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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각법 -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의 물음표 사용법
정철 지음, 김파카 그림 / 블랙피쉬 / 2025년 7월
평점 :
오늘 어떤 생각을 했나요.
스스로에게 묻는 경우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인 것 같아요.
그것마저도 코끝을 스쳐간 향기처럼 수만 가지 생각들이 생겨났다가 빠르게 휘발되어 온전히 내 것으로 남는 건 많지 않더라고요.
왠지 생각에 빠져들면 자꾸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지나친 생각은 해롭다고 '생각'해서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들은 과감하게 지워버렸던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나의 생각'을 무시하는 '나'로 변해버린 듯, 그러면 나 말고 누구의 생각이 더 중요해진 걸까요.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님의 신작, 《사람의 생각법》을 읽다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려 했던 나 자신을 발견했네요. 으르릉 쾅!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했던 이유들이 분명해졌네요. 생각의 주인이 되질 못하니 주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거죠.
"··· 사진기가 달린 전화기라는 문명 ··· 문명은 내가 기억을 지우라고 명령하지 않으면 내 차가 B2 라-37에 있다는 걸 까먹는 일이 없다. 놈의 기억력은 마모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기억력이 좋다고 인성까지 좋은 건 아니다. 놈은 교활하거나 앙큼하거나 최소한 비겁하다. 입으로는 세상을 바꾼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실은 세상이 아니라 인간을 바꾼다. 엄한 부모도 바꾸지 못한, 독한 선생들도 바꾸기를 포기한 나를 바꾼다. 어떻게 바꿀까. 달콤한 사탕을 쥐어주며 바꾼다. 문명이 내게 쥐어 주는 사탕은 무엇일까. 효율. 편리. 문명은 내게 효율과 편리를 주고 그 대가로 내 머릿속에 든 것들을 하나둘 압수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 머리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없다. ··· 이해하기 어려운 건 나다. 교활하거나 앙큼하거나 비겁한 문명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나는 나를 훔쳐 간 문명에게 시비하지 않는다. 항의하지 않는다. 나의 퇴화를 문제 삼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 머리보다 문명의 충직함을 더 깊숙이 믿는다. 놈이 하루하루 내 기억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면서 모른 척한다. 행여 놈이 토라져 나를 두고 멀리 떠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27-28p)
한참 전이지만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줄 알고 헤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단순히 물건을 분실해서 속상한 게 아니라 거의 공포감을 느꼈다는 것이 스스로도 황당했더랬죠. 이토록 의존했단 말인가! 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다니... 저자의 말처럼 문명이 건네준 사탕을 입에 문 바보가 된 거죠.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질문들이 잠들었던 나의 생각들을 깨웠네요.
"문명과는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까. 문명이 나를 침범하는 걸 어느 선까지 용인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 기억력과 계산력은 문명에게 양보한다. 상상력은 양보하지 않는다.
내 상상력이 문명을 제압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이것마저 내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이 책도 태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28p)
늘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못된 버릇 때문에 상상마저도 족쇄를 채우려고 했나봐요. 상상은 자유,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알아서 날아다닐 텐데, 꽉 막힌 생각이 문제였네요. 막혔을 때는 뻥 뚫는 도구가 필요하잖아요. 저자의 첫 질문부터 상상력 백화점 순례기, 엉뚱한 질문, 무허가 철학관 방문기, 위험한 질문, 한여름 퇴근길 풍경화, 고요한 질문, 비공인 선생님 접선기, 그리고 마지막 질문까지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생각의 틈새가 열렸네요. 매일 꼭 잊지 말고 나에게 질문해야지, 이런 생각이 나를 바꾸는 힘이라는 걸 알았네요.
"오늘 하루도 주인으로 살았니?"
거울 속의 내가 거울 밖의 나에게 묻는다. 빨리 씻고 쉬고 싶은 나를 붙잡고 매일 하는 질문이다.
"질문 고마워. 내일 또 물어 줘."
내겐 내일이 있고 내일 나의 대답은 거울 속의 나를 활짝 웃게 할 수 있다. (18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