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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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본 적이 없습니다.
여태껏 져 본적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졌어도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깐.
그런데 유독 그렇지 않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과거형.
경기의 시작부터 질 수 밖에 없는.
오른손이 주특기인데 양손이 다 묶인 채 시작하다 천운으로 묶인 끈이 풀리며 극적으로 이기는 식의 싸구려 시나리오는 무용한.
한 수가, 한 터치다운이 명약관화입니다. 그런데 그걸 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안팎으로 완패입니다.
경기에 비유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방식마저도 완패입니다. 모든 것이 완패입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쓰니 또 완패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제대로 철저하게 자장면만을 위한 단무지가 될 수 있는지.

죄 없는 ‘웃는 남자’를 첨부해봅니다.
아틀란타에서 오는 14시간 동안 단 30분만 읽고 내내 잤던 때의 희생양.



구글맵에서 찾던 쇼핑몰을 못 찾아 잠시 쉰다며 내려가, 올라다본 빌딩이 멋져 찍었던, 원래 찾으려 했던 곳에서 찍은 길치의 사진도 첨부합니다. 흑형이 친근하고 익숙한 말투로 여기서 사진 찍으면 안돼요 했던.
금지는 의외로 그렇게 친근하고 당연하게 다가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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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맑음 2017-10-06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늘 지금처럼 꿈틀거려야 됩니다!!

초딩 2017-10-06 20: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남은 연휴 (이제 시작!!!? :-) ) 잘 보내세요~

AgalmA 2017-10-0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문이 준비된 관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는 듯!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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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은 좋았다. 처음이니깐. 평소 성실하게 노트하며 쌓아 둔 것을 어떤 작품에 차곡차곡 쓰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단편에는 꼭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특히, 레이먼드 카버식의 ‘뭔가 모를, 단정하지 못한, 마침표 없는,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있는, 단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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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10-06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초딩 2017-10-06 01:27   좋아요 1 | URL
아 서니데이님~~~ 즐추 연휴 되세요~~~
 

"감정의 저울질이 필요 없는 참으로 무던한 사람과 담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하품하는 찰나와 같은 자투리 시간에 읽은 상빼의 그림 책 두권.

그 중, 사치와 평온과 쾌락은 최고였다.


상빼의 그림을 생각해보니, 넓은 씬에 캐릭터들을 두었고, 몇 미리 같은 아주 작은 선으로 전체 그림의 주제를 인상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다.

무작정 큰 것이 잘 보이는 것이 아니고, 더 작은 것이 더 잘 보인다를 이야기해주는 작가이기도 한 것 같다.


낮의 사치와 저녁의 평온, 밤의 쾌락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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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길 잃은 젊음의 파열, 그 투명한 고통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태동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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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리는 공해. 처음으로 책을 쓰레기 통에 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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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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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체 가득한 번역은 글을 매끄럽게 읽지 못하게 했다.

나는 물었다.

삼개월된 첫아이를 두고, 알수 없는 이유로 평온한 어느날 자살한 남편의 '이유'는 소설의 마지막에 정당화 될 수 있는지.

그 마지막 물음은 답을 받지 못한채  밑줄을 남겼다.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의 이유를 자작한다.

그리고 살아내기 위해 타협하고 거짓말한다.


'0'과 '1'로 단절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작 예전보다 더 모호하고,

그 '0'과 '1'을 창조했던 언어를 잃어간다.


우리는 '이해'와 '이유'와 '거짓말'을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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