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상실감과 슬픔은 특정 사건에 대한 자각적 반응이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무자각적 반응이어서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상우의 마음의 부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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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속에서 - 나희덕

 

 

산속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를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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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김나영

 

 

나는 매일 매일 41일을 살고 있네. 넘겨도 넘겨도 나의 달

력은 41일이 거짓말처럼 반복되지. 거짓말로 눈을 뜨고 거짓

말로 배를 채우고 거짓말을 순산하는 그런 패턴이지. 처음으로

발설하는 이 고백만큼은 참말이네. 거짓말로도 한 생이 무사히

흘러가더군. 그런데 말이야, 무사한 만큼 매일 매일 패배당하는

것 같은 기분, 당신은 이해돼?

 

싫은 것을 좋아하고, 좋은 것을 싫다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

을 억지로 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억지로 가고, 싫은 사람 싫

다 못하고, 좋은 사람 좋다 못하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울었지.

멍든 몸을 빌린 의상으로 가리고 연기하는 단역 전문 배우처럼,

 

나는 나를 빗겨가네. 수천 개의 입술을 형광등 교체하듯 살고

있네. 몸과 마음에 거짓말을 버터처럼 처바르며 살고 있네.

생이 치렁치렁한 사방연속무늬 새빨간 거짓말이네.한 번쯤은 탄

로 날 만한데 두꺼운 분장에 잠식되어가는 나의 맨얼굴. 치욕

은 그런 것이더군- 반성도 없이 하루가 가고 그런 내가 낯설지

도 않는,

 

거짓말은 거짓말로 통하더군. 통이 점점 커지더군. 당신과 내

가 같은 패거리이거나, 세상이 우리를 검은 페이지에 배치했거

, 세상과 내가 한통속이거나. 이상하지? 내 삶이 질 나쁜 스토

리인데도 나는 날마다 무사하게 저녁에 도착하곤 하지. 내가 나

를 밀어낸 자리, 거짓말은 거짓말을 비린내처럼 품어주고, 우리

밤은 아침을 향해 검은 하수처럼 묵묵히 흘러가고

 

  ? 만우절을 위해 준비한 거짓말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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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부바가 찍은 사진에 미셸 투르니에가

 글을 적었다.

 뒷모습은 스스로 연출하기가 힘들기때문에

 어떤 사진은 설정하여 찍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남이 찍어 준 내 자신의 뒷모습을 보면

 낯설어서 타인처럼 바라보게 된다.

 뒷모습 사진은 풍경은 사라지고 오롯이 사람만

 덩그러니 있는 것 같다.

  

 

 

말해봐요, 할머니, 그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청춘을 찾으려는 건가요, 아니면

등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인가요?

말해봐요, 할머니, 할머니는 지팡이가 세 개인가요,

다리가 세 개인가요?

말해봐요, 할머니, 그 무슨 시신에

성수를 뿌려주려고 회양목 가지를

옆구리에 끼고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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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당신 - 마종기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당신은 어디서 구해 빈 터를 채우는가.

내가 덮어주지 못한 곳을

당신은 어떻게 탄탄히 메워

떨리는 오한을 이겨내는가.

 

헤매며 한정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늪 속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은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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