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생리 - 달라지는 내 몸을 사랑하는 법 걸라이징 2
매러와 이브라힘 지음, 사이넘 어카스 그림, 홍연미 옮김 / 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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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소녀들을 위한 책이에요.

저자 매러와 이브라힘은 훌라후프 공연단인 '메이저레트'와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오가며 활약하고 있어요.

이 책은 저자가 열한 살 무렵부터 줄곧 꿈꿔 왔던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건 바로 달라지는 내 몸을 사랑하는 법!

아마 예기치 못한 순간에 생리가 시작되면서 혼란과 당혹감을 느꼈을 혹은 느끼게 될 소녀들에게 이 책은 꼭 필요한 가이드북이에요.

아는 것이 곧 힘이에요. 특히 사춘기 때 겪게 되는 낯선 경험과 미묘한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한 정보로 대처할 수 있어야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어요.

우와, 매러와 이브라함의 50가지 도움말과 함께 사이넘 어카스의 일러스트는 완전 최고예요.

감각적이고 세련된 화보를 보는 느낌이에요.

책이 아니라 패션잡지 같아요.

그야말로 사춘기 소녀들의 취향이 뭔지 아는 언니들이 만든 성장 가이드북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좋은 언니들이 해주는 조언이라서 믿을 수 있어요.


이 책을 읽는 법은 따로 정해진 게 없어요.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어도 돼요.

중요한 건 일단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거예요. 읽어봐야 왜 소녀들에게 필요한 책인지 알 수 있거든요.

사춘기가 되면 몸의 변화부터 시작해서 감정의 문제까지 당황스러운 일들이 점점 늘어나게 돼요. 그때마다 궁금한 것들이 엄청 많을 거예요. 

모든 궁금증을 다 풀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게 될 것 같아요.

달라지는 내 몸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 자꾸만 이상하다고 느꼈던 몸에 대한 감정과 느낌들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어요.

이 책은 여성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지를 놀라운 그림 작품과 함께 차근차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신기한 건 자기 몸에 귀를 기울이고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몸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첫 생리 이후에 생리가 귀찮은 골칫거리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고 나면 미리 계획을 세우고 대처할 수 있어요.

생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예요. 달마다 하는 생리는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사실 그동안 생리와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은 매스컴을 통해 과장된 부분이 많아요. 생리기간에 불편한 증상이 생긴다면 그 증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어요. 핵심은 마음가짐이에요. 생리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요. 첫 생리로 시작된 소녀들의 고민은 바로 '마음가짐'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나를 사랑하고, 내 몸을 사랑하기! 

소녀들, 만세! 


"매일 나를 위해 움직여. 심지어 내가 잘 때도 열심히 일해.

그러니 사랑해주는 법을 배워야 해.

바로 나의 몸을."

   - 로렌 Loren   (178-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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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탐정 오이카케 히나코 - JM북스
츠지도 유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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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갈아탔네......"

보고 또 봐도 항상 적응이 안 된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절대 그럴 수는 없다고

쇼헤이의 이성이 겨우 버티며 명령했다.  (7p)


<짝사랑 탐정 오이카케 히나코>의 주인공 히나코는 덕질이 취미이자 특기인 여고생이에요.

쇼헤이는 히나코의 친오빠이자 스무 살 대학생이에요. 벌써 10년도 넘게 접이식 플라스틱 커튼으로 나뉜 방을 같이 쓰고 있어요.

평균적으로 2,3주마다 바뀌는 히나코의 팬심 때문에 방 인테리어의 대격변이 벌어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히나코 책상 주변에만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어느새 침대 옆, 책꽂이 측면, 벽이나 천장까지 퍼져나가더니 쇼헤이 쪽 공간까지 침범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끄덕 없는 히나코, 이번에는 스무 살의 꽃미남 배우 스다 유야에게 빠져 있어요. 사실 방 전체를 사진으로 도배하는 건 애교 수준이고, 진짜는 거의 스토커 못지 않은 정보수집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케줄을 줄줄 꿰면서 몰래 쫓아다니지만 절대로 접촉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요. 히나코 덕질의 특징은 오로지 혼자 즐기는 짝사랑이라는 거예요. 현실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최애*한테 입덕**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네요.

【 *최애 : 가장 사랑하는 아이돌 혹은 어떤 대상 / **입덕 : 입문 + 덕후(오타쿠)에서 유래한 말로 열렬한 팬이 되었다는 뜻.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라 웃음이 났어요. 우리집에도 히나코 수준은 아니지만 수시로 최애가 바뀌는 사람이 있거든요. 방 전체를 사진으로 도배하는 것과 짝사랑 같은 덕질을 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닮았어요. 다른점은 스케줄을 쫓아다니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한때는 너무 금세 바뀌길래 '월간 덕질'이라고 놀렸네요. 재미로 놀리면서도 신기했던 건 덕질이 주는 만족감이 꽤 높아보였다는 거예요. 그게 짝사랑과 덕질의 차이인 것 같아요. 현실적인 대상을 혼자 좋아하는 짝사랑은 주로 가슴앓이, 고통을 수반하지만 아이돌과 같은 이상적인 존재를 좋아하는 덕질은 그 행위 자체가 즐거운 놀이 같아요. 덕질은 이뤄야 할 사랑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 같아요.

솔직히 덕질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하고 있어요. 본인이 입덕으로 행복하다면야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히나코의 덕질 보고서에 따르면, 연극배우에서 스모 선수, 천재 아역 배우, 익명 만화가, 수상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히 꽃미모가 아닌 거죠. 참으로 그 속을 알 수는 없지만 히나코의 추리 능력은 최고인 것 같아요. 덕질을 통해 탐정으로 거듭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셜록까지는 아니어도 히나코 시리즈가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히나코가 입덕한 사람에겐 꼭 사건이 벌어지거든요. 그게 재미의 핵심이에요. 자신의 최애에게 벌어진 사건인 만큼 히나코는 은밀하고도 위대하게 탐정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종종 친오빠 쇼헤이의 도움을 받긴 해도 최종적으로 범인을 추리해내는 건 히나코예요. 순수한 팬심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척척 해결해내는 히나코를 보고 있노라면 그 매력 속으로 빠져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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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미 에브리싱
캐서린 아이작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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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에게 증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는 증상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엄마의 기분이었다. 

대개 침착하고 태평하던 엄마가 갑자기 아주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156p)


<유 미 에브리싱 You Me Everything>은 사랑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예요.

주인공 제스는 10년 전, 스물세 살 나이에 아들 윌리엄을 낳았어요.

아이 아빠이자 남자 친구 애덤과는 헤어졌어요. 제스가 임신한 사실을 안 순간부터 마음이 떠난 사람이었고 출산할 때는 곁에 있지도 않았어요.

3년 넘게 사귀었고 서로 사랑했지만 아이가 생긴 순간 그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끝까지 아이를 지켜낸 제스는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제스는 홀로, 아니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 윌리엄을 키웠어요. 영국 맨체스터에서 쭈욱.

애덤은 프랑스로 이사했고 아빠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만 했어요.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고, 윌리엄의 생일이나 약속한 시간에 윌리엄과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했어요.

기껏해야 일 년에 두세 번 만날 뿐이지만 아빠와 아들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제스가 애덤에 대한 분노를 무관심으로 잠재웠기 때문이에요.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

10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제스의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실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어요. 제스의 엄마(윌리엄의 할머니)는 윌리엄한테 아빠와 진정한 관계를 맺게 해주어야 한다고 줄곧 말씀하셨어요. 아마 엄마 자신이 입양된 처지라서 친부모를 모르기 때문일 거예요. 제스는 오랫동안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아도 귀담아들었고, 최근 들어 상태가 나빠진 엄마를 보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애덤에게 윌리엄을 데리고 프랑스로 가겠다고 이메일을 보냈고,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지금 제스는 윌리엄과 함께 애덤이 운영하는 호텔에 머물게 되었어요. 여전히 매력을 풍기는 애덤 곁에는 스물두 살의 애인 시몬이 있었어요.

애덤은 번번히 윌리엄과의 약속을 어겼지만 윌리엄은 아빠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걸 바라보는 제스는 묘한 감정을 느꼈어요. 

사실 제스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어요. 그건...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가 겪게 되는 불행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불행에 빠지면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를 저질러요.

제스의 엄마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신의 딸 제스와 손자 윌리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셨어요. 몸소 보여주셨어요.

엄마... 가슴이 뭉클해지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좋은 부모가 있기에 아이들은 사랑을 배울 수 있어요. 그 사랑 안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며,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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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 - 차별화된 기획을 위한 편집자들의 책 관찰법
박보영.김효선 지음 / 예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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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출판사 편집자를 만날 일이 있을까 싶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일.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는 단지 책을 쓰고 싶은 예비저자들을 위한 책은 아니에요.

물론 이 책의 첫 번째 대상은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어요.

실제로 작가의 꿈이 전혀 없는 사람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혹은 대중의 요구에 의해서 책을 출간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 역시 출판편집자로서 '편집자들이 책을 보는 기술'을 소개하고 있어요.

굳이 편집자처럼 책을 잘 볼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면 책을 잘 보는 능력의 강점을 열거해야 될 것 같네요.

일반적인 독자의 책읽기와는 달리 편집자는 책을 읽지 않고 '본다'고 해요. 

편집자들의 '책보기'는 일종의 관찰법으로, 책의 핵심 요소만 살펴보고 분석하는 행위예요.

책의 주제와 구성, 저자의 강점 콘텐츠를 어떻게 녹여 냈는지 알아냄으로써 기획 의도를 꿰뚫는 작업인 거죠.

한 마디로 편집자의 능력은 차별화된 기획력으로 얼마나 많은 대중들을 유혹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다 그럴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어요. 


이 책은 크게 세 가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책보기, 책쓰기, 책읽기 기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어요.

여기에서 구슬은 나만의 강점 콘텐츠이고, 꿰는 일은 책쓰기, 완성된 보배를 드러내는 일은 편집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책을 쓸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책쓰기 기술은 자신의 콘텐츠를 발견하고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유용해요.

그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예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책 읽는 사람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책은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지금껏 좋은 책을 읽는 데에만 머물렀다면 이 책 덕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하는 현업종사자로서, 예비저자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책쓰기는 자신을 오롯이 담아내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쉬운 요령을 찾기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좀 더 고단하더라도

'진정한 나'를 찾아서 담아내는 책쓰기를 하면 좋겠다.

대중은 저자의 강점 콘텐츠가 오롯이 들어간 책에 관심을 갖고 열광한다.

이런 책은 운이 나빠(?) 베스트셀러가 안 되더라도 길게 간다."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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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근래 바둑계를 은퇴하면서 그 이유를 인공지능(AI) 때문이라고 언급했어요.

AI라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느끼는 허무와 좌절 같은 것이 은퇴를 결심한 직접적인 이유라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인공지능보다 우월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막강한 존재가 된 것 같아요.

스티븐 호킹 박사는 AI가 인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인류가 AI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AI 기술은 인류문명사에서 최악의 사건이 될 거라고 강력하게 경고했어요. 또한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어요. 인류의 표준 같은 건 없지만 뭐든 창조해낼 수 있다는, 인간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삶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곳엔 항상 우리가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김영하 작가님의 장편소설 <작별 인사>는 인간과 똑같은 휴머노이드가 등장한 미래 세계를 그려내고 있어요.

제목만 봤을 때는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 이야기라고 짐작했어요. 물론 이별 이야기는 맞지만 인공지능, 휴머노이드가 등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주인공은 열일곱 살의 소년 철이예요. 그의 아빠는 휴먼매터스 랩의 수석 연구원 최진수 박사예요.

어느날 철이는 아빠와 함께 산책을 나왔어요. 아빠는 고양이 간식을 사겠다며 펫숍으로 향했고 철이는 광장 간이의자에 앉아 길거리 연주를 듣고 있었어요.

그때 검은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리모컨 비슷한 장치를 철이에게 겨누더니 모니터에 R이라는 붉은 글자가 번쩍이는 걸 보여줬어요.

"너, 등록이 안 돼 있는데?"

"등록이라니요?"

"휴머노이드 등록 말이야. 칩이 감지되지 않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보시다시피 저는 인간인데요. 휴머노이드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 기계는 실수하지 않아."

"인간은 청색으로 H라고 뜨지. 인간에게서만 방출되는 방사성 원소가 있거든. 너한테는 그게 나오질 않아."

"정말 감쪽같아. 우리도 네가 인간인 줄 알았어. 칩이 없는 게 당연하네. 자기가 인간인 줄 알고 있으니.

99퍼센트 비슷해도 아닌 건 아닌 거야. 그런 말 알아? 비슷한 것은 가짜다."  (26-27p)


철이가 살고 있던 곳은 평양의 도심이에요. 단지 평양이라는 지역명만 나오지만 저절로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네요.

SF영화에서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상상한다는 자체가 새로운 것 같아요. 당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언젠가는 변할 텐데 말이죠.

광장에서 붙잡힌 철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임시 대피소 같은 넓은 건물 안이었어요. 다양한 기종의 휴머노이드와 로봇들이 오가고 있었어요. 철이 옆에는 예닐곱 살 되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서 있었어요. 자신을 민이라고 소개한 그 아이는 여기에선 로봇인 척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해줬어요. 기계들은 인간 비슷한 건 다 싫어한다고.

애꾸눈의 남자가 철이에게 다가와 시비를 거는데 웬 여자아이가 나타나서 구해줬어요. 민이가 말했던 선이 누나. 

선이는 이곳이 정부가 무등록들을 잡아다가 가둬놓는 곳이라고 했어요. 처음엔 발견 즉시 폐기했는데 외국의 휴머노이드 권리 단체의 항의와 유엔의 권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둬놓은 거라고 했어요. 휴머노이드들끼리 몰아둔 이곳에는 크게 세 부류가 있어요. 자신들이 기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휴머노이드들이 기계파였고, 선이처럼 인간인 경우한 또 한 부류, 민이처럼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가진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들이 또 한 부류였어요. 기계파는 인간과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들을 구분하지 못해 모두 싸잡아 조롱하고 괴롭혔어요. 선이는 용케도 이들 사이를 중재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편안하고 안락한 아빠 품에서 살던 철이가 하루아침에 낯선 무법천지 공간에 떨어졌을 때, 그제서야 철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는 휴머노이드.

문득 궁금해졌어요.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철이가 겪게 된 혼란과 시련은, 어쩌면 곧 우리에게 닥칠 현실인지도 몰라요. 

인류 멸망을 피하려면 AI를 경계할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을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닌가. 


본문 중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말은 

『맹자』의 「진심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사이비(似而非)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을 다룬 정민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책의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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