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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ㅣ 이미경의 구멍가게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6월
평점 :
두 번째 책이다.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 그 가게를 그림으로 보여 주고 그때의 생각을 글로 보여 주는 작가의 책. 그냥, 구해서 가졌다. 갖고 싶다는 것, 내가 돈을 주고 얻어서 갖고 있고 싶은 대상이 바로 이런 책이다. 예쁜 그림과 소박한 생각과 이를 나누는 작가의 솜씨가 아주 근사하게 어울리고 있는 책.
책의 내용은 앞서 나온 책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각각의 구멍가게들의 이름이 다르고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일 뿐, 그 가게가 그 가게라고 해도 괜찮게 보일 정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비슷해 보여도 계속 보고 싶다. 마치 '틀린그림찾기' 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가게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다른 부분을 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떤 가게의 경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다 그려서 보여 주고 있는데 계절마다 다르게 놓여 있는 주변 사물들을 구별해 보는 재미까지 있었으니까. 계절마다 찾아갔을 작가의 마음이 헤아려지면서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빠져들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그런 게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강렬한 마음으로 집중하고 싶은 대상 하나 이상.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어떤 스포츠(직접 하든 구경만 하든)일 수도 있을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의 주인공인 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한 차원 높여 미술이나 건축이나 공연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이 작가의 경우, 우리나라 전역에 남아 있을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는 일일 것이다. 그 가게에 가는 여정, 그 가게를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 그 동안에 느꼈을 온 마음을 글로 옮기는 일까지.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가진, 그리고 충분히 누릴 만큼의 능력을 지닌 작가의 삶이 많이 부럽다. 이런 삶은 부러워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
예전에 내가 살던 지역의 가게(대산마을 점방, 201~205쪽)를 이번 책에서 만났다. 살짝 설렜고 좀 많이 흐뭇했다. 오랜 시간을 버티고 견딘다는 참된 뜻을 알게 된 기분도 얻었다. 새것도 좋지만 오래된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 시대에 맞도록 발빠르게 바꾸는 일도 현명하겠지만 그 시대의 흐름을 벗어나 긴 호흡으로 살아남아 있는 일도 가치를 남겨 줄 수 있다는 것.
작가가 이 책을 만들고 있는 동안 책 속의 어떤 가게는 영영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이런 구멍가게는 사라지는 일은 있겠으나 새로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증거로라도 살아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예쁜 증거, 갸륵한 증거, 진실로 거룩한 삶의 증거의 한 방법으로서.
남아 있는 오래된 가게를 보는 마음도 안쓰럽고, 이제는 비어 버린 채 유리창에 겨우 붙어 있는 이름만 낡아 가는 가게를 보는 마음은 더 애달프다. (y에서 옮김2020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