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
이청준 지음, 김선두 그림 / 현대문학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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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왜 그걸 내가 몰랐을까. 작가가 돌아가신 후에야, 이 책을 읽었다는 게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이라고 생각되는 내 마음, 그게 딱 전부다. 


돌과 나무와 강물을 매개로 사람과 그 사람과의 기억을 잔잔하고 깊게 풀어놓은 책. 작가가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낯익은 이름만 보는 것도 벅찬, 거기에다 그들과의 추억과 관계가 부럽다 못해 신기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한, 그저 이렇게라도 읽을 수 있어 그지없이 고마운 그들의 에피소드들.


내용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청준의 작품 어딘가에서 다 보았던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또 즐거웠다. 아마도 내가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그 조건 하나로 그와 관계되는 모든 일상사가 반갑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내게 이런 작가가 여러 분 있다는 게 참 좋다.) 


이청준의 소설들도 오로지 소설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수많은 친구와 친지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 한 대목 듣는다고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것만큼은 오로지 작가의 역량이라고 봐야겠는데, 아무튼 소설가라는 사람의 삶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고맙게도 알 수 있는 해주었다.(나에게는 소설가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고.) 


아무려나, 이 작가의 새로운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 그것만이 슬플 따름이다. 그리울 때는 예전 작품을 다시 찾아 읽을 수밖에. 내 기억력이 신통하지 못한 것이 이럴 때는 고마울 따름이고. (y에서 옮김201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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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의 참회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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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에 이 시리즈의 첫 권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리뷰를 올렸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권에 대한 소감을 쓴다. 딱 4개월이 걸렸다. 모두 21권, 처음부터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고 내내 잘 빌릴 수 있었고 그 중 딱 한 권을 구입했다. 이 한 권이 기념이 되려나 보다. 내 독서 경험으로는 참으로 만족스러운 만남이었다고 쓴다.


먼 나라 먼 시절의 역사와 이야기, 잉글랜드와 내전과 수도원과 수사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정보를 얻었다. 곧 잊게 되더라도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호의적인 의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지속되리라. 성당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단 말이지. 십자군은 또 어떻고? 다 캐드펠 수사의 활약 덕분이다. 작가는 멀고 먼 땅에 있는 나 같은 먼 독자를 일깨운다. 우리 모두는 같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서로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 살지는 말자는 듯이.  


캐드펠 수사로 시작하여 캐드펠 수사의 참회로 끝나는 시리즈의 끝편.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만큼은 제일 마지막에 읽는 게 좋겠다. 앞의 책보다 먼저 읽다가는 자칫 예상치 못한 내용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으니. 반전에 반전이라고 해도 순서대로 마주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캐드펠 수사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되돌아보면서 교리까지 거스르며 나아가는 태도에 수긍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가 있겠나 싶은데도 캐드펠은 그렇게 한다. 소설이라서? 소설에서라도 그렇게 하는 사람을 만나 보고 싶은 마음을 작가가 알아주는 듯이.


이 시리즈를 읽는 동안 좋았던 점 하나, 잉글랜드의 당시 역사적 상황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한 나의 내적 욕망을 칭찬한다. 실제 인물과 가상 인물들을 절묘하게 조합해 놓은 작가의 솜씨도 멋졌거니와 그 시대에서 꼭 같이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하는 내 의식도 근사하기만 했다. 전쟁 중이라 좀 무섭기는 했지만. 소설을 읽다가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는 일을 끝없이 계속 했던 셈이다. 시리즈 마지막인 이 책을 읽으면서는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인 아들 필립 피츠로버트의 생애까지 알아보기도 했고. 소설에서는 아버지와 적이 되고 마는 내전에 진절머리가 나서 십자군이 되어 떠나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멋진 인물이었는데, 그렇게 보내기 싫었는데, 아, 헤어지기 싫은 인물들이 아주 많은 소설이었구나 싶다.


여름 끝자락에서 겨울의 초입까지 캐드펠 수사와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이제 다가오는 겨울에는 누구와 함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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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집 -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 아무튼 시리즈 44
김혜경 지음 / 제철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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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나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대신 작가의 술집 방문 이야기를 읽으면서 술에 취한다. 정말로 잘 취하는 느낌이 든다. 그것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기분이 엄청 좋아지는, 술과 술집이 더없이 사랑스러워지는 경지에 이르면서.

작은 크기의 책, 모두 15편의 에피소드. 책값이 흐뭇해진다. 술값보다 안주의 비싼 값보다 훨씬 덜하면서 만족도는 충분한 읽기. 술을 마시는 일이 이 책 속 작가의 말처럼 황홀하기만 하다면야 나도 정녕 마시고 싶다, 마셔 대고 싶다.

술을 마시면 맨 정신으로는 발휘할 수 없는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맨 정신으로는 누릴 수 없는 기분을 맛보기도 하며, 평소보다 조금 더 넓고 깊게 삶의 경계선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확장이라는 게 꼭 좋다거나 유익하다거나 하다는 말이 아니다. 할 수 없었거나 하지 못했거나 안 했던 것을 해 보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술이 좋다는 것이다.

아무튼 책 시리즈 중 내 마음에 든 주제의 책으로 꼽히겠다. 생활이 고단하고 지긋지긋할수록 술 한 잔에 힘을 얻는다는 사람들의 진심을 나는 믿는 쪽이다.  (y에서 옮김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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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8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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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은 좀 두었다가 보려고 했는데, 마치 술꾼이 술 앞에 두고 못 참는 것처럼 그냥 넘겨 보고 말았다. 다음에 심심하거나 혼자 술 마시고 싶을 때 또 꺼내 보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볼 수 있는 만화가 벌써 몇 십 권 있기는 하지마는. 만화가 많이 쌓여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다, 아무렴.


주인공 아가씨는 이 책에서도 끊임없이 술을 찾아 마시고 있고, 그 술에 걸맞은 안주를 골라 먹고 있고. 술이 먼저인지 안주가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은데 이 또한 충분히 즐기고 있어 보기 좋다. 실제로 이러면 어떤 모습일까 약간 걱정이 되는 점도 있지만 어쨌든 만화 속 세상이니 이런 걱정을 왜 한담? 이런 스스로를 잠시 한심해 하기도 한다.


예전에 읽은 타카키 나오코의 마라톤 만화 중에 프랑스의 와인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뛰다가 와인 농장이 나오면 마시기도 하는 대회였는데, 일본에는 비슷하게 양조장 축제가 있는 모양이다. 양조장들이 아예 한곳에 모여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을 한곳에 모아 놓고 시음도 하게 하고 팔기도 하는 축제를 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참여한 내용이 나오는데 살풋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술 관련 축제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가 참여할 의지가 있는 건 아니므로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다.


뭔지 내용이 부족하게 여겨져서 아쉬웠다. 분량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 건지(에피소드가 바뀔 때 빈 페이지로 넘기는 게 좀 불만), 안주라는 게 이제 한계에 이른 것인지 새로움도 풍부함도 못 느꼈다. 수술 한 잔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보면 나아지려나?


신큐 치에의 다른 만화가 또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보나 어쩌나 하고 있는 중. (y에서 옮김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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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도둑 캐드펠 수사 시리즈 19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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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에 성스러운 게 따로 있을 수 있나?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니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고. 그래도 좀 의아하기는 한데. 성경이나 불경을 훔친다? 묵주나 염주를? 교회나 성당이나 절을? 글쎄, 종교를 핑계로 결국은 개인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


이번 책은 묘한 기분으로 읽었다. 분명히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삐딱해지는 요소들이 자꾸 나를 건들였다. 그것이 책 읽는 재미를 키워주기도 했지만 종교에 대한 내 시선을 너그럽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이게 무슨 종교적 장치람? 장난도 아니고 속임수도 아니고 그런데도 정말 믿을 만한 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래서 사람들이 종교에 빠져들 수 있나 보다, 특히 고달픈 현실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일수록. '소르테스 비블리카'. 단어가 쉽지 않아 금방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적어 둔다. 


종교도 종교를 지키는 공간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 사람들이 결정한 일을 하게 되는 대상이다. 전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엉망인 일이고. 이 과정에서 믿거나 믿지 않거나 진실을 밝히거나 밝히지 못하거나 사람들은 살고 죽는다. 캐드펠 수사의 벗인 휴 장관이 나로서는 훨씬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그 오랜 세월 종교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이것에는 이것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멸살시키고자 하여도, 그래서 지극히 불만스럽고 상당히 원망스러워도.  


내전으로 무너진 수도원을 다시 세우겠노라고 이웃 수도원에 도움을 요청하러 온 수도사 둘, 이들을 돕겠다며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는 주민들과 상인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하여 떠돌아다니는 여행객들. 절도 사건이 일어나고 이어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도움을 요청하러 온 수도사 한 명은 용의자로 몰리고, 캐드펠 수사와 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어떻게 전개되어 어떻게 마무리될지 대략 방향은 짐작하면서도 끝까지 읽는 재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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