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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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그녀는 확실히 나빴고, 여전히 못된 구석이 있지만 비난하기는 어렵네요.

누가 그녀를 탓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그녀의 잘못이 보이지만 점점 진실에 다가갈수록 혼란스러워질 거예요. 겉보기엔 평범한 그녀에게 숨겨진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녀의 마음만 들여다 본다면 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각자의 마음 어딘가에 있을 뾰족한 가시와 어둠의 조각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세상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선과 악이 모두 자리하고 있고, 매순간 싸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녀는 늘 자기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느라 타인의 불행을 모른 척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 행동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면 책임을 피할 순 없을 거예요.

《미필적 고의》는 기윤슬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고 있어요. 주인공 현주는 똑똑하고 예쁘지만 모진 성격으로 성공을 위해 달려왔고, 서른한 살이 된 지금은 유명 로펌의 변호사인 석현과 결혼을 준비하고 있어요. 드디어 행복을 거머쥐려는 시점에서 애써 잊고 있었던 11년 전의 화재사고와 관련된 물건이 담긴 택배상자를 받게 된 거예요. 도대체 누가 왜, 하필이면 지금 이걸 보낸 걸까요. 행운은 자신의 능력처럼 여기고, 불운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여기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게 되는 거죠. 모든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덜컥 넘어졌을 때를 돌아보니 그때 가장 최악의 선택을 했더라고요. 조급한 마음에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로 뼈아픈 교훈을 얻었네요. 나쁜 그들을 탓하기엔 욕심에 흔들린 나 자신이 더 미웠던 순간이네요. 현주의 행동들은 전부 욕심 때문이었고, 그게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네요. 누군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뒤통수를 탁, 맞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저 역시 반전에 놀랐지만 바로 수긍이 되더라고요. 세상엔 공짜는 없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에요. 세상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배신이더라, 사람들이 속고 속이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네요. 완벽한 행복이란 헛된 꿈이라는 것, 우리에게 허락된 행복은 함께 나누는 마음 안에 있다는 것, 그러니 이기심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어요.


"자기 행복을 위해 타인의 인생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이 소설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뒷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사는 일이 누구에게나 때로는 고통스럽겠지만, 모두가 안원한 삶의 고통이 안온한 평화로 바뀌는 순간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_작가의 말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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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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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집애, 그러나 뿌린 대로 거두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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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월드
백승화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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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능력자라니, 처음엔 어이없어서 웃었는데 읽다 보니 진짜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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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월드
백승화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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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자고로 초능력이라고 하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거나 엄청난 괴력을 지녔거나, 암튼 영화 속 히어로의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근데 '방귀'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피식, 김빠졌다고 해야 할까요. 빼빼로를 먹고 방귀를 뀌어 높이 점프하는 초능력자라니! 이건 뭐,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가 나왔다고 봐야죠. 솔직히 초반에는 살짝 실망했던 게 맞지만 점점 주인공 홍의 활약을 보면서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우습게 봤던 방귀의 위력, 그걸 올바르게 사용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멋져 보였거든요.

《레시피 월드》는 영화감독 백승화의 코믹판타지 액션활극 소설이에요. 앞서 언급한 주인공 홍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복숭아 맛 사탕을 먹고서 자신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됐고, 엄마와 외할머니의 신신당부로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방귀 능력을 감추고 살다가 누군가를 구하느라 그 힘을 사용하면서, 세상에는 '펌핑걸', 트렌치코트에 쇼핑백을 머리에 뒤집어 쓴 미스터리한 존재로 알려지게 돼요. 이때 이상한 하와이안셔츠 무리들이 홍을 쫓으면서 상황은 급변하는데... 도대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홍도 몰랐던 비밀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하찮게 여겼던 방귀가 새삼 놀라운 초능력으로 보이더라고요. 이 책에서는 <방귀 전사 볼빨간>, <깜박이는 쌍둥이 엄마>, <살아 있는 오이들의 밤>이라는 세 편의 이야기와 각각의 여담을 들려주는데, 개별적인 내용이라기엔 은밀한 연결고리가 있어서,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네요.

뿌웅!

내 방귀 소리였다. 너무 바쁘다 보니 내가 뀌었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주방 직원들이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앞으로 다가와 박수를 쳤다.

짝짝짝!

"드디어 깨달았구나. 방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115p)

방귀 능력 때문에 늘 하지 말란 소리만 들었던 홍이 변화하게 되는 결정적 장면이네요.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힘들고, 그게 하필 방귀라서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여겼는데 결국 방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걸 깨닫게 되다니 놀라운 성장의 순간이네요.

육아 스트레스로 지쳐 있는 쌍둥이 엄마의 깜박거림으로 벌어진 사고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조사국 조사원들의 이야기는, 문득 영화 <맨 인 블랙>이 생각나더라고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은 외계인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이런저런 상상이 재미있잖아요. 근데 쌍둥이 엄마의 일상을 보면서 가장 대단한 초능력자는 '엄마'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어쩌면 우리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초능력이 잠재되어 있지 않을까요. 레시피만 작동한다면 짠!

"자, 잘 들으세요. 레시피라는 건 말이에요. 그러니까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나 행동, 상황, 감정, 경험 같은 것들이 어떤 조건에 놓이거나, 혹은 우연히 조합될 때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다들 잘 모르셔서 그렇지, 이런 현상들이 주변에서 꽤 많이 일어나거든요. 예를 들어볼까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요. 1991년도에 만들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흰색 선만 밟으면서,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아시죠? 그 동요를 부르게 되면 초록불 길이가 3초 정도 짧아지거든요. 자, 이 모든 상황이 우연히 조합될 확률은 낮습니다만, 낮긴 해도 제로는 아니고 가끔 문제적인 레시피가 발생하기도 해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될까요? 아까 제 신분증 보여드렸죠? 레시피 조사국 조사원인 저희가 이렇게 현장에 찾아와서 해결을···" (204-2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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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미각 - 설렁탕에서 떡볶이까지, 전통이 살아 숨쉬는 K-푸드 가이드
강설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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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재미있게 봤지만 전 세계인들이 열광할 만한 내용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네요. 특히 김밥과 라면처럼 우리 일상에서 흔히 먹는 음식들이 K-푸드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한국 음식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늘 먹던 거니까, 아무래도 익숙한 음식들이라서 대단히 관심을 갖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부족했던 거죠. 그 빈틈을 채워줄 책을 찾았네요.

《종로미각》은 종로를 중심으로 사대문 안 사람들이 즐긴 음식들을 인문학자 열네 사람이 소개하는 책이네요. 단순히 맛집 소개를 넘어 역사와 문화로 살펴보는 K-푸드 이야기라서 특별한 미식 여행 가이드가 될 것 같아요. 책의 구성을 보면 식사류, 고기류, 안주류, 간식류, 주류로 나뉘어져 있어서 입맛대로 골라가며 맛볼 수 있어요. 쌀쌀해지는 날씨엔 무조건 찾게 되는 설렁탕, 선지해장국, 보양식으로 먹는 삼계탕, 함께 먹는 닭한마리칼국수, 특별한 날에 먹다가 언제든 먹게 된 돈가스, 푸짐한 불고기전골, 저녁 시간에 끌리는 족발, 치킨, 안주로 제격인 낙지볶음과 빈대떡, 간식 하면 떠오르는 떡볶이, 만두, 약과, 모나카 아이스크림, 커피, 그리고 서울장수막걸리와 진로소주를 맛볼 수 있는 맛집과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요. 저자들은 '종로'하면 떠오르는 음식과 우리 일상에서 친숙한 음식을 선별하여 한국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깊이 살펴보았다고 하네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거예요. 읽는 내내 군침을 삼키면서 미식 여행을 계획하게 되더라고요. 여기에 소개된 음식들은 좋은 것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전부 다 맛있기 때문에 '종로미각'이라는 종합 메뉴로 추천하고 싶네요.

"설렁탕과 곰탕은 다르다. 곰탕에는 들어가지 않는 소면이 담겨서만은 아니다. 곰탕은 주로 양짓머리와 사태 또는 정갈하게 손질한 내장 등 고기 부위만 넣어서 푹 고아 끓여내는 반면, 설렁탕은 소의 윗다리뼈, 즉 사골을 중심으로 소머리와 소가죽, 고기와 내장까지 다양한 부위를 두루 아우르는 데 그 특징이 있다. ... 설렁탕의 유래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것은 조선시대의 선농제다. 선농제는 농사의 신 신농에게 드리는 제사다. 선농제에서 먹은 탕국이라 선농탕이라고 불리던 것이 모음동화와 유음화를 거쳐 설렁탕으로 굳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 국물 요리의 특징은 화수분처럼 늘어나는 양에 있다. 물 한 바가지만 더 부어도 한 사람 몫이 늘어난다. 위부터 아래까지 모든 사람이 너나없이 뚝배기 한 그릇에 배가 부른다. 맛은 슴슴하고 건더기 없이 설렁설렁했을지 모르나 그 안에 담긴 의미만큼은 꽉 찬 한 그릇이었을 것이다." (16-22p) 제일 처음 소개된 메뉴이자 지금 계절에 즐겨 먹는 음식이라서 유래와 기원, 문화 관련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네요. 족발의 성지로 유명한 장충동이 원래는 역사적인 공간이자 세련된 문화를 주도하는 곳이었네요. 장충단은 애초에 공원이 아니라 1900년 9월 고종이 을미사변을 비롯하여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나라를 위해 순사한 열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단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현충원인데,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장충단 터를 공원으로 꾸미고 사당이 있던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절인 박문사를 세워 본래 의미를 변질시킨 거예요. 해방 이후 박문사는 헐리고 그곳에 국빈을 맞이하기 위한 영빈관(지금의 신라호텔)이 세워졌고, 1963년 2월 장충체육관이 개관하면서 실내스포츠 열풍이 일어났다고 하네요. 장충동 일대에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이북의 실향민들이 터를 잡고 평안도의 족발 요리를 만들어 팔면서 장충동 족발이 탄생했고, 장충체육관 건너편에는 1973년 태극당이 이전해 오면서 전국 멋쟁이들이 빵을 사러 오는 곳이자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게 되었대요. 음식과 문화가 어우러져 수많은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멋지네요. 역시나 역사와 문화를 알면 알수록 그 맛에 빠져들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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