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요즘 나름 술술 읽어지는 거 보니 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글이 읽혀지는 감으로 가을이 왔음을 알게 된건...아마도 텍사스를 오고 나서부터인것 같기도 하다.
2017년에 구입 후 한번 읽고,
이번에 강남순 교수님 이론 그룹을 하면서
5주 일정에 맞춰서 읽어가고 있는데,
저자의 직강을 들은 탓인지, 재독 탓인지,
아니면 5년의 삶동안 용서해야 할 사람과, 용서받아야할 짓을 많이 한 탓인지,
단락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머리와 마음속에 콕콕 박힌다.
데리다를 매우 좋아하시는 강남순 교수님,
데리다의 double-gesture개념이 용서라는 문제를 다룰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는 있지만, 완벽한 용서는 불가능하다.'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인간다운 삶의 영위와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서로간의 용서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용서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I was a kid until I was eight. Then I became a Negro." (38p)
코미디언 Richard Pryor 한 말이다.
한국을 떠나면서부터 아시안인이라는 인종의 카테고리는 나라는 한 인간을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때로는 유리하게 때로는 불리한 방식으로 내 삶에서 이용되어진다. 인종이라는 요소가 비교적 중요하지 않았던 곳에서 살아오다 불현듯..인종의 카테고리가 권력(또는 힘)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사회로 이동되어 왔던 나는. 한동안 아닌 그 힘을 최근까지는 모르거나, 또는 모른척하고 살아갔다. 어쩌면 앞으로도 부자연스럽게 때로는 자연스럽게 이전처럼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경험과 환경이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내뿜어 내는 삶의 모습들을 보면...나 역시 minor feelings의 주인공었다.
록산게이의 추천 책 리스트에 있어서 작년에 사둔 책.
그 사이에 드라마의 원작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북풀에 읽은 분들이 리뷰가 늘어나면서
나도 읽을 때가 됐구나 싶었다. 초반부터 술술 잘 읽힌다.
그런데 참....표지 별로다. 원서 그대로 사용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참. 아쉽다.
"왜 신앙이 좋아질 수록 삶이 바빠지는지, 왜 교회를 오래 다닐 수록 생각이 좁아지는지, 왜 성숙이 아니라 성공을 목표로 하는지, 말씀을 깨며 물었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지만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려면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 하며, 믿음은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지만 이것도 배워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 (작가의 말)
구원 이후의 삶을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항상 그 삶의 중심에서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알아하고 채워내야 하는 것에 대한 생각 속에 잠겨 있었고, 심져 그 생각조차 자신이 없어서 생각의 씨앗을 잘라버려 없애야 하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남들은 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고, 아니 사실은 정말 이해가 다 되는게 맞을까?의 생각이 더 정확했다. 쉽게 가고 싶은 적도 있다. 어느정도 이해되는 것 같으니 그러려니 하고...휩쓸려 무리속에 안전감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적도 많았다. 하지만...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신앙이라는거......나의 언어를 통해 내가 스스로 이해가 되어지고 그리고 삶으로 빚어낼 수 있는 믿음의 실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일 수도 있다는 반가운 마음에 한장한장 읽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