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4 소설 보다
권희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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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글이 많지도 않은 세 편이었지만, 읽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아쉬워서, 뭔가 좀 섭섭해서. 이런 마음일 때도 책장이 덜 넘어가는구나, 화르륵 넘겨 버리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구나 여긴다.

전체적으로 심심했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싱거웠고 절절하지 않아서 무난했다. 자칫 읽어도 안 읽어도 그만이구나 싶은. 세 번째로 실린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나를 건져 주었다. 느리고 무료하고 밋밋했던 읽기에 반짝 불빛 한 줄기 비춰 주는 이가 있는 것처럼. 드러내 놓지 않고 가까이에 슬픔 몇 조각을 거느리고 있는 인물을 만난 기분이다. 잠시였지만 또 슬픔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둘은 앞으로 괜찮아질까? 같이 슬퍼할까, 같이 나아질까? 아니면 따로 흩어지고 말까?

 삶이 가볍게 여겨져서 하찮아질 때가 생긴다. 좋지 않은 현상이다. 이럴 때 글을 읽으면 글도 하찮아진다. 글 쪽에서는, 작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독자인 내 처지를 몰랐을 테니까. 지독하게 하찮고 실망스러운 생을 깨우쳐 줄 글 한 편을 기대할 만큼의 의욕만 남아서 슬프기 짝이 없다.  (y에서 옮김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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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창비시선 501
도종환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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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뜨겁고 폭염주의보에 시달리고 있지만 어둡다, 어둡기만 하다. 꽃도 피고 나무도 푸르기만 한데 우리가 사는 세상만 어둡다. 어두운 줄도 모르고 어둡게 사는 이들, 나는 다른 사람을 나무랄 수가 없다.

이 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읽는다. 한동안 안 읽었다가 읽으니 아주 새로운 기분이 든다. 게다가 시간이 꽤 흘렀다. 시인이 젊은 날에 쓴 시와 한창 활동을 하고 있을 때의 시와 이번 시집의 글이 조금조금 다르게 보인다. 세월이 시들 사이로 흐르고 있는 듯하다. 아마 내 세월도 같이 흐르고 있으리라. 

시인은 국어교사였고 아내를 여의었고 전교조 활동을 했고 이후 정치를 했다. 생의 이력이 이번 시집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시를 읽는 데에 이런 사실이 도움이 되다가 방해가 되기도 했다. 같이 읽어야 한다. 글도 사람도 세상도 하나로만 존재할 수는 없으니. 

눈길이 두 차례 이상 머무는 구절을 옮겨 보았다. 내 젊은 이상의 조각들이 문득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부질없는 일인 것만 같은데도. (y에서 옮김20240722)

의롭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인생을 흠모하게 된 것 - P11

조용히 지워지는 시간 속에
내가 지워질 수 있도록 놓아두리라 - P15

타인이 지옥이지 않게 하소서 - P17

여전히 푸르게 다시 살아가는 것 - P18

설렘 속에 꽃이 피었다
슬픔 속에 그 꽃이 지는 동안
한 생애가 흘러갈 것이다 - P20

좋은 날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 믿게 하던
젊은 날은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거기까지였지만 - P22

하루 종일 두뼘 아래 놓인 활자들만 톡톡 쪼다
하늘을 잃어버린 새가 되어 살았습니다 - P27

종자보다 중요한 게 흙의 힘이라는
주막집 안주인 말은 의미가 깊고 크다 - P33

제 계절을 안다는 것
그게 천명을 안다는 것이지요 - P48

생각해보니 사려 깊을 때는 낮아질 때였습니다
강할 때는 겸허해질 때였습니다 - P51

나는 나무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 P61

노여움이 커지는 건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서운한 게 많다는 건 너그러움이 줄고 있다는 것
분노가 자주 튀어나오는 건 두려움이 많아졌다는 것 - P80

사람은 다 알지 못할 때가 좋습니다 - P83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가는
바람 좋은 날 - P96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생의 겨울에도 아름답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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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4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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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늘 이런 것일까. 역사 이래 늘 이랬다고는 하는데. 젊은이들이 형편 없어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거나 기성 세대가 현실을 망쳐 놓았다거나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암울한 현실을 이겨 내야 한다며... 소설이라는 게 본래 그 사회의 불완전한 모습을 그리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마음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살기 참 어렵구나 하는 상황을 인정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마니까.

세 편의 소설. 이번 호의 작품들은 내게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이 책 시리즈를 자꾸 읽다 보니 이제 다른 재미도 얻는다. 썩 끌리지는 않지만 요즘 젊은 작가들이 어떤 문제를 품고 글을 쓰나 짐작해 보는 일.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니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겠고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의 고충을 엿보는 정도지만. 어쩌면 이게 소설가들의 숙명일 수도 있겠고. 늘 사회의 갈등을 고려하고 있어야 할 소설가들은, 그렇다면 불행할까? 그렇지는 않기를.  

작가와의 인터뷰도 예전보다는 잘 읽힌다. 이런 마음으로 이런 바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 앞으로는 이런 방향의 글을 써 보고 싶다고 하는, 작가들의 가능성을 미리 읽어 보라는 편집 의도. 결국 좋아하는 대상은 사람이 되는 셈이다. 글을 통해 만나는 사람, 어떤 소설가.   (y에서 옮김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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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은 책과 세상 - 김훈의 詩이야기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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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되도록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할 것 같다. 그리고는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자꾸자꾸 글로 써 주어야 할 것 같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여행을 하지 못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재능을 모두에게 나누어주어야겠다는 사명감으로라도.

    얼마 전에 이 작가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펴냈다. 난 그 책 제목만 듣고 이 책을 떠올렸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1989년 초판본이니 벌써 10년이 지난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몇 번 이사를 하면서, 그 동안 다른 많은 책들을 떠나 보냈으면서도 이 책은 지금까지 가지고 다녔다.

    시간의 흐름도 이 책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우리 나라 작가들의 작품과 그 작품이 살아 숨쉬는 공간을 이어놓은 여행산문집. 시간이 아무리 흐른들 이 책에 담겨 있는 공간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문학 기행 산문집을 다른 사람들도 종종 펴내기는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 독서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나는 아직까지 이 책만한 것을 만나지는 못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이미 절판이 되어버렸다. 왜 우리 나라 출판사들은 좀 지긋이 기다릴 줄을 모르는지. 문학 작품 하나하나의 속속들이 보는 기쁨과는 또다른 차원의 새로운 즐거움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눌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y에서 옮김20010127)


    [인상깊은구절]
    온 산의 낙엽들이 막무가내로 무너져내리고 가을바람이 갈 길을 보채며 돌부처의 엷은 옷자락을 흔드는데 저녁해가 부처의 오른 뺨을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자 부처의 왼 뺨으로 달이 떠오른다. 지나가버린 수만 번의 가을과 닥쳐올 수만 번의 가을 사이에 낀 단 한번의 그 덧없는 가을날, 가을산에서 깨달은 자의 반쯤 뜬 눈으로 내려다보는 벌판에서, 멸망해버린 왕국의 반월성은 이제는 주춧돌뿐이다. 모든 제국과 모든 견고한 것들이 바람 앞에 무너져 내리고, 덧없음을 확인한 자의 미소가 오히려 영원의 해와 달에 젖을 때, 견고한 것과 덧없는 것 중에서 진실로 어느 편이 헛된 것인지를 그 가을산 돌부처들은 실눈의 눈웃음으로 말할 듯 말 듯 하지만 끝끝내 말하지 않는다.


    * 2004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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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의 갈까마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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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책에서는 성직자를 예시로 보여주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먼저 수도원의 라둘푸스 원장, 원장이 되고 싶어하는 로버트 부수도원장, 새로 등장한 에일로스 신부. 여기에 내전의 중심에 있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스티븐 왕을 따르기로 한 휴 베링어. 왕과 황후를 오가는 헨리 주교 등등.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이 대부분인데 이 사람들만 잘 살펴도 바람직한 리더상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정도만 해도 리더로서는 상당히 성공할 듯한데 이것들의 경계가 복잡오묘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단 말이지. 


    라둘푸스 원장은 헨리 주교의 추천을 받아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애덤 신부의 자리를 맡을 새로운 신부를 데려온다. 새로 온 에일로스 신부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지만 지나친 원칙주의자였던 탓에 짧은 시간 안에 신도들과 갈등을 빚고 만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신부는 시체로 발견된다. 왜 죽었을까? 누가 죽였을까? 누가 죽기를 바랐을까?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았을 때의 인물됨이 드러나게 된다는데 할 말이 없어진다. 잘 살아야 죽고 난 뒤에도 부끄럽지 않을 일이다. 


    이번에도 캐드펠 수사는 멋진 활약을 보여준다. 사람 됨됨이도 잘 알아보고 미묘한 차이도 발견하고 증거도 잘 찾아내고. 아, 약도 잘 만들고 게다가 약도 잘 쓴다. 정말 제대로 된 캐릭터다. 많이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아는 사실만으로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를 어떻게 봐 주시려나, 이런 상상도 해 보고.


    빠지지 않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제는 무조건 믿게 되는 건 아닌지. 금방 보고 바로 사랑에 빠지는, 어여쁜 두 남녀가 나온다면 이들은 범인이 아니라는 점. 어떤 시련이 닥친다고 해도 이겨낼 것이라는 점. 캐드펠 수사가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라는 점까지. 다음 편에서 확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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