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였다. 곱돌이 부지런히 내 주위를 돌고 있을 때, 나는 기하학에서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따라 활강하는 물체─예를 들면 내 곱돌─가 임의의 한 점에서 가장 낮은 한 점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항상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태양은 버지니아의 대습지도, 로마의 저주받은 황야도, 광막한 사하라 사막도, 달빛 아래에 있는 수백만 마일의 사막과 비애도 감추지 않는다. 태양은 지구의 암흑면이며 지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도 감추지 않는다. 따라서 내면에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가진 인간은 진실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거나 아직 인간이 다 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진실한 사람은 ‘슬픔의 인간’335이고,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진실한 책은 솔로몬의 책336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전도서」는 정교하게 단련된 비애의 강철이다. ‘모든 것이 헛되다.’ 이 완고한 세계는 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이전인 솔로몬의 지혜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과 감옥을 살짝 피하고, 묘지는 재빠른 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지옥보다는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쿠퍼나 영이나 파스칼이나 루소를 모두 불쌍한 병자라고 부르고, 라블레는 지극히 현명하기 때문에 명랑하다고 단언하면서 태평한 인생을 보낸다.337 그 사람은 묘석 위에 앉아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솔로몬과 함께 축축한 초록빛 이끼를 뜯을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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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법의 절반’이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속담이 아닌가? 그 물건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는지는 상관없다는 뜻이지만, 소유가 법의 전부가 되는 경우도 많다.

첫째, 잡힌 고래는 잡은 자의 것이다.
둘째, 놓친 고래는 먼저 잡는 자가 임자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왕과 왕비를 위해 소유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에스파냐 국기를 아메리카에 꽂았을 때, 아메리카는 ‘놓친 고래’가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폴란드는 러시아 황제에게 무엇이었던가? 그리스는 터키에게 무엇이었던가? 인도는 영국에게 무엇이었던가? 결국 멕시코는 미국에게 무엇이 될까? 모두 ‘놓친 고래’다.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독자들이여, 그대도 역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행복은 결코 지성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연인, 침대, 식탁, 안장, 난롯가, 그리고 전원 등에 있다.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름통을 영원히 쥐어짤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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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분 100개의 문장을 썼다. 쓰지 못한 날도 있고 2~3개를 쓴 날도 있다. 어쨌든 100일 가까지 썼다. 아침에 출근해서 첫 회의가 있기 전까지 아이패드를 펼쳐 놓고 리갈패드에 썼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하나의 습관을 만들어주고, 그 습관과 연결된 것들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주는 것 같다. 그 습관과 연결된 뉴런과 시냅스를 강화하는 것 같다. 3개월 정도 되고, 책이 끝나갈 때쯤 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바마 영어 연설문을 미리 구매해두었다. 하루 10분 명문 낭독이 아침에 10~15분 정도 쓰기에는 적절하게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쉬운 영어로 어려운 내용을 잘 전달하고, 역사와 주변 정세를 잘 이용해서 훌륭한 스토리 텔링을 하는 이야기꾼 오바마의 명연설을 필사하는 것도 무척 기대되고 실제로 해보니, 명문 100개보다 좀 더 현재에 가까운 현실감이 느껴졌다.


아침에 신선한 깨달음을 주는 명문장 그리고 명연설을 필사하는 것은 어떤 부조리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긍정적으로 막아주는 것 같다. 부조리를 느끼고 우울함을 느끼는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부조리를 느끼고 우울감에 빠지는 것은 현실에 '매몰'되는 것을 자각시키고 밀려드는 끝 모를 회의감과 무력감으로 자신 스스로를 구제해주기 위한 전조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하필 격렬하고 경쟁적인 회의가 많은 날이나 중요한 안건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하는 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어쨌든 '손해' 보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페르소나의 뒤에 일단 숨어 그 하루를 버티고 , 그 주간의 시간 동안 쌓아두었다 좀 더 폭발적이고 냉철하게 그런 부조리의 자각을 퇴근 후에 한다면, 그리고 그 자각이 광폭한 술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면, 현재를 더 제대로 직시하고 그 직시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틈을 내어 환기를 시켜주는 필사를 마치며.


마지막 즈음에 만난 잭 런던 (Jack London)의 그 치열한 말로 마친다.


I would rather be ashes than dust! I would rather that my spark should burn out in a brilliant blaze than it should be stifled by dry-rot. I would rather be a superb meteor, every atom of me in magnificent glow, than a sleepy and permanent planet. The function of man is to live, not to exist. I shall not waste my days trying to prolong them. I shall use my time. 

나는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겠다! 나는 타락에 숨이 막히느니 찬란한 화염 속에서 내 불꽃을 다 태우겠다. 나는 활기 없고 영구한 행성이 되느니 나를 이루는 모든 원자가 장엄하게 타오르는 걸출한 별똥별이 되겠다. 인간의 역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내 하루하루를 연장하느라 낭비하지 않겠다. 나는 내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알라딘 eBook <하루 10분 명문 낭독 영어 스피킹 100 : 100일 동안 새기는 100개의 목소리> (조이스 박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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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16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꾸준히 100일을 채우셨다니 넘나 대단하고 축하드립니다. 영어 글씨도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네요~ 써 놓으심 너무 뿌듯하시겠어요!!

hnine 2021-06-16 04: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 10분 명문 낭독> 저도 이 책 샀는데, 반쯤 보다 멈춰진채 책꽂이에 먼지 쓰고 있네요. 반성 ㅠㅠ

새파랑 2021-06-16 08: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딩님의 부지런함은 독보적이네요~!! 게다가 글씨 안예쁜 저는 부럽기만 하네요~!!

얄라알라 2021-06-1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글씨 안 써본지 몇 년 째 인것 같아요.
저렇게 영어 쓰시는 자체가 명상으로 보이네요. 최고이십니다!
 

기부를 결심할 때, 기부한 돈이 투명하게 쓰일까?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잘 전달될까? 이런 걱정이 앞서게 되고, 그것을 알아보며 많은 기부단체를 돌아다니다 시간에 쫓겨, 실행을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큰 국제단체든 지역의 작은 단체이든 선행을 하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기 위한 홍보도 해야 하고, 단체를 운영하기 위해 이것저것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물품의 택배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또 영원회귀처럼 기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나는 마음만 앞서 기부단체를 찾아보고 있다가 '곧장기부'를 알게 되었다.

단 한 푼도 빠짐없이 전액 또는 기부받은 금액으로 구매한 물품이 모두 아이들에게 전달된다고 했다. 어떻게? 지금 보고 있는 광고비도 내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하지?

후원자들의 기부금을 전액 기부할 수 있도록 모든 비용을 행복나눔재단에서 부담하고 있고, 그 행복나눔재단은 SK그룹으부터 지원받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카카오페이로도 기부할 수 있고, 카카오톡과도 잘 연동되어있는데, 카드 수수료도 지원한다.


곧장기부는 항상 3개의 기부 목록이 있고, 하나가 완료되면 다음 기부가 나타난다. 100원도 가능하다. 모금 금액은 50만 원 선이다. 그리고 모금 중인 곧장기부를 들어가 보면, 센터 소개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 필요한 물품에 대해서 자세히 보여주고, 기부한 사람들의 목록 (익명처리해서)과 그분들이 남긴 응원의 메시지도 볼 수 있다.


매월 얼마의 기부금을 자동이체 걸어두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내가 기부한 금액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게 되는지 알 수 있고, 기부하고 싶을 때마다 적은 돈이든 큰돈이든 기부할 수 있어서 좋다. 기부가 완료되면 전달할 물품의 배송 상태도 볼 수 있고, 받은 후의 사진도 볼 수 있다.

기부를 하고 지난 기부를 보다 아이들이 받은 간식거리들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보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올해의 곧장 기부 신청은 모두 끝났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저 쿠팡에서 주문해서 다음 날 받는 것을, 또 누군가는 어렵게 기부 신청을 해서 긴 시간 동안 기다려 받고 또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서 사진을 찍어 남겨야 하고 그 두 누군가는 똑같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라, 그들 또한 천사처럼 죄가 없으며,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지표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니라. p101

-알라딘 eBook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중에서


조시마 장로의 담화와 연설문 편에서도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한다.' 우리를 정화하고 감동하게 하고 또한 그 아이들의 우리 사회의 지표라고 한다. 그러면서 죄 없는 아이들이 그 자리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것을 비난하고 바로잡아야 함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기술 기업이 장애인의 장애를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닌 '고쳐질 수 있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감동을 전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현실에서 당장 시급하게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을 미래의 어느 날로 미루기 때문에 강하게 비판되어야 한다는 '사이보그가 되다'의 두 작가의 논지를 나는 굉장히 공감하고 그들의 고견에 찬사를 보낸다.




Life is an opportunity, benefit from it. People are often unreasonable and self-centered. Forgive them anyway. If you are kind, people may accuse you of ulterior motives. Be kind anyway.If you are honest, people may cheat you. Be honest anyway. If you find happiness, people may be jealous. Be happy anyway.The good you do today may be forgotten tomorrow. Do good anyway.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d it may never be enough. Give your best anyway. For you see, in the end, it is between you and God. It was never between you and them anyway p275


마더 테라스라고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마더 테레사 공식 사이트에서도 그녀의 시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작자 미상의 이 시에서,


If you are kind, people may accuse you of ulterior motives. Be kind anyway. p273

'친절하게 굴면 사람들은 숨은 동기가 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친절하라."


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고 우리는 그 의도를 찾으려고 하고 그것이 어리석지 않음의 방법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재단을 후원하는 SK의 의도를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다.

어떤 기업은 '장밋빛 미래'로 '현재의 돌아 봄'을 가린다. 하지만 또 그 비판적 시각이 의도를 띨 수밖에 없는 기업의 사회 환원 활동을 주저하거나 조심스럽게 함으로써 '현재의 돌아 봄'을 지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는 분이 여유가 되면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과거만큼' 현재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이 많지 않다를 사실 (Fact)로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저하게 된다. 팩트풀니스가 전달하고 싶은 '의도'도 있겠지만, 아직 책을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세계의 절반이 왜 아직도 굶주리고 있는지, 아직도 사지를 절단당하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그런 사실들을 외면할 만큼, 그 의도가 인류에게 중요한지 또 생명보다 고귀한지  모르겠다.


Be kind anyway.

작은 기부를 시작하면서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우리들은' 그 읽음으로 정보를 취하고, 그 정보를 구조화해서 지식화한 후에 지혜를 가진다. 그 지혜라는 것은 무엇일까? 지혜는 나의 바깥에 있는 세상이 투영한 책에서 나에게로 전해져 나의 가치관으로 내재화되어 자리 잡고, 다시 세상을 향한 나의 행동으로 분출되는 것이지 않을까?


정보는 사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고, 지식은 뒤죽박죽 섞인 사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혜는 뒤얽힌 사실들을 풀어내어 이해하고, 결정적으로 그 사실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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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13 23: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작은 기부 너무 좋네요. 이걸 읽으신 책과 연결하는 초딩님은 더 대단하신거 같아요. 저도 곧장기부 찾아봐야겠어요 ^^

초딩 2021-06-15 23:54   좋아요 1 | URL
^^ 앗 아닙니다. 우리 함께 기부 많이 해보아요 ^^
훈훈한 북플입니다. :-)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06-13 23: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표!
공감입니다.

초딩 2021-06-15 23:54   좋아요 0 | URL
네 ^^ 저도 조시마 장로 편이 생각나서 한참 찾다 ‘아이들은 사회의 지표‘를 재 발견하고 아주 좋았습니다 ^^

페넬로페 2021-06-14 0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기부단체 정말 좋은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기부한 돈이 광고비로 엄청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ini74 2021-06-14 19: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끊임없는 잡음에 여기로 옮겼다가 저기로 옮겼다가 그러다 얼마 안 되는데 유난 떠나 싶다가 ㅠㅠ 고민이 많았는데 이런 좋는 곳이 있군요. 고맙습니다 ~

붕붕툐툐 2021-06-15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읽기와 기부를 엮어버리는 클라스~👍👍👍
곧장기부 참 좋네용~ 초딩님 멋지세용!!👏👏👏👏

독서괭 2021-06-15 11: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be kind anyway! 좋은 표어 알아갑니다. ‘곧장기부‘라니, 직관적이고 좋네요. 저도 검색해봐서 기부하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Book] 사이보그가 되다
김원영 외 지음, 최승훈 외 낭독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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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사람. 이 말을 줄여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장애인'과 '장애우' 아니면 다른 어떤 말? 장애인보다는 장애우가 더 존중하고 함께한다는 뜻이었던가? 그런데 장애우는 예전 한때 그렇게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청중도 독자도 아직 없고, 글을 저장하지 않았는데, 단어의 선택이 소설가의 첫 문장 선택만큼이나 어렵다. 아무렇게나 부르면 안 될 것 같고, 배려하고 어떤 존중을 해야 할 것 같고. 이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제마저도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일기에 쓸 때도 같은 망설임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김초엽 작가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 - 나는 이렇게 길게 풀어 쓰기로 했다 - 에 대해 이 책을 쓸 때 조심스럽다고 고백한다.

지나치게 사변적이지 않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를 이야기하지는 않는지 초반에 걱정했고, 초고 이후 글을 쓰다 보니 그런 걱정이 덜했다고 한다.


이 책은 말 줄임에 고민하듯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끊임없이 고려하고 가정하고 그것들을 또 수정하며 읽게 된다. 수긍을 하다가도 비판을 하게 되고 어느새 고개를 흔들며 지우개로 글씨를 지우듯이 생각들을 지워서 불어 버린다. 비판적 사고를 하고 나면 무언가 잘 못 한 것 같고,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세차게 지운다.


장애를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어도 약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일본 장애인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부정적인 면은 모두 감춘 채 희망 고문처럼 슬로건을 내걸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하는척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회사나 정치인 운동가들을 강하게 비난하며 얘기했을 것인데, 이 책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일관한다. 그렇게 말하는 장애인 운동가를 20대의 목 척추 이하 전신 마비 환자가 그런 약이 있으면 간절히 먹기를 바라지 않겠냐고 대조하는 의도는 잘 모르겠다.


소프트웨어 기능을 개발할 때는 성능과 같은 비기능을 고려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 기능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통 그것에 매달려  비기능을 함께 생각하며 기능 개발도 제대로 못해 지연될 뿐만 아니라 어설프게 비기능을 고려한 코드는 결국 전체 구조 조정 (리팩토링)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두 작가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려하지 못한 최신 기술의 한계나 맹점을 지적할 때, 그들이 아직 부족해서 그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돌봐야 하는 사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기업의 캠페인에 대해서도 두 작가는 불편함을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 관심과 애정은 동정이 되기 쉽고, 그것은 곧 다름을 틀린 것 부족한 것으로 보고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더라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캠페인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영리를 추구하고 온갖 전략으로 경쟁하는 기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두 작가님이 장애를 가지지 않았다면 이 책은 나에게 어떻게 읽혔을까? 두 분이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좀 더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또 정반대로 더 장애와 관련한 역사와 기술, 철학, 사상에 대해서 다루면 어땠을까?


그리고,

내가 만약 장애인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읽고 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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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6-11 00:2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 읽고파요. 지금은 장애우라 하지 않고 장애인이라고 해요. 저는 둘째가 경계선지능이라 장애 강의를 몇번 들었고 장애인 엄마들과 모임도 했답니다. 장애는 병이 아니에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요. 그래서 고치는 게 아니고 개선하는 거라고 말해요. 암세포처럼 떼어낼 수가 없거든요.
동정적인 시각은, 흠, 사라지진 않겠지만 서서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도 하고요. 기술발전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답니다. ^^

초딩 2021-06-11 10:48   좋아요 2 | URL
장애인이라는 말과 개선이라는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박하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리고 또 우리는 과거에 지배를 받고 얽매이기도하잖아요.

그래서 주위 환경 (정치, 경제, 사상 등) 이 많이 변했는데,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만 변화를 인지하는 편향이 있는 것 같아요. 더 다양하게 보지 못한 것들을 봐야할 것인데요.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새파랑 2021-06-11 07: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딩님의 소프트웨어 관련 전문가 의견이 인상적이네요~!! 실제 보는것과 체감하는건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긴하네요. 역시 이북 낭독을 들으신거군요. 낭독자가 눈에 들어오네요 ㅋ 운전할때 저도 한번 들어봐야겠어요^^

초딩 2021-06-11 10:47   좋아요 2 | URL
앗 격려 감사합니다 :-)

이북 들으면서, 종이책도 함께 보는데요,
이북의 최대 좋은 점은 모든 것을 다 듣는다인 것 같습니다. 책을 ㅜㅜ 읽다 흥미가 떨어지거나 딴생각이 많이 나면, 눈으로만 쓱 보고 지나가기도하는데, 오디오북은 내용을 놓칠까봐 더 신경쓰게 되더라구요 ㅎㅎㅎ
근데 이 책 종이책도 정말 좋아요 ^^ 오디오북에서는 볼 수 없는 사진도 많고요 ^^

그리고 운전할 때 정말 좋아요 오디오북 :-)

바람돌이 2021-06-11 14: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편견과 한계를 깨주는 이런 책 정말 좋아요. 요즘은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의 방향을 틀어볼 수 있는 글들이 나오는 듯합니다. 좀 더 올바로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도록요.

초딩 2021-06-15 23:52   좋아요 0 | URL
독서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책 저도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생각을 아주 많이 하게 해주는 책들이요 ^^
좋은 밤 되세요~

희선 2021-06-15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면 그걸 무척 안 좋게 여기고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처음부터 장애인이었던 사람은 그걸 그렇게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불편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소설이 현실과 같지 않을지 몰라도 어떤 소설을 보니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이는 그게 괜찮았는데, 엄마가 귀가 들리게 해주려고 해요 지금은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 하는 게 있다고 하던데, 그걸 한다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듣는 건 아니더군요 예전에 저는 그런 거 하면 똑같이 들린다고 여긴 듯합니다 소설속 아이가 사는 세상은 조용했는데, 나중에는 시끄러운 세상에 살게 됐습니다 다른 장애는 기술이 좋아지면 좀 나아질지... 나아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겠습니다 좋은 쪽이 되기를 바랍니다


희선

초딩 2021-06-15 23:53   좋아요 0 | URL
아!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사례가 이 책에서도 다루어집니다. 비장애인들이 그들의 입장과 잣대로 장애인이 원래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강제함으로써 야기되는 이슈에 대해서 다룹니다.
그리고 고치는 것이 아니고 개선하는 것이라고 행복한 책읽기님이 말씀해주셔서 또 아주 좋습니다.
^^ 좋은 밤 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