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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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가 (화자) 또 다른 작가의 (박부길) 생을 쫓으며 그 작가의 소설과 함께 풀어가는 연막친 자전적 소설의 느낌. 책속의 책에 작가 속의 작가가 있는 독특한 구조. 창작자는 읽어봐야할 소설. 그리고 이승우의 사유를 한껏 즐겨볼 수 있는 소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손이 가게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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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한계 시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8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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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법학자이며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율리 체의 작품. 독일을 벗어나 세상의 끝 너머에 있는 듯한 스페인의 어느 섬 라호라에서 잠수 강습을 하는 피들러. 그는 말 그대로 세상을 등지고 `잠수`를 했지만, 그것에는 한계 시간이 있었습니다. 물속에서 생긴 문제는 물속에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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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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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를 먹이를 찾는 야수처럼 배회하고 어느 창녀를 외지의 모텔로 데리고 가는 이야기는 - 형에게로 - 그리고 그 속에서 튀어져 나오는 사유의 진한 뱉음과 그 둘을 의도된 반복과 머릿속의 사고 과정 자체를 그대로 풀어버리는 듯한 서사는 수사와 기교를 부리지 않은 듯 -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이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리고 절정에 이른듯한 자극으로 책장을 넘기게 했다.

'나'와 '형', 형의 여자친구 '순미', '어머니', '아버지'들은 한 집안에는 있지만 종이 다른, 화분 속의 뿌리와 제각각의 시기에 필 꽃을 감추고 있는 식물들과 같이 자신들의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보편성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p61


그리고 그 어울릴 수 없는 아니 같이 있기에는 -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포장해서 - 보편성을 무장한 세인들에게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은 그들의 사랑은 동물들이 보기에는 생명은 있으나 활동할 수 없는데 왜 존재하는지 의아해하는 식물처럼 공존해 있다.

'꿈' 이라는 초현실을 빌려서야만 움직일 수 있는 그 식물들이 - 나무들이 - 일상에 믿을 수 없게 나타난 신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듯 그들 각자의 사랑을 풀어나가고 알아간다.


"문학이란 언제나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p274 해설 (신형철)


우리들은 - 아니 최소한 나는 - '보편성'이라는 편리한 무장으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사고와 마음이 현화된 단어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뭉쳐져 있는 사회와 그 사회의 현상들을 바라본다. '판단' 이라는 행위는 그 '편리함'에는 걸맞지 않다.

이 책은 - 다른 많은 책들 그리고 그것이 속한 또는 포함한 문학 - 그 편리한 보편성 - 특히 사랑에 대한 - 을 불편하게 헤집어 준다.

열명이 모인 주간회의에서 끄덕끄덕 동의하는 - 그 동의하는 대상이 그 행동이 무엇인지 모를,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 사람들 속에서 소심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번역서에 맹목적이었던 나에게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에 이은 '식물들의 사생활'은 '모국어로 잘 쓰여진 책'을 읽게 독려해주고 이 책에 거론된 '변신 이야기'를 구매해서 책장에 놓이게 했다.


뜬금없지만, 지금은 연말이다. 이 책 속의 물푸레나무가 현화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도 멋질 것이고 그 사람의 곁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도 좋으니 그저 가만히 앉아 신의 조력으로 조금은 동물스럽게 움직이는 식물이 되어보면 좋을 것 같다. 자신에게, 타인에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소리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그녀의 동작이 느린 화면처럼 p26

그녀는 마치 우리가 그곳에서 만날 약속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대꾸했다. 어찌나 태연한지 내가 잊어 먹은 약속이 실제로 있었던 게 아니낙 의아스러워질 지경이었다. p26

충동 앞에서 분별력은 열등하다. p27-28
충동은 분별력 보다 빠르다. p28

어둠이 완강했다. p42

형의 침묵이 너무나 단단했다. 나는 그의 기분을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 판단이 나의 두려움보다 우세했다. p44

사진을 찍는 자는 카메라의 앵글이나 초점을 통해 자신의 시각과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윤리적 앵글이어야 하고 도덕적 초점이어야 한다. p52

사랑의 보편성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p61

우리가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대방이 이미 고유한 배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며, 나 역시 고유한 배역을 맡은 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역할극의 무대다. 세상으. p81

공개되지 않은 일부는 공개된 전부보다 항상 크다. p147

몸이 말했다. 몸이 가장 정직하고 가장 확실하게 말했다. 몸보다 정직한 말은 없었다. 몸보다 확실한 말도 없었다.
...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랬지, 사랑느 두 개의 몸이 최최의 하나의 몸을 찾으려는 욕망이고 추구라고,
...
플라톤이 향연에 썼지요. 처음에 사람은 얼굴이 둘이고 손과 발이 넷이고 눈이 넷이고 생식기가 둘이었지. 그런데 사람들이 신들에게 도전을 하니까 궁리 끝에 제우스가 사람들의 몸을 둘로 쪼갰다지. p159-160

난 언제나 한자리에 있을 거에요. p163

사랑은 모든 상황과 문제에 대한 유일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p195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p218

이곳은 지상에 없는 곳이에요. p223

나무가 아니고 창녀가 아닐 때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나무가 되고 창녀가 되어서 이루려고 한다. p224

문학이란 언제나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p274 해설 (신형철)

`구축`이 아니라 `해체`의 에너지
사랑을 해체하는 사랑소설이었다. p275 해설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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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24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딩님이 글에 언급한 `변신 이야기`가 오비디우스가 쓴 신화집인가요?

초딩 2015-12-24 22:3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를 구했습니다. 즐거운 이브 되세요~
 


하버드 북 스토어 Top 5 (오른쪽 위) "The Wind Up Bird Chronicle"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랍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조금 읽었지만, 태엽 감는 새는 제목부터 생소했답니다. 그리고 그 책이 왜 저기 하버드의 북스토어 탑 5번째에 있는지도 무척 궁금했답니다. 하지만, 전체 4권. 아무리 하루키의 시선과 독특한 감상의 표현을 좋아한다고 해도 쉬이 손이 가지 않더라구요. 그러다 알라딘의 중고 알람 문자가 와서 덥석 3권과 4권을 사버렸답니다. 책장에 1권과 2권 없이 덩그러니 꽂혀있는 책을 보니 `기묘함`이 느껴졌고 결국에는 1권과 2권을 새 책으로 질러버렸답니다.


저는 하루키의 이런 표현들이 무척 좋습니다. 주제와 내용을 떠나 그저 그의 이런 문체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좋답니다.


"그녀 부모의 반응은 무척이나 냉담했다. 마치 온 세상의 냉장고 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 같았다."

p97, 1권 도둑까치 편


"그 옅은 어둠에는 옅은 어둠 나름의 어둠이 있었다."

p98, 2권 예언하는 새 편

 

"사람들은 모두 힘들어 보이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뭉크가 카프카의 소설을 위해 삽화를 그렸다면 그런 식이 되지 않았을까"

p102, 2권 예언하는 새 편


"결코 해파리를 변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생명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

p300, 2권 예언하는 새 편




태엽 감는 새 연대기

하버드 북 스토어의 영문 제목 "THE WIND UP BIRD CHRONICLE" 처럼 `연대기`는 이 소설에서 결코 가볍게 생략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르웨이 숲`이 `상실의 시대`가 된 것처럼 한국어판 제목에서 그 `연대기`는 빠져 그저 `태엽 감는 새`가 되었습니다.


연대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연대순으로 적은 기록


제1권 도둑까치 편은 주인공 오카다 도루의 사라진 고양이를 찾으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와 같이, 여느 때와 같았던 일상에서 아내가 훌쩍 떠나버립니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고양이를 찾았던 것처럼 오카다는 그의 아내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음탕한 전화를 거는 여자

예언을 하는 여자와 그녀의 조수 여동생

2차 세계대전 중 만주에서 일본군과 소련군이 치른 소규모 전투인 노몬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두 군인 할배

 고위층들의 심리 치료를 하는 초능력자 같은 여자와 명석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그녀의 아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온통 잘 못된, 사라진 아내의 오빠

폭주하는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남자 친구의 눈을 뒤에서 가려 죽게 만든 소녀


와 같은 기묘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가 뒤엉켜 나아갑니다. 그리고 주인공 오카다의 현실과 꿈과 확장된 상념이 경계를 서로 넘나들며 마구 뒤섞입니다. 그러면 소설의 제목 `태엽 감는 새`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까요? 동양에서 길조인 까치가 서양에서는 `머리 좋고 얄미운 새`로 여겨진답니다. 그런 좋지 않은 까치의 의미로 로시니는 오페라 `도둑까치`를 썼으며 그 서곡은 오페라 이상으로 유명하다고합니다. 그런 `도둑까치`로 작명된 1편 도둑까치 편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태엽 감는 새는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태엽 가는 새` 원래 이름은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태엽 감는 새는 매일 그 근처 나무숲에 찾아와서 우리가 속해 있는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

p14, 1권 도둑까치 편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

p119, 1권 도둑까치 편


태엽을 감는 새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지만 정교하고 면밀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알 수 없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 태엽 감는 새는 우리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 존재의 모습은 소설의 끝까지 드러나지 않지만, '끼익 끼익' 우는 그 소리를 들었을 때면, 들은 이의 생이 기묘하게 사단이 납니다. 오카다가 고양이를 찾아 나설 즈음에 그는 이 '끼익 끼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즈음부터 그의 인생은 모퉁이를 돈 것처럼 전혀 다른 - 상상하거나 예측하지 못했던 - 생 속으로 단호하게 들어가게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주위는 말 그대로 `기묘한` 것들로 잔뜩 둘러싸이게 됩니다.


"날 수 없는 새, 물이 없는 우물, 나는 생각했다. 출구가 없는 골목"

p132, 1권 도둑까치 편




이명

하루키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소리`는 이 소설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오브제입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즐겨 거론되는 그의 음악적 상식과 이해의 깊이는 찬사를 받을 정도입니다 - 이 소설에서도 난무합니다.

이 소설에서의 `끼익 끼익`을 보며 저는 이명을 생각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사가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병원을 갔더니,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이라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참 희한한 병도 있네라고 생각했지만, 저 자신도 그런 이명을 종종 접하게 되었답니다.


이명: 귀울림이 없는데도 잡음이 들리는 병적인 상태


우리는 어떤 어떤 과정에 의해서 결과가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무엇 무엇을 해서 성공하게 되었고 어떤 것을 해서 또는 어떤 것을 간과해서 실패했다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제`가 마치 남의 것처럼 보일 정도로 `오늘` 갑자기 - 내 것이 아니었는데 불현듯 선물을 받듯이 - 주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것이 원하지 않는 실패 쪽에 가까울수록 시간이 휘어지고 공간이 왜곡되며 귀의 울림은 괴이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을 하루키는 이 소설에서 태엽 감는 새의 `끼익 끼익` 태엽을 감는 소리를 들을 때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저의 독서 버릇 중의 하나는 그래서 나는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끊임 없이 찾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오카다는 작가 하루키와 아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 눈을 가려 남자 친구를 죽게 만든 소녀 가사하라 메이가 주인공 오카다를 표현한 다음 문장과 같이

하루키는 겉으로는 무덤덤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열심히 싸우는 오카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저씨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행동해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저씨는 아저씨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거예요. 타인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p371 - 372, 2권 예언하는 새 편

 

물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태엽 감는 새나 우리들에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는 그 새의 울음소리에 비해

그런 오카다의 분투는 너무나 미약하게 보입니다. 또한, 풀리는 태엽을 거부할 수 없는 판에 박히고 초라한 우리 자신을 부정하기도 무척 힘듭니다.


"그들은 등의 태엽이 감긴 인형이 테이블에 놓여지듯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행위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그 새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하게 부서지고 많은 것을 빼앗겼다.

많은 사람들은 죽어 갔다. 그들은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 갔다."

p106, 4권 사람은 누구나 태엽 감는 새


.

.

.

이 소설이 분명 저에게 말해주는 것은,


우리는 불현듯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저항할 수 없는 '풀림'으로 좀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묘한 궁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 태엽 감긴 장난감이 자기가 원할 때 멈추거나 방향을 틀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치명적인 나아감에 몹시 당황하고 무기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닥에서 또 더 아래를 발견하고 또 더 아래를 발견하다 마지막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을 느꼈을 때, 태엽 감는 새는 우리의 태엽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감고 나아가던 우리의 방향을 틀어준다. 우리가 그런 자비와 같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 문제의 해결 또한 자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운명의 신과 같은 태엽 감는 새에 의한 수동적 해결 - 도무지 해결책이라고는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 망연자실의 벽 앞에서 끊임없이 밀쳐내고 손톱이 빠질 듯이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도 묵묵히.

하지만, 그 밀쳐냄과 헤쳐나감은 그 궁지가 불현듯 기묘하게 왔듯이 충분히 기묘하고 지금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방법들이이야한다.

오카다 마루가 마른 우물 바닥으로 스스로 내려가 단절된 어둠 속에서 - 우물 위의 작은 구멍으로 하루 중 단 한 순간만 해가 일직선으로 들어오는 그 속에서 -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유하듯이 말이다.





















"그녀 부모의 반응은 무척이나 냉담했다. 마치 온 세상의 냉장고 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 같았다."
p97, 1권 도둑까치 편

"그 옅은 어둠에는 옅은 어둠 나름의 어둠이 있었다."
p98, 2권 예언하는 새 편

"사람들은 모두 힘들어 보이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뭉크가 카프카의 소설을 위해 삽화를 그렸다면 그런 식이 되지 않았을까"
p102, 2권 예언하는 새 편

"결코 해파리를 변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생명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
p300, 2권 예언하는 새 편

"`태엽 가는 새` 원래 이름은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태엽 감는 새는 매일 그 근처 나무숲에 찾아와서 우리가 속해 있는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
p14, 1권 도둑까치 편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
p119, 1권 도둑까치 편

"날 수 없는 새, 물이 없는 우물, 나는 생각했다. 출구가 없는 골목"
p132, 1권 도둑까치 편

"아저씨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행동해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저씨는 아저씨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거예요. 타인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p371 - 372, 2권 예언하는 새 편

"그들은 등의 태엽이 감긴 인형이 테이블에 놓여지듯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행위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그 새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하게 부서지고 많은 것을 빼앗겼다.
많은 사람들은 죽어 갔다. 그들은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 갔다."
p106, 4권 사람은 누구나 태엽 감는 새

"사물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론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분명 사람의 눈을 끌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자질구레한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불필요하게 돌아가는 길과 같은 거에요. 머릴 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사물은 점점 일반화 되는 것입니다."
p88, 1권 도둑까치 편

"오카다 씨. 모퉁이를 하나 돌면요, 그런 장소가 분명 있어요. 거기에는 당신이 본 적도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어요."
p262, 1권 도둑까치 편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은 지나가버린 후에 뒤돌아보는 것입니다."
p299, 1권 도둑까치 편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오. 그리고 아마 나는, 그 때 느꼈듯이, 그 빛 속에서 숨이 끊어져 죽어버렸어야 했던 것이오."
p399, 1권 도둑까치 편

"조수 간만과 같죠.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어요.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p15, 2권 예언하는 새 편

"인생이라는 것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소.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라오."
p73, 2권 예언하는 새 편

"나는 지금 이렇게 우물 바닥에 있다."
p97, 2권 예언하는 새 편

"그리고 모든 것은 외부에서 와서 외부로 사라져가는 것이다. 나는, 나라는 인간이 그냥 지나가는 길에 불과한 것이다."
p181, 2권 예언하는 새 편

"내 그림자도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답니다"
"눈물의 그림자는 아무데나 있는 그냥 예사로운 그림자가 아니에요. 전혀 달라요.
그것은 어딘가 다른 먼 세계에서 우리의 마음을 위해서 특별히 오는 거랍니다.
아니, 어쩌면 그림자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진짜고,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그냥 그림자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어요."
p233 - 234, 4권 사람은 누구나 태엽 감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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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2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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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는 고민 상담소의 훈훈한 이야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오래전에 사서 달 토끼의 사연만 읽고 그대로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던 것을 꺼내 읽었답니다. 물 먹인 종이로 만든 것처럼 두께에 비해 페이지가 많지 않고 (그래도 400여 페이지는 넘는), 인기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이라는 출신 성분답게 복선과 단서가 적절히 가미된 흥미진진함으로 초광속으로 읽게 되는 책이에요 :)


무정차 고속열차처럼 밑줄 한 번 긋지 않고 귀 접기도 잊은 채 종착 페이지에 도착하고나니 "고민" (일본말로 "나야미")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싶었답니다. 국어와 영어 사전을 정처 없이 떠돌고 나니, "고민 상담을 하려는 사람은 이미 답을 알고 있고, 상담자에게 그 답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라는 참신성을 잃은 (명백한 진리지만 현실에선 이론인)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전 어디에도 "선택"이라는 단어는 "고민"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 말처럼, 조언을 해주는 사람의 어떠한 답과도 상관 없이 고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에 따라 고민이 풀려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한 시험을 치면 됩니다~"

라는 재치 가득한 하지만 깊이 있는 할아버지의 고민상담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고민을 가지고 있는 각 인물들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것도 감동적입니다.


일정 시간마다 일정 시간 동안 각 지방의 풍경을 보여주는 기차 여행을 하게 된다면, 창가에 앉아 원근감 때문에 다르게 흘러가는 창 너머 풍경들과 함께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



의도치 않게 전달된 백지 고민 상담 편지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편지 일부를 올려드리며 짧은 후기를 마칩니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 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 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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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로님의 글을 읽으니까 인생 자체가 하나의 종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가는 과정 하나하나 기록하는 과정. 계속 써나갈수록 삶을 기록할 수 있는 빈 공간은 줄어들지만, 불의의 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종이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는 것이 중요해요.

초딩 2015-08-10 22:09   좋아요 0 | URL
종이와 그 써나감의 비유는 많이 봤지만. 종이의 훼손에 관한 비유는 처음이라 신선하네요. Cyrus 님 글을 요즘 자세히 못봐 죄송스럽습니다.

cyrus 2015-08-10 22:2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이웃님들의 글을 다 못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