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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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의 경계를 확인하거나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절이다. 어린 한때는, 사람이란 다른 이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엄청 강요받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혼자와 같이의 균형에 대해 더 생각해 보라고 한 듯 싶어졌고 나도 내 몫을 챙겨 보게 된 것 같고.

작가의 초기 작품에 해당될 듯한 장편소설이다. 2011년에 출간되었다는데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에 이런 분위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때는 못 읽고 이제야 읽어 보는데 나는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을 이런 방식으로 확인한다. 내가 소설에서 얻는 장점 중 하나. 새로 살고 거듭 살기. 이 작가의 글을 늦게나마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젊은 남자 둘, 젊은 여자 하나. 동행은 동행이되 가까이 하기에는 좀 먼 거리. 쉬운 마음으로 읽게 된다. 아무도 미워할 수 없고 그렇다고 좋아하게 되지도 않는데 각각의 인물에 정을 느낄 정도는 되는 읽기. 등장인물 모두에게 이만큼씩의 애정을 갖기도 쉽지 않기에. 함께 여자의 집을 찾으러 나섰다가 마침내 헤어진 후 셋은 각자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 돌아간 집은 기대했던 집이 맞았을까? 다시 길을 나서게 되는 건 아닐까? 젊음이란 게 대체로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마련이라 어떤 식으로든 마음 잡기가 쉽지 않더란 말이지.  

마음이 넓은 부자, 돈이 많은 부자, 능력이 뛰어난 부자, 나눌 줄 아는 부자...... 세상에 부자는 참으로 많을 텐데, 부자는 스스로가 부자인 줄 몰라 부자로 살 줄 모르고. 늘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만을 바라면서 가난하게 살고. 나는 부유함과 가난함 사이에서 맴돈다. 넉넉했다가 모자랐다가......

소통은 삶에 중요하고 필요하다. 아는데도 잘 해내지 못하는 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너보다 내가 더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자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내 안의 나와 충돌하는 경우를 맞기도 하면서. 살려고 하는 게 소통이라는 것만 인식해도,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방법을 구해야 한다는 것만 인정해도 우리네 삶이 많이 나아질 것만 같은데. 

구름다리를 볼 때마다 작품 속 그녀의 집이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닐지 확인해 보고 싶을 것 같다.  (y에서 옮김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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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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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할까, 일을 안 하는 것이 행복할까.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얼마만큼 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 될까. 일만 하고 살 수도 없고 일을 안 하고 살 수도 없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일을 안 해도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고 밥만 먹고 살 수는 또 없는 건 아닌가? 밥 먹을 만큼만 일할 수 있다면 괜찮은가? 정해진 답이 없는 이 물음은 하염없이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여기서 그친다. 대충 내가 감당할 만큼의 일에 대해서는 잡히는 기분이라서. 이 소설집으로는 가늠이 되는 정도라서.

글은 슬펐고 소설 속 젊은 인물들은 마냥 서글프게만 보였다. 어느 한 사람 명랑하게 일하고 있지 않았다. 작가의 기분 탓일까, 고단한 시대의 형편 탓일까, 인간 세상의 불합리 탓일까. 제목과 달리 일에서의 기쁨은 맛 볼 새도 없이 일로 인한 슬픔만 주르륵 흐르는 풍경이 배경이었다.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해 보았지만, 삶은 어느 누구도 같은 모양 같은 무게로 겪는 게 아니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직장 생활에 대해 짐작할 수가 없다. 어렸던 그때도 나이든 지금도 한적한 여기에서도 분주한 그곳에서도. 그렇다고 하면 그러려니 여길 뿐, 일에서 얻는 기쁨과 슬픔은 각자만의 몫이다. 비교가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이 책으로 작가로부터 깊고 인상적인 호감을 받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금방이라도 더 읽고 싶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내겠다도 아니다. 망설여지는 호기심, 더 읽어 보는 게 낫겠다로 마무리한다. (y에서 옮김20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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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소금 -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맛내기
프랑수아즈 에리티에 지음, 길혜연 옮김 / 뮤진트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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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았을 때, 아주 얇은 것에 먼저 놀랐다가, 초반 몇 쪽을 읽다가 한 번 더 놀랐다. 하염없이 늘어놓은 듯한 구절들을 읽으면서 어라, 이 생각 나도 해 보고 싶은데, 반짝 하고 내 머리 안에서 뭔가가 울렸던 것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지냈던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 그 소중함을 되새기고 싶다는 소박한 내 의지를 찾았다고나 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 거창하고 대단한 것 말고, 쉽게 할 수 있을 듯하면서도 오로지 마음의 여유를 붙잡지 못해 못하고 있는 것. 안 해도 그만이지만 이왕 할 수 있다면 하루의 그 순간으로 하루가 행복해지고 일상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그런 일. 지속력이 없어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지만 매일 한두 가지씩이라도 다이어리에 메모하고 싶다. 오늘 좋았던 일,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 그렇게.

 

혼자 힘으로 해내기 어려울 것 같으면 친한 사람들끼리 약속처럼 주고받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작가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 것처럼.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날 좋았던 일의 인상을 나누어 보는 일. 이 숙제를 하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안 보던 하늘도 쳐다보고, 스쳐가는 나무도 바라보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도 관찰하게 될 테니.

 

<책이 너무 얇아서, 내용이 아주 사소해서,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못하겠다.>  (y에서 옮김20131103)

 

(다음은 이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일과 일치하는 것들)

 

15

...손으로 쓴 편지,...모두 잠든 한밤중에 혼자서 깨어 있기,...사진 앨범 뒤적이기,...

 

16

수공업 장인의 작업하는 모습 관찰하기

 

18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쳐다보기

 

20

브래드 피트의 미소

 

21

낙엽 밟으며 걷기

 

22

따뜻하지만 너무 뜨겁지 않은 모래 위 걷기

 

24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의 애끓는 신중함

 

27

대형 퍼즐 완성하기

 

30

아름다운 날 오후 느지막하게 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약간 허기를 느낄 때,...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듣기

 

39

언덕 꼭대기에서 탁 트인 풍경 바라보기

 

68

이브 생 로랑의 멋진 스모킹이나 잡지에서 얼핏 본 여신 같은 드레스를 동경해 보기

 

70

여자 친구와 함께 크루즈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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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탄식 문학과지성 시인선 545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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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이름의 시집을 고른 것. 시인의 나이가 새삼스럽다. 많다고 해야 할지 어쩔지. 시인으로서는 나이란 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 독자인 내 나이를 헤아려야 하는 것인가. 어째 나이가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싱그럽게 반짝이는 대신 묵직하게 울리는 시어들, 문장들의 모음집이다. 한 행 한 행을 따라 건너는데 부담은 안 생기고 뭉클거리는 마음이 쉴 새 없이 솟는다. 나이 드는 좋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슬퍼도 영 슬프지 않고 서러워도 영 서럽지 않게 된다. 받아들일 만하고 견딜 만하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차례차례 이어지는 생. 누가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먼저 떠나는 생. 남아 있는 마음으로, 기껏 한 차례 앞서 보내는 마음으로 두루 되돌아보면서 살핀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너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그래서 우리는 잘 살아온 것이었던가. 시인의 노래를 읊으면서 내가 불러 보고 싶은 이름을 떠올린다. 살짝씩 겹친다. 반갑고 고마울 일이다.  


어른의 글에 자꾸만 기대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나는 도무지 어른이 못되고 있다. (y에서 옮김20230124)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를 조심해라. - P18

그러나 명당자리가 아니고 아무 나라 아무 땅이나 하늘이 다 좋다면, 더 이상은 바람 따라 우리가 흔들리지 않아도 되겠지. - P20

쉬운 것이 가끔은 가장 아름답다는, - P33

우리는 보석처럼 오래 걸었고 - P34

버려진 몸과 말이 마침내 꽃을 피웁니다. - P55

팔순 나이에는 다른 이들의 말과 삶이 밝고 싱그럽고 매혹적이다. - P56

어느 만남에서야 헝클어진 내가 모든 시차를 극복하고 진정한 현장이 될 수 있을까. 믿기지는 않지만 언제쯤 우리는 편견까지 넘어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 P57

눈부셨던 날도 흘려보내야 반짝이며 산다. - P59

나이 들면 어디가 아픈 것은 흔한 일인데
그게 사람을 좀 겸손하게 만드니 다행이다. - P71

사연이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곡절을 물으면 모두들 한나절일 텐데
눈감고 떠나는 마르고 작은 꽃씨같이
빨리 늙어 확실한 길을 걷고 싶어서
젊었던 나이가 힘들었던 나여. - P75

움직이고 숨 쉬는 것만이 사는 게 아니다.
나이 들수록 놀랍게 너그러운 날들 많아지고
쉬어갈 나무 그늘이 한 아름씩 늘어난다. - P81

나이가 들어서야 큰 것은 단순한 것에 스며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다. 해는 저물고 세월은 너와 나 사이로 흘러가는데 그 하늘은 아직 높고 멀기만 하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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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의 구멍가게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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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책이다.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 그 가게를 그림으로 보여 주고 그때의 생각을 글로 보여 주는 작가의 책. 그냥, 구해서 가졌다. 갖고 싶다는 것, 내가 돈을 주고 얻어서 갖고 있고 싶은 대상이 바로 이런 책이다. 예쁜 그림과 소박한 생각과 이를 나누는 작가의 솜씨가 아주 근사하게 어울리고 있는 책.


책의 내용은 앞서 나온 책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각각의 구멍가게들의 이름이 다르고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일 뿐, 그 가게가 그 가게라고 해도 괜찮게 보일 정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비슷해 보여도 계속 보고 싶다. 마치 '틀린그림찾기' 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가게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다른 부분을 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떤 가게의 경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다 그려서 보여 주고 있는데 계절마다 다르게 놓여 있는 주변 사물들을 구별해 보는 재미까지 있었으니까. 계절마다 찾아갔을 작가의 마음이 헤아려지면서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빠져들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그런 게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강렬한 마음으로 집중하고 싶은 대상 하나 이상.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어떤 스포츠(직접 하든 구경만 하든)일 수도 있을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의 주인공인 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한 차원 높여 미술이나 건축이나 공연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이 작가의 경우, 우리나라 전역에 남아 있을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는 일일 것이다. 그 가게에 가는 여정, 그 가게를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 그 동안에 느꼈을 온 마음을 글로 옮기는 일까지.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가진, 그리고 충분히 누릴 만큼의 능력을 지닌 작가의 삶이 많이 부럽다. 이런 삶은 부러워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  


예전에 내가 살던 지역의 가게(대산마을 점방, 201~205쪽)를 이번 책에서 만났다. 살짝 설렜고 좀 많이 흐뭇했다. 오랜 시간을 버티고 견딘다는 참된 뜻을 알게 된 기분도 얻었다. 새것도 좋지만 오래된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 시대에 맞도록 발빠르게 바꾸는 일도 현명하겠지만 그 시대의 흐름을 벗어나 긴 호흡으로 살아남아 있는 일도 가치를 남겨 줄 수 있다는 것. 


작가가 이 책을 만들고 있는 동안 책 속의 어떤 가게는 영영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이런 구멍가게는 사라지는 일은 있겠으나 새로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증거로라도 살아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예쁜 증거, 갸륵한 증거, 진실로 거룩한 삶의 증거의 한 방법으로서. 


남아 있는 오래된 가게를 보는 마음도 안쓰럽고, 이제는 비어 버린 채 유리창에 겨우 붙어 있는 이름만 낡아 가는 가게를 보는 마음은 더 애달프다. (y에서 옮김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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