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 단순한 행복 - 당신을 미소 짓게 할 일상의 순간들 곰돌이 푸 시리즈
캐서린 햅카 지음, 마이크 월 그림, 우혜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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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이런! 돌멩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행운의 돌멩이를 어느 세월에 찾지?"
"나도 모르겠어, 피글렛. 그래도 끝까지 잘 찾아 보자."
때로는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그럴 때일수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돼요.            p.34~35

 

200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기곰 곰돌이 푸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곰돌이 푸 시리즈' 신작이다. 곰돌이 푸를 시작으로 앨리스, 미키마우스 등 추억의 디즈니 캐릭터들이 엄청난 사랑을 받았었는데, 누구나 알고 모두 좋아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들이 전해주는 소소한 행복이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방송인이자 통번역가로 활동 중인 원더걸스 출신 우혜림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곰돌이 푸와 친구들의 마음을 예쁜 언어로 사랑스럽게 그려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곰돌이 푸와 동물 친구들이 행운의 돌멩이를 찾으러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는 로빈에게 남는 꿈을 나눠 달라고 부탁하고, 그러다 로빈의 소중한 돌멩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로빈을 돕기 위해서 더 많은 친구들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푸는 작은 친구 피글렛과 함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 넘치는 티거도 만나고, 래빗의 일도 함께 도와주고, 쏟아지는 비를 피하다가 아울의 집에서 잠시 쉬기도 한다.

 

"지붕 위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게 또 있을까, 푸?"

 

타닥타닥 떨어지는 방울방울 빗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함께 듣는 친구들까지.. 소중하고, 달콤한 순간들이다. 비록 아직 원하던 것을 찾지는 못했고, 여정은 한참이나 남았지만 말이다.

 

 

"저기... 푸!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나도 들었어.
자, 내 손을 잡으면 덜 무서울 거야, 피글렛."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인가요.
두려움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잖아요.            p.108

 

이제 비가 그치고, 어느새 다섯 명으로 늘어난 푸와 친구들은 다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아기 캥거루 루와 이요르도 합류하고, 북적북적 친구들은 행운의 돌멩이를 향해 나아간다. 결국 푸와 친구들이 돌멩이를 찾게 될지는 조금더 지켜봐야겠지만, 함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이들에게 많은 즐거움과 배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험을 함께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친구를 돕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것보다 더 보람찬 일이 있을까?"

 

푸와 친구들은 하루 종일 100에이커 숲 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그것이 괜한 고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두들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다.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인지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면 디즈니 시리즈들이 좋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들이 고난과 역경을 거치는 과정은 모두 달랐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웠던 그들을 기다리는 건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 모든 일이 마냥 꿈꾸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어질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해피엔딩을 꿈꾸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게다가 너무도 친근한 애니메이션 속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제 해당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듯한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 시리즈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책 구입 시 출간 기념으로 '푸 엽서 5종 세트'도 받을 수 있고, 예스 24에서는 귀여운 푸 간식 트레이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놓치고 사는 이들에게 선물용으로 딱 좋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반짝반짝 빛나는 지금 이 작은 순간들을 느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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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몫의 밤 1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오렌지디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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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가 어둠에 가 있다. 이해는 됐다. 널 따라갈 거라고 몇 번을 약속했던가. 널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며칠 전, 탈리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널 위해 무슨 일이든 해줄 수는 없다고. 영원히 함께야, 로사리오는 맹세했었다. 그녀는 후안이 어둠에 속한 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죽고 나면 그곳에 가게 될 거란 사실도. 그렇게 그녀는 예상보다 더 일찍 그와 운명을 나누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바보 같은 내 사랑, 그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너와 내가 아니게 될 거야. 그곳엔 그림자와 굶주림, 뼛조각뿐이야. 죽은 세상이거든.            - 1권, p.143

 

후안은 여섯 살짜리 아들 가스파르를 데리고 비밀리에 여행길을 떠난다. 하지만 날이 잘 벼려진 칼 한 자루와 재로 가득 찬 주머니, 산소 튜브 등 평범한 여행길에 필요한 물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챙겨 넣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후안은 손가락이 저릿했고, 가슴의 부정맥은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었으며,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후안의 아내이자 가스파르의 엄마인 로사리오는 삼 개월 전에 지나가던 버스에 치여서 죽었다. 남편과 아들은 여전히 그 죽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후안은 평범한 여느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는 어둠의 신을 소환하는 능력을 지닌 메디움으로 선천성 심장병을 치료해준다는 명분 아래 기사단에 끌려가 제례와 의식에 이용당해 왔다. 심장병 수술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몸상태가 좋지 않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여행길에서 후안은 아들이 자신의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초에 아들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고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자 실낱같은 희망조차 모두 사라져 버린다. 유전되는 형벌, 그는 자신의 목에 쇠사슬이 매인 듯한 실망감에 목이 메어온다. 어떻게든 가스파르만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해야 했다. 자신처럼 유령을 보거나 소환하고, 다른 세계의 문을 열 수도 있는 능력이 아들의 삶을 어떻게 만들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스파르가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메디움으로서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는 짧고 가혹한 삶을 살다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과연 그는 기사단으로부터 아들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매일 밤마다 아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랑에 빠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잔잔한 파도 같은 온기를 느낄 뿐이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감기에 걸린 아이를 돌보던 중 갑자기 아이가 숨을 쉬지 않은 적이 있었다. 복도의 어스름한 불빛 때문에 아이의 움직임이 멈춘 듯해 보였다. 아기 침대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자식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자식의 죽음 이후에는 죽음밖엔 없다는 사실을. 출구 없는 어둠만이 남게 된다는 사실을.              - 2권, p.191~192

 

라틴아메리카 고딕 리얼리즘의 대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작품은 국내에 소개된 두 편의 소설집을 모두 읽었다.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역사와 부조리한 오늘날의 사회 현실을 호러로 풍자한 작품들이 수록되었던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과 부조리한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공포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던 소설집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두 편 모두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둡고, 음울하고, 오싹하지만 이상하게 매혹적인 고딕 호러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라 이번 신작은 정말 기대하며 읽었다. 장편 소설인데다, 두 권 분량이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수백 년에 걸쳐 어둠의 신을 숭배해온 기사단과 맞서게 된 한 부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기사단의 일원과 가족이 된 남자가 어둠의 신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영매 '메디움'이고, 아들이 자신처럼 그들에게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악한 기사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이야기는 기사단의 네 가문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데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속 주술과 영미권의 오컬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상당히 복잡하고, 어둡고, 밀도가 높다. 휘몰아치는 폭풍우처럼 책을 읽는 이들의 머리를 쥐고 흔드는 작품이라 뭔가에 홀린 듯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고 나서도 이야기의 잔상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곧 애플 TV에서 드라마화될 예정이니, 이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작품이 어떻게 영상으로 펼쳐질 지도 기대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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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힘 - 인생의 무기가 되는 12가지 최소한의 수학도구
올리버 존슨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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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세계란 난제를 풀고 숫자로 재주를 부리는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수학자 겸 코미디언인 매트 파커가 잘하는 일이다). 실제로 수학은 재미있을 수 있고 이런 식의 게임은 사람들이 수학에 관심을 갖게 할 멋진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수학이 오늘날 세상을 근본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실용적인 도구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싶다. 수식과 그리스어 문자를 쏟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수식이 별로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수학은 생각하는 방법이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         p.16

 

축구선수의 팀 이적료에 관한 최신 소식, 막대한 정부 지출 내역, 국가부채 규모,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의 거리 등등 우리는 수천, 수백만, 수십억 혹은 그 이상의 엄청나게 큰 수가 나오는 뉴스들을 거의 매일같이 접하며 살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440억 달러(약 57조 원)에 인수했고, 2022년 1월 애플은 기업 가치가 3조 달러(약 3,900조원)를 넘는 첫 번째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뉴스는 보지만 이런 숫자들은 어물쩍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러한 숫자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밀려드는 숫자들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 준다. 

 

이 책의 저자인 올리버 존슨 교수는 4만 3,000명 팔로어에 이르는 트위터 계정에서 팬데믹 관련 통계를 쉽게 풀이해주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 책에서 교과서적인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제대로 써먹는 12가지 도구를 소개한다. 복잡한 수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대신, 간단한 그림과 표만으로 수학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수학이 어려운 문제를 풀 때나 필요한 전문지식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을 바꿔줄 수 있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무기가 되어준다니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마지막으로 전할 메시지는 수학이야말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이용할 만한 올바른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함수가 어떻게 증가하는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보이론이 필터 버블과 상관관계에 있는 정보에 관해 무엇을 알려주는지. 어떤 질문이든 수학적 기법들이야말로 감정과 개인적 편향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통찰을 준다. 구조, 무작위성, 정보의 핵심 도구들은 여러분의 사고과정에 위력적인 도구를 제공한다... 이런 질문을 하는 자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만 알아도 누구든 수학적 원리를 이용해 이 세계에 관한 정보들을 대할 때 더욱 똑똑하게 생각할 수 있다.           p.323~324

 

우리가 뉴스에서 그래프를 가장 많이 보았던 시기가 바로 팬데믹 동안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해 각국 정부와 보건 기관이 데이터를 수치로 표현한 그래프를 쏟아냈고, 전 세계 사람들이 매일같이 그것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이렇듯 그래프는 아주 잘 쓰면 매우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이기도 하다. 반면 아주 그럴듯해 보이며 맥락 없이 온라인에서 쉽게 공유되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프를 제대로 읽는 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프리미어리그의 승부예측, 내가 가진 주식이 언제 오르는지, 환율, 보험료 변동 등 각종 금융 지표를 예측하거나 읽을 수 있으려면 수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AI의 발달 또한 모두 확률을 바탕으로 한 수학 덕분이며 다양한 경쟁 상황 속에서 최상의 전략을 알려주는 이론도 역시 수학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숫자의 정글에서 올바른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점점 더 많은 영역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내가 이전에 시청한 작품을 토대로 취향이 비슷한 이용자들의 데이터와 비교분석해 추천 작품 목록을 보여주고, 아이폰의 시리에게 말을 걸면 척척 알아듣고 답변을 해주며, 구글번역은 외국어 텍스트를 수준급으로 번역해낸다. 이러한 인공지능 또는 기계학습은 모두 수학과 통계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고, 발전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자라고 하면 그리스어 문자로 빽빽한 이해할 수 없는 방정식을 들을 칠판에 적고 있는 사람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수학적 사고는 방대한 데이터와 복잡한 상황들을 파악하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그러니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숫자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수학의 쓸모를 실용적이고도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이 책을 통해서 12가지 수학도구를 배워보자. 스스로 수포자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학창 시절 이후 수학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수학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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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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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내 삶이 온통 고통의 가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그 가시가 실패와 절망의 가시로 다시 돋아난다고 해서 크게 원망하지 않는다. 나도 선인장처럼 가시에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좀 느긋해지고 편안해진다. 가시가 되는 과정이 없다면 선인장이 결코 꽃을 피우지 못하듯이 내 인생이라는 사막에 자라는 선인장도 반드시 가시가 있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만일 선인장이 늘 비가 알맞게 오는 사막을 원한다면, 늘 맑고 따스한 햇살이 어른거리는 봄과 같은 사막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            p.142~143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이번 책은 68편의 시와 산문이 어우러진 '시가 있는 산문집'으로 시의 배경이 되거나 계기가 된 이야기들을 그 시와 함께 수록했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은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 이어 두 번째인데 시를 읽으면서, 시를 창작할 당시의 사연을 풀어낸 산문들도 함께 읽을 수 있어 시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모습부터 군 복무 시절, 특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운 부모님의 모습 등 시인이 소중히 간직해온 20여 컷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그야말로 인생이 시가 되어 맺히는 모든 순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시인은 산문이 시가 될 때가 있고 시가 산문이 될 때가 있다며 시와 산문은 서로 다르면서도 한 몸을 이룬다고 말한다. 이 책 역시 그렇게 시와 산문이 하나로 읽힌다. 워낙 대중적이고 쉽게 읽히는 시이기도 하지만, 함께 엮인 산문들이 단순히 '해설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깊이 있게 시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인 정호승’ 너머에 있는 ‘인간 정호승’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한 책이기도 하다. 심금을 울리는 주옥 같은 시들과 산문들이 시인의 삶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를 모두 담고 있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인생 자체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시가 되어 맺힌다. 이 책에 수록된 순서대로 시를 먼저 읽고 산문을 읽어도 좋고, 산문을 먼저 읽고 시를 읽어도 된다.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펼쳐서 읽어도 좋다.





실패의 과정 없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성공에 곧장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인행의 유혹인가... 그러나 그런 직선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원한다 하더라도 인생은 원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다들 그것을 알면서도 직선의 길을 원하는 것은 헛된 욕심과 허영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한낱 허상일 뿐이다. 인생의 길은 곡선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어떠한 길이든 길은 곡선을 통하여 완성된다. 비록 그 길이 고통과 절망과 분노와 상처의 길이라 할지라도 바로 그것이 곡선의 바탕을 이룬다.            p.316


일생에 단 한 번, 단 한 벌만 입는 망자의 옷인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망자의 옷이기에 무엇을 넣고 갈 주머니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니 말이다. 그런데 살아서는 왜 그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존을 위해, 혹은 필요에 의해 우리는 뭔가를 구매하고 소유하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시인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분들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쓴 글을 읽으며, 살아 있을 때 가능한 스스로 많이 버리고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남은 식구들을 힘들게 하지 않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죽을 때 이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건데 말이다. 시인은 수의에 주머니가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수의에 주머니가 있다면, 꼭 넣어가고 싶은 것은 바로 '남에게 받은 사랑'이라고 말이다.  살아 있을 때의 사랑과 용서를 지니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수의에 주머니를 꼭 달아야 할 이유가 생길 것도 같다고 생각해 본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자주 잊어 버리고 산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고되고 힘들다는 핑계로 말이다. 사실 사랑을 실천하는 길은 소박한데도 말이다. 이 책은 그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해주고,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날들이다. 오늘을 사는 이들 중에 고단하지 않은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루를 사는 일이 한 해를 사는 일처럼 힘들고 고단할 때, 이 책을 만나보자.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먹먹한 위로가 오늘을 버텨내고, 다시 내일을 향할 수 있는 힘을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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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2-15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와 책, 엄청 예쁩니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댓글 남깁니다.^^

피오나 2024-02-15 18:29   좋아요 0 | URL
ㅎㅎ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과 공존의 먹거리 - 음식, 풍요로움과 다양함 너머의 식탁 드레의 창
정한진 지음 / 드레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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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합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렇다. 먹어야 산다. 인간은 동물이자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당연히 생존할 수 없고 종을 보존할 수도 없다. 나아가 먹기는 생리적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행위다. 언제부터 어떻게 정해졌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삼시 세끼를 먹고, 익숙한 식사 방식과 절차에 따라 먹는다... 먹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자 동시에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다.             p.17~18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러니 먹거리는 삶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먹거리를 생산하고 거래하고 먹는지가 지나간 삶과 현재의 삶,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19세기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은 <미각의 생리학>에서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다.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준다는 뜻이다. 어떻게 먹느냐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젠더 정체성을 규정하며,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는 성격과 인물들 간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이 책은 음식 문화 전체를 살펴보고, 먹거리의 순환으로 본 소비문화를 짚어 보고, 생명을 위한 본능적인 욕구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먹거리를 생각해 본다.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계가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요리가 자연적인 것들을 문명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 바꿔 놓는 과정을 통해 음식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삶을 돌아본다. 산업화와 시장경제 속에서 먹거리가 자연에서 온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욕망을 채워주는 상품으로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사실 자연에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먹거리가 건강하고, 안전해야 사람도 건강하고 안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먹어야 존재한다. 자신을 유지하고 삶을 꾸려가려면 먹는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은 없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 현재와 미래가 결정된다. 현대 먹거리 체계는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고 산업화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날 복잡한 시장경제에서 먹거리는 상품일 뿐으로, 먹거리가 자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밥상 위에 올린 밥, 김치, 삼겹살 모두 자연의 일부이고 생명체에서 왔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인간은 생명체인 먹거리 덕분에 생명을 유지한다. 생명체로서 먹거리가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하다. 먹거리가 안전해야 사람도 안전하다.          p.201


한 개인이 자신을 드러내는 식생활 습관은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문화 속에서 사회화된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의 관습을 배우고 익히며, 문화의 먹거리 분류체계에 익숙해지게 된다. 단순한 수렵과 채집에서 시작되어 농사를 짓고, 가축을 사육하고, 식재료를 조리하고 저장하는 가공 과정에서 음식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먹거리를 장만하고 먹는 과정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먹거리를 둘러싼 관례와 위계, 나아가 상징적인 의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음식문화는 자연환경에 따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사회적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져왔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금기 음식문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에서 세계의 음식이 된 피자, 먹방과 쿡방의 전성시대, 먹거리의 대규모 산업화와 세계화, 녹색혁명, 곤충의 종말, 풍요 속의 결핍인 비만과 기아 등 굉장히 다양한 음식과 문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지, 더 나은 미래와 자연환경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고, 친환경 먹거리를 소비하는 등 현재의 먹거리 체계를 바꾸기 위한 방법 등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먹는 일은 날마다 이루어지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먹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면서 가장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밥 먹어야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거리에 나서면 어디든 먹거리가 넘쳐나고, TV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온통 먹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먹거리를 풍요롭게 누리는 동안 우리가 정작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먹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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