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 수업 -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니얼 클라인.토마스 캐스카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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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업과 취업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가득찼던 20대가 지나고 3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인정받는 시기가 된다. 그러다보면 지금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걱정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슬슬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회사 생활은 힘들고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 초년생보다는 심적 여유가 생긴다.

요즘에는 백세 시대라지만 겸손하게(?) 인생을 80세 정도에 마무리한다고 봤을 때 40대 쯤 되면 이제 더 이상 마냥 젊지만은 않고, 인생의 전반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든다. 그러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없는 고민이 불현듯 찾아오는데 이게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보니 딱히 정해진 답이 없다.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눠보지만 뭔가 속시원한 방향을 얻기는 힘들다. 그래서 인생에 관해 통달한(?) 지혜를 가진 종교인이나 심리학자, 철학자들의 책을 통해 길을 찾아보던 찰나에 만나게 된 것이 이 책이다.

책의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등 인생에 관한 중요한 질문들을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토대로 다루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 중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니체나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뿐만 아니라 다소 생소한 철학자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자와 이론들이 많다보니 책의 맨 마지막에 철학자들의 이름과 주요 이론들을 정리해 독자들이 찾아보기 쉽도록 배려해놓았다. (무려 70명이 넘는 철학자와 대표 이론이 정리되어 있다.)

목차는 총 18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인생과 돈, 그 사이의 적정 거리' 등등 목차의 제목에서부터 벌써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건 느낌일 뿐 철학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깨달음을 입에 떠먹여 넣어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을 다 읽고도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질문에 휩싸일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을 이론 위주로 어렵게만 설명하려하지 않고 최대한 캐주얼하게 핵심만 요약해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철학책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매 주제마다 철학적 화두를 익살스럽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만화를 함께 실어둠으로써 약간의 숨구멍(?)을 틔워두었다. 물론 미국식 조크가 반영된 만화라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기진 않다는 것은 감안하도록 하자.

책에서 가장 처음으로 제시하는 주제는 '반드시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이다.

아니,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인데 꼭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라니 처음부터 아예 책을 읽는 의미를 없애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인지 저자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답을 한다.

사르트르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과 달라서 '미리 정해진 본질'이 없다. 예를 들어 재떨이는 담뱃재와 꽁초를 담는다는 '존재의 이유'가 있지만, 인간의 삶에는 객관적인 의미가 없다.

p12

 

인간이 어떤 물건이나 기술을 발명할 때는 항상 어떤 목적을 가진다. 물론 처음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물건이 쓰일 때도 있긴 하지만 항상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가 않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물론 부모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아이를 출산할 수는 있겠지만 사물은 자신의 쓰임을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달리 탄생 이후,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이런 인간의 선택에 대해 "실존이 본질에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인생의 의미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또한 선택은 인간의 불가피한 책무라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바꿔보자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 혹은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이다." 정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인간은 태어난 이상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 선택의 자유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 역시 선택을 한 본인이 지게 되어 있고, 그 선택에는 어떠한 지침이나 정답지가 없다. 그러고보면 결정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탄생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 아닐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인간의 선택에 제한이나 정답이 없다보니 인간의 실존이 부조리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일부 실존주의자들은 인생 자체가 부조리 하니까 그냥 살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이걸보니 TV에서 한 스님이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은 안나지만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왜 살긴 왜 살아,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거지." 라는 답변을 하셨던 것 같다. 스님이 실존주의자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님의 답변과 20세기 실존주의자들의 이론이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간의 탄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우연과 확률로 인해 그냥 목적없이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태어난 이후의 인생은 개인의 선택과 목적에 의해 정해진다. 그래서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 선택들로 인한 결과이듯이 미래의 인생 또한 내 선택에 따라 '존재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에서는 인생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미 목차에서부터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대놓고 정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정답까지 가는 힌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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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부자 프로젝트 - 하루 만 원으로 시작하는
채상욱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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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코로나로 주가가 급락한 후 일어난 동학 개미운동, 서학 개미운동에다가 카카오게임즈, 빅히트 등의 공모주 청약 덕분에 뉴스에서 주식에 대한 소식을 듣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너나 할 것 없이, 심지어 빚을 내 투자를 하다보니 빅히트 주식 환불 사태까지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웬만한 주식은 사기만 하면 무조건 오른다지만 그래도 오르는 주식과 떨어지는 주식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고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주식책들을 여러 권 읽어봤는데 각각의 세부적인 내용은 차이점이 있지만 단타로 샀다 팔았다 하지말고 진득하게 가치투자를 해야하고, 회사의 재무정보를 살펴야한다는 등의 공통된 내용들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일반적인 주식 투자자들의 상식을 깨는 주장들이 있어서 신선하고,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장에서는 저자가 2008년 금융위기 때 10년 동안 모은 자산의 90% 이상을 잃고 나서 깨달은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초보 투자자들에게 소액으로 1주씩 투자하는 방식으로 주식을 시작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2장  "당신이 알고 있는 투자 원칙은 틀렸다" 에서는 주식 투자에 대해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고 있었던 원칙들에 반대되는 저자의 의견이 서술되는데 아마 이번 장이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아닐까 싶다. 만일 누군가 시간이 없어서 이 책의 한 챕터만 읽어야 되는데 어디를 보는게 좋겠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2장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인상깊은 내용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이야기 해보자면 첫 번째는 "회계는 필요없다." 이다.

보통 정석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기업의 재무제표를 볼 줄 알아야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하는데 저자는 투자를 위해 회계를 공부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어설픈 재무분석으로는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엔론이나 루이싱 커피와 같이 기업이 마음먹고 분식회계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알아내기란 회계사들도 힘들며, 무형 자산을 기반으로하는 서비스 기업 같은 경우는 제조업 기반의 현재 재무제표 방식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 유명한 테슬라나,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쿠팡 같은 종목 뿐만 아니라 바이오주들 도 재무제표 상으로는 수익이 적거나 마이너스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주가는 실적의 몇 십배에 달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재무제표로는 표현되지 않는 미래 가치가 투자자들에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인데, 만일 재무제표에만 의존해 기업을 평가하는 투자자라면 이런 기업들의 가치를 알아보기가 어렵다.

두 번째는 "PER가 아닌 멀티플에 집중하라." 이다. 일반적으로 주식 투자를 하려면 그 기업의 PER가 몇 인지 정도는 무조건 보고 들어가야 한다고 할 정도로 주식 투자자들에게 PER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저자는 PER가 아닌 멀티플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PER과 멀티플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PER은 현재 주가가 이익 대비 몇 배에 거래되는지를 계산한 지표인데 저자는 이 수치가 바로 시장에서 그 기업이 평가받는 수준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히 주가가 이익 대비 몇 배냐하는 PER이 아니라 기업의 가치, 밸류에이션을 의미하는 "멀티플"이라고 불러야한다는 것이다. 같은 수치라도 PER이라고 보는 것과 멀티플이라고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데 PER이라고만 보면 수치가 낮을 때 주가가 이익 대비 저평가라고 여기고 해당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치를 멀티플로 봤을 때는 오히려 수치가 낮은 것이 시장에서 해당 기업에 대한 밸류를 낮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여겨 이익이 많은 기업이라도 선뜻 투자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물타기가 아닌 불타기만을 하라." 이다. 물타기란 종목이 하락한 상태에 추가로 투자하여 매수 평균단가를 낮추는 것으로 10,000원에 매수한 주식이 8,000원이 됐을 때 8,000원에 1주를 더 매수하면 총 2주의 평균 매수 단가가 9,000원이 되어 손실의 일부를 만회하는 것이다. 매수한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저평가된 것으로 판단해 계속 매수하는 것인데, 주식에 오래 투자한 투자자들도 많이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반대인 불타기를 하는 것이 주식 투자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이야기한다. 물타기의 반대인 불타기는 주가가 10,000원에서 11,000원으로 올랐을 때 추가 매수하는 것으로 주가가 상승할 때는 오히려 불타기가 수익성 개선에 더 좋다고 한다. 물론 불타기든 물타기든 현재 주가가 저평가된 것인지, 고평가된 것인지, 그리고 미래에 성장성 있는 기업인지, 기업의 목표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판단하고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을 때야 빛을 발하는 것이다.

3장에서는 2020년 현재보다 앞으로 100년 뒤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산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로 급격한 관심을 끌고 있는 제약,바이오와 엔터테인먼트산업 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 산업 등에 대한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고 각 산업군의 키팩터, 즉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지금 현재의 주가보다는 미래 먹거리 산업의 길목을 선점하려는 투자자라면 3장을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

4장에서는 잃지 않는 투자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주로 성장주 투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성장주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래에 이미 충분히 성장한 후 주가가 비싸진 뒤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별 볼일 없을 때 저렴한 가격에 사서 나중에 큰 수익을 보길 원해서이다. 그렇다면 고도로 성장할 기업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가 관건인데 책에서는 첫 단계로 멀티플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기업을 찾아내고 두 번째로는 상승하기 시작한 멀티플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 예측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에서는 JYP 엔터테인먼트와 테슬라, 엔씨소프트, 삼성전자 등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성장주 투자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마지막 장에 집중해야한다.

최근 서점가에는 주식 투자와 관련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이미 오랜 세월 주식시장에 투자해 왔던 독자들을 위해 각종 이론과 차트들이 빼곡하게 실린 전문적인 책들도 있고, 완전 초보들을 위해 대중적으로 쉽게 쓰인 책들도 있다.

이 책은 초보자들을 위해 어려운 용어는 최대한 배제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지만 내용 면에서는 초보자들만을 타겟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미 습관적으로 틀에 박힌 원칙대로 투자하고 있는 기존 투자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막 주식에 입문하는 초보자 뿐만 아니라 기존 투자자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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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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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몇 년 전인가부터 긴 호흡의 책은 집중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용이 재미 없어서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내용이 충분히 재밌는데도 이상하게 2,30분이 지나면 집중이 안되고 어느샌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궁금하지도 않는 인터넷 기사들을 서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꼭 독서가 아니라 다른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인터넷에서 서론이 긴 글들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스크롤을 내려 결론만 확인하고 꺼버린다던가 티비를 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핸드폰으로 또 손이 옮겨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돼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집중력 저하 외에도 핸드폰 번호 같은 단순한 번호나, 노래 가사 같은 것들도 잘 생각나지 않는 기억력 저하도 자주 겪곤 하는데 이런 증상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지 친구나 회사 동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결론은 세월탓, 나이탓(?)이려니 했다.

( 예전엔 노래방 가사 없어도 노래 잘 부르고, 네비 없어도 길을 잘 찾아다녔었는데,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으로 항상 끝이 난다.ㅎㅎ)

그런데 이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그 원인이 바로 ‘인터넷’에 있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편리함과 많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인간을 더 똑똑하게 만들거라고 기대했던 인터넷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인간을 더 똑똑하게 만들지도,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기억력을 더 나쁘게하며, 충동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인간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등등)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나는 저자의 이런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책에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다양한 논문결과와 사례, 그리고 의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들을 소개함으로써 주장에 신뢰를 더 하고 있다.

책은 크게 1,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뇌의 특징과 문자와 책의 기원, 깊이 읽는다는게 어떤 것인지 등 인터넷 탄생 이전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탄생, 그리고 인터넷이 글쓰기와 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또 인터넷이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부보다 오히려 1부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뇌의 가소성’과 ‘책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장이 기억에 남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처럼 여겨졌으나 마이클 머제니치의 실험에 의해 영장류의 뇌는 광범위한 가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소성’이란 ‘뇌가 변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뇌세포가 발달하고, 완전한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뇌세포가 파괴되며, 늙어가기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며 공부도 어릴 때 해야 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연구와 실험에 의해 뇌가 완전히 형성된 성인의 뇌도 나이가 들수록 가소성이 감소하긴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뇌는 그 때 그 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p59)

인간의 뇌세포는 경험과 환경, 그리고 필요에 의해 유연하게 변화하는데 책에서는 사람이 실명을 하거나, 사고로 팔 다리를 잃은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실명할 경우 시각적 자극을 처리하던 뇌의 부분, 즉 시각 피질이 그냥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즉각 청각 처리를 위한 회로로 채워진다.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검사 역시 뇌가 얼마나 집중적으로 스스로를 재정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고 당사자들의 뇌 속에서 잃어버린 사지의 감각을 접수하던 부분들은 신속하게 다른 신체 부분이 느끼는 감각을 접수하는 회로로 교체된다. (p62~63)

이렇게 뇌의 특정회로는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데, 신체의 기능 일부가 손상되는 극단적인 경우 외에도 어떤 육체적, 혹은 정신적 행동의 반복을 통해서도 변화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낡은 뇌라 하더라도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는 일단 회로가 만들어진 뒤에는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활동들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되고, 그에 반해 사용되지 않는 회로들은 가지치기 당해 그 기능이 쇠퇴한다.

진짜로 그랬던 건지, 기분 탓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책을 연속해서 몇 일에 걸쳐 읽었을 때 첫 날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다면,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짧은 시간 내에 책에 몰입되고 집중력이 유지됐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너무 오바일까 ㅎ.

2부에서는 인터넷의 사용이 우리의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인터넷의 확산에 기여한 대표적인 장점인 쌍방향성, 하이퍼링크와 알람 기능, 검색 가능성, 멀티미디어 등은 필연적으로 산만함과 정보의 분절화를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책에서는 모르는 정보가 나올 경우 바로 그 정보에 대해 찾아보기 보다는 문맥이나 흐름으로 그 의미를 유추해보곤 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하이퍼링크를 타고 바로 그 정보에 대해 넘어갈 수 있다. 그럼 그 정보에 대해 어느 정도 읽어보다가 다시 원래 읽던 곳으로 넘어오게 되는데 이렇게 여러가지 링크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집중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오히려 책만 쭉 읽던 사람보다 인터넷으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은 사람이 사실은 그 정보에 대한 이해력과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여러가지 실험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어떤 활동을 할 때 시도때도 없이 알람이 울리면서 방해를 받고, SNS 나 메신저 등을 통해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시도하면서 집중력에 끊임없는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렇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산만함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면 그만두면 될텐데, 계속해서 손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인터넷의 중독성 때문이다. 인터넷은 시각과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멀티미디어로 스크롤과 드래그, 클릭 등의 신체적 반복을 권장하고 클릭할 때마다 새롭고, 빠르고, 흥미로운 정보를 전달하면서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인터넷이 얼마나 빨리 우리의 뇌에 영향을 미치고,중독성을 일으키는지 2008년 진행된 인터넷 사용으로 인한 뇌의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는 초보자와 숙달된 검색자로 나눠 구글을 검색하는 동안 뇌를 스캔하는 실험이었는데, 인터넷 초보자가 하루에 한 시간 씩 5일 동안 인터넷 검색을 한 후 다시 뇌를 스캔했더니 실험 전의 뇌와 다르게 인터넷 숙달자들의 뇌 활동과 동일해진 것이다.

 

단지 6일간의 실험으로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던 이들의 뇌 앞쪽 부분에 완전히 똑같은 신경 회로가 활동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뇌가 하루 단 한 시간 컴퓨터에 노출되는 것에 그렇게 민감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p202)

이렇게 인터넷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뇌에 산만함을 가져온다. 물론 인터넷이 우리의 뇌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웹 서핑은 아주 다양한 뇌 활동을 수반하기 때문의 노인의 경우 사고의 예리함을 유지시켜준다. 정보를 검색하고 훑어보는 것은 십자말풀이를 하는 것처럼 뇌를 훈련시키는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중력에 있어서는 단연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없이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도 집필기간 동안은 스마트폰없이 생활했지만 그 이후에는 역시나 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종속돼 바보가 돼 가는 것을 느꼈다면 최소한 그 흐름을 피하기 위한 노력은 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은 2010년에 처음 출간됐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출간 당시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영향이 훨씬 커진 상태이다. 그래서 2010년보다 개정보증판이 출간된 2020년 현재에 의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집중력과 기억력이 저하된 것 같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나, 집중력을 높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바보가 되어 가는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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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미국 주식에 투자하라 - 해외 주식투자로 부를 축적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조용준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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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주식시장 열풍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해외 주식,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 주식 투자는 가히 붐이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주식 투자는 대부분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였는데 유투브, 블로그, 서적 등 다양한 경로로 해외 주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도 쉬워지고, 미국 주식시장의 꾸준한 상승을 오랜시간 지켜만 봐왔던 투자자들이 코로나로 인한 바겐세일이 시작되자 대거 뛰어들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는 주식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닌지라 한국보다는 미국, 그리고 미국 중에서도 1등주들이 하락기에도 덜 떨어지고, 상승기에도 더 오를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래서 주식 관련 전문가들도 미국의 1등 우량주를 매수할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해외 주식투자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미국 주식 중에서도 전통주보다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업들이 앞으로 유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IT기업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던 워런버핏의 변심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기존에 워런버핏은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회사는 투자하기에 너무 위험하다며 IT주는 실체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는 의견이었으나 2017년 이후에는 구글, 아마존, 애플과 같은 기업에 투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오판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애플의 주식을 매수하기도 했다.

이렇게 워런버핏조차도 4차산업 혁명의 한 가운데 있는 기업들에게 투자하는 것을 보면 4차 산업 혁명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 미국 주식에 투자하라』 에서는 4차 산업과 관련된 기업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기업들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포스트 코로나로 더 가속화되는 4차 산업혁명의 전반적인 이야기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4차 산업 중에서도 가장 근접한 미래에 상용화되어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소개하고, 이런 기술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반도체에 대한 수요와 기술의 현주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4차 산업을 이끄는 미국의 1등 주식인 아마존, 구글(알파벳), 페이스북, 넷플릭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세일즈포스닷컴의 기업정보와 실적, 미래 전망 등에 대해 소개한다.

주식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알만한 글로벌 기업들이지만 현재의 주가가 고평가는 아닌지, 적절한 주가인지 검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과거 매출 실적과 앞으로의 예상실적, 그리고 각 기업의 매출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등 다양한 정보들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기업이 커나갈 수록 오너리스크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의 창업자들이 어떤 마인드로 기업을 경영하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소개도 포함하고 있다.

사실 과거 실적이야 조금만 손품을 팔면 알 수 있는 정보들이지만 앞으로의 예상 매출 전망에 대한 정보가 나와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는데 중국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잠재력이 큰 나라로 앞으로 미국을 대체할만한 큰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투자하지 않더라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은 현재는 경기가 침체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 경제 대국으로 영광을 누렸던 나라기 때문에 대표 기업을 알아두는 것은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 기업으로는 알리바바, 텐센트홀딩스, 바이두를, 일본 기업으로는 소프트뱅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부록으로는 저자가 강력추천하는 차세대 글로벌 4차 산업 1등주 30선의 리스트가 나와있는데 미국 기업인 우버, 페이팔, 바이오젠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 카카오, 네이버, LG 디스플레이 등이 선정되었다.

앞으로는 더 이상 국내에만 투자해서는 원하는 수익률을 얻기 힘들 수 있다. 코로나로 실물 경기가 더 위축되면 아무리 유동성이 받쳐주더라도 주식시장의 열기도 결국엔 사그라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적절히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한데 해외 기업에 대해 어떤 정보를 파악하고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막막한 투자자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이미 충분히 너무나 유명한 기업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에 해외 주식에 대해 투자하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일 가능성이 높고, 4차 산업의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들도 널리 알려져있는 것들이라 새롭지는 않았다. 초보 투자자들이라면 일일이 기업 리포트를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한 눈에 보기 쉽겠지만 숨겨진 보물같은 기업이 있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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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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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집보다는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만큼 학교는 익숙한 장소인데 이상하게도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밤 시간은 더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웬만한 학교에는 대부분 으시시한 소문이 한 두가지씩은 떠돌아다닌다. 밤 12시만 되면 동상이 움직인다던가, 맨날 2등만 하던 학생이 질투심에 1등을 창가에서 밀어버려 죽은 1등이 밤만되면 교실을 돌아다닌다던가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이렇게 학교는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되기 때문인지 공포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너무나 유명한 여고괴담 시리즈나 경성학교, 최근에 개봉한 대만영화 반교까지 학교를 무대로 한 다양한 공포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착한 소녀의 거짓말』도 역시 학교를 배경으로 한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정확히는 학교보다는 기숙사가 주요 무대이고, 귀신이나 유령보다는 살인범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100년이 넘은 명문 구드 학교로 애쉬라는 한 소녀가 전학을 오면서 시작된다. 180 센티미터의 키에 늘씬한 몸매, 아름다운 외모. 뛰어난 피아노 실력에 영특한 머리까지 뭐하나 빠질 것 없는 소녀지만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한참 뒤에 나오지만 작가는 첫 등장부터 주인공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대놓고 드러낸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은 독자들의 뒷통수를 때리기 위해(?) 극 초반 인물의 비밀을 숨기는데 비해 착한 소녀의 거짓말에서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인공이 비밀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철저히 숨기려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과연 이 인물이 무엇을, 왜 숨기고 있는지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나 역시도 이런 작가의 꾐에 넘어가서 언제 그 비밀이 나오나 계속 다음, 그 다음 장을 넘겼으나 비밀은 중반 이후, 책장이 꽤 넘어간 뒤에나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어느 정도 단서들을 흘려놓기는 하지만 명백한 답은 한참 뒤에나 알 수 있다.

책에 둘러진 띠지에도 나와있고 "구드 학교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에서도 보듯이 살인사건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살인사건 자체에 대한 비중이 높지는 않았다. 물론 주인공이 전학오자마자 담당 피아노 교수가 알러지로 쇼크사하고, 애쉬의 룸메이트였던 한 학생이 학교 종탑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이유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살해방식이나 사건 그 자체에 대한 묘사보다는 사건 이후 학생들간의 미묘한 신경전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은밀한 모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더 주를 이루고 있다.

아무래도 학교 자체가 정재계 인사들의 자제만 모인 앨리트 집단에다가 모두 기숙사 생활을해서 그런지 서로 간의 유대감을 중요시 여기고 소위 잘나간다는 무리에 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에 대한 묘사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애쉬가 전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구드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비바운드라는 비밀 클럽에 간택(?)되자 이를 시기, 질투한 다른 학생들이 애쉬의 비밀을 캐내 폭로하기도 하고, 결속을 다진다는 이유로 폭력적인 행태들이 자행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이런 여학생들의 얽히고 설킨 심리묘사를 기반으로 살인사건이라는 이벤트를 끼워넣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주인공이 애쉬가 전학온 뒤 애쉬와 관련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은 이들을 죽인 범인이 애쉬는 아닐까 의심하기도 하고 애쉬를 질투한 친구를 의심하기도 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을 펼쳐나간다.

아, 물론 가장 먼저 죽은 피아노 교수는 애쉬가 알러지가 있는 교수에게 실수로 알러지 유발 물질이 든 초콜릿을 주고 그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확실히 알려주지만 교수가 죽은 이후 애쉬의 행동들이 과연 애쉬가 진짜 실수로 그랬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어쨌거나 학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만큼 경찰들이 등장해 수사를 펼치지만 좀처럼 단서를 찾기 힘들던 중 우연한 계기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후 범인을 향한 경찰과 주변인물들의 수사망이 좁혀져 오는데, 아무래도 앞서 말한 것처럼 살인사건보다는 기숙학교 내 소녀들의 대립관계와 시기, 질투 등에 대한 심리 묘사가 주를 이뤄서 그런지 주인공이 느끼는 생생한 심리묘사와는 달리 경찰들의 수사 과정은 다소 밋밋하고 매력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매번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처럼 그려지던 10년 전 살인사건과 그에 얽인 인물들, 학교에 전해져 내려오던 소문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던 내내 풍기던 수상한 분위기와는 달리 별다른 설명없이 싱겁게 끝났다. 그리고 주인공만큼 비중이 높고 매력적이었던 웨스트 헤이븐 학장의 비하인드 또한 특별한 내막없이 끝나 초반에 벌려놓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550 페이지 정도의 짧지 않은 분량에 사건 위주의 흐름보다는 심리 묘사가 주를 이뤄 다소 루즈할 수 있지만 뒷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도록 독자들을 끌고 가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다만 후반부에 다가갈수록 주인공의 서술에만 의존해 급하게 결말을 맺으려는 느낌이었고, 중반 이후부터는 다소 예측 가능한 반전이었다는게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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