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렸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05
이윤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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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어떤 삶은 참 수월해 보일 때가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의 삶은 더할 수 없이 고단해 보일 때가 있다. 당사자의 실제 상황은 모르는 채로 그렇게 보이는 내 눈, 그건 곧 내 삶의 상황인 것일까.


이 시집, '처절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이 이 말이었다. 다 같이 주어진 목숨일 텐데, 누군가에게는 살아 있는 일 그 자체가 힘든 고통의 시간으로 읽혔고, 그러면서도 견디고 나아가는 애절한 의지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나는 이런 취향의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남의 것에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남의 이야기, 남의 사연, 남의 눈물에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건 뭘까. 나의 무엇이 서럽고 안타까워 남의 것에 우는 걸까. 울다가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싶어 피시식 쓴웃음 떠올리게 되는 그 쑥스러운 외면, 부끄러운 눈물은 누구에게 들키기 싫은 것일까. 이 시집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눈물 글썽이고 싶었으나 끝내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 외면하고 싶은 누추한 삶의 이야기 사이사이, 내 눈에 반짝거리는 구절 몇 편 찾았다. 마치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 사이에 스치는 옛님의 기억을 떠올려 만난 것처럼. 아직은 의식의 한 켠에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내 영혼의 젊은 얼굴을 만난 것처럼.  (y에서 옮김20131019)

그대가 남긴 유일한 연인이 되어
보리수 꽃과 열매가 모두
웃음에 닿도록 하리라 - P12

꽃잎이 모으고 있던 봄빛들이 - P22

모든 날들이 부서지는 날들이었다 - P42

네가 없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들
생기를 잃어가더니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더라 - P68

네 생각이 내 생각과 같을 것 같아
망설이던 순간들이 있었지 - P88

내가 당신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당신이 내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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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참새 캐드펠 수사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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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의 활약담을 보고 있자니 자꾸 수도원이라는 곳이 궁금해진다. 그곳은 어떤 곳이기에 당시 그런그런 사회적 역할들을 모두 담당하고 있었던가. 수도원이라는 장소의 특수성, 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수사들의 각기 다른 임무들, 쫓기든 밀리든 숨든 수도원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가여운 영혼들. 나는 수도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자료를 찾아 보겠다는 데까지 이른다.


살인자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던 젊은이가 수도원으로 간신히 들어온다. 그리고 범죄가 밝혀질 때까지의 40일 간을 보장받는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 그동안 진짜 범인을 잡든지, 못 잡으면 이 젊은이가 잡혀 가든지 하는 상황이다. 캐드펠은 젊은이를 믿는다,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캐드펠의 시선을 따라 나도 믿는다, 이런 젊은이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젊은이는 어떻게 혐의에서 벗어날 것인가, 책 한 권의 기나긴 여정이 남아 있고 나는 두근거린다. 이번 독서는 쉽지 않겠군.


젊은이가 저질렀다는 살인은 없었다. 알고 보니 도둑을 맞았을 뿐이고 젊은이는 다시 도둑의 혐의를 받는다. 그리고 진짜 살인이 일어난다. 수도원에 있기만 했던 젊은이가 다시 위험해진다. 살인이 일어났을 시간에 젊은이는 수도원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해결하게 될 것인가, 왜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기어이 나가는가 말이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무모하고 나는 소설이라도 흥분한다. 그놈의 사랑이 무엇인지. 제 목숨이 지독한 위험에 처해도 사랑은 지키고 싶은 모양이다. 현실에서도 그러할까? 괜히 현실을 탓한다, 그럴 일은 없지 않느냐고.  


사건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범인도 다른 쪽에서 찾아야 할 상황에 이른다. 캐드펠 수사는 휴 베링어 행정 장관과 지혜를 모아 추리력을 발휘하고 해결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어 간다.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이끌어 간 것인지 애매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젊은이의 애달픈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인물 창조 능력에 거듭 감탄한다. 아마 이 시리즈를 읽는 내내 나는 감탄할 것만 같다. 평범해 보이던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진다는 것, 범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이 범인의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 상식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에 빠져 가족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잃기도 한다는 것. 1140년에도 사람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았을까? 이야기로 꾸며낸 소설이지만 나는 작가의 상상력에 깊이 빠져든다. 


몰랐던 먼먼 곳의 세상 이야기를 읽는 요즘, 즐거운 독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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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27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43
이윤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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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다가 슬퍼졌다. 갑자기 이 시집을 누군가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이 시집이 아니더라도, 시를 읽어 주는 사람들이 좀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아무 근거도 없으면서, 확인도 전혀 안 되는 일이면서 꼭 나 혼자서 이 시집을 읽고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이 느껴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읽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기차 안에서. 한 편 보고 기차 창밖 한 번 보고 다시 한 편 넘기고 또 창밖 보고. 기차 밖 풍경이 시 속의 풍경과 제법 많이 겹쳐서 그랬던가, 마음이 서늘해졌다. 시들어가는 우리네 농촌이, 고단한 삶이, 어느 하나 좀더 나을 것도 없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시집 곳곳에서 옹그리고 있었다.  


이전에도 이 시인의 시집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시인의 이름은 확실하게 알고 있을 뿐 작품의 내용에 대한 것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어렴풋이 남아 있는 시인의 작품에 대한 내 인상은 좀 더 도시쪽이었던 것 같은데 이 시집을 보니 예전에도 이런 내용의 시를 썼던가 좀 의아스러워지기도 했다. 시를 쓰다 보면 도시보다 시골로, 문명보다 자연으로 돌아오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 것 같다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고. 

 


"해가 떨어지는 서해에서 보는 물결

모서리마다 일렁이는 부스러기 빛

내 몸으로는 더 이상 들어올 곳이 없지

일렁이다 반짝이다 물결이 되는 부스러기 빛"(28쪽에서)


시 한 편으로 단 5분만이라도 삶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나는 아직도 꿈꾸며 산다. (y에서 옮김200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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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대관람차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
곽재식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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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과학적 상상력은 참 흥미롭다는 것.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 아는 만큼, 알고 있는 것을 확장시켜 상상할 수 있다. 내 힘으로 해 볼 수 없는 영역이다 보니 감탄이 나오는 적이 많다. 이게 이런 원리로 이렇게 상상을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구나. 


허무맹랑한 상상이라고 해도 합리성을 근거로 하는가 하지 않는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늘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므로 모든 경우에 합리적인 면이 적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합리적이지 않은 상상에는 거부감이 든다. 뭐야, 뭔 소리야? 이 세상에 없는(없다고 믿는?) 저승 이야기든, 화성 이야기든, 100년 후의 미래 사회 이야기든, 어떤 식으로든 그게 그럴 듯해야 관심이 생기게 된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 어찌 이토록 그럴 듯한 것인지. 특히 소재가 내 마음에 든다. 현재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생명 연장 문제나 청년 실업 문제나 권력형 갑을 관계나 다루지 않는 게 없어 보일 정도다. 구체적 소재 중 하나하나를 전체 주제로 삼기도 하고 한 줄 문장에서 슬쩍 건드려 놓고 넘기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불쾌하고 거북하고 억울한 내용을 담은 소재들인데도 작가는 다소 유쾌하게 그러면서 좀 냉정하게 비꼬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는 태도로 다루고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겠다는 무기력감을 비틀었다고나 할까. 나는 이런 게 기분 나쁘지 않아서 좋았다. 현실은 힘들어도 현실을 보는 눈은 갖고 있어야 하고, 그렇다고 분노만 갖고 있어서는 더 억울하고, 바꿔 나가고 싶다는 의지와 실천력은 갖고 있어야 하니 유머 감각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고.


이 작가는 글을 많이 쓰는 작가라고 한다. 많이 쓰는 게 장점으로만 대우받지 못한다는 점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나같은 독자는 꾸준히 응원하고 있으니 좋은 기운으로 유쾌한 소설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소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기능을 이런 작품으로 확인한다.  (y에서 옮김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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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과 꽃이 피었다
황인숙 지음 / 문학세계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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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이 자신의 시집들 가운데에서 시를 골라 새롭게 묶어낸 시집이다.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보너스와 같은 선물이 될 테다.(실제로도 내게는 선물이었기도 하고.)   


취향이라는 게 있다. 이 취향은 사람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전에는 마음에 들었는데 다시 보니 마음에 안 들게 되고, 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도 되고. 시는 다른 글에 비해 짧으므로 거듭 보게 되는 일이 잦다. 그래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시는, 더 큰 기쁨이 된다. 내가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던가, 지나가서 놓쳐버린 기쁨을 아쉬워하며.  


무겁지 않은 눈, 무겁게 여기지 않는 삶. 살아 있는 순간에 충실하게, 그러나 더없이 가볍게. 소홀하거나 무책임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무심한 것도 아니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부담 느끼지 않는 시선, 매달리지 않고 이끌어가는 생. 그래서 이 시집은 가볍게 읽힌다.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 때문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신기하다. 이전에 나는 이 시인의 시에서 꽤 듬직한 무게를 느꼈는데. 그게 또 좋았는데.


날씨가 추워진다. 몸은 무거워지더라도 마음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고양이의 얇디얇은 털과 같이. (y에서 옮김20131113)

가을이면 홀로 겨울이 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내게 닥칠 운명의 손길.
정의를 내려야 하고
밤을 맞아야 하고
새벽을 기다려야 하고. - P15

햇살이 바람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을 따라
바다 끝을 바라보았다. - P21

시절은 한꺼번에 가버리지 않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물, 한 사물
어떤 부분은 조금 일찍
어떤 부분은 조금 늦게 - P41

내 청춘, 늘 움츠려
아무것도 피우지 못했다, 아무것도. - P51

우리 다시 만날 때
너는 나를 기억할까?
내가 너를 기억할까? - P86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P113

소슬바람에 가팔라진 가슴
베어 물 듯 귀뚜라미 울고
홀로, 슬며시, 어둡게
온 생이 어질어질 기울어지는
벼랑 같은
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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