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천재가 된 홍 대리 - 딱 6개월 만에 중국어로 대화하는 법 천재가 된 홍대리
문정아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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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리가 이번에는 중국어에 도전한다. 그 동안 회계와 기획 등 회사 업무와 관련된 부분에서, 이후에는 골프, 주식, 독서, 영어, 일본어, SNS, 독서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던 그다. 벌써 십 년이 넘게 이어지는 시리즈물이라... 어떤 분야든 홍대리를 천재로 만들어준 업계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쩐지 믿음이 가는데, 무려 중국어의 문정아 강사님이라니.. 너무 기대가 되었다.

 

내가 도전해 본 외국어는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학창시절에 배웠던 프랑스어 정도다. 중국어는 사실 시도조차 생각도 안 해본 것이 바로 한자 때문이다. 복잡한 한자를 외울 생각부터 하자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중국어 공부를 이제는 시작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 공부는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문법부터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을 뜯어말립니다. 처음부터 한자, 병음, 성조, 발음까지 전부 알려고 하다가 지루하고 어려워서 지레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죠.

 

.. 문법이나 단어가 아니라 ''부터 시작하라니.. 일단 책의 진행 순서대로 아주 기본적인 문장들부터 시작해본다. 참고로 MP3자료는 콤롬북스 어플을 다운로드하면 도서를 검색해서 원하는 콘텐츠를 무료로 다운로드 하고 재생해서 들을 수 있다. 간단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회화들을 따라 해보면서 중국어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 보라는 충고대로, MP3를 들으면서 몇 마디 따라 해보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조금 더 긴 문장을 따라 해보고, 간단한 상황별 문장도 입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따라 한 뒤, 그리고 나서 성조, 발음, 병음, 한자, 어법을 익히면 된다.

 

홍대리 시리즈가 이렇게나 오랜 시간, 다양한 장르를 통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직장인들이 어려워하는 분야이거나,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분야를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홍대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스토리텔링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직급인 대리라는 점도 친근감이 있고, 스토리 자체도 흥미롭게 진행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재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한국인에게 중국어가 특히 쉽다는 얘기였다. 중국어와 한국어에는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많고, 중국어는 매우 단순하며, 중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거다. 예를 들면 커피가 중국어로 '카페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말과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이 중국어에 많다고 한다. 그리고 표의문자인 중국어는 표음문자인 우리말이나 영어보다 단어나 문장의 길이가 짧은 편이라고 한다. 그놈의 한자 때문에 가장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이 중국어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쩐지 친숙해진 듯한 기분 마저 든다.

 

벌써 이렇게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 성조 따라 해보기 장에 도달했다. 어학공부를 위한 책 치고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또 처음이다. 무엇보다도 달달 외우고 쓰는 ‘시험용 학습법’이 아닌, 입과 귀가 저절로 트이는 ‘소리 학습법’을 통해 누구나 중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 있어서도 이 책은 처음 중국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홍대리는 놀라운 발견을 한 기분이 들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한자가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다가왔다. 무조건 외워야 하는 줄 알고 무식하게 머리에 집어넣으려고만 했고, 그러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전혀 기억이 안 나 한자에 대한 두려움마저 생겼었다. 그런데 문 소장이 알려준 것처럼 한자를 분해하여 각각의 뜻을 파악한 다음 이미지로 연결시키니, 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홍 대리에게는 그야말로 혁명 같은 일이었다.

 

이 책에는 중국어를 배워보고 싶지만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머리가 굳어 무언가를 외우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하루 30분, 6개월 만에 중국어를 정복할 수 있는 궁극의 비법도 소개되어 있다. ‘니 하오’밖에 모르던 홍 대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박 팀장의 특명이 바로 6개월 안에 중국어를 마스터하라는 거였다. 과연 시간도 없고 소질도 없던 홍 대리는 어떻게 모두의 예상을 깨고 6개월 만에 ‘중국어 천재’가 되었을까? 특히나 문법을 몰라도 한자를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말문이 터지는 중국어 회화 공식은 문정아 만의 16년간 집대성한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책의 마지막에는 교과서에 없는 찰진 중국어 표현들을 수록한 마법의 300문장이라는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중국어 필수 회화 100문장, 중국어 비즈니스 회화 100문장, 중국어 여행 회화, 단어 100개까지... 별도로 떼어서 들고 다니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실생활에서, 출장길에서, 여행지에서 바로바로 써먹는 마법의 300문장을 통해 현지인들이 매일같이 쓰는 진짜 리얼한 중국식 표현으로 나도 중국어 실력을 뽐낼 수 있을 것 같다.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하루 30분 투자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공부 습관이니,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도 매일 조금씩 듣고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중국어가 친숙해 질 것이다. 너무 쉽고 재미있는 중국어 입문서! 당신도 이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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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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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때가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유학을 다녀온 나도 있고. 최근의 변화들이 고무적이고 좋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회의 젠더 감수성 면에서도 이전에 비하면 확언할 수는 없지만 바뀌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것도 있고 어렵지 않은 것도 있으니까 우선 우리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백은하 기자

이 책은 지적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PUBLY)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먼저 발행이 되었던 내용들을 담고 있다. 퍼블리는 유료 콘텐츠 플랫폼이기에 '결제/라는 가장 명료한 방식으로 독자의 선택을 받아야 했는데, 그 결과물이 북폴리오와의 협업으로 종이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자, 에디터, 예술가, 영화감독, 프리랜서, CEO 등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입지를 다진 여자들이 인터뷰이가 되어 털어놓은 '사회생활 분투기'는 세상의 모든 일하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씨네21> <경향신문>을 거친 배우전문기자 백은하, 작년에 영화 <우리들로 데뷔한 영화감독 윤가은, <일개미 자서전>의 삽화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 아티스트 양자주, <괜찮지 않습니다>의 작가 최지은, GQ에서 푸드, 드링크 파트를 다루는 에디터 손기은, <록키호러쇼>, <헤드윅> 등의 공연 연출가 이지나, 연극 <모범생들>의 극작가 지이선,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의 기자이자 방송인 이지혜, 뉴프레스 공동대표 우해미, 두 개의 직장과 네 개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스스로를 'N잡러'라고 소개하는 홍진아까지... 이 책에 실린 여자들의 인터뷰는 그야 말로 공감되고, 이해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월등해져라'라는 말이 슬프고 구리지만 맞다. 정확히는 월등할 방법은 여러 가지라는 거다...사람들이 나보고 성격 세다고 하지만, 어른이건 스타건 나한테 이상한 짓을 했을 때 'No'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부당함을 당하지 말고 저항하거나 복수하라고 말하고 싶다. 일에서의 관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건강한 복수는 동기를 부여하며 삶의 에너지가 된다.                                   -이지나 연출

일하는 여자로서 겪는 번민, 차별, 성취에 대한 허심탄회한 인터뷰뿐만 아니라, 각각의 인터뷰 마지막에 인터뷰이가 꼽은일할 때 각별한 물건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백은하 기자는 오래전 뉴욕 여행용품 상점에서 산 신발주머니를 꼽았다. 가볍게 나간 날에 공적인 미팅 자리가 생기면 신발을 구두로 갈아 신을 수 있고, 구두를 신고 방송 촬영을 마친 날에는 스니커즈로 갈아 신고 산책하듯 집에 돌아올 수도 있다고. 필요할 때는 격식을 차릴 수 있게 돕고 원한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주머니와도 같다고 말이다. 이지혜 기자는 해외 직구로 구매한 생리컵 프리컵을 꼽았다. 그녀의 삶은 생리컵을 경험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을 정도라고, 그래서 그녀의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생리컵 전도사'란다. 생리컵을 사용하면 생리 기간에도 원래대로 일을 할 수 있어 좋다고, 젊은 여성 대부분이 한 달 중 3일에서 7일을 호르몬과 전투를 벌이는데 쓰고 있는데, 그 에너지를 제대로 생활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거다. 아티스트 양자주를 제외하고는 인터뷰이들이 모두 하나씩 각별한 물건을 꼽았는데, 그에 얽힌 사연을 만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책은 사실 표지 이미지부터 심플하면서도 독특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주어 인상적이었다. 이에 대해 편집자는 이렇게 말한다. "브라는 은유다. 일하는 여자들은 안다. 브라를 착용할 때 느끼는 압박감과 브라를 해제할 때 느끼는 해방감을. 물론 해방감이 없는 밤도 숱하다. 브라를 차고 풀 때 겪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는 여성이기에 겪는 고충, 성장과 이어진다. 그 사적이고 공적인 순간을 여자와 일하는 모든 이에게 전한다."라고. 이런 표지 이미지를 선정한 이유를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만났을 때 뭔가 뭉클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사회가 여성을 압박하고 차별하는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돼있기 때문에 현실 페미니즘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사회 생활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이나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년생에겐 인생 선배들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뜨거운 조언으로도 훌륭해 많인 이들에게 공감과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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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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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있구나, 라고 고타는 희열을 곱씹고 있었다. 마음에 든 여자와 단둘이 겨울철 최대의 취미인 스노보드를 타러 온 것이다. 오늘부터 이틀 동안, 내내 함께 지낼 수 있다. 숙소는 스키장 옆에 자리한 호텔이다. 밤에는 어떤 식으로 보낼까. 상상은 한없이 펼쳐져 갔다. 다만 그 상상이 지나치게 비약하면 스노보드는 뒷전이 될 것 같아 적당히 억눌러뒀다.

고타는 연인인 모모미와 단둘이 겨울철 최대의 취미인 스노보드를 타러 와서 들뜬 기분이다. 스키장엔 손님도 가득했고, 눈 상태도 너무 좋아 보드를 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고, 이틀 내내 그녀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녀와 한참 줄을 서 스키장 곤돌라에 탑승했는데 여자들 네 명으로 구성된 팀이 함께 타게 되었다. 그런데, 여자들의 수다를 한참 듣다 보니 말투와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던 것이다. 빨간 보드복의 여자가 고글을 벗자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녀는 바로 고타의 동거 상대였다. 3년이나 사귀었고, 1년 전부터는 함께 살며 결혼 얘기가 오가는 상대를 두고 고타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다. , 이제 그에게 천국의 시간은 지나가고, 지옥의 시간이 시작된다. 과연 그는 그 순간을 무사히 모면할 수 있을까?

같은 호텔에 근무하는 미즈키와 히다는 스키장에서 깜짝 프로포즈를 하기로 구상을 한다. 히다의 상대는 역시 같은 호텔에 근무하는 하시모토인데, 사귀기 시작한 지 석 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좋은 상대를 다시 놓치기 싫어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던 거다. 히다는 유독 여자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고, 고백에 실패한 적도 많았기에 미즈키는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사토자와 온천스키장에 도착한 그들은 다른 직장 동료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공들인 연출의 프로포즈를 받고 가슴 뭉클해질 하시모토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런데, 완벽해 보였던 그들의 계획은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의외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겔렌데 마법'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겔렌데에서 만나면 이성이 실제보다 몇 십 퍼센트쯤 더 멋있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고글로 얼굴을 확인하기 어렵다든가 스키복으로 몸매를 가릴 수 있다든가 스키나 스노보드의 실력을 보고 눈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눈밭에서 도움을 받고 자상한 배려를 받다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라는 것도 있다.

7편의 에피소드들은 각각 개별적인 스토리로 읽어도 흥미롭지만, 같은 호텔에 근무하는 직장 도료, 혹은 학교 동창과 옛 연인이라는 인연으로 얽힌 남녀 여덟 명의 관계들이 어떻게 연결될 지 지켜보는 걸로도 매우 재미있다. 스키장에서는 사람들이 자꾸 사랑에 빠지곤 해서겔렌데 마법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스키장에서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법칙이다. 설원의 분위기가 단점은 가려주고 장점은 부각시켜주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연애 소설인데도 낯 간지럽거나 억지스러운 대목이 전혀 없었다. <연애의 행방>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은의 잭>, <질풍론도>, <눈보라 체이스>에 이은 설산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설산 시리즈의 배경인사토자와 온천스키장에서 펼쳐지는 연애 소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랑의 화살표와 함께 그의 미스터리만큼이나 시선을 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첫 번째 연애소설이라는 점에서 읽기도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추리 소설의 제왕이 쓴 연애소설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기도 했고, 사실 그의 미스터리들이 반전으로도 유명하지만 드라마가 탄탄한 작품들이 많았던 터라 어느 정도 믿음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그는 밑줄 긋고 싶은 멋들어진 문장을 쓰지도 않고,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항상 인간에 포인트를 주고 그려내는 드라마라 추리 소설임에도 마지막에 감동을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보여줘 왔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속도감과 함께 평범한 인물들이 벌어지는 사건에 어떻게 엮여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드라마가 먼저 떠오르는 작가이기도 하다. 추리 소설을 쓰면서도 살인사건이라는 메인 플롯보다 그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방식으로 드라마가 만들어 졌고, 이상하게도 그 작은 모자이크 조각들이 모여 만드는 이야기가 너무도 따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결코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물들이 빚어내는 드라마는 매우 뭉클하게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서 순수 추리, 미스터리의 느낌보다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늘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미스터리 장르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만족시킬 만한 요소들이 많아진 최근의 작품 경향이 더 많은 이들을 그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연애 소설까지 완벽하게 써내고 있으니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최고의 엔터테이너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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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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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가 구급차에 도착할 때쯤, 로멜리는 작금의 세계 교회를 그려보았다. 교황 성하와 25억의 영혼들. 마닐라와 상파울루 슬럼에서 TV 주변에 모여든 빈민들, 도쿄와 상하이의 휴대폰에 빠진 출근 인파, 보스턴과 뉴욕 술집에서 스포츠를 즐기던 사람들이 갑자기 들어온 속보에.....

가라, 그리하여 온 세상을 제자로 만들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하라.......

 

이야기는 바티칸의 교황이 선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 추기경단 단장직을 맡고 있는 로멜리 추기경은 급한 연락을 받고 새벽에 교황 침실로 향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는 교황과 조용히 작별인사를 하며 생각한다. 교황은 이런 삶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루하루, 한 해 한해. 무장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50평방미터의 무미건조한 공간에서의 초라한 삶을 말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동요에 휩싸이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도 막중하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제 공식적으로 교황 자리가 공석이었으므로, 콘클라베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로멜리 추기경은 콘클라베 선거 관리 임무를 맡게 되고, 전 세계의 118명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든다.

콘클라베 기간 동안 성녀 마르타의 집에 기거하게 되는 추기경들은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다. 휴대폰과 컴퓨터는 당연히 금지되고, 개인 소지품 또한 철저한 확인 후 소지할 수 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 즉 열쇠를 지니다는 듯이다. 13세기부터 교회는 이런 식으로 추기경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보안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식사와 잠을 제외하고, 교황을 선택하기 이전에 추기경들은 성당을 벗어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누구나 교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규범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필요하다면 열두 날 동안 서른 번까지 계속해서 투표를 해야 하는 걸로 되어 있다. 대부분 서너 번의 투표 후에 결정이 되었지만, 무려 여덟 번의 투표 후에 교황이 선출되었던 적도 있다. 그러니 투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야 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오늘 밤이야말로 콘클라베의 진짜 사업이 벌어진다. 추기경 선거인단에 '어떤 형태의 협상이나 협의, 약속이나 위임을 금하고 어길 경우 파문의 죄로 묻는다'고 교황령으로 정하고는 있으나 콘클라베는 이미 선거가 된 지 오래다. 선거는 숫자 싸움이다. 누가 79표를 가져갈 것인가?

 

개인적으로 별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종일관 종교적 성스러움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낯설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저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성역이나 다름없는 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그런지 흥미로운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런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현대 정치판의 그것처럼 흘러가는 인물들의 야망과 경쟁 구도도 페이지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어 주었고 말이다.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독자인 내가 읽기에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걸 보면, 로버트 해리스가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로버트 해리스는 지적 스릴러계의 거장, 히스토리 팩션계의 최고봉으로 불리는데, 이번 작품은 기존 스릴러에 비해 소재도 그렇지만 조금 차별적인 부분이 많아 기존 팬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72시간이 지나면 118명의 추기경들 중에 오직 한 명만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가 된다.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추기경들 각각의 배경과 투표가 거듭되면서 점점 달라지는 판도의 변화, 그리고 여기 저기서 속출하는 비밀스런 폭로들로 인해 스토리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로버트 해리스가 음모와 부패 등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렇게 맛깔나는 구성과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해진 규칙부터 교황의 선종 및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의식, 그리고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행해지는 추기경들의 행보, 이와 관련된 역사적 일화까지 더해져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가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리얼한 콘클라베를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작품 만이 가진 매력이다. 신을 믿든 안 믿는, 교회에 다니든 그렇지 않든 이 작품은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신앙이 독실하거나 천주교의 내부 사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작품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줄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은 <폼페이> <유령작가>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의 대표작으로 <콘클라베>를 추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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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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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뭘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뭘까.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거라고. 어쩌면 평생에 단 한번, 서로의 소울 메이트를 힘겹게 찾아 헤매다 마침내 상대방을 알아보는 순간, 우리는 생에 남아 있는 모든 시간을 상대와 함께 하길 바란다. 하지만 서로에게 반해 온 세상에 단 둘만 존재하는 것 같던 마법의 시간이 지나고, 결혼이라는 현실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만다. 어떤 문제는 같이 살아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아무리 오래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자주 했더라도 말이다. 작가는 말한다. '연애가 멋진 신발을 신은 사람과 같이 걷는 거라면 결혼생활은 양말도 벗은 맨발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런 부분이 편안함과 친밀함을 가져올 수도 있고, 반대로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참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생활을 공유하고, 그러니까 일상의 민낯을 고스란히 만나게 되는 결혼이란 대체 뭘까.

‘홀딩, 은 스윙 댄스 용어로홀딩은 파트너와 만나 손을 잡는 동작, ‘은 돌면서 춤을 도는 동작이라고 한다. 춤을 따로 배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스윙 댄스의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이 되진 않는다. 다만, 나도 학창시절에 남학생들과 어색하게 포크댄스를 췄던 기억은 가지고 있어 조금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춤을 추는 두 사람, '홀딩, 잠깐 정지하며 서로를 붙잡았다가 턴, 회전하는 동작.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서로를 잡았다가 빙그르 도는 순간, 그저 공중에 사라져 버리는 그 짧은 시간의 틈을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은 소소하게 쌓인 감정들이 결국 폭발해 파국을 앞두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그들 두 사람이 갈등을 극복하고 홀딩,하며 살아갈지, 혹은 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턴, 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갈 지의 과정이 소설의 내용 전부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결혼 후 그들이 파국에 이르게 된 과정이나 이혼 후의 삶보다는, 현재는 그런 상태이지만 그들에게도 서로에게 오직 상대만 보이던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니까 이별이나 이혼 이야기라기 보다, 연애의 과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지나온 어떤 순간, 인상적인 장면을 꺼내 후후 불어 맛볼 수 있다는 건 인생이 베푼 행운임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인생에는 언제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우려먹을 수 있는 티백이 필요하다. 청춘이라 명명할 수 있는 장면과 따뜻했던 눈 맞춤, 짜릿했던 키스, 온몸과 마음이 살아 있다고 느꼈던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티백이어야 한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 그것들로 우려낸 차를 마시며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니고 이 삶이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으며 사랑의 한복판에 서 있던 시절도 있었다는 걸 깨달으면 기운을 얻을 수 있다.

지원과 영진은 다투게 되면 일주일 동안 말을 섞지 않은 채 지내곤 했다. 그들 사이엔 아이도 없었고, 각자 거실과 서재에서 낯선 타인처럼 각방을 쓰며 지내는 것이 이제는 그들 사이의 관례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지난번 싸움에선 냉전 상태가 열흘 넘게 이어졌고, 이번에는 아직 일주일째지만 보름을 가뿐히 넘기며 장기전에 돌입할 것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지원은 결정을 내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그들은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영진은 공무원이었고, 닉네임조차 자기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지식하고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이 호감으로 다가오게 되는 순간을 거쳐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둘만의 춤을 추며 사랑의 마지막 단계라고 불리는 결혼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현실이란 언제나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진행되지 만은 않는 법, 애써 고른 테이블에 생활의 얼룩이 지듯 사랑은 쉽게 변형되고 천생연분이라고 믿었던 관계에 대한 회의가 점차 얼룩처럼 커진다.

결혼생활은 사랑 위에 세워지지만 어떤 문제로 감정이 상해서 대립할 때 사랑은 저 너머로 날아가버리거나 훼손 방지를 위해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

나도 이제 결혼 3년차인데 남편과 연애를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부분들과 다른 점들이 어쩔 수 없이 생기기 시작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극복할 수 있는 것과 넘어가기 어려운 것을 헤아리는 것을 경험해봤기에, 더욱 서유미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극중 지원은 결혼생활 내내 누군가를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가, 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수천 개의 갈래로 나뉘고 수많은 변수로 이루어지는데, 바로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관계 속에서 자주 길을 잃고 좌절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언제나 자신과 맞지 않은 그 부분을 고치고 싶어 하고, 자신이 달라지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단언컨대 착각이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수십 년의 시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지 않나. 상대에게 맞춰주고, 포기할 수 있는 건 포기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낯선 타인이 부부라는 테두리 아래 가족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 버린 시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결혼을 하는 이들이 더 많다. 결혼을 인생의 완성이나 삶의 해피엔딩으로 생각하지 않는, 요즘 젊은 부부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 더 와 닿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삶의 서사 속 결혼생활을 그리고 있어,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거나,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았거나,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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