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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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기 아까운 책. 다른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책. 내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책.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강제로라도 읽게 하고 싶은 책. 그런 책. 더 일러 무엇하리오.


기회가 된다면 이 책으로 독서토론수업을 했으면 좋겠다.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교재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바에 대해 동의를 하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소재가 될 테니까.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미리 읽고 자신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을 서로 견주어 볼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만으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미 많은 양의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바로 실천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딱하다. 당장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내 아이 둘에게도 지금 바로 이 책을 읽어 보라고 말할 수 없는, 바로 그 이유. 시험 공부를 해야 하니까.


안다는 것, 알고 나면 왜 기쁜가 생각을 더 해 볼 일이다. 남들 앞에서 아는 척 할 수 있다는 것 기쁜 이유 중의 하나이기는 하겠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이 전보다 좀더 커진 기분, 좀더 나아진 기분, 좀더 살만해진 기분이 드는 것,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게 그만큼 더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들에 대한 내 관심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게 요즘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y에서 옮김201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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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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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할 때 답답한 소설을 읽으면 답답함이 좀 가실까 더할까? 소설은 갈등을 기본 요소로 삼고 있는 글의 장르라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기대고 싶어진다. 갈등 없는, 답답함이 없는, 투명하고 환하고 벅찬 세상을.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일. 마땅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 문제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현실에 있다. 누군가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이 어렵고 힘들기만 하고 누군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먹고 살 게 주어져 있고. 소설은 힘든 처지에 있는 인물들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나 보다. 그렇겠지, 먹고 살 게 절로 주어지는 인생에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책 제목은 실려 있는 8편의 소설 중 하나와 같다. 나는 8편의 소설이 이 제목 아래에 놓이는 줄 알고 읽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편집 쪽의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책이라 주제는 통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특히나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한 처지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알아야 하지만, 알아야 한다는 게 또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라 소설 읽기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최근 답답하고 힘든 상황을 글로 묘사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을 경험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서 그저 잊어버리고만 싶은데 그걸 되살려 표현을 해야 한다니. 글이든 그림이든 현실을 그려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작가의 숙명이라고 하더니,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 모양이다. 남의 이야기든 지어내는 이야기든 암울한 현실을 그려 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가 읽지 못하는 점은 다른 문제이고.

우리의 내일은 괜찮은 걸까? 어제 염려하고 바꾸고자 했던 바는 바람대로 될까?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일 테지. (y에서 옮김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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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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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즐거워하면서 읽었다. 이렇게 유쾌한 마음으로 책을 읽은 기억이 근래에는 없었는데. 내가 왜 이 작가를 놓치고 있었던가, 진작 몰랐던 것이 안타깝기까지 했다.(이 작가의 글을 읽게 된 계기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가의 글 덕분이다. 학생들에게 더 읽게 할 자료를 찾다가 본 것인데, 정작 학생들에게 읽혀 보니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내게 더 유용한 책이 된 셈이다. 글을 통해 풍자라는 개념을 가르칠 때 정말 효과적인 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학생들이 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니, 그 원인이 풍자에 대한 내 설명이 부족한 탓인지 작가의 글이 어려운 것인지 빨리 판단이 안 되기는 한다. 아무려나 유쾌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작가와 글을 발견한 기쁨은 크기만 하다. )

음식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새롭고 즐겁다. 내가 먹는 일에 그리 매달리지는 않는 편인데, 글로 읽는 음식은 어찌 이리 맛있기만 한지 모르겠다. 어쩌면 입으로 못 느끼는 즐거움을 눈과 생각만으로 즐기는 맛이 더 큰 탓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작가의 냉소적(작가 스스로 표현한 성격임)인 성격과 말투와 행동도 재미있고 이를 구경하는 맛이 참 쏠쏠하다.(나는 전혀 그렇게 못 하고 사니까 더 그런 것일까.) 구경꾼으로서의 자질이 내 속에 많이 숨겨져 있는가 싶다.

갈수록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더 가치를 두게 되는 것 같다. 간단하게 먹어도 세 끼, 우아하게 먹어도 세 끼, 그 세 끼를 위해 우리가 바치는 모든 수고로움이 어떨 때는 눈물겨울 만큼 절실하다. 본의에 어긋나서 한 끼를 놓쳤을 때의 서러움이란, 정말 말할 필요도 없고.

술 이야기가 제법 많이 나온다. 맥주, 막걸리, 소주, 양주, 폭탄주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만든 추억들이 낯선 곳을 향한 동경과 함께 마음을 잡아 끈다. 나도 그렇게 해 봤으면 싶은 자그마한 소원으로. 술 이야기가 많아서 학생들에게 이 책을 통째로 권하지 못하겠다는 아쉬움도 좀 남고.

일상이 지루하고 팍팍해서 잠깐씩 웃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분들께 권한다. 재미있을 것이다. (y에서 옮김201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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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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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 중에 살짝 얄미운 사람이 있고 그저 존경스러워지는 사람이 있다. 얄미운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올바른 말만 하고 있다고 해도 저 혼자 잘난 척을 한다거나 듣는 이를 안 그런 척하면서 무시하는 뉘앙스를 풍긴다거나 하여튼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나중에는 그가 하는 올바른 말조차 듣기 싫어지는... 이만큼 쓰고 웃는다, 몇몇이 떠오른다.


이 책의 작가는 이와 반대쪽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아니었으면 아예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작가로 이번에 국가정책의 위원장이 되었다.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자리를 맡게 되었을까 궁금한 차에 만난 책이다. 건축도 정치도 잘 모르지만 내가 가진 상식 선에서 끄덕인다. 이만한 사람이라,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 그 자리를 맡았구나,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내 마음을 쓰다듬는다.


소재는 여행이고 주제는 삶과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을 떠나면 모든 과정이 여행이라고 한다는데 그런 것 같다. 하다못해 집 앞 슈퍼마켓에 다녀오는 동안만 해도 짧은 여정이 될 수 있으니까. 무엇을 하러 가든 목적지까지 가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여행의 조건이자 삶의 내용이다. 참으로 근사한 설정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고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 


여행, 점점 더 좋아지는 말이다. 굳이 몸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어도 나는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내 의도를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작가에게 고마워졌다. 작가의 여행 스타일과 내 여행 스타일부터 여러 조건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비슷하면 비슷한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이것이야마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현명한 방식의 하나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부러움이 따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런가 보다, 내가 꽤 여유로워진 기분이 된다. 남들 가는 곳이라고 나도 가 봐야겠다고 방정을 떨었던 시절도 겪었다. 그렇다고 다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내게 어울리는 일정이 아니라는 것을. 대신 다른 방식으로 여행의 경험을 얻는다. 이 책을 읽는 일처럼, 혹은 이 책에서 작가가 즐기는 것 중에 하나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처럼.  


두루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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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2 (완전판) -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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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알아챘다. 범인을 알아챈 내가 대견하다. 이만큼 읽으니 짐작을 할 수 있겠구나, 이 정도의 수준이 빠른 건지 느린 건지 구별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비로소 작가의 술수를 알아낸 기분이라 뿌듯하기만 하다. 이 다음에 읽을 책에서 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전혀 없지만.


포아로 경감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배경은 부자의 저택. 저택의 주인이 독살당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모조로 용의자로 주목받는다. 유산 문제가 얽혀 있는 탓이다. 부자는 부자라서 또 편하지 않는 점이 있겠구나, 유산이 누구에게 얼마 주어지느냐에 따라 목숨이 오가기도 하는 모양이구나, 가족이라고 해도 돈 때문에 죽고 죽이고들 하는 것 같구나, 거참...... 얼마나 돈이 많으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는지, 나로서는 앞으로도 마주칠 일이 없는 상황이고. 


모두가 범인인 듯하다가 금방 모두가 범인이 아닌 듯한 상황으로 전개시키는 작가의 솜씨는 여전히 훌륭하다. 속았다 싶어도 어느 새 다시 의심하고 있는 내 상상력을 깨닫고 보면, 내가 또 빠져들었구나 허탈해서 웃게 된다. 헤이스팅스라는 화자의 시선으로 범인을 추측하면서 사건을 정리해 나가는 게 뭔가 불리한 느낌이다 싶으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기만 하니 불평할 수가 없다. 그 와중에 포와로는 어찌 그리 추리도 상황 정리도 잘 하고 있는 건지. 


내가 갖고 있는 스무 권에서 몇 권 남지 않았다. 아껴 읽어야 할까 보다.  (y에서 옮김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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