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객모독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독창적인 언어를 통해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특수성을 탐구했다"라는 평가와 함께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물.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관객모독>은 순수하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서 읽게 되었어요.
앗, 이 작품은 희곡이었어요.
아니 이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희곡~
물론 제가 희곡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구성 요소가 있잖아요.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 그리고 대사와 지문 등등.
<관객모독>에는 그런 요소들이 없어요. 기존 희곡의 틀을 벗어난 작품인 거죠.
등장인물은 배우 네 명.
첫 페이지는 《배우를 위한 규칙들》이 자유분방하게 적혀 있어요.
가톨릭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번갈아 올리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축구장에서 외쳐대는 응원 소리와 야유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데모하는 군중들의 구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안장이 땅을 향해 거꾸로 세워진 자전거에서 돌아가는 바퀴살이 조용해질 때까지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멈추어 설 때까지 바퀴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콘크리트 믹서 엔진을 켜고 점점 커지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논쟁 때 오고 가는 말들을 귀 기울여 들을 것.
롤링 스톤스가 부르는 「텔 미」란 노래를 귀 기울여 들을 것.
기차들이 동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라디오 룩셈부르크의 히트퍼레이드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유엔 회의를 동시에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것.
「툴라의 함정」이란 영화에서 미녀가 보스에게 앞으로 몇 명이나 더 죽이겠느냐고 질문하자,
보스는 몸을 뒤로 기대면서 아직 몇 명이나 더 남았지? 라고 묻는다.
범죄 조직 보스(리 제이 콥)와 미녀의 이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동시에 보스를 자세히 관찰할 것.
비틀스 영화들을 자세히 관찰할 것.
최초의 비틀스 영화에서 링고 스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한 후 드럼 앞에 앉아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미소를 자세히 관찰할 것.
「서부에서 온 사나이」라는 영화에서 게리 쿠퍼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위의 영화에서 몸에 총을 맞고 폐허가 된 도시의 황량한 거리를 절뚝거리며 한참을 달려가다 쓰러지면서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는 벙어리의 죽음을 자세히 관찰할 것.
동물원에서 인간을 흉내 내는 원숭이들과 침을 흘리는 라마들을 자세히 관찰할 것.
건달이나 게으름뱅이들이 거리를 걸어다니는 모습이나 슬롯 머신 앞에서 도박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것. (11-12p)
텅 빈 무대에 배우 넷이 등장하면서 곧바로 관객들을 쳐다보지 않아요. 그들은 걸으면서 연습하고, 말을 하지만 관객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서는 안 되고, 욕설을 하더라도 누구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의 말투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서는 안 돼요.
그들은 욕설 연습이 끝나기 전에 무대 앞쪽에 도착하여 자유롭게 서 있어요. 이제 관객을 바라보지만 관객 중 어느 누구도 주시하지 않고, 잠시 말없이 서 있어요.
그다음... 그들은 말하기 시작해요. 말하는 순서는 자유롭고, 모두가 대략 같은 분량으로 대단히 열심히 말해요.
<관객모독>은 매우 짧은 희곡이라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읽는다고 해서 그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저 역시, 이게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했어요.
정말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마치 '파랑 코끼리'를 절대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자꾸만 떠오르는 것처럼.
<관객모독>은 어떤 사건이나 줄거리가 없어요. 배우들은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아요. 단지 말만 해요.
이 희곡에는 무대 위의 불빛도, 배우들이 입고 있는 옷도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요.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다고.
관객들은 언어의 희극을 즐기는 거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관객들은 연극을 체험하는 것이며, 연극 관객의 역할이 되는 거예요.
이제껏 관객은 연극 무대를 지켜보는 관찰자 입장이었다면, <관객모독>에서는 무대 위쪽과 아래쪽이라는 두 세계가 존재하면서 관객의 역할을 맡게 돼요.
그러나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지는 않아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앉아 있어요. 관객이 주제이고, 관객이 한 사건이지만 어떤 유형일 필요는 없어요.
"여러분은 발견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저녁 발견된 것입니다." (27p)
제가 <관객모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뛰어난 작품성이 아니에요.
1966년 6월 8일 프랑크푸르트 탑 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다고 해요. 와우, 이 희곡으로 공연이 가능하다고? 솔직히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당시 흥행기획자들과 연극 평론가들은 "이야깃거리가 없는 현학적인 서술"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했대요. <관객모독> 이전에 발표했던 첫 소설 『말벌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니 <관객모독>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거죠. 그러나 반전!
실제 공연된 <관객모독>은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한트케가 문학적 명성을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요.
<관객모독>에 관한 작품해설을 읽은 후에 《배우를 위한 규칙들》을 다시 읽어보았어요.
아주 진지하게, 좀 더 깊이 있게... 그러자 '귀 기울여 들을 것'과 '관찰할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마냥 또렷하게 보였어요.
결국 <관객모독>은 어떤 관객이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한트케는 1966년에 쓴 「문학은 낭만적이다」라는 소론에서
"한 단어의 중요성은 그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 그 단어가 언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라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인용했다.
이 언어 철학으로부터 한트케는 한 단어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생겨나는 유희의 가능성을 배웠다. (7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