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 견문록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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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는 느낌, 이 느낌만 붙잡고도 책을 만들어낸다. 글과 그림과 만화까지 섞어서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의 귀여움을 놀랍도록 펼쳐 보이는 작가. 나는 왜 이런 귀여움을 못 느끼는가 살며시 한숨이 나오던 게 여러 번이다. 뭔지 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다른 사람은 충분히 느끼는 감각을 나는 못 느낀다 싶으니까. 그게 아무리 하잘것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어쨌든 대단하다. 내가 가장 대단하다고 여긴 점은 관련 책을 찾아본 작가의 정성이다. 일본에는 이런 책도 있나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몇몇을 옮겨 본다. 일본어린이놀이 대도감, 에도 시대 어린이놀이 대사전, 실뜨기학, 전승놀이 사전, 멜론빵의 진실, 상쾌한 입김의 과학, 쇼와레트로 박물관, 부전나비 관찰사전, 철도 도시락학 강좌, 젓가락, 고양이 사전, 고양이 교과서, 생활의 말 신 어원사전, 도설 에도요리사전, 사전 화과자의 세계, 일본명과사전, 색이름 사전 507 등등. 어쩌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책들이 이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 귀여움을 글로 옮기기 위해 이런 자료들을 다 찾아봤다니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

귀여운 것들은 사실 생존의 필수 요소는 아닐 것이다. 이왕이면 귀여운 게 보기도 좋고 마음도 놓일 테니 선택을 하는 때가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바로 이 귀엽다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할 것이다. 귀여움은 자칫 가볍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이게 싫을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귀여운 것에 평균 이상으로 끌리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귀여운 그림, 귀여운 색깔, 귀여운 느낌 등등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귀여움의 세계가 내가 생각해 오던 것보다 엄청 넓어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주변의 물품들을 주의깊게 보게 되는 후유증이 생긴다. 이게 귀여운 건가, 얼마나 귀엽다고 할 수 있는가, 귀여워서 내가 지금 좋은가... 후훗, 한동안은 이렇게 묘한 기분에 시달릴 듯하다. (y에서 옮김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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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선현경의 일일일락
황인숙 글, 선현경 그림 / 마음산책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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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산다. 그리고 무조건 호감으로 읽기 시작한다. 혹 마음에 안 든다 싶어도 무조건 이해해 주려는 마음으로 읽는다. 그러면 그러는 내내 행복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작가는 아마도 제한된 글의 분량 조건 때문에 할 말을 길게 풀어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 같다. 분명히 좀더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도 서둘러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글들이 꽤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작가는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써 놓은 것인데, 내가 그 완결성을 알아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글의 완성도에 대한 내 편견. 어?, 이렇게 글이 끝난 것인가 의문하면서 넘기다 보니, 또 그런대로 여운의 맛이 있다. 나는 이 작가의 글을 비판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싶었으니까.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해 본 작가의 일상-고양이, 시인들과의 교제, 음식, 쇼핑, 여자들의 수다, 나이든 여자 솔로의 우아함과 서글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이런저런 여행담, 그리고 친구 이야기.

하루에 하나씩만 즐거움을 글로 적을 수 있다면 그 삶은 너무나 행복한 것이리라 싶다. 곁들여 보여주는 선현경의 그림도 정답고,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은 소소한 기쁨이 예쁘다. 내 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느끼고 생각하는 게 다르고 차이가 날 뿐인 것 같다. 나도 행복하고 기쁜 하루하루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매일 기쁜 일 하나씩 구해서 글로 써 나갈 수만 있다면.. (y에서 옮김200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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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찐빵 - 겨울 아이세움 그림책
문채빈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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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보는 재미가 조금씩 늘어난다. 이미 본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자꾸 늘어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동화 속 천진난만함을 배워 보겠다거나 누려 보겠다는 기특한 의도가 아니라 그저 예쁘고 귀엽고 맛있어 보이는 그림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면에 머물고 있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이 정도의 바람은 충분히 이루어도 될 것 같으니.

생쥐 형제 일곱 마리가 주인공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으로 4권이 나와 있고 이 책은 겨울 배경이다. 계절별로 생쥐 형제들이 만들어 내는 요리가 다르며 이 책에 나오는 요리는 찐빵이다. 따끈따끈한 찐빵이라니. 생각만 해도 따스해지는 기분이다. 현실의 나는 찐빵을 거의 먹지 않고 있지만.

얼음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고 싶었지만 실패한 생쥐 형제들. 마을 친구들과 힘을 합쳐 찐빵을 만든다는 줄거리. 만들어 놓은 찐빵에 도레미파솔라시의 첫음으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이 상상력 무척 귀엽다. 아이들도 알아 줄까? 당연히 알아 주겠지?

평화롭고 활기찬 그림책 속 마을 풍경이다. 부럽다. (y에서 옮김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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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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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내 나이와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절대로 가 볼 수 없는 곳, 이전에도 앞으로도 내 힘으로는 겪을 수 없는 세상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 조금은, 아주 일부는 내 것과 닿아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더 빠져들 수 있으니까.

어쩌다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잡혔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첫 편을 읽었는데, 언젠가 다른 곳에서 읽었다는 느낌이 왔다. 그때도 괜찮은 글이구나 싶었던 것 같은데 작가 이름을 외우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제 외워야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목록에 당당히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을 테다. 또 앞으로는 그녀 이름만 보면 즐거이 찾아 읽을 테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일, 그것도 가난한 사람의 서울살이,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졸업했거나 갓 취직을 했거나 취직을 못해 찾고 있거나, 내 한 몸 누일 방 한 칸 구하는 일,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가 금방 사그라들고 마는 감정의 굴곡들. 그런 일들. 글 속에서 내 지난 날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쓸쓸했던 기억마저 달콤해지려고 했으니 이래서 글이 좋은 것인가 보다.

소설에서 방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젊어 울산에서 혼자 옥탑방에 살 때의 기억이 가장 새롭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으니. 그때 밤버스를 타고 가며 저 많은 불빛 속에 나만의 불빛이 없어 서글프고 낙담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우리집을 만들어준 남편이 고맙고 기특하다. (y에서 옮김200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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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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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설계에 문학상이 얼마나 있을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아는 이름도 모르는 이름도 보이고 꽤 되는구나 싶다. 이건 독자인 내 생각이고 작가들은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한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부지런히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확 시들해졌고 이는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대한 내 호감도가 떨어진 탓이기도 할 테다. 한동안 못 본 기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의외로 만족스럽다. 


수장자가 누구인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실린 글들을 통해 소설이 쓰인 시기를 짐작해 보는 재미를 찾는다. 2022년 9월에 발간한 수상작품집이니 대략 2021년에서 2022년 사이의 소설 속 배경이겠다. 벌써 3-4년이 흘렀구나,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이었구나, 내가 충청도에 살았던 시절이구나... 소설보다 소설을 읽는 나를 먼저 생각한다. 이 또한 소설을 읽는 중요한 재미 중의 하나.


김애란의 '홈 파티'가 인상적이다. 다들 조금씩 갖고 사는 허영, 물질이든 정신이든 다른 사람보다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은근하면서도 섬찟한 기분으로 들여다보았다. 지금의 내가 있었고 바라는 내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내게 없는 욕망도 있었고. 소설을 읽으면서 내 속의 바람직하지 않은 허물을 마주하거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이 나는 참 반갑다. 소설이 아니었으면 이런 기회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으랴. 김애란의 최신작에 다시 관심을 가져야겠다.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읽는 내내 마음이 쓰렸다. 어떤 사고는 직접적으로 당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처럼. 강이나 바다 위에 세워진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내 마음이 괜히 철렁 내려앉는 것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서울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 때문이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이 다리 아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탓일까? 이동을 위해 다리를 건너는 일 말고 관광지의 다리나 출렁다리 따위를 나는 전혀 걷지 않는다. 어떤 작은 재미도 없으니까. 나는 이런 하찮은 아픔을 소설로 쓰지 못하지만 소설가는 진실한 소설로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관심을 가져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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