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버리고 가라 - 김재진



 

설령 당신이

백송이 수선화를 선물 받는다 해도

그 누구도 진실로 사랑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가질 수 있는 것, 누릴 수 있는 것,

이룰 수 있는 많은 것들 쌓여 있다 해도

어느 것도 당신이 포기하지 못해 괴롭다면

무슨 소용인가.

 

뜻대로 되는 것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사랑해야 할 것들과

사랑해선 안 될 것들 사이에 끼어

당신의 마음이 한치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어질때

채울 수 없을 뿐 당신의 삶은 텅 비어 있다.

 

설령 당신의 하루가

당신을 필요로 하기보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가득 찬다 해도

누구에게도 당신이 따뜻한 마음 낼 수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인가.

 

어느 날

당신이 가까운 이로부터 상처 나거나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어 괴로워질 때

모든 것 다 버리고 가라

 

전쟁같이 하루가 힘겹고 외로울 때

다 버리고 한 번쯤 자신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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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무릇 - 성영희

 

 

무리를 지으면 쓸쓸하지 않나

절간 뜰을 물들이며 흘러나간 꽃무릇이

산언덕을 지나 개울 건너

울창한 고목의 틈새까지 물들이고 있다

여린 꽃대 밀어 올려

왕관의 군락을 이룬 도솔산 기슭

꽃에 잘린 발목은 어디두고

붉은 가슴들만 출렁이는가

제풀에 지지 않는 꽃이 있던가

그러니, 꽃을 두고 약속하는 일

그처럼 헛된 일도 없을 것이지만

저기, 천년 고찰 지루한 부처님도

해마다 꽃에 불려나와

객승과 떠중이들에게 은근하게

파계를 부추기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화사한 말이든

무릇을 앞뒤로 붙여

허망하지 않은 일 있던가

꽃이란 무릇, 홀로 아름다우면 위험하다는 듯

같이 피고 같이 죽자고

구월의 산문(山門)을 끌고

꽃무릇, 불심에 든 소나무들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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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다.

남의 이기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넉넉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그 지위를 오래지속하고 죽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사는 것이다. ( 자지자명自知者明. 33)

  장석주의 고요에 머물다 - 노자 그 한 줄의 깊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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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근사루비아


 

오늘 날 시민으로서 자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불의를 당하지 않으려고 법안을

통과시키고, 친족에 더하여 친구를 조력자로 삼으며, 도시를 성채로 에워싸고,

해코지하는 자를 막기 위해 무기를 취득하며이에 더하여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으려 하네.

하지만 이 모든 사전 조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의를 당한다네“ 

(크세노폰:소크라테스 회상록)

   강유원의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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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호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음속에 자를 하나 넣고 다녔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재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재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재었습니다

물 위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하늘의 높이까지 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닌 자가

제일 정확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재가 잰 것이 넘거나 처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확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나를 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무관심한 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듣게 되면

틀림없이 눈금이 잘못 된

자일 거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도

내 자로 나를 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직도 녹슨 자를 하나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재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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