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인 이야기 - 모험하고 싸우고 기도하고 조각하는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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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다가 다시 찾아낸 책이다. 이 작가의 책을 제법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에 대한 기억은 아득하게 멀고 궁금하니까 다시 봐야지.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확인했다. 캐드펠 수사가 살았던 그 시절의 잉글랜드와 주변의 역사에 대해서도, 수도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쉽게 잘 읽힌다. 적절한 주제와 적절한 분량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면서 이후 독서나 영상으로 자주 보았을 것이지만 자꾸만 잊어버리는 남의 나라 역사 이야기. 이 책도 대부분의 역사 책이 그러하듯이 주로 지배층이나 유명인을 대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만큼이라도 접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여겼다.  


재미있다.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어 놓은 사진 자료도 풍부하다. 캐드펠 수사 이야기를 몰랐다면, 1100년대의 잉글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노르망디와 잉글랜드의 상관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여러 번 읽었어도 여전히 기억 못하는 나). 나는 은근히 역사보다 소설에 더 고마운 무게를 두고 있다. 적어도 나로서는 이 소설로 인해 또 한 페이지의 역사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니.


전쟁과 문화와 생존과 인간의 삶. 이 총체적인 흐름 안에서 우리네 개별 인간의 목숨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안 어디에서 무엇으로 흐르고 있을까? 이렇게 읽고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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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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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많이 연달아 읽었나? 신기하고 대단한 결말이라는 느낌보다 다소 당황스러우면서 유쾌하지 않게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탐정 역할의 주인공이 없어서 서운했던 걸까?


매 작품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배경은 내 마음에 든다. 영국의 쓸쓸한 시골 마을에 세워진 멋진 저택.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요즘 같은 가을 날씨에 영국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그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느낌 비슷한 게 잡힐 정도이다. 상상으로만 하는 생각이니 그럴 듯하다고 여기는 것일 뿐 실제 추위에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나는 아마 잔뜩 움츠러들고 말 것이다. 


주인공은 가난한 남자. 어마어마한 부자인 여자를 만나 한눈에 서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저주 받은 땅에 집을 짓는다. '그까짓 저주' 하면서. 어렵사리 결혼을 해서 잘 살아갈 줄 알았는데 주인공의 부자 아내가 그만 죽고 만다. 누가 죽였을 것인가. 제대로 추측할 대상자도 없는 상태에서 범인을 찾아 보려고 하니 막막하기만 했고, 그러다가 소설은 끝에 다다랐고, 범인을 알게 되니 허탈감이 왔고. 그랬다. 


10권 정도 읽고 나니 이 작가가 즐겨 쓰는 구성 요소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부자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 너무 부자라서 희생된다. 누군가 재산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부자인 주인공의 이야기라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도로 재미를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나처럼. 나는 이만큼 부자가 아니니 절대로 희생될 리가 없겠군 안심까지 하면서. 또 부자들의 이런저런 생태를 구경하는 것도 그럴싸한 재미를 주고. 


한 권 더 읽어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되면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이왕이면 재미있게 읽는 게 더 좋으니까. 내 약한 기억력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고. (y에서 옮김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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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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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은, 읽기에 재미없었다. 영, 아주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는 아닌, 작가의 이름을 확인한 뒤에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닌, 그럼에도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만 살짝 전하는 정도의 재미로, 읽었다. 정말 겨우 읽었다.

책 제목의 '2011'처럼, 연도가 붙는 소설집이 한창 재미있을 때가 있었다. 제목 연도의 이전 해에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편집 의도에 맞추어 모은 소설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한 해를 소설로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던 기억이 있다. 좋았던 일은 좋았던 대로, 불쾌했던 일은 불쾌했던 대로, 유쾌한 사건은 유쾌한 대로, 우울한 사건은 우울했던 대로, 그랬구나 하면서 한 해를 짚어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는 모양새가 남보기에는 그럴 듯해도 속사정은 예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갖추어 놓고 사는 물건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얻어 나아졌을지 모르겠으나, 사람 사이, 사람을 생각하는 정도는 예전보다 훨씬 각박해진 것이다. 각박하다 못해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지겹고 짜증날 정도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느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소설은 모두 우울했다. 물속에 잠긴 소설이라고,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그리고 있다고도 하는데, 어느 한 편 산뜻하게 와 닿는 글이 없어서 사실 나는 할 말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는 소설들을 대상으로 느낌을 잡아보려고 하니, 내 느낌마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도 탁하고 우중충한 물속에서.

그러나 어쩌겠는가. 2011년이, 혹은 2010년이, 오늘날의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렇게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데. 어느 한 사람 빼 놓지 않고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 모두가 이 시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데. 힘들다는데. 온통 얼룩진 세상에서, 그 막막하고 팍팍한 세상을 바라보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출구없는 벽 앞에서 눈물 없이 울고만 있다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살고 있는 것인지,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이 물음에 대해 소설이 명확하게 답을 준 적은 없겠지만, 물음을 더욱 물음답게 되살리기는 했다. 살아야 한다고.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너처럼 고민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바로 네 옆에 또 있다고, 그 사람도 너랑 똑같이 아프고 힘들다고, 그러니 마음 모아 살아보라고, 살아야 한다고 빙빙 돌려서 무지무지 멀리멀리 돌아서 전해오는 격려, 보이지 않는 힘이 되려고 했던 소설의 몫.    

나는,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는, 이십 대 때, 내가 오십 쯤 되었을 때의 이십 대 청년들은 그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우리가 겪었던 고통은 다 없어졌을 것이고, 별 어려움 없이 그들의 밝고 환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지나온 시절이 그러했으므로, 그때가 그렇게 어려웠으므로, 어려웠다고 느꼈으므로, 역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대를 건너는 중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우리가 지나온 뒤에는 우리만큼의 어려움을 겪는 후손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으므로.

소설은 잘 읽히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그런데 상념은 길고 깊다. 2010년과 2011년에 대해 무어라고 할 말이 없다. 어찌 이리도 민망한지. 소설을 쓴 지 10년쯤 된 작가들이 쓴 글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데, 그 중에 잘된 작품들만 모아 놓은 것이라는데, 2010년이든지 2011년이든지 즐겨 나누고 싶은 이야기거리가 없다. 지긋지긋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어서, 그저 잊어버리고만 싶은 시절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물 속에 어둠 속에 빠뜨려버린 소설들. 찾아도, 찾아서 읽어도 쉬이 빛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의 넋두리 같은.

누구에게 이 소설집을 건네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y에서 옮김201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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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의 상속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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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탓에 이단이라는 말이나 의미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믿음의 뿌리가 다르다고, 믿는 대상이 다르다고, 또 다르게 뭐라고 뭐라고 하든 내게는 그저 다른 생각을 뜻할 뿐인 것인데. 종교의 영역에서는 이것이 죽고사는 일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다 하니 이 또한 내가 종교에 너그럽지 못한 요인이 되겠다.


그리하여 이번 책은 무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 시절 그곳에서 이단자로 취급되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내 조마조마했다. 주인공으로 나온 일레이브가 어떤 고난과 시련에 시달리게 될 것인지 몰라서. 결말이야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올 것을 믿고 있었지만, 작가가 당연히 그렇게 썼겠지만,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안이하지 않게 심심하지 않게 어떻게 전개시켰을 것인가. 그래서 보기 드물게 주인공들이 상당히 위험한 처지에 이르는 과정까지 포함시켰던 것 같고.  


한 가지 더. 물건에 대한 집착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새삼 알았다. 그래서 다들 명품을, 명화를, 보석을 갈구하는 것일까(이런 것들은 비싸니까 이유가 되겠다). 갖고 싶다는 것. 귀하거나 비싸거나 아니면 유일하거나 등등의 가치를 가진 것들에.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나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그런 것들도. 나로서는 도무지 모를 경지다. 가진 게 없어서 그런가? 


사랑은 이번에도 달콤하게 이루어진다. 캐드펠 수사 곁에서 이루어진 사랑의 커플이 얼마나 되는 셈인가. 한 권에 하나 이상의 커플? 휴 부부를 시작으로 참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는 재미가 늘어나도록. 


이제 5권 남았다. 섭섭함을 얹어서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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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이야기 - 2015년 제3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숨 외 지음 / 문학사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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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새해 무렵 이 작품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지나고 난 후에 어쩌다 구해 보는 책이 되고 말았다. 책에 대한 아쉬움인지 내 취향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모를 빈 공간이 나를 가끔 끌어당겨 주저앉히곤 한다. 오늘처럼.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메모다. 수상작은 잘 읽히지 않았고, 읽히지 않아도 마음에 걸리는 건 없었다. 그게 도로 거슬렸다. 이제 내 취향이 아닌 글은 억지로 읽으려고 하지 않는 내 안의 타협이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어서.

 

조경란의 글이 좋아서 이 리뷰를 올린다. 이렇게 남기지 않으면 기억력이 형편없는 나는 이 책을 안 펼쳤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읽어야 하나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봤고, 조경란의 글을 보면서 이 작가의 글을 더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10년쯤 전에도 마음에 든다는 내 리뷰를 확인했으며, 그동안 왜 이 작가의 글을 안 본 건가 하는 반성도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전성태, 윤성희, 손홍규의 글은 무난하게 내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다. 내게는 아직 낯선 이름인 이평재, 한유주, 이장욱의 글은 아직 내게로 와 닿지 못했다. 아니, 내가 가 닿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말이겠다. 한 사람의 작가와 독자로서 마음이 찡하도록 닿으려면 어떤 장치가 있어야 하는 걸까? 중얼거리면서 경계에 잠시 서 본다.    

 

'노인'. 점점 무거운 존재가 되고 있다. 이른바 노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치매, 요양원, 부양, 가족 파괴, 죽음...... 2014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혼자 살다 혼자 죽어야 하는지, 같이 살면서 같이 힘들어야 하는지...... 이제까지 한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인간의 긴 수명에 전 세계가 당황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이미 이 안에 들어 서 있고. 이제는 편한 날이 있을까 싶다.  (y에서 옮김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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