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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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서는 제목이 사건 해결의 요인이 되기도 하고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추리 사이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믿느냐 의심하느냐 하는 것. 이번 글에서는 내가 잘 속았다. 늘 속는 편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잘 속았군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사람의 시체를 T자 형태의 구조물에 매달아 놓는다는 설정,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같은 범죄자로 취급하기 딱 좋고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도록 이끌기 딱 좋고. 범인이라는 입장에서 정말로 이렇게 할 정도로 마음과 기술을 다해 살인을 저지르겠다면 그냥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살고 말지. 이런 범인이 현실에도 있기는 할 테지만. 


퀸이 저 혼자서 중얼거리며 범인을 찾는 일에 몰두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한다. 나로서는 성심성의껏 과정을 챙겨 가며 글을 읽는 것도 아니고 범인을 추측하는 데에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지만 작가와 대결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좀 약오를 듯도 해서다. 독자에게 힌트로 다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하는 에피소드에 이르고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 전 세계의 곳곳에서 이민을 받아들인 나라. 함께 살기에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상만 해 본다. 같은 인간이라는 말도 이런 경우에는 그다지 쓸모없지 않나. 제 나라 제 민족 제 고향 제 종족을 내세우는 인간의 어떤 면. 이 또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에서 나온 방편이었을까. 사람과 사람이 철천지 원수가 되는 배경에는 어떤 욕망이 존재하는 것일까. 


희생자들의 덧없는 처지가 슬프게 느껴졌다. 그들이 그런 대접을 받으려고 생명을 얻었던 것은 아닐 텐데.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약한 쪽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 (y에서 옮김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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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웰 가는 길
코니 윌리스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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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전개 방식을 깜박 잊고 있었나 보다. 초반 부분-프랜시가 로즈웰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읽는 동안 얼마나 답답하던지 하마터면 포기할 뻔했다. 그 대목을 넘어서고 나니 그때부터 진지함은 진지한 대로, 참신함은 참신한 대로, 두근거림까지 다 얻으며 읽었다. 아무렴, 외계인을 만났는데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혼자 있을 때 외계인을 만났다. 이 외계인이 무척 낯설고 무섭지만 나를 구속시키기는 해도 해치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설을 읽는 내내 이 가정을 해 보았다. 우선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신고를 한다고 해도 안 믿어 줄 것이고, 설령 믿어 준다고 한들 외계인을 만난 나를 먼저 격리시킬 것이 뻔하며,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인 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영화를 꽤 본 탓인가, 이런 염려가 더 생기는군.) 만났어도 만난 것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거짓말을 보태는 지구인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일로 그치게 되는 건 아닐까?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고 가정하자. 지구에 올 수 있는 외계인이라면 우주 항해 기술력이 지구인보다 훨씬 뛰어난 종족이다. 빛보다 빠르게 이동하든 차원을 바꿔 오든 생존 모습이 어떠하든 그 모든 면에서.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소통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다. 왜 왔는지를 알려면. 그리고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절묘한 상상과 서술로 제안하고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가도 곧 이러면 되겠는데 싶을 만큼 가능해 보인다. 외계인에게 처음으로 잡힌 프랜시와 어울리게 되는 인물들 또한 어쩌면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재주들을 갖고 있는지 인물을 창조하는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다양한 사람을 알기도 어렵겠는데. 소설가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어야 재창조를 할 수 있게 될까? 몰라서는 창조 자체가 안 될 테니 독자인 나는 그저 신기한 기분으로 읽었다.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우정 혹은 사랑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교훈이다. 프랜시가 남달리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서 낯선 외계인과도 정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구인끼리 이웃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도 다 이해해 주지 못하고 사는 우리네 사정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다 읽고 나니 흐뭇해진 만큼 씁쓸한 기분이 남는.


소설에 나오는 역마차를 타고 캠핑을 해 보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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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빵빵 일본 식탐여행 한 그릇 더!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타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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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본다. 1권에 이어 또 봐도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고 맛있어 보인다. 얼마나 잘 먹으면 이렇게 먹으면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 만화의 작가처럼 여행을 해 본다고 가정하면, 각 도별로 2박3일 정도 머무르면서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고 실제로 먹는다는 것이다.(일본의 관광 시스템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차별화되어 있으면서 특성 있게 잘 꾸려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면 각 도를 대표하는 정도의 주 종목인 음식도 있어야 하고, 간식거리도 있어야 하고, 차별화된 메뉴들이 있어 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참 여행도 못해 보고 맛있는 것도 못 먹어 본 사람 같다. 갑자기 슬퍼지려 한다.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식욕은 곧 삶에 대한 의욕이라는 말. 


고기를 전혀 안 먹으려 하고,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이나 빙수는 일부러 사 먹지는 않고, 술도 어지간해서는 안 마시는 편인 나로서는, 잘해 봐야 여행지에서 국수나 채식 위주의 밥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이 만화처럼 다녀보았으면 싶기는 하다. 가령 경주에서 3일을 머문다면, 어떤 음식들을 먹어야 '경주'스러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까. 


오로지 먹는 일정과 컨셉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책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행복한 직업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y에서 옮김201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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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2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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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아는 내용은 아는 대로, 몰랐던 내용은 몰랐던 대로. 알고 있던 이야기라도 다시 봐도 재미있고,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되어도 재미있다. 세상 어딘가에 이미 있었던 일,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믿으며 확인하는 이야기의 매력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게 내 마음에 드는 결과였든 아니든 상관없이. 


1권을 읽은 지는 꽤 오래된 편이고, 그렇다고 이 두 사람이 진행시킨 역사 상황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역사의 기본 줄기는 알고 있는 상태에서 소설처럼 읽는 재미는 여전히 크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있고 둘 사이에서 정치적 모략을 꾀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솜씨는 대단하기만 하고. 이 모든 상황을 지금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읽고 있다니. 그것도 놀라울 정도의 세심한 묘사와 풍부한 표현으로 말이다. 다 알고 있음에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작가의 역량일 테지. 이번에도 나는 기꺼이 빠져 들었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내 기존의 편견이 짙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같은 내용의 다른 책을 더러 봤음에도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내 안의 정보가 수정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예쁘다고, 예뻐서 안토니우스가 반했다고,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빠져서 안토니우스의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어떻게 이런 단편적인 이유만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번 책으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관계를 바꿔 놓기는 했는데, 기억력이 제대로 업그레이드되고 유지될지 걱정은 남는다. 

 

옥타비아누스의 절친 아그리파에 대한 인상은 아주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 나는 옥타비아누스도 좋지만 2인자인 아그리파가 참 마음에 든다. 정치가의 성공에는 무엇보다 본인의 역량이 필요하겠지만 주변인의 역할도 아주 크게 작용한다는 걸 이전 책에서 알고 있었다. 이걸 새삼 확인하고 보니 우리네 현실 정치 상황이 그저 딱하게 보일 뿐이다.    


3권만이 남아 있다. (y에서 옮김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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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사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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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맛에 맞는 우리 작가의 소설. 이런 글을 발견할 때 참 반갑다. 내 마음에 드는 작가의 이름을 익혔다가 잊었다가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강한 다짐을 해 본다.

삶은 고단하고 형편은 여의치 않고 그럴 듯한 내일은 오지 않을 것만 같은데 계속 내일을 기다리는 우산씨와 해주씨. 어떤 상황에서도 우산을 접지 않는 우산씨나 오로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갑을 짜야만 하는 해주씨나 내내 지켜 보고 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소설 속 인물들이야 원래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더 나아졌으면, 형편이 괜찮아졌으면 대신 빌어 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소설 속 인물들이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되도록 안 보려 하고 보더라도 따지게 된다. 계속 안 봐도 될 이유를 찾아 내기 위해. 인물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구성이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간단하다거나, 배경이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문체가 거슬린다거나, 대화가 너무 많거나 너무 없다거나, 등등으로. 마치 거르기 위한 장치처럼 나만의 잣대로 글을 지우고 작가의 이름을 지우곤 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내가 구했다는 뜻이다. 계속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로.   

소설이 있음 직한 현실을 붙잡아, 있었으면 하는 상상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들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볼 때 이 글은 상상하는 사람을 제대로 도와 준다고 생각한다. 우산씨도 해주씨도 더 외롭지 않고 더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해주씨 가족이나 재하 오빠도 더 이상 나쁜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이라도 제값에 팔리기를, 현실이 아니지만 상상 속에서라도 그렇게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현실에서 안 되니까 더더욱 간절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십삼 년 전에 집을 나간 해주씨의 엄마가 돌아온 모습은 몹시 불편했다. 그렇게 돌아온 걸 짐작못한 것은 아니지만 짐작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게 또 속상하다. 아프거나 불행한 사람은 나아질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럴 방법이 있기는 할까? 소설이지만, 소설이라도 이렇게나 언짢은데, 현실에서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떤 변명으로 고개를 돌리게 될까.  

작가가 그려 내는 인물들에 자꾸 끌린다. 싫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y에서 옮김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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