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마더
폴라 데일리 지음, 최필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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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랑, 우리가 쏟아 부어온 그 많은 사랑과 노력이 전부 허사가 되어버렸다. 다섯 식구를 순조롭게 지키기 위해 모았던 모든 에너지와 헌신. 나는 그 모든 걸 단 3분 만에 날려버렸다. 생각할수록 역겨운 3분간의 실수 때문에.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는 리사 칼리스토는 세 아이의 엄마이다. 남편인 조는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고, 집에는 개 세 마리도 함게 살고 있다. 첫째인 샐리는 열세 살, 두 아들 제임스와 샘은 열한 살, 일곱 살이다. 샐리, 샘과 나이가 같은 두 아이를 둔 케이트 리버티는 리사와 5년쯤 된 친구이다. 남편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을 하며 아이 셋을 봐야 하는 리사는 매일 진이 다 빠져 산다. 그에 비해 케이트는 직장이 없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휴가용 별장을 임대하며 꾸준한 수입을 번다. 리사는 그런 우아하고, 완벽한 엄마의 모습으로 사는 케이트의 삶이 늘 부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케이트의 딸 루신다가 사라진다. 문제는 루신다가 실종된 것이 리사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사실 루신다는 어젯밤에 리사네 집에서 자기로 되어 있었다. 케이트도 당연히 그런 걸로 알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샐리는 몸이 안 좋아서 학교에 가지 않았고, 루신다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지 하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친구와 함께 있는 줄 알았던 케이트는 어제부터 내내 딸을 찾지 않았고, 하루가 지나서야 딸이 사라진 걸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2주 전에 근처 지역에서 어린 소녀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는 거다. 유괴되었던 소녀는 반라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범인에게 강간을 당한 상태였다. 연이어 발생한 유괴 사건으로 온 마을은 아이를 찾기 위해 발칵 뒤집히고, 리사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한 번, 정말 다 한 번만이라도 잡지에서 정상적인 엄마를 보고 싶다. '너무 힘들어요. 막상 겪어보니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라요. 둘째는 절대 만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나서) 남편도 있으나 마나예요. 좋은 아빠가 돼줄 거라 믿었는데... 모든 걸 내게 떠넘기더라고요. 정말 나쁜 놈이에요.'

이야기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일 동안 벌어지는 사건의 경과를 그리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이 실종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리사와 유괴 사건의 담당 형사 조앤, 그리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시선이 빠르게 교차 진행된다. 10대 소녀의 실종이 연이어 발생하고, 소아성애자로 보이는 범인의 시선이 등장하는 초반만 해도 전형적인 스릴러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10대인 딸의 실종이라는 세상 모든 엄마의 가장 끔찍한 악몽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구이냐 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사는 케이트의 남편과 그녀의 언니 알렉사로부터 자기 가족을 망쳐놓았다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하고, 점점 두려워진다.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면.. 루신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럼 어떻게 될까. 물론 내 책임이 크다는 건 알지만, 하지만 정말로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걸까.

 

매일 같이 만성 피로를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 닥친 일을 부지런히 해내고, 십대 아이들이 점점 더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슬프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리사는 '완벽한 엄마'라고 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여자이다. 그리고 언제나 완벽한 엄마로 일상을 훌륭하게 꾸려나가는 케이트와 범인을 잡기 위해 애쓰는 담당 형사 조앤의 일상 역시 여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일상에 닥친 위험을 헤쳐나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박현주 작가의 평처럼, 여자, 그리고 엄마들의 심리 묘사가 세심하고도 리얼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작가인 폴라 데일리 역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에, 이렇게나 생생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플롯과 구성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심리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아이들에겐 언제나 좋은 엄마, 그리고 남편에게는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어쩌면 이것은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당신도 조심해야 한다. 다시는 가장 중요한 것에서 눈을 떼지 마라. 단 한 번도 내게 벌어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어느 날 당신을 찾아 올 수도 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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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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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 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들을.

오래 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국내에서 3부작으로 한꺼번에 출간된 이 책은 5년여에 걸쳐 각각 별도로 발표된 작품이다. <비밀 노트>에서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으로 연결되는 이 충격적이고 놀라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탄생한 거라는 사실 때문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갔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이야기인 <문맹>이라는 작품에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이 책에는 네 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해 병적일 만큼 독서와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로 망명해 모국어를 잃고문맹이 되어야 했던 시절, 그리고 다시 프랑스어를 배워 첫 소설이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1부인 「비밀 노트」를 쓰기까지의 그녀의 반생이 기록되어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어린 시절에 겪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지만 조국을 탈출해야 했고, 난민으로 스위스에 정착했지만 생활은 궁핍했고 생계를 위해 하루 열 시간씩 시계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프랑스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으므로 헝가리어로 시를 썼고, 이후에 대학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그것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는 당시에도 기계의 리듬에 맞춰서 머리로는 시를 썼다고 한다. 그녀는 쓰는 것 이외에는 흥미가 없었으므로, 작품이 출판되는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써야만 했다.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었고, 쓰지 않으면 삶이 너무도 따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걸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 버리게 될 때조차.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사랑했던 오빠를 클라우스로, 작가 자신을 루카스로 그려 <비밀 노트>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들이 살았던 마을이 소설의 배경이었고, 극중 등장하는 고양이를 매달 거나, 단식훈련, 부동자세 훈련 등도 실제로 했던 것들이었다. 그녀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그리고 결혼을 하고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하기까지 끊임없이언어를 잃고, ‘언어를 배우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여전히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문맹'을 벗어나고자 끈질기게 글을 써왔지만, 모국어인 헝가리어가 타의로 인해 그녀의 삶에서 사라졌기에 자신은 영원히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 프랑스어로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것은 그녀에게 강제된 일이었고, 하나의 도전이었으니 말이다. 뒤늦게 배운 외국어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게 되는 경우, 아무리 능숙해지더라도 모국어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연수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만을 골라서 썼을 테고, 당연히 말은 가난해지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단순해졌을 거라고. 그 단순하고, 가난한 언어의 집이 한없이 투명하고 명징해서 너무도 치명적이라고 말이다. 한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려지고 있는 이 책은 굉장히 짧지만 묵직한 울림을 남겨 준다. 그녀의 삶과 작품을 결코 별개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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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 :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 레오나 시리즈 The Leona Series
제니 롱느뷔 지음, 박여명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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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사실상 거의 매번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처럼 큰 문제없는 상황에서만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내 인생 자체가 그랬다. 거짓. 늘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삶이 나를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직시하기로. 당시 나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더 이상은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한 여자가 달리는 열차에 뛰어 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사고 현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레오나는 사고가 일어나기 얼마 전 피해자가 신장 제거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네 곳밖에 없었음에도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장기 밀거래를 목적으로 불법 수술을 받은 것 같다는 쪽으로 수사의 방향이 잡히는데, 연이어 안구가 적출된 노숙자가 광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약자였다. 쓰레기통에서 빈 병을 수거하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 마트 앞에 앉아 돈을 구걸하던 노숙자, 유니폼을 입은 두 명의 남자는 주변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이들을 납치할 수 있었다. 밝은 대낮에 행인들이 보는 앞에서 납치를 당하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사회적 취약계층만을 노린 무자비한 장기 밀거래 범죄는 계속해서 벌어진다. 

‘불법 장기 밀거래라는 잔혹한 범죄는 후반부로 갈수록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주며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레오나는 여전히 법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범죄 현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빼돌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워낙 사건 자체가 규모가 크게 진행되고 있어 이번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로서의 모습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경찰청의 조직 개편으로 인해 레오나가 진급 대상에 오르자, 애타게 승진을 고대하던 알렉산드라 팀장은 레오나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팀워크도 좋지 않았으며, 비밀스러운 것도 많았고, 레오나가 해결했던 사건에서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레오나가 사건에 얽혀 있으리라고 의심했던 차였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한 증거를 잡기로 한 것이다. 2권에서 함께 범죄를 모의하다 레오나의 연인이 된 다비드는 이전 연락망이었던 수사관 스벤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어 경찰 스파이 역할에서 벗어 나려나 싶었는데, 스벤의 동료가 나타나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범죄 세계에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다비드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지. 각자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레오나와 다비드의 연인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레오나의 행적에 의문을 품은 팀장 알렉산드라는 과연 그녀의 비밀을 알아낼 것인지. 이야기는 숨돌릴 틈도 없이 가쁘게 진행된다.

 

 

사실이었다.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일에 집착했으니까. 몇 년 전이었다면, 나는 새로운 팀장 자리를 고려해보라는 켄네트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이 경찰이라는 일을 내려놓고 싶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은행 강도 사건, 연쇄 폭탄 테러에 이어 장기밀매 범죄를 해결하는 아웃사이더 형사 레오나의 마지막 모험이다. 여자, 엄마, 형사 사이에서 방황하는 레오나는 도덕적으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이상하게 자꾸 끌리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게 이 시리즈를 계속 읽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시리즈 1 <레오나: 주사위는 던져졌다>에서 일곱 살 여자아이가 은행강도가 되어 일으킨 사건에 깊이 연루되었던 레오나는 2 <레오나: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에서는 아예 범죄자들을 모아 현금 수송차를 강탈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아들 베냐민이 수술 실패로 죽게 되면서 남편과는 이혼 협의 중이었고, 첫 번째 은행 강도 사건의 중개인에게 지불할 예정이었던 돈을 뺏기는 바람에 그녀는 협박을 받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하나 남은 딸마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라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란 없기도 했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무모하고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수사관 레오나는 정말 전무후무한, 독보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당신이 한 짓의 대가로 당신을 죽일 겁니다!"

 

사실 형사로서는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는 인물임에도, 바깥에서는 신중히 범죄자들을 모아 '완전 범죄 강의'를 진행하고, 그들과 함께 큰돈을 벌기 위한 범죄를 계획 하는 캐릭터라니 이상하기 짝이 없다. 물론 경찰들도 이따금 법을 어기는 경우가 있다. 선을 넘어 경찰이 범행을 저지르는 일도 결코 드물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비리 경찰은 서브 캐릭터인 경우가 많았고, 결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니 말이다. 아예 악당이나 범죄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도 독자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말이다. 다행히도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레오나가 일확천금을 꿈꾸며 일탈하려는 모습보다는 피해자들의 상처에 공감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열혈 형사로서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레오나는 수사 과정에서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참고인을 도와주거나,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매춘부를 보호해주는 등 차별 받고 있던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범죄 현장의 돈에 손을 대고, 포커 게임으로 한 방을 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지만 말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부터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빠른 플롯으로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레오나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 번째 작품까지 읽고 나니, 그저 레오나를 '지금까지의 인생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것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보자면 딱히 이해를 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분명 그녀의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은 평범한 부모의 사랑과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아들의 죽음과 남편과의 이혼으로 인한 상실감도 극복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추악한 현실과 마주치고 마는 레오나, 그리고 다비드. 이들의 이야기가 세 편으로 완성이 되어 다행인지, 아쉬운지 잘 모르겠다. 분명 독자로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매번 인물들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하지 않았던 작가이기에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것이 인물들에게는 오히려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니 말이다. 물론 이번 작품 역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작가인 제니 롱느뷔가 걸 그룹 활동과 범죄학자, 수사관 근무 경험을 두루 갖춘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이 시리즈를 통해서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매력을 가진 여성 형사 캐릭터를 만났던 것 같다. 그녀의 다른 작품도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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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연대기 -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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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이 발명되지 않는 한, 그리고 미지의 섬에서 살아남은 종을 발견하지 않는 한, 초기 호모 속 구성원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는지 알려면 퍼즐을 맞추듯 그들이 남긴 화석과 유물을 연구해 그 결과를 현대 수렵채집인의 삶과 비교해봐야 한다. 이러한 재구성 과정에는 추측이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놀랍게도 그 추론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 수렵채집 생활이 식물 채집, 동물 사냥, 긴밀한 협력, 식량 가공이라는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종합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최초의 인간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됐을까?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최대 수명이 무려 150세가 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평균수명이 그 절반 정도였고, 더 멀리 구석기 시대로 가면 당시 원시인의 수명은 18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늘어난 수명에 비해, 현대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질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인간은 도대체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대니얼 리버먼은 우리 몸의 진화사를 이해하면 왜 우리의 몸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병에 걸리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병에 걸리는 이유를 인간의 진화를 통해 풀어낸다니 생각부터 참신했고, 궁금했다.

왜 우리는 쉽게 살이 찔까? 왜 우리는 때때로 음식을 먹다가 질식할까? 왜 우리 발바닥활은 평평해질까? 왜 우리는 허리가 아플까?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우리 몸을 만든 진화의 경이로운 여정을 되밟아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수를 맡은 최재천 교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들에게, 아니 <사피엔스>를 읽으며 왠지 흡족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하라리와 리버먼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신들의 책을 썼다. 두 작품 모두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라리는 전쟁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이고, 리버먼은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이다. 바로 그 차이점 때문에 이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책이 책을 부르는 순간이 아닐까. 책을 읽다가 작가의 전작을 찾아 보거나, 유사한 주제를 다룬 다른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게 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이 아니듯이, 우리 몸도 가능한 모든 몸 중에서 최선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몸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몸을 즐기고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 우리 몸의 과거는 더 적합한 자의 생존이라는 과정이 만들었지만, 그 몸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이한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평화를 되찾으며 이렇게 선언한다. "내 밭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몸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어떻게 두 발 동물이 되었는지, 직립 보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인간의 몸이 점점 진화해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임신한 포유류가 태아와 태반, 체액의 증가로 인해 크게 늘어나는 하중을 견뎌야 하는데,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네 발 동물과 달리 무게중심이 더 앞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추가 하중에 대처할 수 있도록 아래쪽 요추 만곡 부위에 쐐기꼴 척추뼈가 늘어났다는데, 실제로 그 부위의 척추뼈는 여성이 세 개고 남성이 두 개라고 한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란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수렵 채집인의 생활과 현대인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식생활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 그에 따른 인간 몸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믐의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가 어떻게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인류 종이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몸에 문화와 생물학적 형질이 수십만 년간 상호작용함으로써 진화한 특징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고 말이다.

지난 150년간 우리가 먹고 일하고 이동하는 방식, 질병과 싸우고 청결을 유지하는 방식, 심지어 잠자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몸의 진화적 설계와 문명 간의 부조화로 인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놀라웠다. 당뇨병, 심장병, 골다공증, 매복사랑니, 평발, 암 등 현대인의 질병을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지 새롭고 유용한 지식을 얻게 된 것도 흥미로웠고 말이다. 게다가 인류 진화사부터 문명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아 평소에 과학 교양서를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수월했고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가 직면한 건강 문제가 일종의 진화적 산물로, 혹독한 환경 아래서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게 진화한 우리 몸이 풍요롭고 안락한 현대 문명과 만나 벌어지는 부적응 때문이고, 이는 우리 몸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충분히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과 문명, 건강과 질병에 대해 진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진화의학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또 쉽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 역시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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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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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봐봐...... 재수 없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아. 놀러 가는 거에 환장한 것처럼 방방 떨고서는 못 가? 가자고 지랄을 떨지 말든가.

전화하다 죽을 뻔한 마누라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면 어디가 덧난대요?

-누가 하랬어?

미안해요. 하지 말라는 전화 2 3일 해서.

-애썼어..... 엎드려 절 받으니까 속 시원해?

표제작인 <놀러 가자고요>는 노인회장의 아내인 오지랖댁이 동네 주민들에게 제목 그대로 '놀러 가자'고 전화를 돌리는 내용의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동네에 귀 어두운 노인 분들이 태반이라 아침나절부터 전화로 소리를 박박 질러대는 오지랖댁은 노인회에서 놀러 가기로 한 날짜에 몇 명이나 참석할 수 있는 지 확인 중이다. 30명은 가줘야 된다며 확인할 겸 웬만하면 가자고 설득할 겸 전화를 돌리는 중인데, 가겠다는 사람은 없고, 다들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있다. 손녀딸이 백일장에서 상을 탔다는 얘기, 둘째 놈 사업이 망해서 부인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얘기 등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해대거나,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결국 못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렇게 전화를 삼백 통은 한 거 같다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고서야 겨우 돌아오는 대답은 "애썼어." 농촌이라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정서가 다양한 마을 사람들의 사연과 성격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대부분 작가가 나고 자란 백호리범골이라는 농촌 마을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 소설이라고 해서 따분할 거라는 예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이 작품 속 농촌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소위어르신이라 불리는 노인들은 우리가 쉽게 예상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제역이 코앞까지 닥친 상황에서 키우는 소의 산후조리를 하게 된 사연, 시골집으로 어머니를 뵈러 와서 만나게 된 욕조기 외판원과의 에피소드, 아홉 살짜리 아들이 내쉬는 한숨이 성장통과도 같은 평범한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는 부모의 이야기, 못자리철이 한창인 마을에 모인 일꾼들이 봇도랑 치기 내기를 벌이는 이야기 등등.. 다양한 사연들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펼쳐진다.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나고, 쓸쓸한 정서 너머로 풍겨나는 묘한 활력이 인상적인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그야말로 김종광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김종광 월드인 셈이다.

어머니 일기장을 보면 안심이 된다. 어머니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그 마음을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다가 풀었을 것인가. 어머니는 죽고 싶을 정도로 거시기한 마음을 종이에 풀었을 뿐이다. 요즘 일기에 쓰는 어머니의 '죽고 싶다'는 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별생각 없이 그냥 쓴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도시의 자식은 섬쩍지근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작년에 <조선통신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김종광 작가의 소설집이다. 네 번째 소설집 이후 8년 만에 다섯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고 하는데, 작가의 단편은 처음 만나는 독자로서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국내 소설 작가들이 그려내는 분위기와 김종광의 그것이 매우 달랐기 때문인데, 인물이며, 말투며, 분위기며 아무래도 2018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옛날 옛적의 그것 같았으니 말이다. 농촌을 배경으로 노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도 그러했고, 위트와 유머보다는 해학과 풍자가 더 어울리는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을 읽는 기분도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고, 김종광 작가의 특유의 걸출한 입담과 페이소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을 갖춘 작가라는 평가가 괜한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루하고 사소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경이롭고 기억할 만한 사건의 연속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이 작품에서 보여진 것 같아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농촌이라니, 꼭 옛날 옛적의 이야기 속에서나 배경으로 등장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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