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필로소퍼 2025 31호 - Vol 31 :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운이라면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31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운에게서 얻는 문제점은 운이 내게만 와 주었으면 한다는 것. 그것도 행운이나 축복에 한해서만. 불운은 내 쪽이 아닌 남들 쪽으로. 말이 안 되는 노릇이지. 


나는 내가 운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자주 한다. 태어난 배경,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 학업과 직업, 수많은 동료 등등. 돌이켜보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더 나빴을 수도 있으므로 '어휴, 다행이었다' 싶은 순간들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나는 뜻밖의 행운을 바라지 않는 편이다. 이 점은 책 속에서 말하는 바, 우연에 기대는 성향이 확실히 적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복권을 두 장 샀다. 당첨이 안 되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그럼에도 복권을 왜 샀나? 혹시라도? 운이 있을까 하여? 그 막막한 기대로 며칠의 행복한 상상과 바꿀 수 있었으니 그것대로 또 괜찮기는 했다. 운이라는 것은, 좋은 운은 기대하지 않았을 때 막무가내로 오고 대체로는 한참 시간이 지나간 후에 깨닫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내게 운이 좋았던 것이지, 하면서.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철학의 가치를 슬그머니 느끼기도 했다. 금방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나는 이제 믿는다, 읽고 잊어도 내 안 어딘가에 분위기로 기분으로라도 남게 된다는 것을. 내가 정신을 차려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리라는 것을. 이만큼 인문학의 가치를 믿고 있는 내가 또 운이 좋다고 여기면서. 


오늘도 운이 좋게도 날씨가 좋다. 내가 하려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요건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게 행운이어서 살 맛이 자꾸 생긴다.




특정 시대와 장소에 태어나는 것, 적성에 맞거나 잘 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나는 것, 심지어 살아남는 것 그 자체도 결국에는 아찔할 만큼 우연에 달렸다. - P32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은 세상이 여전히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한다. 이와 달리 정의는 운이 우리의 운명을 왜곡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P52

바르고 충만한 삶이 목표인 사람은 인격 수양 훈련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훈련 받을 수단과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훈련, 수단, 기회 중 일부는 타고난 운에 좌우되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 - P53

우리는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바람의 밑바탕에는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다는 통제 욕구가 깔려 있다. 여기에서 행운의 역설에 부딪힌다. 삶에서 더 많은 행운을 끌어당길 수 있지만, 그러려면 처음부터 삶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 P68

당신이 자기 행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제 집착을 버리고 우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 P69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자유를 부정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의식은 존재의 자유를 추구하는 동시에 거부한다는 것이다. - P89

도덕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 규범과 그것을 선택하는 인격을 의미합니다. 또한 도덕은 안락한 삶보다 가치 있고 뜻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됨됨이를 훨씬 높이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 P110

변덕은 혼란이 아닌 경향성(리듬)이다. 순간순간 변화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긍정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경향성이다.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보다]에서 글(보편 교양)에 호감을 느꼈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에 새겼던 인연으로 빌려 본 책이다. 기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로(기억하려 했으나 못하고 놓친 작가들의 이름이 또 많아서). 

소설집은 알찼다. 모두 9편. 어느 한 편도 가볍게 들썩이지 않았다. 조금씩 다른 요소들로, 조금씩 다른 신선함으로, 조금씩 다른 분위기로 나를 끌어들였다. 주제만큼은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안내하면서. 이 시대 젊은이들, 살기 참 쉽지 않구나. 살아가든, 살아 남든, 살아 내든. 어쩌다가 강박이 삶의 자연스러움을 물리치고 우리네 정신을 차지하고 만 것인지. 

천천히 읽은 셈이다. 하루에 하나씩만. 두 편 이상을 읽고 감상을 섞고 싶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하루가 지나면 앞에 읽은 글에서 얻은 호감을 나는 잊어버렸고 처음 읽는 듯 다음 글을 읽었다. 익숙한 맛과 낯선 맛이 바뀌며 흘러갔는데 다 괜찮아서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나는 또 마음에 드는 소설가 한 명을 얻는다.  

재미있었다. 텔레비전 예능의 화려하고도 헛된 세계, 콘서트 열광 문화, 암담하고 쓰린 교육 현실, 고등학생 역도 연수를 통해 보는 스포츠 세상, 세계화 안에서도 방황하기만 하는 강박증 등등. 다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특히 나와 나이가 다른(적은) 사람들은 삶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가고 있나, 잘 사나 그렇지 못하나, 이런 내 궁금증을 잘 달래 주었다. 알아 낸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읽는 일. 내가 읽는 사람이라는 것. 지금의 시대를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책을 사서 읽는다면 더 좋았겠지만 빌려서라도 읽고 있다면 이건 이것대로. 

이 작가가 쓰고 있을 글이 시간과 더불어 잘 무르익어 가기를. 그래서 세상을 혼내 줬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409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이런 기사를 만나는 일이 있다. 범인으로 알고 법 집행을 했는데, 범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 진짜 범인은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 이번 소설은 이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읽기 시작하면서는 단순히 범인 입장만 생각했다. 범인으로 취급받아 억울했던 자의 심정과 처지, 헤아릴 수 없는 그 막막함만 짐작해 보려 했는데 글을 읽어 나갈수록 그것만 고려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가는 도대체 어찌된 사람인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하면, 얼마나 논리력이 뛰어나면, 얼마나 사람에 대한 통찰이 깊으면 이런 작품들을 써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추리 소설이 단지 재미로 읽어 보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까지 갖도록 해 준다. 


가족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어머니가 살해당했고 아들이 범인이라고 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명백히 끝난 사건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범인인 줄 알았던 아들이 범인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억울한 누명을 쓴 아들은 감옥에서 죽고 말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다시 처음부터 범인을 찾아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남은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느 누구도 용의자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는 상황, 외롭고 무섭고 이런 게 바로 지옥일 것이다. 작가는 이 상황을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라 그려내면서 집중하게 만든다. 모두 범인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가정, 그게 얼마나 무섭고 기막힌 일일 것인가. 


선의에 대해서도 새로 생각해 본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고 행하는 일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똑같은 무게와 감정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나로서는 선의였으나 상대에게는 부담이나 강요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진리 같은 말-나와 너는 같지 않다는 것. 이런 식의 부담이 어떤 이에게는 살의로 커질 수도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 사람이란 존재의 불완전한 면을 짚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느 만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인지. 


좋아서 좋다고 하는 말과 행동이나, 싫어서 싫다고 하는 말과 행동이나, 자칫 어떤 사람에게는 무기가 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단다. 조심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y에서 옮김201810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 둘, 내 구두에 버클을 달아라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혜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목숨에 값이 있을까? 어떤 사람은 비싸고 어떤 사람은 값싸고 어떤 사람은 귀해서 함부로 죽이면 안 되고 어떤 사람은 죽일 만하니 죽여도 괜찮고...... 그런 게 있을까? 있다면 누가 재단하는 것이지? 신도 조물주도 아닌 같은 입장의 사람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소설에서는 사건들이 바깥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푸아로 경감은 중간중간 알아챈다고 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런 눈치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얻은 결말, 좀 황당하고 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그랬다고? 죽일 만한 사람이라 죽였고 어쩌다 운이 나빠 죽어야 했다고? 살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변명도 핑계도 아닌 당당한 변호였다. 자신만큼은 세상에 특히 영국에 너무도 이로운 사람이라는, 그래서 그래도 된다고 여긴다는 그의 생각 자체가 끔찍해 보였다. 요즘에도 이런 뻔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인지.


100년 전의 배경이라 아득한 옛날 일일 것 같아도 사람의 본성만큼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변하지도 않고 변할 수도 없는 모양이다. 이기심이라든가 질투와 시기라든가,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라든가. 재미있게 읽고는 매번 절망한다. 


이 작가의 소설 시리즈 중 안 읽은 것으로 한 권(뮤스가의 살인)이 남아 있다. 나란히 세워 놓은 책등의 제목들을 보고 있으면 마냥 흐뭇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 한잔 인생 한입 10
라즈웰 호소키 지음, 이재경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을 마시는 일도 그러할까. 마셔도 마셔도 외롭고 부족하고 씁쓸한 맛에 애타는 것. 이번 참에서는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어진다. 만화로만 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구나, 나도 한번 마셔 보고 싶구나, 마시고 먹고 취해도 보고 싶구나. 그 끝이 고단한 숙취일지라도. 괜히 이래 본다. 못할 것을 아니까.


인류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술을 만들어 마셔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만화만 봐도 지역별 문화의 특성을 술로 알아볼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살고 있는 땅과 바다 근처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들어 먹고 마셨을 것이니, 지금이야 줄어들고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그 옛날 그 시절에는 흔한 먹거리였을 재료들. 이번 호에서는 일본에서 고래 고기가 익숙한 먹거리였음을 보여 준다. 섬나라였고, 해안에서도 쉽게 잡을 수 있는 물고기였을 것이고, 부피가 컸으니 많은 이들이 먹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이제는 전 세계 환경론자들이 더 이상 잡지 말고 보존하자고 하니 오랜 세월 즐겨 먹었던 입장에서는 서운하기도 하겠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먹거리 문화가 있어 짐작도 되는 바이고.


술과 맛있는 안주에 대한 작가의 지극한 사랑이 귀엽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 만화를 꾸준히 그려 낼 수 있는 것일 테지. 대상은 달라도 자신만의 사랑스러운 탐구 대상을 가지는 것이 삶에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것이 오래오래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좋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건강해야겠지, 무엇보다도.  (y에서 옮김202206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