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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와 함께 -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
로빈 월 키머러 지음, 하인해 옮김 / 눌와 / 2020년 2월
평점 :
아름다운 묘사, 다정한 문장들을 읽었다. 중심 소재는 이끼라고 볼 수 있겠지만 주인공이 이끼만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 어쩌면 살아 있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사소해 보이겠지만 지금 이렇게 확장되고 있는 내 의식이 이 책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이끼를 연구하는 일은 사람의 의식을 연구하는 일만큼 가치 있다는 것도 알겠다.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겠다. 어디 이끼뿐이랴.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하나 다 살아 있는 이유가 있고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이 헛된 착각으로 귀하고 천한 것으로 구분해 놓았을 뿐. 이끼에게서 끝없이 배우고 있는 작가의 태도가 괜히 존경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끼를 모른다. 은이끼라는 것 하나 정도 겨우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조차 이 책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이끼를 그려 놓은 그림을 보고 있어도 구분이 전혀 안 된다. 사진을 놓고 봐도 안 될 듯하다. 이끼 앞에서 나는 지극히 무지 몽매하다. 이끼에게 미안한 노릇이다. 이끼 하나 제대로 알아볼 수 없으면서 어떻게 지구를, 생명을 헤아린다고 할 수 있으랴. 나는 나조차 낯설기만 하다.
이끼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 이끼를 연구하는 작가의 열정, 이끼로부터 생명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가르쳐주는 작가의 충고가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보고 익혀서 깨닫게 해 주는 글이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끼의 특성을 전혀 습득하지는 못했지만, 읽으면서 그대로 넘기고 말았지만, 이끼를 대하는 앞으로의 내 태도가 달라질 것을 나는 안다. 이제 더 이상 발로 쓱 문질러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끼 너도 이렇게 버티고 있구나, 살아가고 있구나, 우리를 지켜주고 있구나, 말을 건네게 될 것이다. 제 이름을 기억 못하여 내 식대로 즉석에서 지어 불러 줄지도 모를 일이고.
새로운 시선, 애정어린 관심, 나이와 관계없이 늘 배우고 자라겠다는 의지, 나만 소중하다고 착각하는 이기심을 버리는 용기, 세상의 모든 개체들을 향해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겠다는 다짐이 저절로 생겨난다. 내가 나를 칭찬하고 격려한다. 이 책을 잘 읽었으니 되도록 천천히 잊자고. 할 수 있다면 기억하고 살자고.
입으로 부르는 이름은 서로 잘 안다는 증거이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에는 달콤하고 비밀스러운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우리의 경계를 긋는 강력한 형태의 자결주의다. - P15
우리는 겉만 훑어보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중간 척도에서 우리 시야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시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장치들이 너무 뛰어나서 우리는 맨눈을 믿지 못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기술이 없더라도 시간과 인내만 지니면 인지할 수 있는 것들에 우리가 무관심한 걸까? 세심함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망원 렌즈를 능가할 수 있다. - P23
내 세상과 다른 존재의 세상을 가르던 경계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 겸허해지면서 즐거워진다. - P25
단어를 아는 것은 보는 법을 배우는 또 하나의 단계다. - P29
눈으로 잘 보이지 않더라도 친밀함을 쌓으면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다. - P32
올챙이와 포자, 난자와 정자, 나와 당신, 이끼와 개구리, 우리 모두는 봄이 시작되는 밤의 소리를 이해함으로써 서로 연결된다. 그것은 신성한 세상에서 삶을 지속하고 이끌려는 간절함이 우리 안에서 울려퍼지는 무언의 목소리다. - P54
이끼와 물의 상호관계.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고, 사랑을 통해 스스로 나래를 펴는 방식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정으로 형상화되고, 사랑의 존재로 확장되며, 사랑의 부재로 움츠러든다. - P75
교란 빈도가 평균적인 중간 지대에서는 매우 다양한 종이 균형을 이루어 번성한다. 어느 한 종이 독점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교란이 일어나면서 안정적인 기간도 충분하기 때문에 여러 종이 연달아 자리 잡을 수 있다. 군락마다 연령이 다양할수록 다양성은 극대화된다. - P117
숲이 교란에서 회복될 수 있는 건 다양성 덕분이다. 숲에 난 종류마다 적응하는 종이 다르다. 블랙체리는 흙이 노출된 중간 크기의 틈에 서식하고, 히코리나무는 자갈밭 위 작은 틈을 선호하며, 소나무는 산불이 난 뒤 잘 자라고, 줄무늬단풍나무는 병충해가 휩쓸고 난 뒤 무성해진다. 숲의 광경은 다양한 채도의 녹색으로 이루어진 미완성 퍼즐과 같고 빈틈마다 맞는 조각은 하나뿐이다. - P144
이끼낀 가로수는 대기질에 좋은 신호이고 이끼가 없는 가로수는 안 좋은 신호다. 어디에서든 발밑에는 은이끼가 있다. 소음과 공해가 가득하고 수많은 사람이 서로 밀쳐대지만 틈 사이마다 이끼가 있다고 생각하면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 - P168
모든 식물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세계관에서는 식물은 자신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장소로 찾아온다고 여겨진다. 식물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장소로 찾아간다. - P175
옛 스승들은 인간의 역할이 존중과 보호라고 말한다. 우리의 책임은 생명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식물과 땅을 돌보는 것이다. 우리는 식물을 사용하는 것이 식물의 본질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배웠고, 우리는 식물이 계속 자신의 재능을 선사하도록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 P186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강력한 지배 행위다. 수집된 자연물은 자연으로 남을 수 없다. 자연물은 근원에서 멀어지는 즉시 본성을 잃는다. 어떠한 대상을 원래의 존재가 아닌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행위가 바로 소유다. - P230
이끼가 숲 공동체를 결합하는 호혜의 패턴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이끼는 필요한 만큼만 적게 갖고 크게 보답한다. 이끼는 존재함으로써 강과 구름의 삶, 나무, 새, 조류, 도롱뇽을 부양하지만, 우리는 존재함으로써 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다. 인간은 설계한 체계는 보답하지는 않고 갖기만 하므로 생태계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 벌목은 단기적으로 한 가지 종의 요구는 충족할지 모르지만, 이끼, 알락쇠오리, 연어, 가문비나무의 정당한 요구는 묵살한다. 나는 우리도 가까운 미래에 언젠가 이끼처럼 자제하고 겸손한 삶을 살 용기를 갖게 될 거라고 전망한다. - P247
우리가 식물을 활용하고 그 재능에 감사하면 식물은 존중받고 그 결과 강하게 성장한다. 존중받는 한 우리 곁에 머문다. 하지만 우리가 잊으면 떠난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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