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진 슬픔 - 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들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금장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