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임소운님의 서재 (임소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23523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8 May 2026 04:09:59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임소운</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7023523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임소운</description></image><item><author>임소운</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 [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0235233/17137874</link><pubDate>Sun, 08 Mar 2026 17: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0235233/171378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6826&TPaperId=171378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29/coveroff/k7621368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6826&TPaperId=171378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a><br/>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3월<br/></td></tr></table><br/>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길러주겠다는 노력은 시민적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 없이는 무효하다. 아무리 자식이어도 그는 내가 아닌지라 그가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을 좇을지 부모는 알지 못한다. 자식의 미래를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부모, 결국 모든 부모가 지금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br/>-27p, 자존감이라는 무기<br/><br/>*<br/><br/>아이를 위해 극성을 부릴 정도의 탐욕을 갈망했던 시절이 있다. 내가 사교육 서비스업 종사자였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보다는 덜 굴욕적인 ‘선생님’이라는 호칭 외에는 상처뿐인 영광도 아닌, 영광에 한참 못 미치는 상처였다. 내 어머니가 좋은 어른이었던 아동기는 지나간지 오래였고, 속칭 대기업이나 전문직을 추구하기에는 나를 욱여넣고자 하는 노력이나 아비투스가 부족한 삽십대였다. <br/><br/>어쩌다보니 ‘육아맘’이 되어 자식이 더 멀리 가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려온 엄마에게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굴욕적인 사건들이 쌓여갔다. 이것들은 가끔 아주 험한 방식으로 터져버린다. 켜켜이 쌓인 오랜 원망과 좌절감 아래에서 사랑은 질식했다. 하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엄마들의 탐욕도 이해는 간다. 바로 그 탐욕을 사교육 같은 곳에 부리지 않았던 어머니가 있었기에 나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br/><br/>육아서를 탐독하고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도 아이가 다 크기 전에는 실제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의 고된 보람을 알기 어렵다. 엄마가 자기를 키우는 페이스를 자식은 모른다. 자식은 자기의 일을 할 뿐이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하게 할 방법은 없다. 사춘기라면 ’하고 싶지만 어른들은 모르게 해야 할‘일의 목록이 날마다 늘어난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아이는 십대가 되고, 성년이 된다. 성년 이전에 ’다 알 것 같던‘ 어른들의 세계를 성년이 되어 다시 배우고, 진짜 사회인이 되어 또 다시 배운다.<br/><br/>내 아이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좋은 배우자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좋은 부모가 되려면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탐욕이 내 아이의 이기심으로 수렴되지 않으려면 탐욕의 스케일을 키워야 한다. <br/><br/>같은 반 여학생을 때리는 남자아이를 죽도록 패주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자고 했다. 어린 내가 봐도 때리고 맞는 부모를 보고 자랐을 그 아이는 내 카드를 받고 나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순해졌다. 내가 묶어준 희동이 머리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우리 엄마를 만난 그 친구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br/><br/>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모르고 엉뚱한 곳에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들은 경제적 형편을 떠나 각자의 문제로 바빠서 돌봄에 소홀하고 감정 표현에 서툰 어른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내 자식이 이기는 게 다가 아니다. 내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내 자식이 좋은 어른이 되고, 좋은 어른을 만나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승부욕과 학업성취도가 남다른 아이에게 오직 승리만을 강조했다면 그 아이는 실패와 인내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아주 좌절했거나 세상을 나쁜 쪽으로 바꾸고 있었을 것이다.     <br/><br/><br/>*<br/><br/>메리 커샛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도 낳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와 엄마를 그렇게 환상적으로 그린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친구 덕에 더 꼼꼼히 그림을 보게 된 가와우치 아리오처럼 그의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 엄마의 얼굴에 맺힌 미묘한 긴장을 발견할 수 있다. 초상이 아니라 스틸컷에 가까운 그의 작품 속 엄마들은 아이를 씻기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노를 저어 보트를 움직인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작게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실은 부모가 된다는 건 무언가를 하기보다 무언가를 참는 일이다.<br/>-138p, 누가 금쪽이를 만드는가<br/><br/>*<br/><br/>​가족 내부에서 가족 이기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막장 드라마에 열광하는 현생의 결혼이 불합리함을 너무 일찍 알았기에 기혼자 중심의 육아정책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럼에도 부모들의 탐욕은 미래 세대가 사회다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다. 완벽한 부모란 없다. 아이들은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려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주는 양육자의 영향을 받을 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29/cover150/k7621368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4295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