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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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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날그날 겪는 모든 일에는 현재의 불확실성이 그 흔적을 남긴다. 그 시절 마르가레트는 길 모퉁이 하나를 돌 때마다 혹여나 부아야발과 마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보스망스는 정작 자신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와 경멸에 가득 차 그를 쫓아다니며 그가 혹 거리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죽는대도 서슴없이 그의 주머니를 뒤질 그 심란한 커플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멀찍이 떨어져 세월이라는 거리를 두고 보면 우리가 현재 느끼는 불확실과 근심은 사라진다. 마치 라디오에서 나오는 깨끗한 음악을 못 듣게 방해하던 전파 잡음이 사라지듯. 그렇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꿈속과 꼭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는 기억이 있다. 유치원이 끝날 시간쯤 당시에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항상 서 있는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그 아이가 무섭고 싫어 집에 바로 가지 못하고 동네를 빙빙 둘러서 다니곤 했었다. 나를 기다리는 그 아이가 그때 뭔가 해코지를 하거나, 괴롭히거나 했던 것 같지도 않은데, 매일같이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남자아이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고, 공포스럽기만 했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일이라 그래서 결국 그 아이와 어떻게 되었는지, 내가 그걸 극복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었는지는 잘 생각나질 않는다. 당시의 그 일은 그저 이미지로 남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제일 먼저 기억나는 사건 같은 게 되어 버렸다. 지금에 와서 떠올려보면 그게 대단히 괴로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어린 마음에 친구나 가족들 중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혼자 끙끙댔었다. 누군가에게 말해버리면 이야기를 듣게 된 누군가에게 그 아이가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그 아이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까. 하고 추억처럼 이야기 할 때가 올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잘못된 만남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요."

모디아노는 말한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불확실과 근심은 세월이라는 거리를 두고 보면 사라지는 것들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보스망스의 어머니는 턱을 공격적으로 쳐들고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와 돈을 요구했다. 마치 어린아이를 을러대는 듯한 위압이 담긴 목소리로. 함께 온 갈색 머리 남자는 멀찍이 떨어져 가만히 서서, 마치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게 해주려는 양 보스망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는 그 두 사람이 자신에게 왜 그런 경멸감을 표출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를 뒤져 돈을 내민다. 빨간 머리에 매정한 눈빛을 한 호적상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에게, 마치 집주인이 오랫동안 집세가 밀린 세입자를 상대하듯 단호한 목소리로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마르가레트에게 말한다. "다행히 집을 옮겼으니까, 그 둘은 이제 내게서 돈을 뜯어내지 못해요."

마르가레트는 회사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두려워하는 남자가 있다. 몇 달 전부터 자신을 찾아 다니는 남자, 부아야발을 피해 다니는 중이다. 그래서 종종 보스망스에게 회사 앞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말하고,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는 것 같다며 불안해한다. 경찰에 신고를 한 적도 있지만, 그들은 남자가 그녀를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구애를 하는 것뿐이지 않냐며, 이제 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라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녀는 직장에서도 한참 먼 곳에 있는 오퇴유에 집을 구한다. 눈이 내린 어느 날 밤 보스망스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는 지금 파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산속에, 앙가딘 어디쯤에 들어와 있다고. " 그제야 두 사람의 마음은 편안히 누그러지고, 그들은 그 모든 잘못된 만남을 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십 대 초반의 장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 르 코즈는 시위대가 운집해 있고, 경찰 기동대가 대로를 따라 인간 사슬을 형성하고 있던 어수선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여자는 기동대와 몰려든 군중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벽으로 떼밀리다 상처를 입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약국으로 데려간다. 그들 두 사람은 이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가족은커녕 도움을 청할 곳도 전혀 없었다.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에게 영문도 모르게 적개심에 가득 차 자신을 쫓아다니며 돈을 요구하는 남녀도, 그녀를 두렵게 하는 부아야발도 다 별것 아니라고. 조만간 그들은 새로운 지평을 찾아 파리를 떠날 수 있으며 그렇게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의 집을 나서면 그는 다시 카페로 들어가 이번에는 타자 원고를 수정했다. 긴 밤이 온전하게 그의 것이었다. 그는 그 구역에 더 머물고 싶었다. 그는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보스망스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소설을 쓰고 있지만, 남들 앞에서 소설가라고 말하기에는 머뭇거림이 있다. 그의 얼굴, 말하는 방식, 걷는 방식, 앉는 방식에서도 불안이 묻어났다. 그는 언제나 의자나 소파 가장자리에 한쪽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다. 마치 거기는 자기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곧 달아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키도 크고 몸무게도 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보이는 이런 태도는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오버랩된다. 그는 언제나 미안해하는 사람의 느낌을 풍겼다. 정확히 무엇에 대해 미안해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인 채로. 그는 가끔 홀로 길을 걷다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미안해? ? 살아 있다는 것이?

마르가레트는 언제나 남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과 격이 맞지 않을 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격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가 가끔 그립고, 어머니가 결혼한 자동차 정비사가 싫어 그녀는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보석과 시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체육관 구내 식당에서 일하고, 찻집과 서점에서의 일을 거쳐 두 아이를 돌보는 보모 자리를 얻는다. 겨우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그녀의 삶은 한 곳에 자리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유하며 떠돌아 다닌다.  

"한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밀며 보스망스 앞을 걸어가는데 뒷모습이 마르가레트와 똑같다."

보스망스는 사십여 년이 지난 뒤, 거리에서 그녀와 닮은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불꽃처럼 짧고 강렬했던 사랑이 예고 없이 끝나버린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보스망스는 파리 곳곳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의 자취를 찾아 다닌다. 이 작품은 그렇게 기억의 편린들을 끌어 모아 과거를 돌아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짧은 만남들, 어긋난 약속들, 잃어버린 편지들, 오래 전 수첩 속에 적혀 있었지만 이제는 잊힌 이름과 전화번호들, 그리고 의식도 못한 채 마주쳤던 여자들과 남자들." 우리의 삶에서도 자주 잃어버리곤 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마치 꿈결처럼 읽힌다. 보스망스는 어디에선가 사람과 사람의 첫 만남은 마치 가벼운 상처처럼 두 사람에게 남아 그들을 고독과 무감각으로부터 깨워 일으킨다는 말을 읽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 타인과의 모든 첫만남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는 마르가레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면서, 그것이 바로 그곳, 그 지하철 입구에서, 서로 맞부딪치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파리 지도를 보며 그녀와의 기억을 추억하고 떠올려본다. 마치 꿈결처럼 몽환적이게도, 다소 모호하게도 읽히는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것에서도 빛난다. 파리의 곳곳을 마치 여행하듯이 누비는 기분으로 거리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보스망스는 어떤 거리의 한쪽에서는 그가 젊었을 적 만난 사람들을 과거의 나이와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늘 상상한다. 그곳에서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지금도 예전 모습 그대로 살고 있을 거라고.

어쩌면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의 끊임없는 희망이 지평을 넘어 그들에게 도달할지 말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의 통로들을 서로 겹치고, 얽히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나가고, 먼 훗날 기억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그것 자체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가끔은 나도 그처럼 기억 속에서 길을 잃어보고 싶다고 생각이 될 만큼, 이 작품은 매혹적이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어딘가에서 보스망스가 몰스킨 수첩 맨 뒤에 실린 작은 파리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길들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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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4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4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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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최연소 앵커부터 국내 최초 프리랜서 앵커 선언까지... 하는 일마다 이슈를 불러왔던 최고의 앵커, 앵커계의 전설 백지연씨의 첫 번째 소설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두세 살 되던 생일날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스무 살 성인이 되는 생일이 되기 전까지 책 10권을 써보자고. 물론 그때만해도 자신조차 그 결심을 믿지 못했었는데, 어느덧 이 책 <물구나무> 10번째 책이라고 한다. 그 동안 써왔던 에세이와는 달리 소..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앵커 백지연'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신뢰와 파워 때문인지 그녀의 창작물도 기대가 어느 정도 되기는 했다. 감상에 빠져 멋만 부린 소설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 소설은 첫 번째라는 이름에 걸 맞는 부분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소설가 백지연의 다음 작품을 궁금하게 만들어 주었다.

방송국을 나와 회사를 차리고 독립해 전문 인터뷰어로 일하고 있는 민수에게 어느 날 여고시절 단짝 친구 수경에게서 연락이 온다. 고등학교 시절 3년간 붙어 다니던 친구들 중 하나였지만, 졸업 후 정확하게 27년 만에 온 연락이다. 그들이 27년 동안이나 연락 두절 상태로 지내게 된 계기는 너무도 사소한 거였지만, 때로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어찌하다 보니 서로에게 손을 내밀 시기를 놓쳐 그저 시간이 무덤이 되어 쌓이기도 하는 것이다. 명문대에 합격하고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친구들은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사소해 보이는 미팅 사건으로 무려 27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버린다. 지금이라면 그저 웃어 넘어갈 헤프닝으로 보이지만, 그때 그 시절 어린 마음에는 이해하지 못할 배신감이었으리라. 학창시절 뛰어난 실력으로 학교의 수재였던 수경은 대학 졸업하자마자 선 보고 바로 결혼을 하고 그 다음해 엄마가 되었다. 그들 중에 가장 결혼을 늦게 할 것 같았던 그녀가 제일 먼저 결혼하고, 일은 전혀 안하고 주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건 우리 주변 누구에게나 찾아 볼 수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이다. 이럴 거면 죽어라 공부해서 명문대는 뭐 하러 갔나. 시집 잘 가려고 공부한 건가. 하는 한탄이 나오기도 할 만큼 말이다.

"이제 나는 그냥 누구의 와이프고 누구 엄마고, 언젠가 우리 애들 결혼하면 그때는 또 누구의 사돈, 누구의 할머니로만 불리겠지. 나도 한때 잘하는 게 있는 인재였다는 걸 누가 알아나 주겠니. 나도 모르겠는걸 뭐. 그리고 공부 잘한 사람이 인재라고 할 수 잇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

그녀도 엄격한 아버지의 뜻대로 졸업 후 바로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재벌집 사모님이 아니라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현재의 인생이 달라졌겠지요." 라는 말은 생각보다 꽤 자주 통용되는 말인 셈이다. 내가 그때 이 길로 가지 않고 저 길로 갔다면, 이 사람을 선택하지 말고 저 사람과 함께 했더라면.. 삶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기에 언제나 뒤돌아 후회만 하지만, 사실 또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 위험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부딪혀야 하는 거니까. 최고의 수재로 서울대에 입학했던 수경, 치대에 입학했던 하정, 언제나 당당했지만 집안 환경은 어려웠던 승미, 3개 국어 능통에 유난히 자상한 아버지를 가진 문희, 공부보다는 소설에 빠져 살았던 미연. 그리고 인터뷰어인 민수. 이렇게 여섯 여자의 인생이 주요 스토리이다.

27년 만에 이들을 하나로 다시 연결하게 되는 계기는 하정이의 죽음이다. 민수는 수경으로부터 하정이가 죽었고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확실치 않아 남편, 가족, 주변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죽은 채 입에서 발견됐다는 것 외에 알려진 게 없지만, 열세 살이나 차이가 나는 남편과 죽기 전에 부부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거기다 하정이 부모님은 부검을 해야 한다 하고, 남편 쪽은 세상 시끄러우니 어서 장례를 치르자고 부검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남편의 바람과 이혼 요구로 상처받아 힘겨운 수경은 민수에게 친구들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하정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보자고. 그렇게 인터뷰어로 오래 전 친구들을 만나 그 동안의 일들을 다시 듣게 되는 민수의 앞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녀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전개로 치닫는다. 명문대에 합격하기만 하면 인생이 순탄대로 흘러갈 것 같았지만, 어디 사는 게 내 맘 같기만 하겠는가. 무려 삼십 여년 가까이 왕래가 없었던 친구들이기에 그들 각자가 겪어야 했던 시간의 골과 각자의 입장에서 한 사람을 기억하는 내면의 풍경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인생 정말 모를 일이지. 내 일에 하정이 일까지 겪고 나니 확 자신이 없어지더라. 산다는 것에 대해 더럭 겁이 나.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가. 어릴 때는 물어볼 사람도 있었고 힘들면 팔 붙잡고 늘어질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이 나이쯤 되고 보니 뭐 하나 붙들게 없네."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소녀 시절의 풋풋함도, 치기 어린 열정도 없이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진부한 듯 보여도 공감되어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나 화자를 전문 인터뷰어인 민수로 정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매끄러워 몰입도를 높여주었던 것 같다. 아마도 백지연씨의 분신처럼 보이는 민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방송, 인터뷰에 대한 자세나 준비, 상황들이 리얼해서 더욱 그런 거였을 수도 있고 말이다. 하정이의 죽음이 시작이었지만, 이야기는 미스터리보다는 각자 연결되어 있는 여자들의 삶에 주목해서 담백하게 펼쳐진다. 어쩌면 이 작품은 '앵커' 백지연이 아니라 '여자' 백지연으로서의 첫 번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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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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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에 관한 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쿄 여행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여행안내서도 아니고 모험 기행문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판된 여행안내서처럼 잘못된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모험 주인공의 지루한 개인사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우선 내가 도쿄에 간 첫 번째 이유는 여자 친구 클레르 때문이었고, 2006 6월부터 12월까지, 정확히는 클레르의 인턴십 기간 동안 도쿄에 머물렀다.

 

플로랑 샤부에는 파리에 사는 만화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온 도쿄에서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동네 곳곳을 누비고 다녀 그림지도를 만들고, 사물을 살펴보고, 일상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도쿄 북부의 마칭야에 방 2개짜리 다다미방을 계약했는데, 매일 아침 미니 키보드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곤 했다. 짜증나는 상황을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상상해본 그림으로 풀어내는 유쾌함이 재미있다.

 

 

이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삼 년 전 일본에서 갔던 우동집이 떠오른다. 어쩌면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마법 같은 그림이다.

 

집안풍경, 너무도 아기자기하고, 세밀하게 그려진 이곳들을 보고 있자면 요즘 유행하는 컬러링 북을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색깔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일상의 시름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플로랑 샤부에의 일러스트는 공간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클레르랑 집에서 나오는데 한국인 아줌마 여러 명이 몰려와서는 근처에 교회가 문을 열었으니 들렀다 가라고, 신도가 아니어도 오면 공짜 한국 도시락을 잔뜩 먹을 수 있다며 친절하게 우리를 초대했다. 이 말에 귀가 번쩍 뜨여 광신도에게 끌려가면 어떻게 되나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가스펠이라 부르기 민망한 콘서트를 감상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락 대신 신약성경을 손에 들고 집에 왔다. 맛있겠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는 것 같은 자세한 묘사 속에는 큭큭 거리게 만드는 유쾌함이 숨어 있다. 소토보리의 강을 묘사한 이 그림 속 '소설적 상상력'을 주시하라. 낚시하는 풍경을 그리면서 이런 걸 그려 넣다니 그의 유쾌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도 그의 그림 속에서는 마치 시트콤 한편 처럼 재미있게 흘러간다.

 

신주쿠 비즈니스 지역 빌딩 대리석에서 만난 길을 잃은 사마귀, 도쿄 정부청사 건물 앞에 있는 거대한 무당벌레,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텅 빈 거리의 뷰티살롱, 오다이바 해변에서 만난 잘생긴(?) 타히티 청년, 그러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게 된 경험까지.. 그의 일상은 말 그대로 다이나믹하다. 특히 경찰서에서의 상황을 묘사하는 그림은 정말 만화 컷이라도 보는 듯하게 흥미진진했다.

 

프랑스인이 바라본 일본의 풍경이 어떠한지, 내가 경험해봤던 도쿄와는 어떻게 다른지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일러스트 스케치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사진인 것처럼, 혹은 사진보다 더 정밀하게 그려진 사물 하나하나는 일본에 갔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여행소개 책자나 여행 에세이는 많이 읽어왔지만, 이런 독특한 여행 풍경 스케치는 처음이라 책장은 쓱쓱 쉽게 넘어가는데,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기도 했다.

색연필 그림과 깨알 같은 손 글씨로 그려낸 도쿄의 풍경은 정말 여행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일본도 좋고, 다른 나라도 좋고, 어디든 떠나서 나만의 여행지도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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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머스 - 넥센 히어로즈 장외 명물
테드 스미스 지음, 김현성 옮김 / 매직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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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사랑하는 남편을 둔 덕에 어쩌다 보니 나도 야구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야구를 보기 시작한지 겨우 4년째이지만, 가끔은 10여년 넘게 야구를 보아온 남편보다 내가 더 열광할 정도로 이제는 나도 준 전문가 정도. 각종 경기 기록이며, 구단 별 선수며, 최신 뉴스까지 모르는 게 없고, 시즌 중에는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 우울하고, 시즌이 끝나고 나면 3~4개월동안 무슨 낙으로 살까 한탄하기도 한다. 내가 넥센의 팬이 된 것도 남편 때문인데, 처음 그와 야구장을 다니면서 왜 넥센을 응원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 연고지를 둔 팀의 팬들은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해당 구단을 응원하게 되지만, 서울을 연고로 둔 팀은 두산, LG, 넥센.. 이렇게 세 팀이나 되기 때문에 지역과 상관없이 구단을 선택하게 되니 말이다. 그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다. "맨날 꼴찌를 도맡아서 하는 팀이라서." 항상 성적이 꼴찌라서 응원해주고 싶었다는 거였다. 두산, LG야 워낙 팬 층도 두텁고 인기도 많고, 성적도 어느 정도 나오는 팀이었지만, 넥센은 당시 아직 응원하는 팬들도 많지 않았고, 언제나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렀을 때였으니 말이다. 암튼.. 그런 넥센이 재작년, 작년을 거치면서 이제는 당당히 우승 후보에 성적도 상위권에 머무는 강 팀이 되었지만, 그들의 꼴찌 시절을 기억하기에 그런 그들의 노력이 더욱 뿌듯하기만 하다.

지는 팀의 응원은 비극적일 정도로 비장하여 나 같은 영문학도가 반길만한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지는 팀에 감정적으로 이입을 하다 보면, 팀이 잘 할 때는 더 기쁘고 못 할 때는 내 감정의 곡선도 더 바닥을 친다. 그 절망감을 더 절실히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우승은 금보다도 더 귀해진다. 가뭄 중의 단비이자 기근 중의 식량인 셈이다. 긴 연패에 빠질 때는 전쟁 포로의 멘탈을 갖게 된다. 겉으로는 단호하고 의연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시 자유의 빛을 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상태 말이다. 한 번만 더 패하면 집어치울 거라고 협박함과 동시에, 영혼을 바쳐서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이기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게 된다.

 

 

, 그런 넥센의 팬이라면, 혹은 목동 야구장에 가본 이들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등판에테드찡이라는 한글 이름 석 자를 선명히 새기고, 응원단 석을 누비며 열렬히 응원하는 외국인이다. 워낙 티비에도 자주 비춰줬고, 인터뷰도 많이 했던 터라 '넥통령' 이라는 명칭처럼 유명해진 넥센의 팬이다. 그는 목동 홈 구장에서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대구 등 지방에 이어 해외에서 치뤄질 때는 그곳에서까지 빠지지 않고 눈에 띈다. 처음에는 대체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길래 저리 모든 경기를 관람할까 신기했을 정도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응원을 한다. 게다가 넥센 응원단장이 없을 때는 직접 단상에 올라 응원을 유도하기도 한다. 마치 구단에 정식 소속된 직원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어쩔 때는 저렇게 열심히 응원해주는데 구단에서 시즌 권을 주거나 월급이라도 줘야 되지 않나 싶을 만큼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걸 자비로, 순수한 애정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열정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모하리만큼 달려드는 것만큼 순수한 사랑은 만나기 어려우니 말이다.

잘나갔던 역사를 가진 별 볼 일 없는 팀에서 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나도 확실히 안다. 홈경기인데 관중석에 홈 팬 보다 원정 팬이 더 많은 광경을 벤치에서 올려다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단 말이다. 동시에 단 몇 명의 목소리 큰 팬들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우리 팀 자리에서 정말 한 명이라도 큰 소리로 응원을 해 주고, 깃발을 흔들고, 농담을 하고, 심판에게 야유를 하고, 우리가 점수를 낼 때 마다 일어서 주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오늘 딱 하루만이라도 그런 존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캐나다인인 테드 스미스는 왜 하필 한국의 야구, 그것도 많은 팀 중에서 넥센을 응원하게 된 걸까.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던 그가 한국어 수업을 듣다 재미를 붙였고,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와서 여의도의 고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날 맥주 한 캔을 들고 찾아간 목동 야구장, 단지 여의도에서 목동이 가까웠기 때문에 가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처음부터 애틋한 마음이 들었었다고. 왜냐하면 볼 때마다 항상 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9회 말까지 죽을힘을 다해 뛰는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특히 조용히 관람하는 북미의 관람문화와는 달리 경기 내내 수들의 응원가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한국의 응원 문화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응원 경비를 마련하려 아끼던 외제차도 팔고, 집도 좀 더 작은 평수로 옮기고, 급기야 회사까지 그만두며  거의 모든 시간을 응원하는 팀의 경기에 투자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과해 보일 수도 있을 거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가치관은 다른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한번쯤은 올인 해봐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직장까지 그만 둘때 주변에서는 그에게 어리석은 결정이 될 거라며 걱정했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입장권은 물론 교통비와 숙박비며 각종 응원관련 의상까지 모두 자비로 충당하느라 경제적으로는 부족할지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풍족한 그의 선택이 멋지게 보인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야구에 대한 애정과 그의 히스토리가 온전히 담겨져 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이 남자처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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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화 이글스에는 수염 난 루크씨가 유명해요. 저는 삼성팬인데 넥센의 테드찡과 한화의 루크씨를 보면 부러워요. 저렇게 야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열심히 응원하는 외국인이 있어야 사람들도 같이 응원에 동참할 수 있으니까요. ^^

피오나 2015-02-05 16:59   좋아요 0 | URL
맞아요ㅎ 루크씨도 방송에 자주 보이시더라구요ㅋ 삼성팬이시면 코시때마다 행복하시겠어요. 부럽부럽^^
 
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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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진짜 최고의 음식이었어. 아마 자네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 그 따뜻한 국물 맛을."

어쨌거나, 그들이 꽃을 두고 간 묘비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기수

1957-2013

27년간 오직 라면만 먹은 자, 여기 잠들다

                                                                            -라면의 황제 중에서

라면의 황제라는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더니, 이건 뭐 라면이 사라진 시대를 그리고 있는 기상천외한 설정부터 눈에 띈다. 기름에 튀겨 건조시킨 면과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수프가 수만 가지 질병을 비롯해 우울증이나 폭력 같은 정신질환까지 유발한다는 결과가 이어져 결국 라면 유해론은 라면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 와중에 김기수라는 인물은 라면만 먹으며 오래 버티기 분야의 기네스북 신기록을 수립할 뻔한 사람이었다. 김기수는 정확히 30세가 되던 해 가을부터 라면만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증언에 의하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했던 식사 역시 계란과 파를 듬뿍 넣어 끓인 라면이었다고. 그가 밥보다 라면을 훨씬 더 많이 먹고, 어른이 되어서는 라면 가게를 차리고, 열심히 라면만 먹으며 오래 버티기 분야의 신기록 수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는 그것을 구청 문화 강좌를 들으면서 깨닫는다. "만약 두 가지 일이 우연히 동시에 일어난다면 거기엔 분명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운명적 관계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는 강의를 들으며 말이다. 그건 바로 자신이 1957 8 25일에 태어났기 때문이었는데, 그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바로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만들어졌던 날이란다. 그러던 그는 결국 자서전 겸 식당 홍보책자였던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이라는 책도 출간하게 되는데, 이 단편은 이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짧은 이야기이다. 그가 왜 라면만을 먹기 시작했는가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가 왜 라면만을 먹지 않을 없었는가로 이어진다.

동물보호법 위반. 이게 내 죄명이었다. 벌금은 3백만 원.

판사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숙이고 서 있었다. 내 계획을 아무도 알게 해선 안 되게, 개를 학대한 악마 같은 놈으로 오해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손자라는 사람이 말했다. 나는 개를 알고 또한 나도 안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남은 건 백전백승뿐이다. 인류를 구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검사가 뭐라고 주절주절 떠들고, 판사가 또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몇 번이나 이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개들의 사생활 중에서

약국에서 일하며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에 대해 연구하는 스물일곱 살의 전형적인 북방몽골계 남자. 길에서 마주친 그의 얼굴을 기억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평범한 외모의, 그러나 전혀 평범하지 않은 두뇌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미하일 불가꼬프의 <개의 심장>을 떠오르게 하는데, 인간의 놔하수체와 생식기를 개에게 이식을 한다는 기발한 발상 못지않게 재기발랄 한(?) 스토리가 당황스럽게 진행된다. 그는 개외 프리온 사이의 관계를 나름 간파하고, 홀로 외로운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네 발 달린 모든 짐승과 인간까지도 감염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오직 개들에게만은 결코 전염되지 않는 기이한 단백질 덩어리. 그는 프리온의 진짜 의미를 알아내려면 개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물론 아버지에게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들으며, 의사들이 차트에 "전형적인 경계선 인격장애. 호전의 기미 없음."이라고 평가하는 인물이라 독자인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오롯이 믿으며 따라가기는 다소 어렵지만 말이다.

이 작품집은 외계인, W, 호화로운 카펫, 외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국민교육헌장, 대형 마트, 그리고 라면으로 이어지는 다소 황당하고, 생뚱 맞아 보이는 소재로 기이한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다. 세상을 둘러보면 곳곳에 숨어 있는 기이한 이야기들의 집합체 같다고나 할까.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지만 어느새 사람들에게 잊혀진 가십거리 같은 것들의 종합선물세트 같기도 하고. 우리는 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을까. 작은 도시에 대형 맡는 왜 많아지나? 외계인은 외계''일까? 등등.. 따지고 보면 세상은 미스터리 천지이다. 그저 매일같이 사는 게 바빠서 무심코 지나치거나, 뭐 그런 걸 궁금해하냐고 무시하거나, 못본 척 지나치거나, 아는 것처럼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그렇지 말이다. 세상에 대해 시시콜콜 오지랖을 펼치는 작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당혹스럽거나, 유쾌하거나, 어이없거나, 재미있다. 뭐 한마디로 색다른 작품을 보고 싶었다면 대 환영, 그렇지 않다면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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