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연구 1 - 고정희
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호박꽃보다야 장미가 아름답고요
감꽃보다야 백목련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우아하게 어우러진 꽃밭 앞에서
누군들 살의를 떠올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의 적이 숨어 있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꽃밭 속일 것입니다
어여쁜 말들을 고르고 나서도 저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나고 미운 말
건방지게 개성이 강한 말
누구에게나 익숙치 못한 말
서릿발 서린 말들이란 죄다
자르고 자르고 자르다보니
남은 건 다름아닌
미끄럼타기 쉬운 말
찬양하기 좋은 말
포장하기 편한 말뿐이었습니다
썩기로 작정한 뜻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에도
몹쓸 괴질이 숨을 수 있다면
그것은 통과된 말들이 모인 글밭일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 서른 다섯 해가 걸렸다니 원)
호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