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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마술 공연의 제목으로 처음 알게 됐어요.
'아판타시아',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서 찾아봤고, 2015년 신경과학자이자 신경과 전문의 애덤 지먼이 만든 용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바로 그 애덤 지먼의 《상상하는 뇌》는 놀랍고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를 뇌과학적으로 탐구한 책이에요.
첫 장에 '상상 여행자를 위한 안내문'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네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 상상 imagination 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힘이다. 이 힘은 우리를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 상상은 삶의 기쁨과 성취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고통과 어둠도 불러온다. 하지만 그 어둠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7p)
이 책에서는 '상상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상상력은 어떻게 의식과 현실을 지배하는가'라는 상상의 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생각과 느낌, 말과 꿈, 인간 상상력의 기원은 해부학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상상은 뇌 발달과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 확장되어 자신의 마음을 타인이나 자기 자신과 공유하도록 진화된 거예요. 뇌가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어떻게 움직임과 감각을 뒷받침하는지, 심상과 상상, 마음속에 은밀히 머무는 수많은 현상의 메커니즘은 인지 신경과학에서 밝혀내고 있어요.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 뇌 안에서는 자신과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모델을 구축하여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우리는 세상의 많은 부분을 마음속에 저장해 두고, 실제 경험이나 행동에 쓰이는 뇌의 체계를 이용해 외부 자극 없이도 그 가능성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활용해 정신 연습으로 실제 수행 능력을 연마하거나 치료 효과를 증대시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상이 늘 좋은 것만 가져다 주진 않아요. 환영과 환청, 망상과 히스테리는 내면의 심상이 생생하게 떠올라 그 이미지가 현실을 왜곡하여 벌어지는 현상이에요. 상상이 인류 진화 과정에서 얻은 가장 강력한 도구인 건 맞지만 그 힘이 때로는 현실 감각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상상과 현실을 구별하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고, 현실과 상상이라는 두 세계를 오가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인간의 상상은 개인의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 문화, 사회적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 본질적으로 사회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저자의 환자였던 캠벨은 심장 시술을 받고 나서 갑자기 마음속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는데, 일상생활에서의 시력은 완전히 정상이지만 심상을 마음속으로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고 해요. 캠벨가 유사한 사례 연구에서 뇌 영상법으로, 유명인의 얼굴을 보여주면 예상한 대로 시각피질이 활성화했는데, 얼굴을 제시하지 않고 시각화를 요청하면 마음의 눈과 관련된 후두부 영역이 거의 활성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거예요. 이런 형상을 가리킬 이름이 필요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시각화하는 능력을 가리킨 용어인 판타시아 phantasia를 빌려와 부재를 나타내는 접두사 a를 붙여서 아판타시아 aphantasia 라는 용어를 만들게 된 거래요. 반대로 신상의 너무 생생하다 못해 과도한 경우를 하이퍼판타시아 hyperphantasia 라고 한대요. 아판타시아와 하이퍼판타시아는 심상의 양극단으로 이들이 경험하는 내면 세계는 전혀 다르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지, 창의성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 즉 상상력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의미예요. 감각 심상은 상상력의 일부일 뿐, 시각화와 상상을 혼동해선 안 된다는 거죠. 심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고, 실제로 뛰어난 창작자로 활동하는 걸 보면 상상력의 힘은 놀라운 것 같아요. 상상은 혼자서 하는 개인적인 것인 줄 알았는데 실은 대단히 사회적이라는 것, 무엇보다도 뇌와 문화가 빚어낸 가장 인간적인 능력임을 확인하는 흥미로운 여정이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