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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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장르가 본질상 사회적 배경을 품고 있는 것이므로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점 때문에 퍽 고달프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읽을 때와는 달리 우리의 역사를 말해 놓고 있는 것이라 거리감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운 친밀감이나 동질감은 예상 이상으로 나를 아프게 한다.


인류 역사상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으리라고 여기는데, 여자의 삶은 남자의 삶에 비해 더 고단했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겉보기만으로라도 남자와 동등해진 것이 최근의 모습이고, 실제로 따져 보면 이것마저 썩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기는 한데, 지금도 사정이 이러한데, 소설 속 상황으로 들어가 보면 딱하고 안쓰럽고 속상하고 기막히기 그지없다. 그 시절에, 그 어려운 시절에, 여자라서 더 힘들고 고통받는 삶을 이어야만 했을 것이니. 소설이지만, 지어낸 이야기라지만, 모조리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 경우만큼은 소설의 허구성이 내게 아무런 효과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일제강점기(국권상실기) 시대, 백정의 자손, 한국 전쟁, 그리고는 딸, 아내, 엄마로 이어지는 여인의 처지. 또 이혼한 여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등. 앞으로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사정을 품고 있는 글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니 계속 읽고 또 읽어야겠지만(먼저 작가 쪽에서 쓰고 또 써 주셔야 할 것이고), 읽는 마음이 늘 고단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기에, 이 고단함마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몫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슬프고 또 서글프다. 작가가 이 소설에 등장시킨 여성 인물들의 성격과 태도를 아무리 강하고 꿋꿋하게 묘사해 놓았다고 해도. 그게 또다른 숨김 과정임을 알기에.  


그러니 밤이 밝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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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음식 - 지치고 힘든 당신을 응원하는 최고의 밥상!
곽재구 외 지음 / 책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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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음식-추억-작가의 에피소드. 이 짜임으로 기획했던 책인 모양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통해 추억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겠다. 좋아하는 음식이 같다면, 추억 속 그리운 사람이 같다면 더욱 절절해지겠지. 나도 그런 행운 하나 만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음식 이야기 책을 자꾸 읽다 보니 내 취향인 글과 거리가 좀 먼 글로 갈린다. 이 책에는 내가 기대하던 음식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메모를 해 두지 않으면 내 한심한 기억 때문에 이 책을 다시 굳이 잡게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남기는 리뷰가 된다.) 글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내가 이 책을 한번 읽었다는 것도 잊고, 나이도 더 들고, 음식이 주는 위로를 알게 되는 때에 이르면 새로운 감동을 만날 수 있게 되기도 할까. 그런 마음을 남겨 두어도 괜찮겠다. 


아프면 먹고 싶은 음식, 기쁨이 되는 음식, 용서가 되는 음식, 용기를 주는 음식.. 그런 게 있나? 늘 그래온 것 같은데 음식에 대한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삶을 향한 의욕이 남들보다는 더 강할 테니. (y에서 옮김201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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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스터리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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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했다. 앞뒤 뜬금없이, 기다리지 못해서. 10권까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는데 이 책이 내 차례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 사 모으는 것도 아니고 시리즈의 책을 한 권만 덜렁? 그것도 가운데에 있는 책을? 그만큼 궁금해서 보기는 했는데, 이제까지 읽은 내용과는 구별되는 미스터리다. 


나는 중간 쯤에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를 눈치챘다. 그걸 알았다고 해서 시시해지지는 않았다. 이 미스터리를 결말까지 작가가 어떻게 풀어 나갈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만 해도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충분했으니까. 대단하다고 할 밖에. 


같은 배경, 같은 인물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미스터리의 유형은 얼마나 될까? 작가는 얼마나 많은 배경지식을 갖고 있어야 상상력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까? 읽는 나는 매번 감탄만 하는데. 읽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작가의 머릿속 세상이나 소설 구성을 위해 세운 사건의 구조도 따위들이. 맞다, 인물도 있다. 인물의 성격이나 장단점이나 행동 유형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등등. 소설가는 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일반인보다 훨씬 많이 누리면서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중세 수도원에서 살았을 수사들의 삶이 점점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귀족들 경우에 장남이 아니면 가업을 이어받기 힘들고 그렇다면 군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되거나 유산을 물려 받은 외동딸의 배우자가 되어야 살 수 있었다는 시절. 신부나 수사가 하나의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졌을 때, 전쟁으로 다른 이의 목숨을 해치면서도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빌어야만 했다니, 나로서는 참 납득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전쟁을 하지 말든가. 주교나 왕이나 다 거기서 거기인 인간 유형. 그래도 수사라는 직업에 대해 호감도를 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 뚜렷하게 남아 만족스럽다. 


전쟁으로 몸을 다친 나이 든 수사와 이 수사를 돌보는 젊은 수사의 사정이 구구절절했다. 그리고 저마다의 기구한 사연으로 등장하는 몇몇 수사들의 모습. 이어지고 갈등하고 해결된다. 읽는 재미가 풍성했다. 


다음 권을 빌릴 수 있을까? 다시 구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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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2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27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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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로 읽는 세 편의 우리 소설. 읽을 때마다 읽는 소설들이 모두 내 취향이어서 내 마음에 들었다고 쓴다면 좋겠지만. 처음에 실린 김채원의 작품이 한참 먹먹하게 읽혔고 두 번째 성혜령의 작품은 살짝 어긋난다 싶었으며 마지막 현호정의 작품은 건성으로 읽고 말았다.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다르게 읽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출판과 편집하는 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을 테고, 그래서 가려 가려 실었을 테고, 내 독서의 폭이 넓고 깊어서 다 아울러 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렇게 한 작품이라도 깊이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채원의 '빛 가운데 걷기'. 노인은 노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보고 있기에 참 애달프고 착잡하다. 사는 일에 아무 무게도 보이지 않는데 그지없이 무겁다. 어떤 생은 하도 가벼워서 짐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다. 겨울 같기만 한 삶, 봄이 와도 따뜻하지 않을 삶, 그런데도 계속되는 삶. 이 삶을 내내 지켜 보면서 그려야만 했을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까. 



인터뷰와는 아직 친해지지 못하고 있다. (y에서 옮김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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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창비시선 46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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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내가 이 시집에 대한 느낌을 글로 적지 않았던 것일까. 너무 크고 깊었던 것일까. 아니면 당연히 썼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번 본 후에 책꽂이에 꽂고 나면 다시 들여다 보지 않게 되는 시집들이 있다. 반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계속 찾아보게 되는 시집도 있다. '섬진강'은 내가 아주 자주 찾는 시집이다. 수업에 필요한 시를 찾아야 할 때도 있고, 그냥 떠오르는 구절을 찾고 싶어 시집을 들출 때도 있다. 오늘도 그러한 뭔가를 찾기 위해 시집을 빼 냈고, 예전에 이 시집에 대해 내가 뭐라고 썼을까 궁금한 마음에 리뷰의 흔적을 찾았는데, 없다. 썼는데 없어진 것인지, 안 쓴 것인지(ㅋㅋ).


내가 갖고 있는 책은 1989년에 발행된 3판이다. 내가 이 시집을 산 날은 1991년 2월 13일이라고 적혀 있다. 울산에 있을 때, 봄방학 시작할 때 즈음하여 샀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겨울 섬진강에 가고 싶었던 것일까. 무슨 마음으로 살았던 시절일까. 결혼 전이었으니까 나름 쓸쓸한 겨울이었을 텐데.


'그대 정들었으리'로 시작하는 섬진강 3을 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섬진강은 20까지 담겨 있던 연작시였다. 얼마나 섬진강이 좋았으면 이토록 애절한 노래를 스무 편이나 만들었으랴. 내게도 섬진강 같은 기댈 언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때도 지금도 하는데.


종이의 색은 좀 바랬고, 글씨체는 약간 낡은 듯한 느낌도 난다. 요즘 발간되고 있는 책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처럼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돌아가고픈 것은 아니고)은 이 시집을 꺼내 볼 일이다.  (y에서 옮김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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