들린은 칼라가 말한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말에 사랑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 때문에 죽지는 않지만, 사랑 때문에 죽고 싶어지긴 하니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매들린은 올리와 채팅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양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와 같은 방에 있는 게 대체 뭐기에 이렇게 내 몸과 내 몸의 모든 부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이제 난 내 피부 세포까지도 의식한다. ㅡ120

"그러니까 말이야. 가져본 적 없는 걸 그리워하는 기분 알아? 이상해. 정확하게는 가졌었다는 게 기억이 안 나는 거?"ㅡ122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예측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은 예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나는 올리와 사랑에 빠지고야 말리라는 것. 그리고 그건 재앙이 되고야 말리라는 것. ㅡ126

"네 잘못이 아니아. 인생은 선물이란다. 그 선물을 살아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용감해야 해. 기억해, 인생은 선물이란 걸." ㅡ 178

엄마와 내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서는 아니다. 올리가 엄마 자리를 대신해서도 아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와 멀어진 이유는 감춰야 할 비밀이 생겼기 때문이다. ㅡ128

가끔은 인생 자체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드러낼 때가 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전면 유리창으로 들어와 사다리꼴의 빛을 만들어냈다. 위를 올려다 보니 공기 속에서 먼지 입자들이 떠다녔고 그 먼지 입자들은 아지랑이 같은 빛 안에서 투명한 흰색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한 장면 아래 세계 전체가 존재하고 있다. ㅡ207

"고마워" 할 말은 그뿐이다. 내가 이렇게 세상에 나온 건 다 네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랑이 내게 세상을 열어주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도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이 둘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ㅡ227

"그런데 말이지. 인생에 아무 후회가 없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닌 거야."ㅡ234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건지도 몰라."ㅡ276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이제 칠흑같은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가 멀리 밀려났다가 다시 밀려와 모래를 밀어내며 지구를 닳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항상 실패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와서 사력을 다해 해안의 모래를 밀고 또 밀어냈다. 마치 지난 번은 기억 안 난다는 듯이, 다음번은 없다는 듯이, 이번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단 한 번이라는 듯이. ㅡ295

 

  어머니의 보호에 의해 갇혀있던 소녀와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소년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둘은 하와이로(!) 가출은 떠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왜 도망처가 하와이가 되었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와이의 어떤 점이 도피처로 합당했던 걸까? 뭐 쨌든 소년과 소녀는 떠났다. 그 뒤는 너무 스포가 되기에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뭐 하나만 더 하자면, 그 짧은 도피는 소녀가 아파서 끝났다고나 할까.

 

 

 

   이 책을 보며 가장 많이 생각난 책은 '어린왕자'와 '소나기'였다. 하나는 서양의 책이고 하나는 동양의 책인데, 둘은 '순수하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책의 저자는 어린왕자를 베이스로 해서 이 글을 쓴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소나기라는 책이 더 떠올랐다. 소녀가 아프다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까? 뭐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순수가 아름답지만, 그 무채색이 과연 삶을 오히려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른이 되는 것은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어린왕자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더이상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닐까 싶다.

  소년과 소녀의 풋풋하면서도 아름다운, 어쩌면 도피적인 사랑은 결국 현실에 정착한다. 이 순순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삶은 아마 계속 될 것이다. 그런데 슬픈 것은 아름다운 결말의 그 뒷 이야기가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함 때문일까? 어린왕자는 결국 죽고 말았다. 소녀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 책이 영화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는 사랑이 모든 것이라 말하는 이 이야기를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을까? 개봉하면 보러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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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 서툴면 서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지금 내 마음대로
서늘한여름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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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 맘대로 하나도 안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제목이라서 마음이 끌렸다.

  어느날 갑자기 삶이 힘들어졌고, 직장과 준비하던 미래를 때려치고... 갑작스레 백수로 들어선 작가의 결정은 무모해 보이기도 했고, 부러워 보이기도 했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되어 있다. '버리다, 찾기 위해', '느낀다, 여기에서 나답게', '자란다, 잘하고 있으니까' 제목들도 참 와닿았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엔 작가의 이야기가 대단하게 느껴졌고, 그림체가 귀엽고 색감이 예뻤고... 결론은 그녀도 나와 같은 평범한 어느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하는 이야기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혼자가 아니라는 내용에 눈물이 날 뻔 했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니. 아니 어쩌면 그 위에 있던 어두운 우주에 둥둥 떠 있는 그림이 너무 나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상처를 통해 강해지지 않는다. 상처를 통해 강해지라고 하는 말은 대부분 그 상처에 무뎌지라는 뜻이다. 무뎌진 사람들은 상처받는 환경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무뎌지는 것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나를 진짜 강하게 만들어줬던 것은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했던 말들이다. 힘들 때 나를 지켜줬던 것은 욕먹었던 기억이 아니라 칭찬받았던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 마음 속에 진주같은 건 품고 싶지 않다. 늘 말랑말랑하고 예민한 마음인 채로 살고 싶다. ㅡ40

 

 

  나다운 게 무엇일까. 이 책에는 작가가 달렸던, 꿈을 위해 나아갔던 이야기들, 작가의 엄마와의 이야기, 연애사, 그리고 결혼사. 작가의 많은 약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내가 이 부분이 약하고, 이 부분이 힘들고. 꺼내 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들 하지만, 자신의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책 내용에 조금은 놀랐다. 작가는 연인이었던 지금은 남편인 분의 많은 다독거림으로, 그리고 셀프 다독으로 많이 이겨내신 것 같다. 나는 과연 다독을, 셀프 다독을 잘하고 있는지... 여전히 잠 못 드는 밤에 고민해 본다.


남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당연한 것들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결핍은 채워지기 전까지 극복할 수 없다는 걸, 채워지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하긴 노력으로 극복될 거였으면 애당초 결핍이 아니었겠지. ㅡ160

 

....세상에 망한 인생은 없다는 걸 인생은 망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ㅡ188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 중에 GOD의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이 맞는지, 걷고 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지, 한 발 한 발 걸어가면서도 살아가면서도 많은 생각과 고민과 걱정이 들지만, 노래를 들으며 책을 보며 작은 위안 한 조각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정말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나만 온갖 갈림길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구나. 다들 많은 선택의 길로에서 내가 갈 길 하나 없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구나.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오늘은 그게 나였을 뿐이다. 그러니 조금 더 너그러워지자. 남들어게도, 나에게도. ㅡ248

 


   전에 어느 책에서 '존버'라는 단어를 봤다. 정확하게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용은 그거였다. 존나게 버텨라. 이긴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버틴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는 싸움에 이기고 지는 것은 없다. 존나게 버티다 보면 이기게 되고, 승리하게 된다고. 나는 잘 버티고 있는 것일까? 위 그림 속의 물 속의 사람이 마치 나같다. 나는 잘하고 있는지. 잘 버티고 있는지. 언제야 이 강을 건널 수 있을지... 그래도 버티다 보면 언젠가 끝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마지막에는 짧게나마 작가의 고민 상담(?)이 있었다. 독자들의 말에 성심껏 답해주는 모습에 감동 받았다. 이 책의 그림체가 아주 뛰어나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아니다. 그런데 특유의 색감과 귀여운 캐릭터와 위로의 말이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책의 부제인 '서툴면 서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지금 내 마음대로' 가끔은 딴 사람의 마음인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어차피 내 마음이니까. 나 혼자 그런 건 아니라고 위안하며 내 마음대로 이거 하나, 저거 하나 조금씩 내 맘대로 살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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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인문학
이봉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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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인문학이라는 제목만 봤을 때, 책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의문이들었다. 음란함과 인문학은 언뜻 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고, 공통요소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보면서 그런 편견은 많이 사라졌다.


인문학은 시대뿐만 아니라 국가에 따라서 조금씩 의미를 달리했다. 한국의 경우 문,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이라는 세 가지 학문으라 이해되곤 했다. 미국은 이것 외에도 예술을 인문학에 포함한다. 프랑스는 역사와 철학 이외에 사회학을, 톡일은 심리학을 포함한다. 이렇게 인문학은 광범위한 학습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이 인문학 공부가 난해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란'의 사전적 의미는 '음탕하고 난잡함'이다. 유혹적이면서 부정적인 어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한 단어다. 그러나 음란이라는 단어만큼 인간의 성문화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도 없다.


  음란한 건 어떤 것일까? 이 책의 부제는 '금기와 억압에 도전하는 원초적 독법'이다. 음란하다는 단어가 주는 뭔가 꺼려지고 숨겨야하고 더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음란함을 금기로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많은 금기들이, 그리고 그 금기들을 이겨낸 사례들이, 그 금기들이 왜 금기가 되었는지 등등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학문에는 어떠한 성역이나 금기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인정하지만,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 인문학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음란한 인문학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음란함이란 성적인 요소이다. 성을 가지고 정치적, 예술적, 문학적으로 드러낸 사례들이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음란함들이 어떻게 사회에 드러내졌는지. 그리고 동성애나 로리타 등 아직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많은 논란이 되는 성적인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우리는 치치올리나의 행보에서 두 가지의 음란함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만들어진 음란함'이다. 그녀는 섹스를 직업의 도구이자 표현의 수단으로써 활용했다. 다음은 대중의 시선과 사회라는 통제망을 뚫고 드러나는 '주제적 음란함'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둘러싼 금기와 고정관념의 벽을 과감히 뛰어넘었다.

 

어떤 미술평론가는 피카소의 끊임없는 예술적 원천은 그를 둘러싼 여인들과의 사랑이었다고 평가한다. 피카소의 예술인생에서 사랑을 빼고는 그 무엇도 가치를 논할 수 없기에.


   많은 주제들 가운데 흥미로웠던 것은 피카소였다. 피카소라는 작가가 유명한 건 누구나 안다. 그의 그림을 봤을 때 '아, 비싼 그림이구나.. 이런 그림이 왜 비싸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피카소의 작품을 볼때면 과연 피카소는 이런 여인들을 그림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게르니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흥미로웠다.


<<황혼유성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초라하다......상처 주는 이도, 상처 받는 이도 모두가 늙어간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과거를 후회하고, 반성하고, 아쉬워 하며서 살아온 날보다 짧은 살아갈 날들을 위태롭게 버틴다.


중년이라는 시간을 걷는 사람들. 이들은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위치에 서 있다. 그렇게 자주 멈칫하고 고민한다. 경험은 쌓이고 사유는 깊어졌지만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실패할 경우 다시 돌아갈 자리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외롭고 위태로운 사랑을 감수해야만 한다.


 

 

   음란한 것은 누가 정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그런 의식때문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든지, 쓰개치마라든지, 정절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강요되었다고들 다들 생각한다. 미국의 서구적인 그런 개방적인 성의식이 부럽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미국이 청교도적 의식때문에 굉장히 금욕적이고 성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던 서구적인 성 개방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실 우리나라가 유교주의를 절대화하고, 성에 억압적이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다. 많이 알려진대로 고려만 해도, 조선초만해도 음란함이 금기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다시 음란함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만화에서처럼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룻밤 충동적인 잠자리가 아니라 두 번째 삶을 용기 있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음란한 인문 정신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한국작가라서 참 좋았다. 서양의 많은 사례들이 나오면서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것을 한국에 적용하는 모습이 나올 때 움찔하면서 아 한국작가였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외국작가의 좋은 책들이 많지만, 읽다보면 읽는 것을 끝나는 경우가 많고, 적용이 안 되거나 아니면 다른 문화에 이해조차 안 될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금기를 건드린 책임에도 한국작가가 썼고,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우리사회에 잘 적용하는 것 같아서 보면서 좋았다. 또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은 우리사회가 '금기'라 말하는 것들을 인문학적으로 잘 풀어낸 것 같아서 읽으면서 음란한데 학문적인 그 모습이 좋았다. 음란한 것이 마냥 더럽고 꺼려지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이렇게 풀이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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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로소의 분홍 벽
에쿠니 가오리 지음, 아라이 료지 그림, 김난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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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나왔다. 에쿠니 가오리의 많은 작품 중 "나의 작은 새"라는 작품이 있다. 동화인데, 책도 내용도 그림도 정말 좋아서 요즘도 가끔 보곤 한다. 그 책을 읽으며 힐링하곤 했었는데,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동화라니! 정말 기대가 되었다.

  제목은 몬테로소의 분홍 벽. 핑크빛 표지가 마음을 사로잡고 의자 위에 앉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시선을 강탈한다. 이 책은 짧게 말하자면, 고양이 하스카프의 여행기이다.


하스카프는 연한 갈색 고양이. 아담한 몸집에 성격은 낙천적이고 눈은 빛나는 황갈색이다.

하지만 조금만 잘 살펴보면 하스카프가 만날 잠만 자는 게으른 고양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쁜 실을 길게 당긴 것처럼 꼭 감은 눈, 사려 깊은 이마. 하스카프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꿈에 등장하는 분홍 벽. 그건 정말 아름다운 분홍색 벽이었다. 


 

눈을 뜨면 하스카프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 분홍벽이 있는 동네야말로 내가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은 고양이 하스카프가 꾸는 아름다운 분홍벽이 나타나는 꿈에서 시작된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 고양이는 그 분홍벽이 있는 동네야말로 그녀가 가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꿈에서 나타난 사람에게 어디냐고 물어봤고, 그는 그곳이 몬테로소라고 말했다.


정말 애틋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하스카프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별의 인사로 부인의 발을 날름 핥고, 항구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몬테로소에 갈 거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포기도 해야 한다는 것쯤 나도 잘 알고 있어.


먹고 싶다고 야옹야옹 애절하게 울어 소시지 한 토막 얻어먹고 싶지는 않았다.

먹을거리는 제 손으로 잡아먹는 고양이니까.


하스카프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몬테로소에 가야 하니까. 몬테로소에.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나서.


하스카프의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었다. 동네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 몬테로소를 향해서.


몇 날 며칠이 지났을까? 몇 밤이 지났을까? 지붕을 걷고, 들판에서 자고, 시장을 가로지르고, 몬테로소에, 몬테로소에, 몬테로소에.


  하스카프는 안락한 집을 떠나, 부인을 떠나 몬테로소로 가는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부인에게 맛있는 빵을 사주겠노라 약속한 열기구 연구가의 도움으로 그리스로 가게된다. 그리스에서 몬테로소로 가는 길에서 고독한 여행자도 만나고, 생쥐를 오븐에 구워준 가족도 만나고, 가장 걱정했던 사자는 만나지 못 했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나서 몬테로소로 간다. 중간에 떠나온 집이 생각나기도 하고, 고독한 예술가가 함께 살자는 제안도 거절하고, 매력적인 사자를 만나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지면 어떻하나 고민하면서 그녀는 계속 나아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양이라지만 어떻게 꿈에서 본 그 분홍 벽과 꿈에서 만난 사람의 한 마디에 그렇게 맹목적으로 한 곳을 나아갈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라면, 꼭 잠에서 꾼 꿈이 아니라, 인생을 목표나 내 이상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맹목적으로 긴 인생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락한 집과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어딘가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그저 막연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그런 생각으로 나는 떠날 수 있었을까? 몇 장 안 되는 그림 동화책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고양이도 알고 있는데, 나는 너무나 많은 때 둘 다 놓치기 싫어서 꽉 붙잡고 있다가 둘 다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결국 그녀는 그녀가 보았던 그 분홍 벽에, 몬테로소에 도착한다.


아아, 역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었어.

하스카프는 분홍색 꿈속에서 ㅡ분홍색 현실 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ㅡ 그렇게 확신했다. 그즈음, 하스카프는 분홍 벽에 스민 고양이 모양의 연한 갈색 얼룩이 되고 말았지만, 물론 본인은 전혀 몰랐다. 거울이 없었으니까.


흔치는 않지만, 세상에는 몬테로소의 분홍 벽을 꼭 찾아가야 하는 고양이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나서, 몬테로소라는 도시가 궁금해졌다. 고양이가 꿈에서 보고, 꿈 속의 사람이 알려준 분홍 벽의 도시, 그 곳은 실제로 있는 곳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찾아봤는데... 실제로 있는 곳이었다! 몬테로소는 이탈리아에 있는 한 마을인데, 정말 핑크핑크한 곳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고양이 얼룩이 남은 핑크벽을 보며 이 글을 써내려갔을 작가가 그려졌다. 햇볕이 잘 드는 분홍 벽의 카페에 앉아 고양이 얼룩을 보며 상상에 잠기는.

  현실에서도 흔치는 않지만, 본인의 꿈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안락한 삶보다 지붕을 걷고, 들판에서 자고, 시장을 가로지르고... 몬테로소로 향하는 사람들. 내가 그 사람들에 포함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생각이 들게하는 동화였다. 결국은 그 꿈을 이뤄 역사에, 또는 어딘가에 하나의 무늬로 오래오래 남을 그럴 사람들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현실에 안주하고, 누군가는 떠난 길의 힘겨움에 중도 포기를 한다. 흔치는 않지만, 그 곳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사람들이 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딜지... 몬테로소의 분홍 벽을 마음에 그리며 오늘밤 꿈꿔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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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핏 다이어트 - 발레보다 쉽고, 헬스보다 완벽한 최고의 홈트
한지영 지음 / 비타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노출의 계절인 여름이 또 왔다. 언제나의 여름처럼 겨울에 먹고 찌운 흔적을 지우려 이것 저것 찾아보던 중 발레핏 다이어트가 눈에 띄었다. 발레를 배운 적도 없고 하지도 못하지만,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날씬할뿐 아니라 몸 선이 예쁘다는 건 안다. 헬스장이나 학원에 안 다녀도 되는 홈트레이닝에 발레가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레핏은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학생과 직장인 또는 오래 서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자세가 곧아지면 자연히 키가 조금 커지면서 몸매가 살아난다. 발레핏은 거북목이나 골반 비대칭 등 잘못된 체형을 교정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ㅡ15


홈트레이닝으로서의 발레는 우아하고 예술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다. 스트레칭으로도 매우 좋고, 몸매를 교정하는 데에도 탁월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다가, 거북목에.... 비대칭까지 있는 나에게는 꼭 해야하는 운동인 것 같다.


이 책은 총 3주 분량으로 되어 있다. 군살을 빼고, 라인을 완성하고, 탄력을 채우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언제나 쉽지 않은 몸매 좋은, 건강한 다이어트의 공식인 것 같다.

 솔직히 책을 펴보기 전엔 발레에 대한 흔한 선입견때문에 이걸 집에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런데 보면서 그런 걱정이 많이 사라졌다. 책에는 준비운동에 대한 사진 뿐 아니라 발 모양 디테일, 그리고 혹시 사진으로도 부족할까 싶어 qr코드를 중간중간 넣어주셨는데, 이 코드를 읽으면 동영상이 재생된다.


솔직히 동영상이 정말 좋았다. 사진을 보고 설명을 보아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 번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중간에 qr코드를 넣어 동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은 이 책의 어마어마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동영상을 보면서 하니까 굳이 학원에 안 다녀도 멀게만 생각했던 발레라는 운동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발레에 대한 준비운동, 동작들만 있는 게 아니라 다이어트 정체기 극복 노하우, 식단, 식욕에 대한 충고들, 다이어트에 대한 충고들이 있어 더 좋았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결심이고 결론은 식단이라는 말은 정말 진리인 것 같다.


식욕을 참기란 매우 어렵다....그럴 때는 먹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1. 지금 떡볶이를 안 먹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은가? 2. 먹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3. 내가 지금 먹어도 되는 몸인가? 참을 수 있다면 주말에 친구와 먹을 계획을 세우는 등 먹기를 미룬다.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다면 먹는다. ㅡ24


참기 힘들면 먹어도 좋다. 과식 좀 했다고, 빵을 좀 먹었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다이어트는 다시 시작하면 된다. 스트레스가 더 큰 적이다. ㅡ33


 


 
자세한 식단이 나와있어 따라하기도 좋았다. 양이 작게 자주 먹는 식습관이 좋다고 들었는데, 직장인을 배려해서 대체할 수 있는 간식까지 친절하게 적어주셔서 더 좋았다. 여신 몸매를 가진 분의 식단을 따라하다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여신 몸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식이 요법없이도, 좋은 운동 없이도 다이어트는 힘들다. 이 책을 보고 또 운동들을 따라하면서 느낀 점은 발레라는 게 동작하나 하나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라는 것이 었다. 준비운동만 해도 몸에 가볍에 땀이 살짝 났다. 몸이 뻣뻣해서 사진처럼 안 되는 동작도 있었지만, 꾸준히 매일 하다보면 스트레칭 효과도 더 올바른 자세가 되어 갈 것 같다. 요가나 필라테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다가오는 여름이 공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 되기를 바라며, 여신 몸매를 꿈꾸며, 매일매일 조금씩 노력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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